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린 여행2 - 성 패트릭성당을 거쳐 크라이스트처치를 보고 더불린성을 구경하다!
어제 2022년 4월 24일 일요일 영국 중서부 버밍엄에 서쪽에 위치한 슈루즈버리에서 기차를
타고 크루와 체스터를 거쳐 웨일즈땅 서북쪽에 있는 홀리헤드 에 도착해 45파운드에
배 표를 끊으니 17시 15분에 출항한 배는 북해 를 건너 2시간만에 더불린 에 도착하기로
셔틀 버스로 시내로 들어와 택시를 타고 호텔에 도착해 펍을 찾아 맥주 한잔 후에 1박 합니다.
2022년 4월 25일 호텔에서 주는 뷔페식으로 차려진 풍성한 아침을 먹고는 관광에 나서는데...
아일랜드는 우리나라 여행 가이드북에는 나오지 않는지라 호텔 예약시 인터넷에서
본 지도를 A4 종이에 볼펜으로 그려온 지도 와 리셉션에서 받은 지도 를 함께 들고는 나옵니다.
호텔을 나와 버스나 트램을 탈까하다가 구시가지는 그리 크지 않으니 시내 지리도 익힐겸 걸어서 둘러
보기로 하고는..... 서북쪽으로 걸어서 먼저 성 패트릭 성당 St. Patrick's Cathedral 을 찾아 갑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살피니 거리에 어느 건물에는 시계 밑에 사람을 그려넣어 마치 시계를
달고 있는 것 처럼 보이게 하는 우스꽝스런 그림이 눈에 띄고 그 옆에 꽃을
파는 가게 들이 보이는데..... 도로를 지나는 버스는 런던 처럼 2층 버스 인게 특이합니다.
아일랜드는 섬이라는 뜻의 보통명사 Island 가 아닌 고유명사 Ireland 인데.... 켈트족 빛의 여신인 에이레
(에일린) Eire + 땅 Land 의 합성어로 1937년 처음 독립시에 국명을 “에이레” 라고 했다가 1949년
에 “아일랜드” 로 고쳤다는데 한국은 36년 일본 식민지 였지만 아일랜드는 650년간 영국 식민지 였습니다.
1948년에 제정된 아일랜드 공화국법 (Republic of Ireland Act 1948) 에서는 이 국가를
'아일랜드 공화국(영어 Republic of Ireland, 아일랜드어 Poblacht na hÉireann)'
이라 하고 있지만..... 이 국가에 대한 description 일 뿐 name 인 것은 아니니
헌법에서는 자국명을 Ireland 로 아예 못박았기에 모순되지 않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아일랜드를 오랫동안 지배한 영국은 북아일랜드와 대비해 '남아일랜드' (Southern Ireland, Deisceart
Éireann) 라 칭하기도 했는데 1949년 이후에는 '아일랜드 공화국' (Republic of Ireland) 이라
칭하고 있으며 영국의 자치령이었던 아일랜드 자유국이 국호를 에이레 (Éire) 또는 아일랜드로 고친
1937년 부터 완전한 공화국이 되는 1949년까지 영국 정부는 Eire 로 지칭하여 Ireland 와 구분 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Ireland 를 북아일랜드까지 포함한 지리적 명칭 으로 고정시키고 아일랜드 자유국이
이름을 바꾼 에이레/아일랜드 를 Eire 로 고정시켜 양자의 의미를 확실히 구분지은 것이니
아일랜드가 1990년대 말 벨파스트 합의와 헌법 개정을 하기 전까지 아일랜드섬 전체를
명목상 자기 영토 라 주장했기 때문에 영국이 영유권 주장에 말려들지 않기위해 저리 한 것입니다.
성 패트릭 성당 은 교회라기 보다는 무슨 큰 성채 처럼 견고해 보이는데.... 문이 닫혀있는지라 들어가지는
못하고 주변의 공원 같은 뜰만 구경하는데 4월 하순이건만 여긴 북해 를 접한 탓인지 날씨가 춥습니다.
이 성당은 패트릭 성인 이 AD 450년에 아일랜드에 머물때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던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던
우물 곁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교회로 아일랜드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데 목조건물이던 것을 1192년
존 코민 대주교가 석회암 으로 91미터 교회를 지었고 1222년 미놋 대주교가 43M 타워를 세웠다고 합니다.
1537년 영국 지배하에 아일랜드 성공회 성당 이 되었고 1800년대는 기네스 집안이 개축 했으며 3월 17일
은 성인이 죽은 날이니 아일랜드 최대의 축일인 성 패트릭의 날 St. Patrick's Day 로 기린다고 합니다.
성 패트릭 은 영국 웨일즈 성직자 집안의 아들인데.... 16세때 아일랜드 해적들에게 납치 되어
끌려와 6년간 노예생활 을 했으며 언트림 슬레미시산에서 양을 치던 중에 그리스도교
에 귀의 했다고 하는데..... 꿈에 천사가 나타나 계시해 주어 그 도움으로 엄청 걸어서
배를 탔는데 영국이 아닌 프랑스에 도착해 신학 공부후 다시 돌아와 전도와 세례 를 줍니다.
오늘날 아일랜드에는 그의 이름을 딴 성당이 무려 60개 에 달하고 아일랜드 국민의 90% 가
가톨릭교도 인 것은 그로 부터 유래한다는데.... 현재 국립 성당이라는 상태를 유지
하고 있으며 정문을 통해 입장하면 화려하게 장식된 내부 성가대석에서는 갈색,
빨간색 복잡한 바닥 패턴이 어우러져 따뜻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느끼실 수 있다고 합니다.
성당 지하와 공동묘지에는 아일랜드의 유명인들이 잠들어 있으니..... 18세기에 이 성당의
주임 사제였으며 걸리버 여행기 의 작가인 조나단 스위프트의 묘비 와 묘비명도 볼
수 있으며 성당 내에 오래된 석판은 패트릭 성인이 세례를 줄 때 사용했을거라고 말합니다.
오르간은 4,000개가 넘는 파이프 로 이루어져 아일랜드 최고 규모를 자랑하니 17세기 때부터 이어져
온다니 중세 분위기 벽을 울릴 정도로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수 있다는데 1742년에는
여기서 헨델의 메시아가 초연 되었다고 하는데 알다시피 헨델 음악은 특히 종교와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
성당에 한 그루 나무가 있고 나무 밑에 쌓여있는 나뭇잎 모양의 편지 들은 600년간의
영국 지배와 독립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 을 기리기 위한 나무라고 하는데
전쟁이 많았던 유럽에서도 특히나 척박했던 아일랜드 사람들의 삶 을 생각하게 됩니다.
조금 더 서북쪽으로 걸어서 그래피티로 가득한 골목길 을 빠져 나가서 구시가지 Old City
에 이르러 길을 건너서.... 크라이스트 교회 Christchurch Cathedral 에
도착했는데 여긴 뜰에 의자가 있고 햇살도 좋으니 앉아서 휴식 하기에는 그저 그만입니다.
크라이스트 처치 성당 남쪽에는 조금 전에 본 성 패트릭 성당 이 있으니 세상사 대부분이
서로 경쟁하듯 중세 시대 수세기 동안 두 성당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 이 있었다고
하는데..... 결론적으로 성 패트릭 성당이 국립성당 의 위치를 획득하게 되었고,
크라이스트처치 성당은 더블린과 글렌달록의 성당 이라는 별호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일랜드가 1948년에 아일랜드 공화국법 (Republic of Ireland Act) 을통과시켜 스스로
공화국이라고 규정함에 따라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 공화국 (Republic of
Ireland) 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지만 헌법상 Éire, 영어로 Ireland 인 것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Republic of Ireland 의 Republic of 는 국호의 일부가 아니라 정치 체제의 설명(description) 이었기에
영국의 Republic of Ireland 라는 표기는 아일랜드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취해진 조치 였습니다.
영국 정부가 Republic of Ireland 라는 표기를 쓴 건 Ireland(아일랜드섬 전체)와 구분 지으려는 것이었으니
이런 탓에 영국 정부는 아일랜드 정부(Government of Ireland), 아일랜드 대통령(President of Ireland)
같은 아일랜드측이 사용하는 공식 표현을 무시하고 Irish Government, Irish President 로 돌려 쓰게 됩니다.
반면 아일랜드에서는 영국의 공식 국호 그레이트 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을 인정할 수 없다며 공식 국호의 사용을 거부하고 약칭 United
Kingdom(UK) 으로만 표기하거나 지리적으로 Great Britain 형용사로 British 등을 이용해 돌려 썼습니다.
양국 명칭 분쟁 은 벨파스트 협정을 체결하고 아일랜드가 헌법에서 영토 조항을 삭제 하여 해소되었으니
현재는 Ireland 의 의미가 아일랜드 섬 전체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국가를 의미한다는 걸 명확히 할
때에만 Republic of Ireland 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그외에 그냥 아일랜드측이 쓰는 공식 명칭 을 씁니다.
10분쯤 휴식을 취하고 나니 마침 닫혔던 문이 열리기로 성당 구경이나 하자 싶어 가니 특이하게도
입장료 를 받는데...... 마눌은 입장료까지 내면서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말립니다.
성당이 10유로나 되는 비싼 입장료를 받는 것은 성당 내부에는 더블리니아 Dublinia 라고 해서 밀랍인형
으로 복원된 옛날 더불린 거리 및 주택과 페스트로 신음받는 사람들 모형을 전시 하기 때문인가 봅니다?
일어나서는 성당 정원에 핀 장미 를 비롯한 꽃들이며 여러 조각상 들을 구경하고는
잠시 고민하는게 더불린성은 동쪽 이고 기네스 Guiness Store House :
전망대 ( 더블린 시가지 조망 ) 은 서쪽 이라 방향이 반대니 어디로 갈까 망설입니다.
그러다가 기네스는 나중에 오후에 들러기로 하고 먼저 더불린성 을 보자고 생각하고는 Dam Street 큰
도로를 따라 내려가서는 더불린시 의회 Council 건물을 지나니 우리가 찾는 더불린 성이 보입니다.
더불린 캐슬 Dublin Castle 은 930년 바이킹 데인족(덴마크) 이 침공해 아일랜드섬 침략
의 거점으로 삼은 곳으로 그후 영국(프랑스 노르망디의 노르만 정복 왕조) 이
차지한후 1204년에 이미 죽은 사자심왕 리처드의 동생인 존왕이 축성 하였다고 합니다.
더불린성은 일반적으로 보는 카디프성 같은 성채 가 아니라 오히려 왕궁 이라고 표현해야 더 어울릴법
한데, 입구에는 그림과 글이 영어 와 켈트족 아일랜드인들의 글자인 게일어 2가지로 적혀 있습니다.
Corke Hill Gate (Ceata Chnoc Chorcai) : Three of first fatalities
of the 1916 Rising occurred at this Gate.
코크힐 게이트 : 1916년 봉기의 첫 번째 사망자는 이 문에서 세 명이었다.
영국에서 독립하기 위한 궐기 가 이 문에서 있었다는 뜻이라? 6유로를 주고 더불린성으로 들어가니 왕궁
분위기가 나는 건물 내부에는 엣날 사진과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으니 미술관 같은 분위기인데, 신화에
나오거나 역사적 내용의 나체사진도 많으나 인공지능이 검색하니 검열에 걸릴까 싶어 다 올리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36년 지배를 받았지만 아일랜드는 무려 650년이나 영국인들의 지배 를 받으면서
착취 를 당했으니 그 고통은 엄청난데 수차례 독립을 위해 일어섰으나 그때 마다 실패 했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에 조국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감연히 봉기때 저 문에서 3명이
죽었다는 것인데.... 영국의 무력이 압도적인지라 저 봉기도 진압 당해 실패하지만 영국이
본때를 보인답시고 무고한 사람들까지 너무 많은 사람들을 잡아들여 고문하고 죽이니 뒤탈 이 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아일랜드인들이 격분해서 몇년후 다시 큰 봉기 를 일으켜 결국은 자치정부를
수립하게 되는데... 아시아와 아메리카에 아프리카 식민지들은 미국과 영국에 프랑스 및 스페인등
제국주의에서 독립하기 위해 투쟁한 것은 익히 알지만 같은 유럽에도 저런 처절한 독립운동 이 있었네요?
첫댓글 아일랜드는 영국에 650년이나 지배를 받아서 얼마나 힘들엇을까요?
우린..... 36년도 견디기 힘들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