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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뒤켠에 2004년 보그라고 되어 있는 글을 보았는데, 주소로 들어가보니 찾을 수 없는 사이트라 나와서
아직 웹에 살아있는거 얼른 챙겨서 가져왔습니다.
완전한 사랑....도 진리! ㅜㅜㅜㅜ
드라마의 근본인 ‘희로애락’의 폭풍을 브라운관이 터질 만큼 스펙터클하게 분출한 김희애. ‘웃어라, 분노하라, 즐겨라. 그리고 눈물이 차고 넘치도록 네 삶을, 사람을 사랑하라.’ 단지 그대가 김희애라는 이유만으로.
“안녕하세요?” 김희애의 목소리는 작년 이맘때 그녀를 만났을 때보다 한층 높아져서, 마치 이른 아침 종달새가 지저귀는 것 같다.
정확히 일 년 만이다. 체감 온도가 영하 20도로 떨어진 아주 추웠던, 작년의 바로 오늘 나는 그녀를 만났다. 7년 만에 출연한 드라마 '아내'가 처음으로 방송을 탄 다음날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살구빛 메이크업이 괜찮았나요? 애들은 자고 남편은 서재로 들어가고… 그래서 혼자 TV를 봤어요.” 그녀의 목소리만은 기쁨, 슬픔, 긴장, 걱정… 모든 감정의 옥타브가 잘 맞춰진 옛 시인의 기타 줄처럼 은은하게 조율되어 있었다.
여배우의 30대는 농익은 청춘, 그 막대한 로열티를 남편과 두 아이에게 바쳐오는 동안 그녀는 몇 가지 감정의 면역 체계를 지닌 것처럼 보였고. 그리고 일 년이 흘렀다. ‘그 옛날 김희애’라는 등짐을 지고 아내와 완전한 사랑이라는 두 개의 봉우리를 올라 자랑스레 ‘해냈다’고 등정의 깃발을 꽂은 서른 여덟의 지금. 많은 것이 변했고 또 많은 것이 그대로다.
김수현의 표현에 의하면‘꼭 차돌에 참기름 바른 것 같다’던 김희애가, 십 몇 년 전 김수현의 영화 '어미' 오디션에서도 탈락한 경험이 있는 김희애가, 째지게 좋아 ‘꼭 곗돈 타는 기분’으로 '완전한 사랑'을 해내고야 말았다. 칭찬에 옹색하기로 유명한 완벽주의 작가가 ‘김희애의 연기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작년 SBS 연기 대상의 시상 결과에 대해 홈페이지에 “그 상 안 받아도 된다. 희애한테 상 내가 줬다”고 분노할 만큼. ‘그녀의 표정과 눈물과 대사’는 1970년대 드라마 전성시대에 TV 브라운관 주인공들이 해냈던 (주인공의 시련과 행복에 자기 일처럼 울고 웃는), 그 고전적인 역할을 해냈던 것이다.
TV 드라마의 근본인, ‘희로애락’의 분명한 감정의 산맥을 브라운관이 터져 버릴 만큼 스펙터클하게 분출해가며. ‘웃어라, 분노하라, 즐겨라, 그리고 눈물이 차고 넘치도록 네 삶을, 사람을 사랑하라!’ 어쨌든 눈물의 한 해는 지나고 새해가 왔다. 작년과 같이 내가 오늘 그녀와 만나기 위해 가장 경쟁해야 했던 상대는 그녀의 두 아이들이었다.
이날은 어때요? “그날은 딱 하루 스케줄이 없는 날인데,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싶어요.” 그리고 일 년 후, 이날은요? “아이들과 서커스 보러 가기로 했어요.” 그리고 오늘 오후는 ‘고맙게도(!)’ 두 아이가 친구 생일 파티에 가주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엄마를 몇 시간째 독점할 수 있게 되었다. 초록색 티셔츠에 부츠 컷 블루진, 에르메스 악어 켈리 백에 아식스 스니커즈를 넣고 김희애가 막 골프 연습장에서 이곳으로 왔다. 운동을 한 직후이기 때문에 당연히 노 메이크업이다.
“몇 년째 7홀을 치고 있어요. ‘지진아’처럼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7번 홀에 서지요. 하하.” 매년 극복하지 못하는 ‘숫자’가 ‘7번’이라니, 골프를 모르는 나로서는 그녀의 ‘역경의 7번홀’마저 운명처럼 여겨진다. 사람들이 김희애를 사랑하는 것은 그녀가 자신들의 이웃집 여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TV 브라운관에 어울리는 캐릭터를 개발해냈다. 평범하고, 가난하고, 삶에서 접할 수 있는 역경을 만나고,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놀랄 만큼 밝고 씩씩하게 극복해내는 겨울 햇살 같은 여성. 그 공적인 페르소나는 단순히 작품 속의 ‘배역’에 의해 완성된 것이 아니라, 실제 그녀의 삶이 공증해간다는 데 대중들은 더 깊은 감화를 받는다.
시댁과 갈등하고 애들을 사랑하고 철부지 남편을 길들이는 이웃집 여자의 삶. 그래서 그녀는‘리얼리티’에 근접하기 위해 관찰과 상상과 계산에 의지해야 하는 보통 TV 연기자들 사이에서 두드러져 보인다. “차인표 씨는 무지하게 부자로 나오잖아요. 그런데 저는 늘 가난했어요.
'여심'에서도 그랬고 '아들과 딸'에서도 그랬고… 가난해도 아주 찢어지게 가난했지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한번 ‘가난은 영원한 가난이구나’ 하하!” 김희애는 종종 이런 식의 유머를 구사한다. 그러나 김희애는 늘 ‘가난한’ 여자로 나왔다기보다는 언제나 ‘폭발적인 에너지’를 지닌 참하고 독립적인 여자로 나왔을 뿐이다. ‘참기름 바른 차돌처럼’. 여자들은 그녀가 그 역경을 지혜와 노력으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눈물의 용기를 얻었고, 남자들은 그녀의 청량한 목소리, 겨울 사과 같은 풋풋한 표정에서 ‘누나의 향기’를 맡았다. 그녀는 삶과 연기에 동시에 자신만만 했다. 패션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그녀가 스타일리시 했던 것은 아니다. '아내'를 시작하던 당시 그녀는 자신이 ‘무척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방영된 지 며칠이 지나자, 김희애는 ‘스타일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김희애 따라하기’라는 기사가 잡지 여기 저기 실렸고, 홍콩의 한 방송사는 ‘김희애 열풍 현상’에 대해 그녀의 스타일리스트 정윤기를 인터뷰해 갔다. 포대기에 아기를 들쳐 업고 슈퍼에 갔고, 가끔 친분 있는 디자이너의 쇼장에 얼굴을 내비쳤던 왕년의 한 여배우가 하루 아침에 ‘패셔니스타’로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이다. “6개월 동안 옷을 산처럼 쌓아놓고 입었어요.
드라마에 등장한 옷이 그 정도이니, 저는 그것을 선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옷을 입어야 했겠습니까? 모든 게 ‘디자이너’라는 배역을 위한 노력이었죠. 저는 제 자신이 벼랑 끝에 서 있다고 생각했고, 그 모든 화려한 패션은 헝그리 정신의 산물입니다.” 연말 모델라인에서 주최한 베스트 드레서 시상식 때 그녀는 TV 부문 베스트 드레서 상을 받았다. “그 상황은 직업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옷을 최고로 잘 입었다는 평가가 아닙니다. 배역과 종합해서 옷을 적절하게 잘 보여주었다는 의미겠지요.
여전히 내 원칙은 정장에 악어 핸드백은 안 된다는 기본적인 것입니다.” 내가 볼 때 그것은 패션 애티튜드에 관한 문제다. 루이자 베까리아를 입든 동대문 옷을 입든 그녀는 항상 ‘김희애답게’ 그것을 소화했다. 시상식 드레스를 입을 때도, 시댁을 방문하는 단정한 의례복을 입을 때도, 심지어 거실에서 낡은 티셔츠에 ‘추리닝’을 입을 때도 매순간 그녀의 옷은 사실적이기 때문에 당당했다.
지난 번에도 나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녀는 집에서 낡고 구멍 난 추리닝을 입는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하이 포니테일 스타일로 머리를 묶고 ‘오! 예스’를 하던 때도, 무채색 학생복 코트를 입고 아들과 딸의 후남이를 연기할 때도 그랬다. 그 모든 건 ‘스타일링 센스’로 무장한 패셔니스타로서의 재능이라기보다 삶의 개연성에 충실한 배우로서의 표현력. 지난 달 '보그'가 연말 시상식을 취재한 ‘Spy’ 란을 보면, 경험 많은 영화 여배우들도 양 손을 모아 수줍은 포즈를 취한 채 시선은 카메라를 피한 반면 김희애는 자신만만하게 두 손은 허리를 짚고 모나리자 같은 미소로 비스듬히 카메라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것이 연기라면 너무 완벽한 연기다. 그런 면에서 심은하가 신비주의의 매혹을 체득한 여성이라면(그것이 성공을 이끌어낼지는 미지수 이지만...-_-;;) 김희애는 자연주의의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모델이다. '청춘의 덫'에서 심은하가 “당신 부숴버릴 거야”라고 했을 때 낯선 ‘전율’을 느꼈다면 “어떻게 나만큼 끔찍하겠어…어떻게 나만큼 참혹하겠어… 어떻게 나만큼 치 떨리겠어. 너는 내가 아닌데”라고 울부짖던 김희애의 대사는 내 안의 피를 끓이는 파열음이다.
나는 '완전한 사랑'의 김희애를 보며 고은 시인의 ‘사치’라는 시가 떠올랐다. ‘누님께서 더욱 아름다웠기 때문에 가을이 왔습니다… 마침내 제가 참을 수 없게 누님은 피를 쏟았습니다. …그때 저는 비로소 보았습니다. 누님의 깊은 부끄러움을….’
들리는 건 그녀의 웃음 소리뿐. 겨울 사과처럼 풋풋한 자연인 김희애.
“나만의 연기 방법이라면 그건 연기를… 연기하지 않는 거죠”라고 그녀는 말했었다. 하지만 ‘연기’라는 약속과 계산에 무엇보다 철저한 김수현 드라마에서 ‘연기를 연기하지 않기 위해’, 그녀 혼자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했을까.
그 자신, ‘김수현 사단의 일원이 되었다’는 대본을 잘 수행하는 명예로운 ‘각주’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 컴컴한 옷방에 들어가 매일을 수능 시험 치는 기분으로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고픈 기분으로. 인물과 관계와 감정과 행동이 세밀화처럼 기록된(탕수육 만들 때 소스 한 번 젓는것까지, 숨 쉬는 시간까지 모두), 이 경전처럼 완벽한 대본 앞에서.“빈틈 하나 없는 대사, 지문을 다 기억하는 것조차 벅차요. 하지만 그것을 내 안에 전부 입력시키고 나면… 비로소 여유가 생겨요.” 작가의 창조력과 연기의 창조력을 대등한 지위로 끌어올린 그녀에게 동료 배우들도 박수를 쳤다. 차인표는 ‘일 하기 전엔 김희애를 좋아했지만, 지금은 존경한다’고 했고, 김나운은 ‘그녀는 우리 또래 연기자 중 최고’라고 했다.
“작가에게 칭찬 많이 받았지요?”라고 내가 물었다. “제가 사실 부끄러움이 많아요. 그래서 쫑 파티 전까지 선생님과 한마디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요. 너무 좋아하고 존경해서 눈도 못 마주치는 그런 성격이죠.” 오죽하면 브레이크 타임에 화장실에서 마주쳤을 때 “희애 씨, 눈 좀 마주치자”라는 얘기까지 들었을까. 그녀의 대답은? “…선생님, 그럴 리가요.” 이것이 김희애의 흥미로운 모순이다. 그녀는 삶과 연기에 자신감에 넘쳐 있는 것 같으면서도 모든 사실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수줍어 한다. 그녀는 자신의 사진조차 모으지 않는다. “사진을 모으면서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는 건 좀 이해할 수가 없어요.
나는 누군가 날더러 ‘예뻐요!’ ‘패셔너블하군요!’ ‘똑똑해요!’라고 칭찬해도 그 말을 곧이 듣지 않거든요. 립 서비스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일도 잘 해내고 1등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반면 나는 아줌마고 별볼일 없고, 애가 둘이나 있고 여배우로서 여생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비관해요.
그래서 운동을 계속했나 봐요.” 얼마전 그녀는 동료 배우들과 진실 게임을 했다. “배우로서 내가 최고라고 느낀 적이 있나?’‘ '예스.’ 하지만 어느 순간 다른 배우들은 다 별처럼 빛나는데 나만 초라하게 느껴지죠. ‘목욕탕에서 내가 최고로 섹시하다고 느낀 적은?’ ‘예스’. 내가 목욕탕에 가는 시간은 주로 중년 아줌마들이 있는 시간이거든요. 그래서 ‘잘 늙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죠.
배우 몸은 악기인데, 늘 조율해서 언제라도 연주할 수 있도록 살자, 그렇게.” 김희애의 이미지가 ‘현명한 아줌마’에서 ‘제2의 커리어에 성공한 세련된 여성’으로 부각되면서 CF의 콘티도 점차 바뀌고 있다. “CF는 그전부터 많았어요. 싸게 부르기 때문에” 그녀가 웃었다. 하지만 제품의 기능을 위주로 하던 다소 ‘촌스럽던’ 컨셉이 사용자의 고품격 이미지를 앞세우는 것으로 선회하고 있다. “집안만 돌보다 보면 어느 순간 나가서 일이 하고 싶고, 일만 하다 보면 평화로운 가정이 부러운 법이지요.
나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지금 이 상태는 정말 좋습니다. 더 바랄 것이 없어요. CF 속에서도 난 근본적으로 부엌살림 하는 '아줌마’예요. 난 신비주의 싫어해요. 그건 자기 희생하에 자기 인생을 바치는겁니다.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 사는 데 더없이 만족해요. 누구나 행복한 인생을 즐길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실제로 누구나 김희애를 잘 알고 있다. 어떤 배우는 집 안에서도 선글라스를 낀 채 ‘여배우’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그녀를 어디서나 볼 수 있다. 헬스 클럽에서, 집 앞 슈퍼에서, 아이들의 생일 파티장에서, 강남의 삼겹살 집에서, 가전 제품 CF에서….
“영화라면, 나를 빛나게 해줄 천재를 하루 빨리 만나고 싶습니다. 나는 얼마 남지 않았어요. 나는 나보다 어리고 예쁜 여배우들에겐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만 하기에도 여배우로서의 시간이 부족합니다.” “어떤 감독과 일하고 싶은가요?” “머리가 좋고 신뢰가 가는 감독. 최근에 '봄날은 간다' 같은 영화가 참 좋더라구요. 그 감독 혹시 영화 안 만드나요? 혹시 뭐하고 계신지 알고 있나요?” 그러니 허진호 감독은 혹시 이 글을 읽는다면 ‘김희애’의 부름에 답해주시길.
희애는 언제나 ‘머리가 좋고 실력이 있는’ 프로들과 함께하기를 바랐다. ‘한국의 빌게이츠’라고 불리던 남편과 결혼한 이유도 ‘평생을 존경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녀의 남편인 이찬진은 일상에서는 아주 캐주얼한 전형적인 엔지니어로, 언제나 걱정을 사서 하는 김희애를 “걱정마. 누구나 다 그래”라고 다독인다. “전 연기 이외의 모든 것을 걱정하고 상의하죠.”
배우로서 김희애의 자신감의 바탕에는 이들 부부가 스스로를 평범하지만 재능 있는 프로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저는 20대에 할머니가 된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일하고 상처 받으면서 입을 다물고 마음의 벽을 쌓았어요.” 그 시절, 그녀는 우울증 치료까지 받았다. 결혼이 그녀를 더 강한 여성으로 탄생시켰다. 성장기의 유휴지에서 충분히 보호 받지 못했던 속 깊고 자존심 강했던 한 여성이, 마침내 ‘따뜻한’ 베이스캠프로 들어간 것이다.
“연약한 아기 살이 굳은살로 변하면서 세상살이 상처에 대한 내성도 생겼어요. 그런 삶이 연기의 토양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막 힐러리의 자서전도 읽기 시작했고 아이들에게 스파게티를 만들어주기 시작했고, 모로코로, 파리로 떠날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촬영이 늦어지자, 그녀는 피팅룸에서 전화를 걸었다. “생일 파티는 잘 됐나요? … 집으로 직접 데려다 주시겠다구요? 고맙습니다….” “걱정되나요?” “매일 집을 나설 때는 머릿속으로 생각합니다.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 아니면 하지를 말든가.” 인생의 순간순간에서 그녀처럼 현명하게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매순간 베스트인 것만 베스트로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희로애락’ 표정의 클로즈업을 촬영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검은 액체를 만드는 동안,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조용히 환희와 분노의 스펙트럼을 오갔다.
그리고 마침내 김희애의 눈밑에 까만 점을 찍는 순간, 그 아래로 따뜻하고 검은 강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그녀가 울고 있었다. 작년에 나는 ‘그녀의 인생에 카니발이 있었던가. 그녀는 흐르는 강물처럼 관습적인 인생을 살았다’라고 썼다. 그러나 폭풍이 지나간 지금, 오욕칠정을 중탕시켜 감정의 늪을 만든 적 없고, 그저 인생이라는 내 집 앞산에서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는… 김희애, 그 스스로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굽이치는 강물이 되어 흘렀다
에디터/김지수 출처 www.vogue.co,kr
첫댓글 와 첨봐요 감사감사. 이 에디터님도 희애느 팬이신듯 ㅎㅎㅎ
그쵸? ㅋㅋ 알고보니 보그 '15주년 여배우 특집' 그 기사 쓰신 에디터분과 같은 분이시더라구요. '그러니까 당신을 잊을 수가 없죠... '라고 맺음말을 쓰셨던 ㅎㅎ(동명이인은 아니겠죠? ㅠ ㅋ)
@스플리트 그 분 맞으세요^^
불러주신 감독이 없는거 보다는 뭔가 아다리(?)가 맞는 작품이 없지 않았을까요?ㅋㅋ제가 알기로는 거절한 작품도 있는걸루 아는뎅ㅠㅠ
맞아요 ㅎㅎㅎ 아다리ㅎㅎ ㅎㅎㅎ언니가 푹빠진 시나리오가 없으셨겠죠 ㅋㅋㅋㅋ 옛날자료 너무 반가워요♥♥ㅎㅎㅎ
옛날 자료라 올릴까 말까 하다 카페에서 보기 어려워 가져왔는데 좋아해주시니 좋습니다. ㅎㅎ 어떤 작품이든 언니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게 먼저겠지요. 그래서 여태껏 봐왔던 작품들이 우리 마음을 울렸던거 같습니다.
희애님의 에세이를 읽는것 같아요~ 정말 잘봤습니다.^^
네 좋은 기사 감사해요.
씨엡..싸게부르니까....ㅎㅎ 살짝 맘아플뻔하다가 진실되다.라는 생각이. 우리희애님 진짜 존경할만하고 본받을게 많아요. 예나지금이나 인터뷰들이 다 한결같아요~~ ♡♡
예전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광고모델료 특A급, A급 대우를 받으시는 분인데-.-여기에서 싸게 부른다는 말은 광고모델료가 정말 싼게 아니라 한때 인기 있다고 광고 모델료를 터무니없이 높여 부르지 않고 항상 그 수준을 유지한다는 그런 의미겠지요^^
@나은 항상 언니는 자만하지 않으시고 인텁마다 넘 겸손하게 말씀하시는 경향이 있으셔서...ㅋㅋ 저런 겸손한 태도와 신뢰감을 주는 모습이 데뷔때부터 지금까지 광고퀸으로 자리하시는이유인것 같아요~
언니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배운 점이 많아서 언니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