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ya's Ghosts
- 감독
- 밀로스 포먼
- 출연
- 하비에르 바르뎀, 나탈리 포트만, 스텔란 스카스가드, 랜디 퀘이드, 호세 루이스 고메즈
- 정보
- 드라마 | 스페인, 미국 | 113 분 | 2008-04-03
영화에서 혹은 소설에서 주인공을 뒤로 물러나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를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슬쩍 빼내어 관찰자 혹은 화자 역할만 하도록 하는 것인데 그런 경우라면 틀림없이 주인공의 내부 관념을 다루게 된다. 주인공의 이야기이되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닌 셈이다. 그 이야기는 주인공이 살아 있던 시대를 다루게 되는데 시대는 사람을 비켜가지 않는다. 시대뿐 아니라 사상 또한 사람을 비켜가지 않는다. 따라서 주인공이 관찰하는 사건에는 시대를 흐르고 있던 사상이 펼쳐지게 된다.
밀로스 포먼 감독, <고야의 유령>은 고야가 살던 시대의 이야기다. 제목에서부터 고야가 주인공임을 말하고 있지만 흔히 기대하듯 고야의 전기는 아니다. 고야의 일생은 그려지지 않는다. 그의 삶의 후반부, 궁정화가가 되어 상류층의 치부를 들여다보고, 청력을 잃고 격동을 지켜보던 시기가 그려질 뿐이다. 대신 그의 그림들이 화면을 흐른다. 고야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영화인데. 고야의 그림들은 결코 편안하지 않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검은 그림들>을 비롯해 <변덕>은 인간의 광기, 공포, 잔인함들을 드러내고 있다. 초기 그림들이 사랑스럽고 밝았던데 반해 후기의 그림들은 그가 눈앞에서 목격한 사건들을 고발하는 한편, 사람들을 광포하게 몰아간 것에 대한 고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그림들을 그리게 했던 것일까. <고야의 유령>은 그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는 세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먼저 고야다. 그리고 고야가 그린 여인, 부유한 상인의 딸로 아름다운 이네즈(나탈리 포트만), 역시 고야가 그린 그림의 신부인 로렌조(하비에르 바르뎀). 이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아쉽게도 이네즈와 로페즈는 가공인물이다. 앞서 말했듯이 고야는 사건의 주인공이 아니다.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면 지켜볼 뿐이다. 이네즈는 고야의 뮤즈라고들 말한다. 그럴 수 있겠다. 그녀 역시 중심인물이니까.
이네즈는 터무니 없는 죄목, 자신도 모르는 조상이 유대인이었다는 이유로 종교재판소에 불려가 고문을 받고 있지도 않은 죄를 고백을 한 다음 감옥에 갇힌다. 고야는 이네즈의 아버지 토마스의 부탁을 받고 신부 로렌조를 이네즈의 집에 데려간다. 토마스는 로렌조에게 고문을 가해 로렌조가 원숭이의 자식이라는 진술서를 쓰도록 만든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던 마녀 재판을 재현한 셈이다. 로렌조는 감옥에 찾아가 이네즈를 만나고 그녀를 강간한다. 로렌조의 진술서가 공개되고 그는 파문당하며 사라진다.
프랑스군이 쳐들어온다. 루이 16세의 처형 소식이 당도하고 스페인왕은 황급히 도망하며 만민의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던 나폴레옹의 동생은 스페인에 도달해 학살을 일삼는다. 왕은 도망했지만 추기경은 남아 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휘두르던 추기경, 프랑스군의 중요인물이 된 로렌조가 등장해 그에게 복수 한다.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처형하려 드는 것이다. 스페인 곳곳에서 프랑스 군에 의한 민중 살육이 벌어지고 고야는 귀머거리가 된다.
종교 재판소의 감옥이 열리고 이네즈가 나온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단 하나, 자신이 아기를 낳았다는 것. 고야는 그녀를 데리고 로렌조를 찾아가지만 그는 이네즈를 정신병원으로 보내버린다. 그녀가 낳은 아이는 수녀원에 보내졌고 수녀원에서 도망친 아이, 알리시아는 거리에서 창녀노릇을 한다. 로렌조는 알리시아를 찾아 미국으로 보내버리려 한다. 쳐들어오는 영국군. 도망하던 로렌조는 붙잡혀 추기경에게 했던 대로 되돌려받아 거리에서 사형당한다. 정신이상이 된 이네즈가 술집에서 주운 아기를 안고 죽은 로렌조의 손을 잡은채 로렌조의 시체가 실린 수레뒤를 따라간다.
아이들이 노래하면서 수레 주변을 뛰어맴도는 이 마지막 장면은 섬뜩하도록 아름답다. 그러나 영화는 재미 없다. 그림을 볼 사람이라면 모를까.
영화에서 유령이라는 단어는 단 한번 등장한다. 얼굴이 지워진 고야의 그림속 인물을 지칭하는 것인데....사람은 변함없다. 언제나 어디서나 사람의 사는 방식은 변함없지만 그 사람을 잔인하게 혹은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관념이요 사상이다. 육체는 변함없되 사상은 변하는 것이다. 사상이 변한다는 것은 곧 얼굴이 변하는 것과 같다.
어제 추기경이 앉았던 수치의 자리에 오늘 로렌조가 앉는다. 어제 추기경이 누리던 권력의 자리에 오늘 로렌조가 앉는다. 그 권력의 자리에 다시 영국왕이 앉고 또 다시 스페인의 왕이 앉을 것이다. 종교도 사상도 권력임에 틀림없다. 평민들, 백성들은 그들을 믿는다. 믿음은 곧 권력인 것이다. 믿음은 사상이고 생각이다.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장소에 따라 변하는 생각, 믿음, 사상.
인간은 한결같지만 믿음은 한결같지 않다. 고야의 유령(원제는 유령들이다)은 고야가 살았던 시대를 관통한 사상들이 아닌가. 그 유령들은 오늘날이라고 해서 사라졌을까?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존재할 유령들을 고야는 지켜본 셈이다. 포먼 감독이 늙은 고야를 내세운 것은 삶과 인간을 꿰뚫어본 지혜를 높이 산 셈인데. 그는 자신의 생각을 고야에게 투영했던 것이 아닐까.
첫댓글 어렵다.
영화가 어려워요. 음. 본 사람들은 그저 이야기인 줄 알아요. 한참 생각해야 했는 걸요. 아시죠? 이야기뒤에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다는 걸. 그게 행간이죠.
미투!
고야의 그림을 보는 재미로 봐도 괜찮을 걸요. 시대의 습속도 아주 잘 재현했어요. 감독이 고야의 그림을 얼마나 연구했는지 고스란히 드러나 있더라구요.
그럼 봐야죠. 지금 상영작이에요? 아님, 디비디?
ㅎㅎ 음지에서....다른 좋은 영화도 많아요. <파이트 클럽> 보셨죠? 제가 여전히 붙들고 있는 영화예요. <허트 로커>도 좋은 영화입니다. 중독의 의미에 관해서, 그리고 행간을 잘 보면 미국 정부에게 일침을 가한다고 느낄 수 있는 영화랍니다.
감사합니다. 한꺼번에 다 사서리 디비디로 주말을...ㅋㅋㅋㅋ 파이트 클럽은 본 것 같아 두 가지만 주문 했어요. 담주엔 즐거운 주말이 될 거 같아요.
아이구. 더바님 때문에 좋은 영화 찾아서 열심히 공부해야겠네요. ^^
지지난 주 하루 날잡아 고야의 영혼을 봤습니다. 제가 가톨릭신자이지만 그런 짓을 한 신부들께 화가 막 치솟아 우리 성당 신부님도 좀 미워졌습니다. 이걸 해결하는데 한참 걸렸구요.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그 따위 짓을 할 수가 있죠? 전 속으로 넘 분노해가지고 성당을 다니지 말까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인생유전이 영화의 좋은 소재라더니 이 영화 주인공(아가씨와 신부님)들도 인생유전을 하는군요. 얼마 있다가 다시 함 보고 생각을 정리해야 겠습니다.
더바님........어느 종교건 마찬가지입니다. 종교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잘못하지요. 아니지요. 해석을 자기 관점으로 한 것이지요. 인간이 앞선 것이지 신부라는 도구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동일하지만 그 중 하나, 1프로를 보고 그의 우월함을 인정하는 것이니까요. 인간의 본능은 같지만 그 본능을 어떤 식으로 승화하느냐가 관건이기도 해요. 여기서 본능에는 수많은 것들이 포함됩니다. 신부님은 소명을 받아 신부님이 된다고 하지요. 하지만 시대에는 그 시대를 아우르는 가치관이 있어요. 그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이 교권이기도 합니다. 아, 이야기가 한참 복잡해집니다만 영속적인 가치관에 눈을 뜨면 저런 일이 없겠지요 .
종교와 정치는 근본적으로 권력입니다. 그렇게 되면 안되지만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었어요. 믿음은 일상에서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어요. 교황은 인간이지만 그에게 권위를 부여한 것은 인간들입니다. 교황에게서 인간을 본다면 그는 진정한 사람이지요. 사람을 보실 수 있다면 사람이 도구가 됨도 보실 수 있어요. 도구로서의 교황을 존중하는 것이지 인간으로서 교황을 존중하는 것일까요. 한 명의 인간에 지나지 않지만 큰 도구가 될 수 있는 그릇임을 보았을때 그를 존중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