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름, 용오름, 역고드름...
우수/용오름 현상 (경북 울릉군 해변)/김택수
2012년 기상사진전 공모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심사위원 중의 한 명으로 참여했습니다. 한 해동안 전국 각지에서 목격된 기상현상을 사진으로 만나본다는 것은 늘 흥미로운 일입니다. 물론 응모작 중에선 외국에서 찍은 사진도 몇 있습니다만 대부분 국내의 것입니다. 2011년에는 어떤 기상현상이 있었을까요? 국지성 호우와 태풍, 가뭄, 그리고 이로 인한 피해상황이 당연히 포함되어있을 것이고요. 무지개, 채운, 햇무리, 브로켄 같은 빛 현상을 담은 사진도 많이 올라왔습니다. 원시 때부터 인류에게 공포를 주는 낙뢰도 뛰어난 소재이며 용오름은 드물게 목격되는 현상입니다. 그 외 렌즈운처럼 각종 진귀한 형태의 구름, 노을, 눈, 눈꽃, 눈의 결정, 고드름, 역고드름도 단골소재입니다.
금년에는 최우수작을 선정하지 못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전원일치로 최우수작 없이 우수작을 세 편 뽑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진의 수준이 뛰어나지 못했다는 이유라기 보다는 내용이 평이했다는 평가가 더 작용했을 것입니다. 심사위원들의 눈이 높아졌을 가능성도 있겠고요. 그러나 뽑힌 사진들은 어느 하나도 쉽게 찍을 수 없는 빼어난 작품이었습니다. 대규모 재해현장을 담은 사진이 없었다는 점을 누군가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반쯤 농담삼아 “재해가 없었다면 다행”이라고 대꾸하기도 했습니다. 몇 년동안 심사를 하다보니 어떤 패턴 같은 것이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종합적 판단입니다. 즉, 어떤 해에 국지성 호우가 최우수상을 받게 되면 그 다음해엔 국지성 호우를 담은 사진들이 대거 출품되더라는 것입니다. 그 만큼 전국적으로 국지성 호우가 많아서 그랬다는 반증이냐고 기상청 관계자에게 물었더니만 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얼음 사진이 뽑히면 그 다음해엔 얼음 사진이 많이 올라오고 채운이 최우수가 되면 채운 사진을 많이들 응모한다는 식이니 현상의 빈도와는 상관이 없는 듯 합니다.
“과연 어떻게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는 장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심사위원 중에는 기상청의 전문가가 포함되어있어 수시로 자문을 해주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로라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조선시대, 고려시대엔 한반도에서도 오로라가 관측되었다고 합니다. 2011년 기상청이 발간한 한국 기상기록집 1권 <기상, 천문, 지진기록>에 따르면 삼국사기에 오로라의 기록이 있습니다. 삼국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오로라 기록은 서기 34년(다루왕 7년)입니다. “여름 4월 동방에 붉은 기운이 있었다” 사진이나 그림이 없고 문자로 묘사된 기록이라곤 하지만 구름, 별 등의 현상과는 구분하는 표현이 있었다고 하니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사진이 있다면 명쾌하겠죠? 기상기록집에는 그 외에도 신기한 기상현상이 많이 수록되어있습니다. 용오름, 채운, 무지개, 환일현상 등에 대한 묘사가 종종 등장합니다.
삼국시대와는 달리 21세기엔 사진이라는 강력하고 명확한 기록수단이 있습니다. 춥거나 덥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기상현상을 기록해두면 어떨까요? 기상청 관계자의 이야기로는 구름 사진이 특히 부족하다고 합니다. 구름의 종류까지 공부해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특이하게 생긴 구름이라면 셔터를 눌러놓고 이름을 찾아보면 될 것입니다. 일출, 일몰시의 구름은 더욱 멋지게 보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희귀한 렌즈운이 아니라 하더라도 좋은 기상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목적이 아니더라고 하늘을 자주 보는 것은 정신건강에 좋겠습니다. 왜냐고요? 최소한 마음이 넓어질 것 같습니다.
수상작을 소개합니다. 우수작, 장려상 전부와 입선작 중의 일부입니다. 수상작 전체는 3월 23일부터 30일까지 국립과천과학관과 기상청에서 전시됩니다. 어린 학생들에겐 공부가 되고 어른들에겐 눈과 마음의 호사가 될 사진들입니다. 거꾸로일수도 있고요.
우수
타는 목마름 (경기도 시화호 주변 형도)/장지선
승빙의 미 (전북 진안군 마이산)/유지훈
장려
성산 일출봉과 무지개 (성산일출봉 해안가)/이승건
낙뢰의 혈관 (서울 성동구 성수동)/양전영
신비의 섬 여행, 해무(부산 이기대공원)/김재현
햇무리와 채운 1(밀양 위양지)/최철희
봄의 막바지 밀양 위양지를 지나다 하늘에 장엄하게 태양을 둘러싼 햇무리와 채운을 동시에 목격했습니다. 햇무리는 상층부의 엷은 구름에 빛이 산란되어 생기는 현상이고, 채운은 태양부근을 지나는 구름에 빛이 회절되어 무지개처럼 고운 빛을 띠는 것입니다.
바다위의 소나기, 국지성 호우 (사이판)/황은숙
하늘에서 내리는 꽃, 눈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이혁
입선
목장의 무법자, 렌즈운(제주 제1산록 도로 목장)/박동오
공작의 미화(수원 호매실동)/이을재
얼음판 위의 추상화(전북 임실군 운암면 옥정호)/ 고경룡
해운대를 덮친 해무쓰나미(해운대 오드류빌딩 66층)/최주호
첫댓글 덕분에 좋은작품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
멋지게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