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사적 성경묵상 ● (셋째 해_6월 25일)
<빌립보서 1장>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빌1:19-24)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의 옥에 갇혀 있으면서 빌립보 교회에 보낸 옥중서신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세워진 유럽 최초의 교회로서 바울에게 친밀하게 대했던 교회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바울이 투옥되자 빌립보 교인들은 옥중에 있는 바울을 위로하기 위해 금품을 모아 에바브로디도의 편에 보냈습니다(2:25; 4:14,18). 그러나 그처럼 빌립보 교인들을 대표하여 로마로 온 에바브로디도가 병이 들어 거의 죽게 됨으로써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에게 큰 근심거리가 되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이 되자, 바울은 걱정하고 있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위로와 안심을 주는 한편 그들의 선물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기록한 편지가 빌립보서입니다.
그런데 빌립보서는 바울이 옥중에서 기록한 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 분위기가 조금도 우울하다거나 어둡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빌립보서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단어가 ‘기쁨’으로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위해 사는 삶에는 반드시 고난도 있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런 고난을 넘어서는 기쁨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1장 21절에서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한 바울의 고백은 그가 옥중에 있으면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바울은 지금 옥중에서 가이사의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성도들의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구원, 즉 석방될 것을 어느 정도 확신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지만, 바울은 그러한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죽음을 유익한 것으로 여겼던 것으로서, 이런 죽음에 대한 그의 자세 때문에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평안을 누리며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솔직하게 말한다면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지금이라도 죽는 것을 더 바란다고 말합니다. 즉 이미 그리스도와 연합한 존재이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항상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바울의 가장 큰 소원으로서, 그런 그에게 죽음은 육신을 벗어나서 늘 사모하던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게 되는 것이기에 오히려 유익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은 죽기만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즉 개인적으로는 죽음이 유익이지만, 만약 자신이 석방이 되어 성도들과 교회를 섬김으로써 유익을 줄 수 있다면 그 역시 바라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는 것과 죽는 것 사이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살든지 죽든지 자신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주님과 힘께 있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던 바울에게는 죽음이 더 이상 꺼려지거나 두려운 일이 아니리 오히려 유익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기에 죽음을 유익으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 오늘의 기도 ● “예수님 때문에 살아야 할 이유도 있고 죽음도 유익으로 여기는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https://cafe.daum.net/waterbloodholyspirit/MoRi/16
첫댓글 아멘
살든지 죽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