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성 촉수사리 독조동기 출토 陕西出土“蜀守斯离”督造铜器
출처: 중국신문망 작성자: 田进 고고학 중국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5일 산시성 고고학 연구원에 따르면 현지 시셴신구 친한신도시 포류촌은 친셴양성 유적지의 중요한 무덤으로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전국 후기 진귀한 귀족 무덤 2개를 발굴했습니다.연구와 검증 끝에 묘지 중 한 곳에서 출토된 유기의 감독자는 촉수 사리인 것으로 최종 판단되었습니다.
▲ 묘소에 의한 파촉 지역의 병합과 관리는 진나라 통일의 열쇠였습니다.처음에 진나라는 촉후(蜀侯)를 그대로 두고 중앙대원 장약(張若)을 촉나라의 군수로 보내 기원전 285년까지 촉군을 세우고 장약(張若), 이빙(李冰) 등을 군수로 삼았습니다.이번에 출토된 명문은 장뤄가 촉나라의 군수로 부임하기 전에 사리가 한때 촉나라의 군수로 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번에 발굴된 무덤들은 모두 도란도란 없이 동서향으로 수혈토광(水穴土圹) 구조를 갖추고 있어 하관 과정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고 합니다.그 중 하나는 크기가 조금 작은 편으로 1관 1곽 2중 장구이며, 덧곽실은 머리 상자와 옆 상자로 구분되어 있습니다.테두리 안에서 순사한 동물의 뼈가 다수 발견되었으며, 총 4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또 다른 하나는 크기가 큰데, 수혈묘도와 묘실 두 부분을 포함하고 있으며, 1관 2곽 3중 장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무덤길 바닥에는 순사자가 많이 들어있는 나무상자를 두고 덧널 안에는 머리상자를 분리하여 155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 동기명문의 무덤 구조와 체질인류학적 감정 결과 두 묘주는 모두 남성이었고, 한 묘주는 45세에서 50세 사이였습니다.출토된 유물은 매장시대가 함양이 진나라의 수도였던 전국 후기로 판단되며, 묘주는 사대부 귀족에 속합니다. 친셴양 고고학팀의 전문가들은 한 무덤에서 출토된 동감 복부의 16자 명문이 '19년 촉수사 이조공 모신이 인내를 구했다'는 내용이라고 밝혔습니다.이런 명문 양식은 진 소양왕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3급 직명입니다.19년은 기원전 287년, 촉수 사리는 기물의 감독자였습니다. 스리가 촉나라의 수비가 된 것은 진나라의 '속박 정책'을 반영합니다.이 정책은 소수민족의 원래 사회조직 형태와 통치기구를 유지하고 민족과 지역에서 추장과 수령의 정치적 지위와 통치권을 인정하고 일정한 관직을 부여하며 추장과 수령은 민족의 내부 문제를 관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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