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대 135㎞.
13일 대전구장에서 벌어진 KIA-한화전 선발인 이범석과 송진우의 최고 구속은 거의 20㎞ 가까이 차이가 났다. 이범석은 송진우의 직구보다 5㎞ 이상 빠른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던지기도 했다. 구속 뿐만이 아니었다. 이범석은 프로 3년차로 이제 23살난 신예였고, 송진우는 프로 입문 19년째를 맞은 42살 베테랑이었다.
송진우는 실제로 1965년생이어서 둘의 실제 나이차는 무려 20년이나 됐다. 프로야구 최고령 기록을 계속 갈아치우고 있는 송진우는 2회초 프로통산 첫 2900이닝을 돌파하는 대기록도 세웠다.
올시즌 프로야구에 '타고투저' 현상이 뚜렷한 가운데 여러모로 대비가 되는 두 선발은 보기드문 팽팽한 투수전을 펼쳤다. 단지 구속과 나이로 설명할 수 없는 투수전의 묘미를 관중들에게 선사했다.
◇152㎞ vs. 135㎞
빠른 볼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투수에게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장점이다. 일단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는 타자에게 위협감을 준다. 이범석은 이날 150㎞대 강속구를 힘차게 뿌려대면서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불리는 한화의 강타자들을 잘 요리했다. 8이닝 1실점 완투패.
2회 이범호에게 151㎞ 짜리 직구를 던지다가 중월 솔로홈런을 맞은 것을 제외하고는 나무랄 데 없는 투구였다. 그게 0-1패배의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볼 스피드만으로 투수를 평가할 수는 없다. 송진우의 직구는 135㎞가 최고였다. 그러나 6이닝 동안 3안타 3볼넷만 허용하고 무실점으로 막은 뒤 7회 윤규진에게 마운드를 물려줬다. 직구 스피드는 빠르지 않았지만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빼어난 제구력으로 물오른 KIA 타선을 잠재웠다.
◇1승 vs. 204승
이범석은 지난 2005년 신인드래프트 2차 2번으로 계약금 1억원을 받고 KIA에 입단한 유망주다. 입단 첫해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으면서 1년을 쉰 뒤 2006년 데뷔해 올해로 3년째를 맞고 있다. 150㎞대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로 주목받았지만 부상 후유증과 제구력 불안 등으로 인해 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지난 2년간 35경기에 출장해 4패만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 빠른 볼에 제구력이라는 무기를 장착해 KIA 선발 로테이션에 들면서 서서히 자신의 위치를 개척하고 있다. 지난 7일 삼성전에서 6이닝 1실점(0자책점)의 호투로 감격의 데뷔 첫승을 거뒀다. 바로 팀의 5연승 출발점이었다.
송진우는 이날 경기전까지 19년 동안 204승을 거둔 한국 프로야구 최다승 투수다. 지난해 잠깐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올해 다시 선발 로테이션을 꿰차 마지막 불꽃을 화려하게 태우고 있다. 송진우가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바뀌는 기록이 한둘이 아니다. 이날 승리투수가 되면서 최다승 기록을 205승으로 늘렸고, 최고령 승리투수 기록을 42세 2개월 27일로 다시 갈아치웠다.
6이닝을 던지면서 사상 처음 2900이닝을 돌파했고, 삼진 4개를 추가해 역시 첫번째 기록인 2000탈삼진에 8개차로 다가섰다.
◇패기 vs. 관록
패기와 관록은 스포츠 선수에게 매우 중요한 재산이다. 젊음의 패기가 무르익은 관록을 누르기도 하고, 관록이 패기를 제압하기도 하는 게 바로 스포츠다. 팬들은 비교되는 두 가치가 그라운드 위에서 충돌하면서 경쟁하는 광경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비록 이범석이 패전투수가 됐지만 야구를 즐기는 팬들은 최다승 투수 송진우와 맞서 멋진 승부를 펼친 이범석에게도 많은 박수를 보냈다.
한화 송진우는 경기후 "바깥쪽 직구와 슬라이더, 체인지업이 잘 먹혔다. 다른 것은 몰라도 3000이닝에 대한 욕심이 있다. 올해 내에 꼭 달성하고 싶다"며 "이범석은 장래가 유망한 훌륭한 투수다. 보통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는 변화구에 약점이 있는데 직구와 변화구 비율도 좋고 힘있게 잘 던지더라.
청주기공을 나왔다고 들었는데 물좋은 동네에서 자라서 그런 것 같다"며 청주 후배에 대한 칭찬의 말도 잊지 않았다. KIA 이범석은 "아쉽기는 하지만 1군에서 이렇게 선발로 나설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오늘 졌지만 다음에 승리하면 되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며 패기있는 모습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