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상달 진도대교 전망대
2016. 10. 금계
시월상달은 햇과일과 햇곡식을 하늘과 조상께 올리기에 좋은, 일 년 중에 으뜸가는 달이라던가.
10월 2일, 연휴를 맞이하여 광주 사는 둘째아들과 서울 사는 셋째아들 가족들이 목포로 내려왔다. 함께 진도대교 나들이에 나섰다.
진도대교 전망대를 가보지 않은 분이나, 가보셨더라도 새로 지은 전망대를 구경하지 않으신 분들을 위하여 사진 몇 장을 올린다.
진도대교는 처음에 하나였는데 부족하여 쌍둥이 다리가 되었다. 자체로도 볼 만한데 다리 아래가 바로 울돌목(명량)이다. 충무공이 지휘봉을 잡은 조선 수군의 기백이 소용돌이치는 역사적 해협이다.
지하 1층, 지상 6층, 높이 60m. 전에는 녹진 전망대가 있었는데 2013년에 새로 짓고 진도타워라 명명하였다. 전체적으로 돛배모양. 엘리베이터로 꼭대기 층에 오르면 옛 싸움터였던 울돌목 일원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명량대첩 재현 장면.
若無湖南 是無國家 만약 호남이 없었더라면 나라가 없었을 것이다.
必死卽生 必生卽死 죽고자 싸우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는다.
尙有十二 微臣不死 아직 열두 척이 있고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진도타워에는 수많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몇 장 소개한다.
진도 특산품 진도 홍주. 지초라는 약초의 빛깔로 붉다. 순곡주로 40도에서 60도쯤. 나처럼 독주를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오히려 60도가 더 입에 맞는다. 제품화된 것도 좋지만 그냥 일반 집에서 내린 것도 마실 만하다.
진도 특산품 울금. 울금도 여러 가지로 몸에 이롭다 한다.
울돌목 언저리의 메밀꽃. 원두막도 정겹다.
남도석성(南桃石城) 삼별초 항몽 기지. 조선 시대 수군 근거지.
임란 당시 판옥선의 모습 같다. 이물 고물이 넓적한데 왜군들 배는 끝이 뾰족했다. 판옥선은 튼튼하고 왜군들 배는 잘 부서졌다.
총통 화포로도 많이 격파했지만 판옥선을 왜군 배에 부딪쳐 깨뜨리기도 했단다.
탈곡기 등장 이전 ‘홀태’에다 벼이삭을 훑던 장면. 그 때 농부들은 얼마나 수고로웠을까. 그러나 토인비는 ‘함께 논밭에 나갔다가 함께 저녁밥을 먹던 때’까지만 인류가 행복했단다.
옛날 진도의 십일시(十日市) 모습. 햇볕이 짱짱하게 내리쬐고 비린내 지린내가 범벅되어 맴돌던 저잣거리의 미묘한 울림을 마트만 다니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리라.
풀을 뜯기러 소를 끌고 나가는 소년들. 해남 김남주는 이렇게 썼다.
-아버지는 내 뒤퉁수에 대고 냅다 고함을 쳤다. “너 핵교 파하면 핑 와서 소 뜯겨야 한다. 길가에서 놀았다간 봐라. 다리몽댕이를 분질러놓을 팅께.”-
이 사진 보고 있노라니 정지용의 시 ‘향수’가 생각난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
진도의 초가집들을 보니 70년대 새마을운동이 생각난다. 당시에는 초가집이 슬레이트 지붕으로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슬레이트 지붕에 발암물질이 많다고 야단들이다.
시골 학생들의 소풍 길. 정답기도 하여라. 저 학생들은 수십 년 후 진도 팽목항 언저리에서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이 떼죽음을 당하리라곤 상상도 못했으리라.
전란 후의 베이비 붐. 콩나물 교실. 이부제 수업. 오후반 학생들의 수업 모습. 인류 역사가 참 무섭고 우습다. 언제는 애기 그만 낳으라고 성화더니 이제는 많이 낳으라고 안달이다.
진도 어느 학교의 가을운동회 모습. 허공에 펄럭이는 만국기가 눈물겹구나. 저 뻑적지근한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시골 운동장에는 찬바람만 씽씽 부는지 모르겠구나.
볏짚 울타리에 김 말리는 모습. 혹시 떨어져 날아가면 십 미터, 백 미터까지 달려가 주워왔더란다. 공력이 너무 많이 들어 아까웠더란다.
옛날 진도읍 구시가지 모습. 신흥상회, 문화하숙, 의신상회, 태화고무상회. 누가 산천은 의구하되 사람은 간 데 없다 하였는가. 사람도 바뀌고 산천도 달라지고 거리도 바뀌고 간판도 달라진다. 세월은 모든 것을 탈색시키고, 증발시킨다.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좀먹는 무서운 장본인이다.
관매도 해수욕장. 팽목항에서 출발하면 조도를 거쳐 한 시간쯤 걸리던가. 관매도가 얼마나 적요하고 오붓하고 산뜻하고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지 안 가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관매도 어느 섬의 유명한, 전혀 남근 같지 않은 남근바위. 섬사람들이 저 바위를 보고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표지석이라고 한다.
소치 허련 선생이 기거했던 남종화의 산실 운림산방. 주위 풍광과 어울려 연못과 더불어 한국 정원의 안온함과 고즈넉한 정취를 한껏 풍기는 관광명소다.
진도의 명품 진돗개. 풍문에 의하면 똥개들은 사람만 보면 짖는데 진돗개는 조용히 지켜보다가 수상하면 가만히 가서 물어버린다 한다.
진도타워 광장에는 전에 없던 조형물이 들어서서 명량대첩 당시의 전투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진도타워에서 내려온 곳에 있는 중화요리 식당. 꽃게와 전복과 홍합이 들어간 짬뽕(1인분 만 원)과 쟁반짜장(1인분 칠천 원)을 도합 6인분 시켰는데 아이들이 조금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짜장이 너무 맛있기 때문이었다. 연휴라서인지 손님들이 줄지어 서서 자리 나오기를 기다렸다.
사실 전라우수영은 진도대교 건너 해남 땅에 있었다.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에는 지금도 명량대첩비가 서 있고, 선두리 나루터에는 거북선을 본뜬 유람선도 정박해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