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12월22일(수)■
(로마서 3장)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묵상/롬 3:25-26)
◆ 믿음으로 말미암은 화목제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화목제물이란 모름지기 한쪽만 위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를 위함이다.
예를 들면, 채권자에게는 받을 빚을 다 받도록 하고, 채무자는 하나도 갚지 않아도 되게 하는 행위다.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화해시키는 중보자의 희생이다. 그가 중간에서 자신이 희생함으로써 모든 빚을 다 갚고 채무를 면제함으로써 양쪽을 모두 만족시킨다.
예수께서 바로 그러한 일을 하셨다.
우리가 죽어야 할 죽음을 그가 치르셨고, 하나님께서는 죄에 마땅히 내려야 할 심판을 자기 아들에게 내리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행하셨고, 죄인들은 죄값을 다 치르게 된 셈이 되었다. 하나님도 의롭고, 예수 믿는 우리도 의롭게 되는 기가 막힌 일을 행하셨다. 놀라운 은혜다!
이런 놀라운 은혜가 어떤 자에게 이루어지는가?
여기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이란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록 십자가의 은총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유효한 것이 아니다.
구원에 대해서 극단적인 집단이 있다. P목사라는 자가 이끄는 곳인데 어떤 선생님이 거기에 빠져서 내가 경고하자, 나를 그 교회 목사에게로 데려갔다. 그의 주장은 제법 논리적이었다.
그에 의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세상 죄를 지고 죽으셨다. 십자가 사건이 과거이기 때문에 미래에 태어난 우리는 예수님을 믿건 안 믿건 이미 모든 죄를 사함받은 상태라는 것이다. 구원은 이것을 깨닫느냐 못 깨닫느냐에 달려있다고 했다.
언뜻 들으면 매우 은혜가 된다. 나름대로 논리도 탄탄해보인다.
그러나 성경적은 아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다(잠 14:12).
그들의 복음이 엉터리인 이유는 '믿음'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십자가 사건이 과거이기 때문에 미래의 우리는 모두 죄사함 받고 태어난다는 식의 논리야말로 엉터리다.
그런 논리라면 십자가 이전 사람들은 결코 죄사함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경은 십자가 이전 사람들의 지은 죄를 사하시기 위해 세상 끝에 나타나셨다고 한다(히 9:26).
십자가의 은총은 시간적으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처럼 십자가 이전 사람도, 우리와 같이 십자가 이후의 사람도 모두 '믿음'으로 그 은총에 참여하는 것이다. 어떤 사실을 깨달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믿습니다"라고 하지만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지 모호하다.
한마디로 목적어가 생략된 믿음이다.
단순히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인가?
아니면 예수님께서 나의 주님이심을 믿는 믿음인가?
둘이 무슨 차이가 있겠냐고 묻지만, 명백하게 차이가 있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은 믿지만 예수께서 자신의 주님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원에 극단적인 논리에 빠진 사람이 외도하고 온 뒤에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복음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이런 죄를 지면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이제는 죄책감이 없어졌다. 내 죄는 이미 십자가에서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신실한 내 친구가 직접 들었다니까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충격이다. 도대체 믿음이 좋은 것인가, 아니면 망상인가?
십자가가 과거의 사건이기 때문에 그 이후의 모든 죄는 없다고?
그렇게 시간상으로 적용하면 안 된다.
십자가의 은총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어떤 사실을 믿는 믿음만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믿는 믿음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죄 사함과 의롭다 함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가 될 때 임하는 은총이다.
이것을 몰랐을 때는 죽음에 이른 사람에게 복음의 지식을 설명하느라 애썼다. 죽음이 코 앞에 있어서 정신도 몽롱한 사람에게 율법과 복음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복음은 단순한 신학 지식이 아니다.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 주님 되심을 인정하도록 해야 한다. 십자가 우편에서 죽은 강도가 그렇게 구원을 받았다.
여기 화목제물에 쓰일 황소가 있고, 제사장도 있다.
이제 화목제가 드려졌다고 해도 그 제사의 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면 그에게는 화목제가 아니다.
믿음은 우리를 십자가의 자리로 인도한다.
아브라함처럼 십자가 이전 사람도, 우리처럼 십자가 이후 사람도 모두 믿음으로 그 은총의 자리에 참석한다.
그러나 십자가 이후의 사람들은 이전의 사람보다 더욱더 복되다.
왜냐하면 이미 이루어진 사실을 바탕으로 믿기 때문에 더욱 확고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사람들이 돌아오면 잔치를 벌이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잔칫상을 차려놓고 우리를 초대하신다. 그러나 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그 잔치의 음식을 하나도 맛볼 수 없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로 천국은 침노 당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수많은 사람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갑자기 초청받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이 신약시대의 하나님 나라 잔치다.
그리고 십자가 이후의 사람들이 복됨은 죄사함의 복만이 아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예수의 증인으로 살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약의 선지자들도 부러워 할만한 것이다.
◆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
(25)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전에 지은 죄'란 십자가 이전의 죄를 의미하는가, 아니면 각 개인의 과거의 죄를 의미하는가?
'간과하심'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레신'은 관용이란 의미를 가졌는데, 성경에서 단 한번 발견되는 단어다. 한글킹제임스에서는 '사하심'으로, 새번역은 '너그럽게 보아 주심'으로 번역했다. '간과(看過)'라는 낱말의 뜻은 '대충 보아 넘김'이란 뜻이다.
사도 바울은 아테네에서 전도하면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 17:30)
물론 여기에서 '간과'는 '휘페레이도'라는 다른 단어가 쓰였지만, 내용은 같다고 본다. 즉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시대에는 무엇이 죄인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과거는 눈 감아 주시니까 이제라도 회개하라고 명하셨다는 것이다.
각 개인에게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시대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전에 지은 죄'란 바로 각 개인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시절에 지은 죄다. 주님께서는 죄를 간과하실테니, 돌아오기를 요구하신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며, 십자가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를 짊어지고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의로우심이 그대로 드러났고, 우리도 의로다함을 얻을 길이 생겼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셨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주님을 믿자.
생명 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영원히 나의 주님이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