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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대학 3곳 손잡고 첨단연구단지 키워 쇠락하던 도시 살렸다
동아일보 2023-05-25 03:00
[위기의 대학 해법을 찾아서]〈하〉선진국의 대학-지역 혁신
소득 최하위 美 노스캐롤라이나州… 공동 캠퍼스 만들어 기업-인재 유치
40년간 매년 1800명 신규 고용 창출… 말뫼, 대학 중심 스타트업 집중 투자
산업 생태계 바꿔 실업문제 등 해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RTP)’ 전경. 대학과 지방자치단체, 기업이 손잡고 만든 이 시설은 북미 최대 규모의 연구단지로 꼽힌다. 사진 출처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 홈페이지
미국 남동부 노스캐롤라이나주는 1950년대만 해도 미국 전역에서 1인당 주민 소득이 가장 낮은 지역이었다. 당시 미국인 1인당 평균 연 소득이 1639달러(약 214만 원·1952년 기준)였는데 노스캐롤라이나는 1049달러(약 138만 원)에 불과했다. 지역 사람들 대부분은 소규모 농업이나 섬유공업, 산림업, 가구 제조 같은 저임금 일자리에 종사했다. 학생과 청년들은 초중고교를 졸업하면 다른 주로 떠났고,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70여 년이 지난 현재 이 지역은 미국 최고의 두뇌를 길러내는 북미 최대 첨단기술 연구단지를 품은 곳으로 완전히 바뀌어 있다.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RTP·Research Triangle Park)’로 불리는 인구 130만 명의 연구 도시가 형성된 것.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낸 것은 다름 아닌 주내 채플힐의 노스캐롤라이나대, 더럼의 듀크대, 롤리의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등 세 지역 대학들이었다.
● 대학-지역 혁신의 모델, 美 RTP
1950년대 중반 쇠락해 가는 노스캐롤라이나를 살리기 위해 주정부와 민간, 그리고 대학은 아이디어를 모은 끝에 ‘리서치 트라이앵글 개발 위원회’를 만들었다. 지역 내 주요 3대 대학을 중심으로 삼각형 모양의 첨단 연구단지와 공동 캠퍼스를 만들고 기업, 인재를 유치해 노스캐롤라이나주를 살린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처음부터 미국 정부가 아니라 철저히 지역, 대학, 민간 주도로 진행됐다. 그 결과 1980, 90년대 지역 고용이 늘기 시작했고, 최근 40년간 매년 평균 6개의 새로운 기업, 1800명의 신규 고용이 창출됐다. 현재는 IBM, SAS인스티튜트 등 글로벌 회사와 스타트업이 입주해 대학과 유기적으로 연구를 주고받으며 140여 개 연구개발 시설이 가동되고 있다.
이는 최근 한국의 대학, 지역이 처한 위기에 시사점을 제공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저출산 고령화가 학령인구 감소, 지방대와 지방 인구 소멸로 이어지는 중이다. 본보 ‘위기의 대학 해법을 찾아서’ 시리즈 1회(22일자), 2회(23일자)를 통해 살펴본 국내 지방대와 지역의 현실은 참담했다. 문 닫은 대학 연구실에는 먼지만 쌓였고 주변 상권은 붕괴됐다.
지역의 쇠락과 인재 유출은 우리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주요 선진국은 이를 겪었고, 그중 일부는 해결책을 찾아내 더 나은 대학과 지역을 만들어 냈다.
● 말뫼-애리조나, 시장과 총장이 변화 주도
스웨덴의 남서부 스코네주에 있는 도시 말뫼는 시장(市長)이 주도해 도시를 바꾸고, 그 기반에서 첨단기술 대학이 태어난 사례다. 조선업 중심 도시였던 말뫼는 1970년대부터 한국, 일본에 경쟁력이 밀리면서 쇠퇴했고, 청년 실업률이 20%에 달했다.
말뫼는 도시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지식기반, 첨단기술 도시로의 변화를 추진했고 일마르 레팔루 당시 말뫼 시장(현재 80세)이 이를 주도했다. 덴마크 코펜하겐∼말뫼 교량 설치, 주상복합빌딩 건설 등이 이뤄지는 와중에 1998년 7월 1일 조선소 부지에 ‘말뫼대’가 설립됐다. 말뫼대를 중심으로 ‘스타트업 육성’ 집중 투자가 이뤄졌고 국가, 대학, 지역이 연계된 스타트업 생태계가 구축됐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ASU)가 있는 템피는 총장의 개혁이 도시까지 바꾼 사례로 꼽힌다. 2000년만 해도 ASU는 대학 전체 예산의 90%를 주정부에서 지원해야 할 정도로 재정난이 심각했다. 당시 재학생은 5만5000명 정도. 그 와중에 주정부는 지원금을 줄이기 시작했고 대학의 쇠락은 템피 지역의 쇠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2002년 취임한 마이클 크로 ASU 총장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대학 혁신 정책을 폈다. 그는 ASU의 문을 지역에 개방하고 신입생 선발 계층을 넓혔다. 또 대학과 기업, 지역사회와 연계한 맞춤형 교육 캠페인을 벌였다. 이런 노력 덕분에 ASU는 최근 5년간 미국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가 선정하는 ‘가장 혁신적인 대학’ 1위에 올랐다.
크로 총장은 2023년 현재도 이 대학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애리조나 지역 언론 애리조나빅미디어는 지난해 11월 “크로 총장은 상아탑을 허물고 대학을 재설계했다”며 “그는 깨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것들을 발굴하고 가져와 부수는 일을 20년 넘게 해왔다”고 평가했다.
일본도 문부과학성 주도로 2013년부터 ‘지역 활성화를 이끌 수 있는 대학을 만든다’는 목표로 거점 정비 사업, 일명 ‘COC(Center of Community)’ 사업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일본 요코하마시는 2005년 ‘대학-도시 파트너십 협의회’를 설립했고 시(市), 요코하마 지역 대학, 지역 공동체가 삼각 협력 체계를 구축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등의 성과를 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 남동부 코트다쥐르주 니스 근처에 있는 ‘소피아앙티폴리스’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 첨단 연구단지는 1970년대 지자체가 도시 건설을 주도한 뒤 국가사업으로 확대됐고 현재 IBM, 에어프랑스 등 2500곳이 넘는 기업과 파리광산대, 국립정보과학대(ESSI) 등 고등교육기관이 입주해 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등록금 동결’ 사립대, 1인당 교육비 국립대보다 495만원 적어
동아일보 2023-05-23 05:46
[위기의 대학 해법을 찾아서]〈중〉 곳간 말라가는 사립대들
17일 경북 경주대 도서관 건물 1층에 있는 학술정보원의 출입문이 닫혀 있다. 도서검색 기기에는 ‘사용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다. 교육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 학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부터 도서관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경주=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우리나라 사립대와 국공립대의 연간 학생 1인당 교육비 격차가 약 495만 원까지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4년 사이 이 격차가 300만 원 넘게 확대됐다. 학령인구 감소가 대학의 위기로 이어지는 가운데 국공립대보다 사립대가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국공립대-사립대 교육비 격차 확대
22일 동아일보가 교육부 대학알리미 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1년 기준 학생 1인당 연간 교육비는 국공립대(2084만6000원)가 사립대(1589만9000원)보다 494만7000원 더 많았다. 2017년에는 국공립대가 1659만4000원, 사립대가 1494만1000원으로, 차이는 165만3000원이었다. 불과 4년 만에 격차가 329만4000원 더 늘어난 것. 학생 1인당 교육비는 대학의 지출 중 학교 운영 인건비, 시설비, 도서구입비, 기계기구매입비 등을 더해 재학생 수로 나눈 금액이다. 금액이 높을수록 대학이 학생의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한다는 것을 뜻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전체 4년제 대학 194곳 중 사립대는 155곳, 국공립대는 37곳이다. 사립대, 즉 ‘사학’이 고등교육에서 국공립대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사립대의 위기는 곧 고등교육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자체 자료에 따르면 2012년만 해도 사립대의 학생 1인당 연평균 교육비는 1221만 원으로 국공립대의 1142만7000원(서울대 인천대 제외)을 앞섰다. 하지만 2015년부터는 국공립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가 사립을 역전했고 최근에는 사립대가 국공립대를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사립대는 대학 재정 수입을 등록금에, 국공립대는 정부 예산에 대부분 의존한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의 ‘2022년 사립대학 재정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 사립대의 수입 대비 등록금 의존율은 53.5%였다. 반면 국공립대의 의존율은 21.9%로 낮았다. 그런데 15년째 교육당국이 등록금을 동결시켰으니 사립대 위기가 곪아가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 분석 결과 2022학년 기준으로 국공립대 중 ‘충원율 90%’를 넘기지 못한 곳은 3곳에 불과했다. 반면 사립대는 35곳(특수대 사이버대 등 제외)에 달했다.
사립대들은 추가 재원을 마련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추가 재원으로는 학교법인이 원활한 대학 운영을 위해 주는 법인전입금과 기부금이 대표적이다. 법인전입금이 전체 수입의 10%가 되지 않는 사립대가 2021년 기준 155곳 중 140곳에 달한다. 경북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건물을 지어 임대 수익을 내려고 해도 지방이라 사람이 없어 공실이 되기 일쑤”라고 호소했다.
지방 사립대는 기부금 모금도 쉽지 않다. 수도권 사립대의 수입 대비 기부금 비율은 2.7%(2021년 기준)였지만 광역시를 제외한 지방은 1.3%에 불과했다. 충남의 한 대학 관계자는 “기업도 수도권 대학에 기부하는 경향이 있어 지방대는 기부금 유치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 교육 여건 급속 악화… “알코올 솜도 아낀다”
“알코올 솜도 아껴 써야 해요. 이게 얼마 한다고….”
17일 기자가 경북 경주시 경주대에서 만난 간호학과 재학생 신아름(가명) 씨는 “언제 샀을지 모를 인체 더미(실습용 인형)는 낡아서 한쪽 팔이 빠지고 다리도 너덜거린다”고 말했다. 다른 학교 간호학과에 다니는 친구들은 학교에 있는 주사 실습 장비를 집에 빌려가 연습도 할 수 있지만, 이 학교에서는 그만한 장비가 없다. 학생들은 장비를 학교에 두고 서로 돌려가며 써야 한다.
경주대는 학생 감소와 재정 악화 등으로 2018년부터 교육부 ‘재정지원 제한대학’으로 분류됐다. ‘부실대’ 낙인이 찍힌 것. 경주대는 2022학년도 신입생 충원율이 30.7%에 그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첫해인 2020년 이후로는 도서관 운영도 잠정 중단했다. 2층 문학자료실 등 일부 시설은 굳게 문이 잠겨 있었다. 재학생 이모 씨는 “책도 없고 시설도 으스스하다 보니 아무도 도서관에 안 간다”고 말했다.
학생식당 두 곳 중 한 곳은 폐업했다. 남은 한 곳도 오전 11시 반∼오후 1시, 하루에 1시간 반만 운영한다. 4학년 재학생은 “학생 대부분은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수업을 듣고 수요일부터는 밖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교직원 임금은 약 40개월째 체불된 상태다. 대출을 받거나 적금을 깨 버티던 교수들은 학교를 떠나고 있다. 한 교수는 “죽지 못해 산다”고 했다. 경주대는 2018년 전임 교원이 84명이었지만 지난해에는 48명으로 줄었다. 당연히 수업의 질도 떨어지고 있다. 경주대에서 운영하는 교양 수업은 1, 2개뿐이다. 외국인 유학생도 줄어들고 있다. 경주대는 2018년 788명에 달하던 외국인 유학생이 지난해에는 124명으로 급감했다.
● 교수들 “내 과 없어져도 학교 생존이 우선”
이는 경주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남 무안의 한 사립대는 올해 초 허위로 신입생을 충원해 국가 지원금을 받고 있다는 의혹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학생이 없는데 충원율(80% 이상)을 기준으로 정부 지원금을 받다 보니 수치를 조작한 것이다.
일부 지방대는 생존을 위해 살길을 고민하고 있다. 경상국립대는 2021년 경상대와 경남과기대가 통합해 출범했다. 부산 동서대도 같은 재단에 속한 경남정보대, 부산디지털대와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학과가 없어지거나 줄어들면 자리를 위협받는 교수들도 ‘학교 전체의 생존’이라는 목표에 맞춰 어쩔 수 없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경주대 A 교수는 “내가 속한 과가 폐과될 수도 있지만 학교가 살아야 학생들도 올 것 아니냐”고 말했다.
“1000억 지원 글로컬 대학 선정돼야” 지방대-지자체 수주 사활
동아일보 2023-05-23 03:00
[위기의 대학 해법을 찾아서]
2026년까지 30개교 선정할 계획
대학들 차별화된 혁신안 마련 분주
탈락땐 경쟁력 약화-인구 유출 우려
교육부는 위기의 지방대를 살리기 위해 1곳당 ‘5년간 1000억 원’을 지원해 중점 지방대를 육성하는 ‘글로컬(Global+Local) 대학’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26년까지 30개 글로컬 대학을 선정할 계획이다. 해당 사업비를 따내기 위한 지방자치단체와 대학들 간 경쟁전이 최근 격해지고 있다. 전례 없는 규모의 사업 예산이기 때문에 이 결과에 따라 대학의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22일 각 지역에 따르면 지자체는 지역 내 대학이 글로컬 사업에서 탈락할 경우 대학 경쟁력이 약화되고 인구가 유출되는 ‘악순환’에 빠질 것을 우려하며 사업 수주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글로컬 대학에 관내 대학이 한 군데도 선정되지 못한다면 타격이 클 것”이라며 “최대한 많은 대학이 선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글로컬 대학은 혁신 과제, 비전 등을 담은 기획서로 선정하기 때문에 대학들은 차별화된 혁신안 마련에 분주하다. 광주 조선대는 광주 서구와 협력 업무협약을 맺었다. 강원도는 ‘강원형 대학지원 4대 중점사업’ 등에 5년간 1조8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부산은 시(市), 대학, 지역 기업들이 사업 수주 추진단까지 꾸렸다. 지역 언론들은 “글로컬 대학 선정이 살길이다” 등의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교육계에 따르면 통폐합을 논의 중인 대학도 10곳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는 지난달 통합을 추진하는 지방대들이 글로컬 대학 사업에 지원할 경우 ‘공동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대학가에서 이를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통폐합 시 글로컬 대학 선정 과정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통폐합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방 국립대 중에는 충남대-한밭대와 강원대-강릉원주대가 통합을 위한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 중이다. 경북 안동대와 경북도립대도 통합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부산대와 부산교대는 18일 글로컬 대학 사업에 공동 참여 방안을 확정하면서 사실상 통합에 합의했다. 사립대들은 같은 학교법인에 속한 대학들을 중심으로 통폐합 논의가 나오고 있다.
사립대와 국립대의 선정 비율 등을 놓고도 신경전이 오가고 있다. 지난달 열린 지역 대학 총장 간담회에서는 “지역별로 국공립대 1곳씩 글로컬 대학으로 지정되는 것이냐”는 질문도 나왔다. 한 지방대 관계자는 “각 시도에 국공립대 1곳씩을 글로컬로 지정하게 되면 나머지 약 15곳을 놓고 사립대들이 경쟁해야 한다”며 “글로컬 재정 지원(1000억 원)을 받지 못하는 대학은 사실상 퇴출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