올겨울 눈도 많고 날씨도 추워 ‘빛나는 빨간 코’ 순록인 루돌프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 기대된다. 종일 밤이 계속되는 혹독한 북극의 하늘을 밝히면서 산타클로스의 썰매를 끄는 순록들을 이끄는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근데 그게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다.
루돌프는 1939년 미국 작가 로버트 메이(1905~1976)가 낸 ‘루돌프, 빨간 코 순록’이란 책의 주인공으로 태어났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어린이를 위한 책을 써 달라는 백화점의 주문을 받고 고심하던 메이는 안개 낀 시카고 거리를 걷다가 빨간 코로 안개를 밝히는 캐릭터를 번개처럼 떠올렸다.
그런데 편집자는 빨간 코가 알코올 중독자를 떠올리게 한다며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난관을 돌파하게 한 건 빨간 코 때문에 구박받던 어린 순록이 나중에 산타의 썰매를 끈다는 멋진 스토리였다. 어린이판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책은 600만 부나 팔렸고 루돌프는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됐다.
메이는 순록이 어떻게 생겼나 보려고 편집자와 함께 시카고 링컨동물원에 가보았다. 그런데 코가 빨갛기는커녕 분홍빛을 보기도 힘들었다. 그렇다면 루돌프 사슴의 코가 빨갛다는 것은 모두 지어낸 이야긴가?
그런데 루돌프의 코를 과학적으로 연구한 논문이 나왔다. 영국의 권위 있는 학술지 ‘영국 의학 저널(BMJ)’이 2012년 12월에 ‘왜 루돌프의 코는 빨간가: 관찰 연구’란 제목의 논문을 실었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 의학자들이 건강한 성인 5명과 성체 순록 2마리를 대상으로 실험한 내용을 보고 했다.
실험 결과, 순록의 코에는 모세혈관이 빽빽하고 적혈구가 풍부한 것으로 나타났ㄷ. 그래서 붉게 보인다는 것이다. 코의 모세혈관은 1㎟당 20개로 사람보다 25%나 많았다. 실제로 순록을 트레드밀에서 걷게 한 뒤 열화상 카메라로 찍어봤더니 코끝이 붉게 나왔다. 이 논문은 대중매체에서는 자주 인용되고 있지만 학계에서는 별 영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학과지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