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이 무량한 극락세계
'나무아미타불'이나 '극락세계'라는 말은 불교를 믿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낯설지 않은 마치 고향과도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 것은 아미타불의 신앙이 오랫동안 우리 민족과 숨결을 같이 해 온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미타불 신앙은 구조적으로 아주 특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대승불교의 포용성을 잘 보여주는 예가 되고 있습니다.
인도의 고전 중에 <바가바드-기타(Bhagavad-Gita>가 있습니다. <우파니샤드>가 구약성서쯤에 비교된다면 <바가바드-기타>는 신 약에 비교될 만한 고전입니다. 돌아가신 함석헌 선생은 <바가바 드-기타>를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그분은 평생 그것을 원문으로 읽는 것이 소원이어서 범어를 익 힌다고 불교대학에 찾아왔었습니다. 그래서 번역도 하시고 주석 도 잘 달아 놓으셨는데, 그 일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바가바드-기타>를 보면 신앙의 유형을 '지혜의 길', '선행의 길', '믿음의 길'이라 해서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첫째, 지혜의 길은 우리가 잘 못사는 까닭을 이 세상에 있는 모 든 것이 어떻게 있는가에 대한 존재의 실상을 모르기 때문에 일 어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지혜의 길에서는 지혜를 증득함 으로써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 는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조용하게 하는 선정이 필요합니다. 이 지혜의 길은 스스로의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 가는 자력 적인 신앙 형태입니다.
둘째, 선행의 길은 종교 의식을 위시한 선행을 행함으로써 해탈 에 이를 수 있다는 신앙 유형입니다. 이 선행의 길은 모든 종교 에 통용되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믿음의 길은 절대적인 믿음을 기본으로 하는 신앙을 가리 킵니다. 여기에서는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으로서 신이라든지 하 는 절대적인 존재나, '나는 무력한 존재다.'라고 하는 자각이 전 제됩니다.
즉 '나'는 그저 죄의 구렁텅이에 빠져 살고있는 존재로 도저히 내 문제를 내 힘으로는 풀어갈 수 없다는 자각입니다. 그것 을 '피조물 의식', '죄인 의식'이라고 하는데, 그런 자각으로부 터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에 완전히 자기를 던져 버리는 절 대 의존과 절대 믿음은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길은 전형 적인 타력신앙입니다.
서양 종교는 대부분 이러한 절대적인 믿음을 기본으로 하는 타 력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양 종교의 특성 중 하 나는 이러한 '믿음의 길'을 통해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피나 는 노력입니다. 서양의 종교사는 그런 타력신앙을 지키는 노력의 과정이었다 해 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단에 대한 논쟁이 남달리 높았던 것도 이 런 이유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역사 는 신앙적 '외길'을 지켜온 역사입니다.
그런데 대승불교는 '외길'이 아니라 다양한 길, 모든 길을 포용 하고 수용해 온 역사입니다. 근본불교를 보면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스스로 정진해서 깨쳐가는 철저한 자력신앙이며 지혜의 길 인데도, 타력적인 신앙도 넉넉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것 도 마하나야, 즉 큰 수레의 포용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타력까지도 받아들이는 지점에 이르러 불교는 '열린종교'의 모습 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 사상적인 배경은 바로 대승불교의 이타사상입니다. 그것은 모든 생명을 다 제도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자력적인 실 천이 적성에 맞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나 같은 사람이 어떻 게 .' 하고 포기하는 사람에게도 거기에 알맞는 자비의 손 길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대승불교는 자력과 타력을 함께 수용하 고 있는 너그럽고 큰 수레입니다.
자력적인 수행방법으로는 선정을 통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 은 모든 생명이 성불할 수 있다는, 즉 나도 부처가 될 수 있다 는 높은 자기 평가를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맞 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처가 되겠다'고 하는 용기와 생각 은 거룩하지만 막상 좌선에 들어가면 망상이 죽끓듯하여 도저히 자기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타력적인 수행 방법인 염불수행의 방법이 있 습니다. 즉 모든 것을 아미타불, 혹은 관세음 보살에게 맡기고 그저 일념으로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 보살만 부르면 된다는 수행 방법입니다. 이것은 큰 소리로 염불함으로써 망상이 들 틈 이 없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선정을 통한 길은 어려운 길이기에 난행도라 하고, 염불 하는 수행은 쉬운 길이기에 이행도라 하기도 합니다. 어렵고 쉽 고 간에 각기 자기에게 맞는 길이 열려 있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불교만이 가지는 큰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장비구의 서원 타력적인 신앙의 대표적인 예가 아미타 부처님의 정토신앙입니 다. <무량수경>에 의하면 아미타 부처님은 출가 전에는 한 나라 의 어진 임금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자재왕여래라는 부처님 께서 설법하시는 것을 듣고 발심하여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법 장비구가 되었습니다.
이 법장비구가 '모든 중생을 다 제도해야 되겠다.'는 원을 세우 고 이 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서원을 했습니 다. 그 원을 구체화한 것이 유명한 48대원입니다. 그 첫 번째 원은, "내가 부처되는 국토에는 지옥 아귀 축생 등 삼악도의 불행이 없을 것이다."하는 것입니다. 삼악도의 불행으 로부터 벗어나려면 탐 진 치의 삼독이 없어야 가능합니다. 또 열번째 원은, "나의 국토에 사는 이는 번뇌의 근본이 되 는 '나다', '내것이다'라는 집착에 대하여 생각을 일으키지 않 을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열한번째 원은, "나의 국토에 사는 이는 모두 정정취에 들어 필 경에는 모두 성불할 것이다."입니다. 정정취란 수행이 견고해져 서 결코 뒤로 퇴굴하지 않는 위치를 말합니다. 그런 위치에 들 면 오직 전진만 있으므로 성불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수행이 정정취에 들지 못했기 때문에 열심히 정진하면 되는 듯 싶다가도 어느 때는 곤두박질쳐서 도로 제자리에 떨어져 버립니 다. 그럴 때 우리는 용기를 잃게 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제자 중에 고티카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열 심히 정진을 할 때에는 깨친 것 같다가 정진을 마치면 도로 제자 리에 돌아옵니다. 이렇게 여섯 번을 반복한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통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수행이 자리를 못 잡았기 때문이며 진리에 대한 결정 적인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진리의 길이 쉽지 않음을 나타내는 예입니다만, 모든 사람이 그런 퇴굴이 없는 정정취에 도달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열두번째 원은, "나의 광명은 한량이 없어서 백천억 무량한 부 처님의 세계를 다 환히 비출 것이다."입니다. 아미타불이 영원 한 부처님이 되신 것도 이런 서원에 의해서입니다. 열세번째 원은, "내 수명은 끝이 없어서 백천억 무량겁으로도 잴 수 없을 것이다."인데, 아미타 부처님의 무량수라는 칭호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열다섯번째 원은, "나의 국토에 사는 이는 목숨이 무한할 것이 다."이며, 즉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열여덟번째 원은, "어떠한 중생도 지극한 믿음으로 나의 국토 를 믿고 좋아해서, 그 곳에 태어나고 싶어하는 사람은 내 이름 을 열번만 불러도 반드시 그곳에서 태어나게 될 것이다."입니다. 열번만 '나무아미타불'하고 외우면 누구든지 극락세계에 태어난 다는 원입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이것은 내 능력에 의해서가 아 니라 아미타 부처님의 본원력에 의해서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타 력적입니다. 스물여섯번째 원은, "나의 국토에 사는 보살들은 나라연천과 같 은 굳센 몸을 얻게 될 것이다."하는 것입니다. 아주 건강한 몸 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48대 서원의 내용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완성이 된 국토를 지칭합니다. 법장비구의 서원을 보면 나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구하려는 보살의 원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 다. 이러한 원대한 원은 하루 아침에 그냥 세워진 것이 아닙니 다. 5겁동안의 명상을 통해서 비로소 세워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세운 원을 무한한 시간 동안 보살행과 선정을 통해 이루 었습니다. 그래서 성불을 하게 되었는데 석가모니 부처님보다 10 겁 전에 이미 성불해서 아미타 부처님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원 이 성취된 정토가 극락세계입니다.
48대 원이 갖추어진 정토 극락세계는 누구든지 아미타 부처님 을 열 번만 부르면 극락정토인 서방정통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염불신앙의 근거가 바로 여기에 였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이라고 할 때, 아미타라는 말은 불사, 즉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은 아미타유스 와 아미타바라는 두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미타유스 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뜻이고, 아미타바는 영원한 빛이라는 뜻입 니다. 따라서 아미타불은 영원한 생명의 부처님인 무량수불이고, 영원 한 빛의 부처님인 무량광불입니다. 즉 아미타불은 시간적으로 영 원한 부처님이시고, 공간적으로 환히 비치지 않는 곳이 없는 영 원한 광명의 부처님이십니다.
이 광명은 어디에나 환히 밝게 비치는 가이 없는 무변광명입니 다. 무량광은 걸림이나 막힘이 없어 모든 것을 꿰뚫고 환히 비 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밝기는 계산할 수 없는 해와 달을 능 가하는 초월광명입니다. 그리고 환희광명으로 그 빛이 빛나면 말 할 수 없는 환희에 휩싸이게 되는 광명입니다.
아미타불의 이름이 이렇다는 것은 아미타불이 계신 서방 극락세 계가 바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바로 광명과 환희와 생명으로 충 만한 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카-바티라고 합니다. 수카는 즐거움, 환희라는 뜻이며, 바티는 무량하다는 뜻입니다. 즉 수 카-바티는 즐거움이 무량한 땅, 극락의 세계입니다. 이 극락세계는 서쪽으로 10만억 국토를 지나가면 있다고 경전 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서방정토, 혹은 서방극락세계라 고 부릅니다.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세계는 '땅이 금과 은 그리고 옥으 로 구성되어 있고, 여러 가지 훌륭한 것들이 한량없이 많으며 광 명이 찬란해서 아름답고 깨끗하기가 비길 데 없다.'고 합니다. 또한 칠보로 된 나무들이 가는 곳마다 늘어서 있고, 서늘한 바람 이 불어오면 미묘한 음악들이 흘러 나온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나라에는 많은 연못이 있는데, 팔공덕수가 흘 러 넘친다고 합니다. 팔공덕수란 여덟 가지 공덕을 갖춘 물로 달 고, 차고, 부드럽고, 가볍고, 깨끗하고, 냄새가 없고, 마실 때 목이 상하지 않고, 마시고 나면 배탈이 나지 않는 물이라고 합니 다. 우리 나라는 국토가 문자 그대로 '금수강산'이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요즈음은 물조차 마음놓고 마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약수터에 가 보면 새벽부터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고, 물 값 이 기름 값보다 비싸다고 합니다. 이런 걸 보면 우리는 지금 정 토와는 자꾸 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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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말씀 하나같이 소중하게 담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은 불교인이 아니더라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고향 같다라고 하시네요. 부처님을 공부하고 따르는 불교인은 어떠 하겠습니까.. 부처님법 만나니 행복하고 날마다 좋은날 입니다. 오늘 죽어도 극락세계요 내일 죽어도 극락세계.. 꼭 갑니다!!! 나무 아미타불.. ()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루 ()
나무아미타불()()() 응천스님 고맙슴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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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관세움 보살~ 감사히 공부 합니다 ...^^*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