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부안여행
(노랑상사화길-채석강-내소사)
노랑상사화길(변산마실길 2코스)
해변 길을 따라 자연적으로 조성된 노랑상사화 군락지를 만날 수 있어, 초가을에 걷는 바닷길로 가장 빼어난 코스로 소문나 있습니다. 누구나 연상하는 붉은 상사화가 아니라 보기 힘든 노랑상사화 꽃이 활짝 피면 진노랑 물감을 흩뿌려 놓은 듯 마실길 구간을 온통 노랗게 물들여 장관을 연출합니다. 껑충한 연초롱 꽃대 끝에 왕관처럼 얹혀진 노랑 꽃술이 황홀경에 빠져들게 합니다. 솔향 가득한 송림과 금빛 모래사장도 걷는 이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8월 말에서 9월 초에는 오솔길 따라 핀 상사화 꽃길, 솔향 가득한 금빛 모래의 고사포해변, 옥녀가 머리를 감았다는 성천에 이르는 이 길의 정식 명칭은 노루목상사화길입니다.(5.3km, 1시간 30분 소요)
상사화(相思花)-. 꽃이 필 때 잎은 없고 잎이 자랄 때는 꽃이 피지 않으므로 서로 볼 수 없다 하여 상사화라는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상사화의 종류는 많은데 개상사화, 진노랑상사화, 제주상사화, 위도상사화 등. 이곳의 상사화는 붉노랑상사화입니다. 꽃무릇하고는 다른데 꽃무릇은 석산이라고 하며 진홍색의 꽃을 피워냅니다. 꽃무릇도 잎과 꽃이 같이 만나지 못한다는 넓은 의미의 상사화이기도 한데 두 종류가 같은 특징이 있어서 넓게는 상사화라 통용되기도 하여 많은 사람들이 영광 불갑사 꽃무릇. 용천사 꽃무릇을 상사화로 부르곤 하는데 상사화와 꽃무릇은 다른 것입니다.
이 길의 이름인 ‘노루목상사화길’은 말 그대로 노루나 다닐 법한 좁은 길목을 뜻하는 ‘노루목’과 길에서 붉노랑상사화 자생지를 만나기에 지어진 이름입니다. 길 이름처럼 좁은 길 따라 핀 상사화가 매력적인 길입니다. 노루목상사화길은 송포항부터 시작됩니다. 송포라는 지명은 ‘지지포’라는 곳에서 사는 선비가 이곳 소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학문을 연찬했는데 그때부터 ‘솔 송(松)’자에 ‘갯 포(浦)’자를 써서 ‘송포’라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송포마을은 낮은 지붕이 인상적입니다. 바닷바람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구조로 해안지역 주거구조 양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채석강(彩石江)
강 아닌 절벽을 두고 강(江)이라고 했습니다. 고서를 뉘어놓은 듯한 해안 절벽입니다. 절벽 사면에는 빗살이 수평으로 요철을 그리며 빽빽하게 그어져 있습니다. 거기가 강이라 합니다. 다른 예쁜 이름도 있을 법한 이 절벽에 중국의 강 이름이 덜컥 붙어 있습니다. 예로부터 선비들은 한국 땅에 있는 절경들에 중국 지명을 많이들 갖다 붙였습니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퍼마시다가 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보고 뛰어들었던 강. 그 강 이름이 이 절벽에 붙어 있습니다. 실제로는 절벽입니다.
지질학적으로 볼 때엔 퇴적암, 그러니까 자갈, 바위 따위가 쌓여 '책을 쌓은' 듯한 형태로 남게 됐습니다. 사람들은 이 강 아닌 강에서 세월을 봅니다. 바람처럼 스쳐가는 세월, 그 영겁의 시간이 절벽에 새겨져 있습니다. 햇살 각도에 따라 절벽은 색깔을 바꾸고, 석양 무렵이면 누렇고 붉게 물듭니다. 해무(海霧)라도 끼는 날이면 절벽과 바다와 노을은 서로 추켜 주며 웅장한 그림을 만듭니다. 전북 부안은 변산의 진주요, 눈을 감고 카메라를 들이밀어도 사진이 되는 기이한 풍경을 간직한 절벽입니다.(조선일보 · 박종인 기자)
채석강은 썰물 때 드러나는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과 그 오른쪽 닭이봉(200m) 일대의 층암절벽과 바다를 총칭하는 이름입니다. 기암괴석들과 수천 수 만권의 책을 차곡차곡 포개 놓은 듯한 퇴적암층 단애로, 자연의 신비감을 느끼게 합니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강물에 비친 달을 따려고 뛰어들었다가 익사했다는 중국의 채석강(彩石江)과 그 모습이 흡사해 이름 붙여졌습니다. 특히 닭이봉 한 자락이 오랜 세월동안 파도에 깎이면서 형성된 퇴적암층이 절경입니다.(대한민국 명승 제13호)
닭이봉 밑에 위치한 채석강은 자연이 빚은 퇴적예술의 걸작이라 할 만큼 다른 퇴적암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가 많고, 퇴적한 과정들이 절벽에 입체적으로 잘 드러나 있습니다. 닭이봉은 채석강을 우산처럼 받치고 있는 산 정상을 말합니다. 산 아래의 격포 마을이 지네 형국으로 되어 있어 마을에 재앙이 끊이지를 않자 지네와 닭이 상극이라는 것을 어느 지사에게서 알아낸 다음 마을 사람들은 이를 제압할 수 있는 족제비상을 만들어 사투봉에서 세워 닭이봉을 마주보도록 하였더니 재앙이 물러갔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설에 의해 산 이름을 닭이봉이라 명명했다 합니다.
내소사(來蘇寺)
진서면 석포리 능가산(관음봉, 424m) 가선봉 기슭에 기대 있습니다. ‘능가산 내소사’라고 부르는 까닭은 <동국여지승람>에 변산을 일러 ‘능가산으로도 불리고, 영주산으로도 불린다’고 한 기록 탓입니다. 1363년 전 백제 무왕 34년(633년)에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소래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는데 당시에는 대소래사와 소소래사가 있다 했으나 지금은 소소래사인 내소사만 남아 있습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것을 조선 인조 11년(1633)에 청민(淸旻)선사가 ‘대웅보전(大雄寶殿)’을 지으면서 처음으로 중건하였습니다. 내소사에 딸린 암자에는 청련암(淸蓮庵), 지장암(地藏庵)이 산의 가파른 면에 마치 불상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웅보전 안엔 석가불좌상을 가운데로 모시고 좌우에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봉안돼 있습니다. 여기엔 불화가 3점 있는데 영산후불탱화, 지장탱화 그리고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석가불좌상 뒤 벽에 ‘백의관음보살좌상’이 있습니다. 이 벽화는 황금빛 날개를 가진 관음조가 그렸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대웅보전은 기단을 높게 쌓은 뒤 그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40척×35척의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지은 단층 팔작집으로 기둥간살은 넓고 중앙칸은 더 넓으며, 기둥은 두꺼운 데다 낮아 평활합니다. 특히 안기둥은 민흘림이고 모서리 기둥에는 배흘림이라 보기에도 안정감이 있어 보입니다.
내소사하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떠 올리는 것은 대웅보전의 문살입니다. 문살을 깎은 목공의 솜씨나 시간이 씻어낸 나무결의 흔적이 걸작입니다. 대웅보전 정면창호는 2짝-4짝-2짝 구성으로 돼 있는데 각 창호에는 정교하게 해바라기꽃, 연꽃, 국화꽃의 꽃무늬 문살이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각 창호마다 그 모양이 다른데 그 하나하나 아름다움의 우열을 가리고자 한다면 백겁의 시간도 모자랄 판입니다. 대웅보전에는 관음조가 단청을 그렸다는 전설과 함께 또 다른 승전설화가 있습니다. 내소사 대웅보전의 공포에 얽힌 전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청민선사가 대웅보전을 재건코자 목수를 불렀습니다. 3년 동안 말 한마디 없이 나무만 깎는 이 목수를 탐탁찮게 여긴 사미승이 목수의 나무토막을 하나를 숨겼습니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안 목수는 자신의 정성이 부족하니 절을 지을 수 없다 했지만 청민선사의 간곡한 사정에 못 이겨 부정 탄 사미승의 나무토막은 뺀 채 건물을 지었습니다. 지금도 법당 오른쪽 윗부분 목침이 있어야 할 자리는 빈 채로 있습니다. 이 전설과 함께 사찰 내 단청에 관한 전설도 내려옵니다. 이 전설을 서정주 시인이 산문시로 써 놓은 바 있습니다.(참고자료: 부안독립신문 ‘김형주와 함께 하는 부안기행’)
부안해안도로
해안을 감고 도는 부안 해변은 리아스식 해변이 굽이치며 넓고 확 트인 느낌의 멋진 풍광을 연출하는데, 국도 30호선 하서면 백련초등학교에서 고사포해수욕장~하섬전망대~적벽강과 수성당~격포항으로 연결되는 17km 구간은 소문난 드라이브 코스입니다. 그만큼 경관이 수려합니다. 하섬은 변산 고사포 해수욕장에서 약 2km 떨어져 있으며, 바다에 떠 있는 연꽃같다 하여 연꽃 하(荷)자를 써서 하섬이라고 하고, 새우가 웅크리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하여 새우 하(鰕)자를 쓰는 하섬이라고도 합니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 무렵 썰물 때가 되면 신비의 바닷길이 열립니다.
곰소항
왜정 말엽 우리 민족에게서 착취한 농산물과 군수물자를 반출하기 위해 항만을 구축하고자 도로와 제방을 축조하여 현재의 곰소가 육지가 되면서 만들어진 항구입니다. 항구 북쪽에 있는 50여 ha에 달하는 드넓은 곰소염전은 국내에서 얼마 남지 않은 천일염 생산지입니다. 이곳에서 나는 싱싱한 어패류를 곰소천일염으로 절여 각종 젓갈을 생산하는 대규모 젓갈단지가 조성돼 있어 주말이면 젓갈쇼핑을 겸한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