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에 1979년도-1990년대 사이 미국의 팝계에서는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라는 두 명의
가수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었는데 당시 프린스는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프린스의 퍼플레인(Purple Rain)슬픔이란 뜻을 가진 보라색 비 란 노래가 미국전역을 휩쓸고
있을때 역시 마이클의 beat it (꺼져) 란 노래 역시 프린스 노래와 같이 젊은이들 사이에 큰 인기
를 끌고 있을 때였다
프린스의 노래 퍼플레인이 크게 히트하자 영화가 동시에 미국 전역에서 개봉이 되었는데 나는
프린스의 퍼플레인이란 영화를 보기위해 영화관을 찾은 적이 있었다. 마침 영화는 상영이
되고 있었다 어떻게 중간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극장안이 어둑 컴컴하여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어
간신히 어느 자리 하나를 발견해서 겨우 앉았다
물론 옆자리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었지만 운좋게 앉게 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고 한숨을
돌리고 있었는데 마침 일회 상영시간이 끝났는지 불이 켜지기 시작하며 깜짝 놀라는 상황이
발생했다
당시 나는 미국에 와서 처음보는 영화 관람이라 마음이 무척 설레기도 했었는데 처음 영화
관람치 고는 정말 쇼킹한 장면을 목격한 것이 지금껏 그 일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있는 것 같다
일회 상영시간이 끝나고 불이 켜지면서 실내의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는것이 아닌가 더욱
놀란 것은 백인 색깔을 한 사람은 나 혼자였던 것이다 온극장 안을 새까맣게 칠해 놓은 것처럼
검디검은 흑인들로 가득 찼는데 백인은 한명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만
해도 백인과 흑인의 경계가 무척 심했던 시기였던것을 당시에는 별로 눈치를 못 채고 있었던
나였다
하여간 당시에는 온통 검은색에 당혹감을 감출수가 없었지만 그냥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불안하기도 했었지만 그날의 경험이 그들 흑인들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춰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것은 그들의 사회를 이해하지 못한 너무도 위험한 행동이였다는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가 유명한 팝의 가수로 활동은 하고 있었지만 백인 사회에서는
그들의 노래를 듣는것을 수치로 여기고 있을 때였다 당시에는 백인과 흑인의 경계가 너무도
뚜렷하고 백인이 출입하는 곳에는 흑인 금지라는 팻말도 붙여 놓은 곳도 있을 때였다.
백인 우월주의가 판을 치는 미국시회에서 당시에는 흑인의 기회균등의 시대는 전연 오지 않을
것도 같았다 나 역시 한때는 미국 사회에서 보이지 않게 백인들의 압력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사회에 녹아나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한수 위의 무언인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들의
사회에 적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처음 한동안은 적응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미국사회에서의 경험은
훗날 나 자신의 적성 향상과 자신감을 키우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았다
프린스의 퍼플레인처럼 그의 우수에 깃든 노래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이 잘 녹아나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삼류 작곡가로 술만 취하면 프린스를 늘 학대했지만 프린스는 음울했던
어린 시절의 과거를 과감히 딛고 팝스타로 성공은 했지만 그 성공을 아쉽게 뒤로 하고 2016년
4월 21일 57세의 나이로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 외곽 카버 카운티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
되었다
처음 미국 생활을 시작하면서 프린스의 퍼플레인을 들으면서 고국의 향수를 달래고 했던 순간
들이 떠오르며 세월의 격세지감을 느껴본다 당시 팬의 한 사람으로서그의 영화와 함께 극장
안에서의 추억이 새삼 생각이 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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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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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 - Purple Rain (Official 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