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 반영된 활자
(재)수도문물연구원이 조사 중이던 ‘서울 공평구역 제15·16 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에서 항아리에 담긴 조선 전기 제작 추정 금속활자 1,600여 점이 발굴됐다. 이번에 공개된 금속활자가 특히 눈길을 끄는 이유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가 반영된 가장 이른 시기의 한글 금속활자’이기 때문이다. 일괄로 출토된 금속활자는 조선 전기 다종다양한 활자가 한곳에서 출토된 첫 발굴사례로도 그 의미가 크다. 특히 훈민정음 창제 시기인 15세기에 한정되어 사용되던 『동국정운』1)의 표기법을 쓴 금속활자가 실물로 확인된 점, 한글 금속활자를 구성하던 다양한 크기의 활자가 모두 출토된 점2) 등은 최초의 사례이다.
그 외에도 전해지는 예가 극히 드문, 두 글자를 하나의 활자에 표기해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을 한 연주활자(連鑄活字)3) 도 10여 점 출토되었다. 현재까지 전해진 가장 이른 조선 금속활자인 세조 ‘을해자(1455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다 20년 이른 세종 ‘갑인자(1434년)’로 추정되는 활자가 다량확인된 점은 유례없는 성과이다. 현재 금속활자의 종류가 다양해 조선 전기 인쇄본으로만 확인할 수 있었던 여러 활자의 실물이 추가로 확인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한글 창제의 실제 여파와 더불어 활발하게 이루어진 그 당시의 인쇄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1) 세종의 명으로 신숙주, 박팽년 등이 조선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운서(韻書), 중국의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해 사용된 ㅭ, ㆆ, ㅸ 등 기록
2) 한글 금속활자를 이루는 대자(大字), 중자(中字), 주석(註釋) 등에 사용된 소자(小字), 특소자 모두 확인
3) 한문 사이에 자주 쓰는 한글토씨(‘이며’, ‘이고’등)를 인쇄 편의상 한번에 주조한 활자
세종대의 문자와 과학기술 실체 확인 기대
한편 도기 항아리에서는 금속활자와 함께 세종~중종 때 제작된 자동 물시계의 주전으로 보이는 동제품도 잘게 잘려진 상태로 출토되었다. 동제품은 동판(銅板)과 구슬방출기구로 구분된다. 동판에는 여러 개의 원형 구멍과 ‘일전(一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구슬방출기구는 원통형 동제품의 양쪽에 각각 걸쇠와 은행잎 형태의 갈고리가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는 『세종실록』에서 작은 구슬을 저장했다 방출해 자동물시계의 시보(時報)장치를 작동하는 장치인 주전의 기록과 일치한다.
활자가 담겼던 항아리 옆에서는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도 출토되었다. 낮에는 해시계로 사용되고 밤에는 해를 이용할 수 없는 단점을 보완해 별자리를 이용해 시간을 가늠하는 용도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1437년(세종 19년) 세종은 4개의 일성정시의를 만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번에 출토된 유물은 일성정시의 중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 등 일성정시의의 주요 부품으로, 시계 바퀴 윗면의 세 고리로 보인다. 현존하는 자료 없이 기록으로만 전해 오던 세종대의 과학기술, 그 실체를 확인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
이번에 공개된 유물 중 금속활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잘게 잘라 파편으로 만들어 도기항아리 안과 옆에 묻어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활자는 대체로 온전했지만 불에 녹아 서로 엉겨 붙은 것도 일부 확인되었다. 이들의 사용, 폐기 시점은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 중 만력(萬曆) 무자(戊子)년에 제작된 소승자총통이 있어 1588년 이후에 묻혔다가 다시 활용되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정리. 편집실
[문화재청, 문화재사랑, 2021-8월 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