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
“저희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어, 이 시대에 하느님의 평화를 주소서”
(연중 제2주일 본기도)
그리스도의 평화를 믿는 신앙인들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갈라진 민족의 현실을 아파하는 한국 천주교회는 오늘 다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았습니다.
전쟁은 악하고 부조리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약자들이 더 고통받는 가자 지구의 현실은 너무나도 참혹합니다. 역대 교황님들께서 우려하신 것처럼, 전쟁은 ‘되돌릴 수 없는 모험’이 되어 새롭고 더욱 복잡한 분쟁을 불러일으키며,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더욱더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간추린 사회 교리」, 497항 참조). 지구촌 곳곳에서 실제로 무력 충돌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화와 협력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은 멀어지고, 군사력을 이용한 안보만 강조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대화가 없는 한반도의 상황도 평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남북 대화가 시작된 이래 이렇게 오랜 시간 소통이 단절된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남한과 북한뿐 아니라 북한과 미국 사이에도 대화가 중단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우발적인 충돌을 방지하고자 하였던 9·19 군사 합의는 무력화되었으며,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상대를 위협하는 군사 훈련은 쉴 새 없이 지속되는데, 전에 없던 일본과의 군사 협력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의 여파까지 ‘냉전적 대결’을 부추기는 형국인데, 이와 같은 정세 속에서 남북 관계도 최악의 국면으로 가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긴장과 갈등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요즈음의 남북 관계는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차원의 위기입니다. 지난해 말 북한의 지도자는 남북 관계를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라고 선언하였습니다.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를 부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한을 전쟁으로 정복하여야 하는 대상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이처럼 ‘헤어질 결심’을 천명한 북한의 태도는 무척 완강하여 보입니다. 남북 관계가 도무지 회복할 수 없는 파탄 상태에 가까워진 지금, 우리의 도움이신 주님께 지혜를 청하여야 하겠습니다.
최악의 관계 속에서 북한에 대한 우리의 마음도 예전과 달리 매우 차가워졌습니다. 각종 여론 조사를 보면 우리 국민의 통일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북한에 대한 적대감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사실 남북 관계에 대한 청년들의 무관심은 오래전부터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평화를 위한 노력에는 소홀한 채, ‘동족 관계’까지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북한의 태도 변화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 탓이오!’ 하며 가슴을 치는 교회는 북한을 향하였던 우리의 마음부터 진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적대적 분단 구조 안에서 우리 또한 그들을 진정 ‘동포’로 대하였는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셨습니다. 이 미사 강론에서 교황님께서는 화해, 일치, 평화가 회심의 은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회심을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하나의 민족으로서, 우리의 삶과 우리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마음의 새로운 변화”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또한 “모든 한국인이 같은 언어로 말하는 형제자매이고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며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더욱더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하여 애쓰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간절한 호소가, 평화가 간절한 이 시대에 더욱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겸손한 마음과 진솔한 회심으로 우리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여야 합니다. 현재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에서 힘쓰고 있는 ‘평화 교육’은 민족의 진정한 화해를 위한 구체적인 회심의 실천이 될 수 있습니다. ‘정복’하거나 ‘흡수’하려는 폭력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과 함께 변화하려는 노력으로 우리는 참된 일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전쟁을 준비하는 것으로 평화를 실현할 수는 없습니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었을 때 무력 충돌이 더 자주 발생하였다는 사실은 수많은 역사의 사례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1979년 제12차 세계 평화의 날 교황 담화 참조).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제자들을 실패의 절망으로 내몰았습니다. 어떤 노력도 소용없다고 여겼던 제자들은 낙담하였고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건네십니다. 복음서는 죄와 죽음을 이겨 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화해의 사명을 주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화해의 직분을 가진 교회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굳게 믿기에 결코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주님,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이 시대에 당신의 평화를 주소서.”
2024년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김 주 영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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