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무렵>
배운 것 없이, 가르치고 싶었던
신학교 1-2학년쯤 되었을 때였을까,
교회에서 진행된 성경 암송 대회였을 게다.
대학부는 야고보 1장이 본문이었다.
이미 다 외웠고 하나도 틀리지 않을 자신 있었다.
입꼬리에 슬쩍 교만한 미소를 흘려보며,
내심 우승을 기대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하나도 틀리지 않았고,
나는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이제 다음 성인 부서 차례였다.
별로 깔끔해 보이지 않고,
옷도 매우 낡은
노숙자 같은 분이 앞으로 걸어왔다.
순간 내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우리 교회에 내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있더라도 암송하러 대회에 참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저 사람은?’
당연히 가끔 예배 중에도 들어오는 걸인이라 생각했다.
용감한(?) 걸인은 간혹 예배 중에도 행패 같은 구걸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나름 사찰 청년에 가까울 정도로 교회에 자주 나오고,
또 여러 일을 하는터라
아무도 막지 않아서 이상했지만,
나라도 잘 달래 돌아가시라 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아니,
내 예상과 달리,
그 분도 암송 참가자라는 것 아닌가.
발음도 어눌하셨고,
몇 군데 틀리기도 했다.
그가 외우기를 마친 후,
사회자가 말씀하셨다.
“이 분은 우리 교회 나오신 지
2주 밖에 안되셨습니다.
그런데 꼭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다고 하셔서
암송대회 참가하셨습니다.
그리고요, 성도님들 놀라지 마세요.
이 분은 앞을 못 보는 분이십니다.
구역장님이 카세트에 녹음을 해주셔서
듣고 외우셨습니다.”
아무도
내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괜시리 얼굴이 뜨뜻해졌다.
그런데,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을 받은 것은
내 앞에 펼쳐진 성경책 때문이었다.
아까 암송 직전까지 점검하느라 펼쳐 놓았다 덮지 않았다.
내가 외웠던 바로 다음에 이 말씀이 이어지고 있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약 2:1-6상)“
글자가 보이지 않았으나,
말씀으로 은혜를 표현한 분과
온갖 교만한 몸짓으로
바로 뒤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나,
그리고 글자 말고는 도무지 읽을 줄 몰랐던 나.
누가 눈이 어두운 자요, 가난한 자였을까.
꽤 오랜 세월이 지난
스무 살 무렵의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