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1128 씨 뿌리는 비유 11.7.10(성령강림후4주)
마13:1-9,18-23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셨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 비유 때문에 더 잘 깨달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비유 때문에 말씀의 뜻을 더 몰랐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했다. “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주님은 대답을 하셨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 사람에게는 알게 하고 허락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비유는 이중성이 있다. 깨닫는 자에게는 아주 쉬운 것이 되지만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어려운 것이 되었다.
유진 피터슨은 예수님의 비유는 파괴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비유와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에 대한 내용도 없고 겁을 주는 요소도 없다. 그래서 경계를 늦춘다. 일종의 자기 무장해제를 한다. 그런데 이야기, 즉 비유의 말씀은 어느 덧 그 사람의 마음에 남아 계속 상상력을 일으킨다. 마치 시한폭탄처럼 예수님의 비유는 무방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속에서 폭발한다. 그들은 그러한 말씀을 통해 비로소 하나님 나라가 그들 가운데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Ⅰ.하나님의 씨가 결실하는 것은 마음 밭에 달려있음을 보여준다.
네 가지 밭에 떨어진 씨의 비유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밭은 네 가지 이지만 씨는 네 종류가 아니다. 씨는 같은 하나였다.
씨는 종류와 품질에서 동일한 씨앗이다.
또 씨 뿌리는 농부도 같은 농부이다.
길가 돌밭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이 결실하지 못한 것은 씨앗 때문도 아니고 농부 때문도 아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천국 복음을 전파했을 때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은 은혜를 받지 못했다. 제사장과 율법사도 마찬 가지였다.
그러나 서민들은 그 말씀을 믿었고 은혜를 받았다.
왜 그럴까?
그것은 듣는 사람의 형편과 관심이 다르고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말씀을 받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그런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같은 선생님에게 배운 학생들 사이에도 실력의 차이가 나는 것이나 같은 설교를 들으면서도 성도들의 신앙 성장의 속도가 다른 것은 바로 듣는 사람의 마음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도 받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다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Ⅱ. 마음 밭의 중요성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에 달려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에서 네 가지 밭의 의미를 알려주셨다.
첫째 마음 밭은 길가와 같은 것이다. 그곳에 말씀의 씨앗이 뿌려졌을 때 곧 새가 날아와서 그것을 먹어버렸다.
이런 마음 밭은 환경과 외부적 요인으로 그 말씀을 바로 잊어버리거나 빼앗기는 경우이다.
성경은 사탄이 그것을 뺏아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말씀이 선포될 때 그것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는 뜻이다. 말씀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즉시 잃어버리는 것이다.
둘째 마음 밭은 돌밭이었다. 씨가 떨어졌을 때 흙이 너무 얇아서 조금 싹이 나오다가 말라버렸다.
말씀을 들을 때 기뻐하고 감격해 하지만 어려움이 오면서 바로 잃어버리는 경우이다. 역경은 말씀이 자라지 못하게 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한다.
이처럼 토양이 척박한 땅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없도록 만드는 환경이나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셋째 마음 밭은 가시 떨기 밭이다.
이 밭의 특징은 땅은 좋아서 쉽게 싹이 나고 뿌리가 잘 뻗어 내려서 쑥쑥 자랐지만 위에 가시떨기가 있어서 식물이 그 기운에 막혀 더 자랄 수 없는 것이다.
천국의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때문에 영적 기운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다.
넷째 마음 밭은 옥토이다. 좋은 땅은 씨가 뿌려진 후 잘 활착이 되어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위로는 곧은 줄기와 가지가 잘 자라 많은 열매를 맺었다.
그래서 모두가 바라는 기쁨을 얻게 하는 밭이다.
이처럼 주님은 네 가지 마음의 밭의 비유를 하시면서 우리들이 옥토처럼 결실하기를 바라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씨가 각각 사람들에게서 결실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Ⅲ.마음 밭은 네 가지라도 한 사람 안에 다 있음을 보여준다.
마음 밭은 네 가지이지만 이것이 각 각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
길 가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평생 그 마음 밭을 가지고 살고, 돌짝 밭과 같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도 평생 그 마음 밭을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 그 사람의 마음에 따라 어느 때는 가시떨기 같은 마음 밭이 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옥토와 같은 좋은 땅의 마음 밭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네 가지 마음 밭은 마음이 서로 다른 네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안에 있는 네 가지 마음 밭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러분 자신을 생각해 보시오.
어느 때는 좋은 땅과 같아서 모든 말씀을 들을 때 바로 그것이 믿어지고 그대로 순종하기도 하지만 또 어느 때는 길가와 같은 마음이어서 아무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들었어도 금방 잊어버리고 말 때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길가와 같은 마음 밭과 돌작밭과 가시떨기 밭을 옥토로 만들기 위해 개간을 해야 한다.
길가와 같은 밭은 땅을 깊이 파서 갈아엎어야 한다.
돌작 밭은 돌을 골라내야 한다.
가시덤불 밭은 가시덤불을 뽑아 버려야 한다.
이처럼 마음 밭을 옥토로 만들기 위해 수고의 땀을 흘려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수고하여 만든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이 도로 길가와 같이 되거나 돌작 밭이 되거나 가시떨기 밭이 되지 않도록 주위하고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좋은 땅과 같은 사람도 없다. 우리는 길가에서 돌작 밭으로 돌작 밭에서 가시떨기 밭으로 가시 떨기 밭에서 옥토로 훈련받고 연단 받아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교훈과 적용
주님은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잘 들어주시고 또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를 잘 지켜 주신다고 하였다.
그러면 우리가 마음 밭을 옥토로 만들기 위해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첫째 겸손해야 한다.
어거스틴은 믿음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겸손이라고 하였다. 둘째는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겸손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셋째는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셋째도 겸손이라고 하였다.
조지 뮬러가 설립한 고아원의 원장이었던 프레드 버거는 유언과 같이 이런 말을 남겼다.
“젊은 형제들에게 가서 말해 주시오. 그들이 너무 작아서 하나님이 못 쓰시는 것이 아니라 너무 커서 쓰실 수 없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다.
둘째 인내해야 한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참고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그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맞추기 위해서는 계속 기다려야 하고 참아야 한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하다.
바울 처럼 나는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은 사람이다 라고 믿으며 죽은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 그것이 인내하는 것이다.
셋째 감사해야 한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섭리를 가지고 다스리고 계신다. 그 은혜를 인하여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믿고 구원을 받은 것이나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사는 모든 일이 다 감사할 일임을 믿어야 한다.
이처럼 우리가 항상 겸손과 인내와 감사를 가지고 주안에서 살면 우리의 마음밭은 옥토가 되고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열매를 많이 맺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