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의 고백(3)
19일간의 금식으로 중도 하차 한 나는 서울로 왔다. 형제들이 나를 미쳤다고 여러모로 돌이키려 한다. 하지만 바울서신의 입장을 포기할 수 없었다.
“교회가 타락한 원인이 바울의 이신칭의의 교리부터 잘못되었기에, 성도들이 세상 사람과 구별되지 못하고 천둥 벌거숭이 처럼 살면서 십자가의 주님을 욕되게 한다.”
고 주장하면서 바울서신에 걸리는 말씀을 하나 하나 꼬집었다.
“로마서13장 1절-너희는 모든 권세에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 나지 않음이 없나니.”
이 말씀을 신사참배 찬성 목사들이 얼마나 들먹였으며, 북한의 김일성 밑에 어용목사들이 얼마나 사용했는가? 불의한 것을 불의한 것이라고 외치고, 참을 참이라고 외치는 것이 주님의 말씀인데, 이 무슨 거추장스런 모순인가!
“고린도전서 11장 1절- 내가 예수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목사들이 이 말씀을 이용하여 자기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따르지 않으면서 자신을 따르라 한다? 바울이 예수님을 어떤 것은 본 받았겠지만 온전히 본받았다고는 할 수 없지 않는가?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야지 왜 바울을 본받아야 하는가 그러면 결국 바울 우상에 사로잡히고, 목사우상에 사로잡히게 되지 않는가 말이다!
회심한 바울 자신이 솔직히 제자들에게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으면 제자들이 용서햇을텐데, 바울이 자신의 잘못을 용서 빌었다는 말이 있는가! 아니다. 바울은 거짓된 자다. 거짓 사도이다.
“고린도후서 8장 9절-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
무슨 소리야? 가난은 상대적인 개념. 부한 사람이 있기에 가난한 사람이 잇는 것인데, 믿는 사람들이 부하게 살면 가난한 믿지 않는 자들이 욕할 건 뻔하지 않는가! 이땅에서도 부하게 호의호식하고 저 천국으로 간다고? 그것은 도둑놈 심보지 어찌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이냐!
아무튼 바울 서신을 삐딱하게 보니 사사건건 거친 말씀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자신이 메시아라는 암시를 받으면서 이사야를 푸는데, 자기 중심적으로
푸는 말씀 속에 광주사태가 성경에 기록된 것 같고, 전쟁이 곧 있으면(일정한 날짜 이내) 터지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기막힌 방법으로 해결케 하신다는 확신이 오는 것이다.
1983년 5월, 나는 8월 15일 이전에 전쟁이 터진다는 거짓 계시를 받았기에, 카츄사 군대 영장을 취소하고 군입대를 연기했다. 신문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나에게 딱맞는 정보가 보이는지, 그냥 나를 모략과 전략가의 책략을 구상할 수 있는 지혜의길(?)로 이끌었다.
그러면서 나는 바리새적인 율법주의자로 신앙생활하게 됐다.
돼지고기도 먹지 않고, 심지어 사고로 목메어 죽은 염소고기도 먹지 않고 남에게 모두 주어버렸다. 생명을 사모하여 차를 타지 않고 전국을 걸어 다녔다. (교통사고사망도 운전수로 하여금 운전하게 한 잘못이 본인에게 있기에). 살인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군대 영장이 나와 군대가면, 어찌 총을 들 수 있을까? 계속 성경적인 해답을 찾으면서 생명을 사모했다. 그러는 가운데, 8월 15일도 지났지만 전쟁이 나지 않았다. 잘못된 계시를 받은 것이다.
단지 그 기간에 북한 공군 이 웅평 대위가 미그기를 끌고 남한에 내려 온 작은 소동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 이후 나는 군대에 들어갔는데, 가장 먼저 군대에서 내 신앙과 부딪힌 것이 “국기에 대한 경례” 였다. 내 신앙으로서는 국기에 대한 경례란 우상 숭배라는 개념(나는 고등학교 때 순천 매산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 학교는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당한 미션 스쿨로 국기에 대하여 주목으로 햇음)으로 굳어져 있기에 군대에서 국기에 대하여 경례를 거부하고 동작을 취하지 않으니, 그것이 말썽이 생겨 철책 근무 서지 않는 다른 연대로 전출 가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믿는 군인으로서 생명에 대한 고뇌를 많이 하면서, 생명에 대한 애착이 강했기에 다른 사람을 죽이는 총을 만진다는 것에 거부 반응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격훈련에서는 거의 불합격을 하므로 군대생활을 참으로 힘들게 햇다. (고문관으로 찍힘) 그런데 하나님께서 병장될 즈음에 지혜를 주시는데, 표적을 적의 심장에 두지 말고 방아쇠를 당기는 적의 손가락에 두라는 계시가 왔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러고 나서 사격훈련에 임하다 보니 10발에서 9발 이상을 맞추는 일등 사수가 되었다. 왜냐하면 적의 심장의 표적보다 적의 가상의 손가락 표적은 더 작기 때문이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적이 총을 못쏘도록 부상하게 하면 적은 부상은 당하지만, 죽이지 않고 적의 공격력도 제압할 수 있는 묘안인 것이었다.
첫댓글
사도바울의 신앙과 또 그가 자비량으로 복음을
전파하면서 겪었던 고난의 과정들을
본받으라 한것이지
바울을 섬기고 더 나아가선 목사를 섬기라는
뜻으로 이해하는가?
말씀에서 진리를 찾아야하는데
장로님은 체험에 치중하고 말씀이 약하고 없으니 미혹된 것 같습니다. 모든 체험과 은사를 중지하시고 다시 말씀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말씀이 없다?
어떤 뜻인가요?
@예수 나의 왕 말씀에 대한 신학적 체계가 약하니 바울사도가 이단으로 보이고 말씀을 곡해하는 걸로 보입니다. 이신칭의에 머무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성화의 길을 바울이 제시하는데요
@카리타스 아! 오해입니다.
청년시절의 내가 그러했다는 것이지 지금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