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울주군 롯데家의 명혈들(五代에 七陰 一陽)
1. 신격호 계보(系譜)와 명혈(名穴)
* 영산신씨(靈山辛氏)의 시조 신경(辛鏡)은 고려 인종때(1138년) 중국에서 귀화하여 문과에 급제하고 경남 창녕군 영산에 정착하였고 9세손때 영월신씨가분파하였다. 영산신씨의 인구는 2020년 현재 10만명이다. 13세손 辛乙和가 삼동면 조일리 지랑마을로 이주하여 언양 입향조가 되었다. 다만 15세손 신석환이 1498년(연산군때) 삼동면 하잠리로 이주하였는데 이 분을 언양파 입향조로 보기도 한다. 그뒤 18세손때 삼형제가 지랑, 하잠(신전이 입향), 방기리로 나누어 정착함에 따라 각기 그 지방의 입향조가 되고 그 마을은 400년 역사를 지닌 집성촌이 되었다.
* 하잠파에서 신혁번(시조의 22세손, 신회장5대조)이 둔기리로 이주하여 작동과 둔기리 일원의 신씨들 입향조가 되었다. 롯데그룹의 창업자 신격호(辛格浩,초당공파 27세손)는 둔기리 입향조 신혁번의 5세손이다. 둔기리 입향조로부터 신격호까지 5대에 걸쳐 음택명당7개 양택명당1개를 차지하였다. 인촌 김성수 집이 고창일원에 명당을 많이 쓰고 잘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에 버금간다.
* 롯데 음택에 대하여 몇 분이 간산기를 발표하였는데 미진한 감이 있어서 총정리를 한다. 다만 자료가 부족한데다가 묘비를 해득하기 어려운 탓으로 각 지역의 입향조에 대하여 代數계산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2. 언양 입향조(신격호 14대선조) 묘와 둔기리 입향조(5대선조) 묘
* 언양입향조 신을화(시조로부터13세손)이하 3대묘---울주군 삼동면 153-1, 河回하는 곳에 뜨있는 蓮花浮水 대명당(증조부 묘 항목에서 지도로 표시함)
* 둔기리 입향조 신혁번(1807~1861)---신회장5대조(현재 8세 후손이 다수)---둔기리 산85-1, 신혁번 묘는 장군대좌 大명당이고(말발굽으로 보이기도 한다) 단상 아래에 봉소(鳳巢,봉집)局이 새로이 결혈되었는데 부인 파평尹씨 묘가 있다. 신혁번묘는 자좌라고 쓰여 있는데 계좌가 좋을 듯 보이고 부인묘는 인좌로 정혈이다. 나는 윤씨묘와 신혁번묘만을 살피고 부근에 있는 다른 묘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는데 저명한 閔某선생은 윤씨묘는 왜 그 자리에 썼는지 모르겠다고 혹평했다.
* 신혁번 묘 중국—신혁번 묘와 신격호묘는 둔기리산82-1에서 서로 갈라선 다른 가지이다.
3. 四代祖 묘(怪穴)
작동리 산155에 4대 조부와 조모 쌍분이 있는데 조모묘가 동라형(銅鑼形, 동으로 만든 징, 징소리는 멀리까지 퍼진다)의 명혈이다. 이 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조모는 허기진 스님을 모셔와서 제사용 쌀로 죽을 쑤주고 돌보아주었다. 스님은 그 보답으로 재물복이 있는 동라혈과 권력이 있는 천상 깃대봉을 점지해 주었다. 당초에 형이 동라형을 신후지로 예정하였는데 동생(신회장 4대조)이 먼저 죽자 형은 동생을 위하여 마을 가까이에 있는 동라형을 양보하였다. 그 탓인지 알 수 없으나 동생집 계열은 신격호 형제들이 거부가 되었고(官界로 진출한 사람은 신회장4촌형 신병호가 사무관을 지냈을 뿐이라 한다) 형집은 울산시장과 경찰고위직을 배출하였지만 거부(巨富)는 없다고 한다. 신안이 아니면 찾기 어려운 괴혈이다. 후손들은 소점한 지관이 성지라고 알고 있으나 성지는 광해군패거리로 치부되어 인조반정(1623년)이후에는 종적이 묘연한 인물이므로 연대(年代)가 맞지 않는다.
* 동라지도—울주군 작동리 산155
* 동라전경--
4. 증조부
* 증조부 신녕기 묘는 둔기리 산313-3(富興嶝)에 있는데 也字명당이다. 후장이 없으나 든든한 바위절벽이 뒤를 받쳐주고 있다.
* 언양입향조의 하잠 연화부수형과 증조부 야자형--
5. 증조모 경주김씨 묘(也字묘의 부인)
언양 반천리산116. 유지앵서(柳枝鶯棲) 명혈이다. 3대조부의 첫 부인(婦人) 동래정씨는 일찍 죽고 후처로 경주김씨가 계승하였다. 상석에 신격호등 5형제와 사촌형 신병호가 증손자라고 새겨져 있다(신격호는 5남5녀이다). 혈장이 빵떡처럼 동그랗고 후덕하게 생겼다. 묘는 와(窩)로 된 곳에 있는데 언듯 보기에는 묘 위의 반듯한 곳이 정혈이고 와로 된 곳은 혈구처럼 보인다. 관룡자로 측정하니 正反의 기운이 맹열하였다. 한걸음 백호쪽으로 옮긴 곳이 정혈인 듯 보인다. 거부지지이다.
6. 조부 신석곤(1872~1944)
둔기리 산261. 당처만 보면 상제봉조처럼 보이지만 혈처로 오는 용체(龍體)가 굼틀거리면서 직진하여 오다가 90도로 방향전환을 하였으니 飛龍上天격이다. 명혈이다.
7. 亡父 신진수 (1902~1973)---울주군 구수리 산114
목단개화형으로 명당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반대설이 많다. 물이 쏘아 오고 앞가림이 낮아 도로에서 훤히 보인다. 태화강 양변에 늘어선 산줄기가 좋다는 사람이 있으나 혈처 무릎아래 낮게 늘어서 있으니 영향력이 없다. 위기에 적과 맞서 보호해주지 못 할 것이다.
8. 신격호(1921~2020)---둔기리산46-1. 두사충의 비금탁목 결록지로 대혈이다. 반대견해도 만만찮다. 정상을 좋다고 하는 분도 있으나 정상은 진양 강씨 쌍분이 있는데 칠월칠석에 머리 벗겨진 까치머리 같이 부석부석하다.
9. 생가지—울주군 둔기리590-1
대암호조성(1969)으로 아래에 있던 마을이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옮기기 전에도 명당이었다고 추측되고 현재 위치도 좋은 곳이다. 옛날에 혜공노인과 율리방면에서 문수산으로 올라 가는데 노인이 갑자기 산넘어 반대편에 가보자고 하였다. 작동을 거쳐 둔기리 롯데별장에 이르러자 노인이 도무당 선무당이라 좋아 했다. 무슨 뜻인가 물어니 도인이 춤추는 형상이라 했다. 그 곳에서는 문수산이 보이지 아니한 탓으로 몰랐는데 그뒤 문수사로 올라가서 본 즉 문수산이 도인이고 별장쪽은 도인의 춤추는 손이고 별장은 다섯 손가락중 가운데 손가락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문수산이 워낙 통통하므로 도인은 아니고 보살이나 옥녀로 보는 편이 정확하겠다. 옥녀무수형(玉女舞手形)의 대명당이다
* 옥녀무수 지도--
10. 인력으로 이룰 수 없다
둔기리 입향조로부터 신격호까지 5대에 음택명당7개 양택명당1개를 용사하였으니 대단하다. 동라와 야자형은 물형명칭이 전해오는 곳이고 나머지는 내가 작명하였다. 동라혈은 신안이 아니면 찾을 수 없고 유지앵서는 신안이 아니면 재혈할 수 없다. 명당혜택을 많이 받았으니 많이 베풀어야 오래 갈 것이다. 택롯데회장과 동생 농심회장은 사이가 나빠서 만나도 서로 외면할 정도라고 하였다. 롯데회장은 신후지에 관심이 없어서 뭇 풍수들이 명당을 소개하려고 접근하여도 반응이 없었다. 반대로 농심회장은 이름있는 풍수를 동원하여 신후지를 물색하고 假墓(둔기리산101-1)를 두 개나 조성하고도 나중에는 밀양 임고리에 묻혔는데 평범하다는 견해가 다수이다. 관심없던 사람은 명당가고 애쓰던 사람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20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