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어릴 때, 저는 두 가지의 '미운 오리 새끼' 이고, 다른 하나는 '병아리와 함께 자라는 독수리'입니다. 두 이야기의 동기는 비슷합니다. 원래 백조인데 오리들 틈에서 자라는 미운 오리 새끼와 원래 독수리인데 병아리들 틈에서 자라는 독수리의 이야기입니다. 어찌하다 보니 백조의 생긴 모습이 오리와 다르니 오리 사이에서는 미운 오리 새끼로 불리었습니다. 어는 날입니다. 미운 오리 새끼는 호수에서 우아하게 움직이는 백조들을 보았습니다. 물가에 비친 자기의 모습과 백조가 같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제 미운 오리 새끼는 자기가 같은 백조들과 함께 호수에서 지내게 됩니다. 오리들이 볼때는 미운 오리 새끼였지만, 사실은 아름다운 백조였습니다. 병아리와 함께 지냈던 독수리도 비슷합니다. 어찌하다 보니 독수리의 알이 병아리의 알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독수리는 병아리들과 함께 지내면서 하늘 높이 나는 독수리를 보면 숨어야 했습니다. 독수리가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입니다. 독수리는 하늘 높이 나는 독수리와 자기의 모습이 같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제 두려움에 떨고, 숨어야했던 독수리는 다른 독수리들처럼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제가 읽었던 동화와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났고 하나는 자유의 몸이 부인에게서 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우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두 계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시나이 산에서 나온 여자로 종살이할 자식을 낳는데, 바로 하가르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의 몸으로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는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늘과 별과 구름을 만드셨습니다. 땅과 물과 숲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닮은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누구나 호수에서 춤을 추는 아름다운 백조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높이 날아오르는 자유로운 독수리입니다. 우리를 춤추지 못하게 하는 것은, 우리를 날지 못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날개를 꺾어버리는 유혹과 죄입니다. 죄의 결과인 죽음입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의 눈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이 미운 오리 새끼처럼 보였을 겁니다. 권력과 명예 그리고 성공과 재물로 치장한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은 날지 못하는 독수리처럼 보였을 겁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표징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당신을 믿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것을 보여 주셨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느낒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느님께서 보여 주신 표징이 있다고 합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수 있는 것도 큰 표징입니다. 우리는 밤에 잠을 자면서 죽음을 체험합니다. 자는 동안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자는 동안 우리는 깊은 어둠을 체험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은 어쩌면 늘 새로운 부활입니다. 신앙의 눈으로, 하느님의 뜻으로 바라볼 때, 내가 만나는 이웃, 내가 보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표징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육의 눈으로 바라볼 때, 교만함과 원망의 눈으로 바라볼 때, 서로를 믿을 수 없고, 서로를 이용하려 하고, 모두가 경쟁의 상대로 보이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의 이그심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한 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뜻일 먼저 생각하면서 지내야 하겠습니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