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deal with sorrow as your particular precious stuff. It is shared by all humanity. Deal with it not as your particular sorrow, your private quiet sorrow, but as the sorrow of all human beings, whether you are a man or a woman, rich or poor, sophisticated or at the height of your excellence.
슬픔을 자신만의 특별한 어떤 것으로 다루지 마세요. 모든 인간들이 다 슬픔 속에 있어요. 자신만의 특별한 슬픔으로, 개인적으로 은밀한 슬픔으로 다루지 마시고, 온 인류의 슬픔으로 다루시라 그 말입니다. 선생이 남자든지 여자든지, 부자거나 가난뱅이거나, 철학자거나 뛰어난 사람이건 간에 말이지요.
Please don't deal with all these factors like fear, pleasure, sorrow, love, and so on as something separate from each other. You must approach this whole thing wholly, not fragmentarily. If you approach it fragmentarily, you will never solve it.
두려움이나 쾌락, 슬픔, 사랑, 그런 것들이 서로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다루지 마세요. 마땅히 이 전부를 따로따로 떼어서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접근해야만 합니다. 따로 떼어서 접근한다면 절대로 풀어지지 않거든요.
So, look at greed, pain, sorrow, as a whole movement of life, not something different from life. This is our daily life. To find whether there is an end to all this - to misery, to conflict, pain, sorrow and fear - one must be able to perceive them, one must be able to be aware of them.
탐욕이나 고통, 슬픔 따위들을 삶과 다른 것으로 보지 말고, 삶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바라보세요. 그게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 아닙니까. 비참함이나 갈등, 고통, 슬픔, 두려움, 그런 모든 것들이 정말 끝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내려면요, 그것과 감응할 수 있어야, 그런 것들을 알아챌 수 있어야만 합니다.
We must understand what is perception, how to look. Is the observer who looks at all this - the poverty, the loneliness, the anxiety, the uncertainty, the suffering - different from all that or is the observer all that?
우리는 감응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보는지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이것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그 가난이나 외로움, 걱정, 불확실, 괴로움들과 다릅니까, 아니면 관찰자가 바로 그 모든 것입니까?
I will explain this. We have separated the `me', who is the observer, from that which he is observing. I say I am suffering and I say to myself that suffering must end, and to end it, I must suppress it, I must escape from it, I must follow a certain system.
이것을 좀 더 설명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관찰자인 '나를', 자신이 관찰하는 대상으로부터 분리시켜 놓았습니다. 나는 지금 고통스럽다고 얘기하고는 또 그 고통이 끝나야만 한다고 하면서요, 그것을 끝내기 위해서 억눌러버리거나, 도망을 가거나, 어떠한 체계를 따르곤 하거든요.
So, I am different from fear, from pleasure, from pain, sorrow. Are you different from all that? Or you may think that there is something in you which is totally different from all that. If you think that, it is part of your thought, and therefore there is nothing sacred there.
그러니 나는, 내가 두려움과 쾌락과 고통과 슬픔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런데 그게 다릅니까? 또 아니라면 이런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한다고 해도, 그게 바로 자기 생각의 일부분입니다. 그러니 생각 속에서 아무 것도 신성한 게 없습니다.
So, is the observer different from the observed? When you are angry, envious, brutal, violent, are you not all that? The meditator is the meditation.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관찰자가 관찰대상과 다릅니까?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시기심이 일어날 때, 야수적으로 돌변할 때, 폭력적으로 될 때, 그게 전부 자기 자신 아닙니까? 명상하는 사람이 바로 명상입니다.
Please sir, think about it. The observer is the observed. See the importance of this. Before, we have divided the observer from the observed. That means there is a division between that and the other. So, there was conflict. You could then control it, suppress it, fight it, but if you are that, if you are sorrow, if you are fear, if you are pleasure, you are the conglomeration of all this.
(아이고,) 제발 여러분, 이걸 좀 생각해보세요. 관찰자는 관찰대상입니다. 이것의 의미를 좀 이해하시란 말입니다. 여태까지 우리는 관찰대상으로부터 관찰자를 분리해 왔습니다. 그것과 이것 사이에 구분을 지어 왔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갈등으로 살아 왔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걸 제어하거나 억누르거나 맞붙어 싸우거나 해 왔던 것이지요. 그러나 자신이 바로 그것이라면, 자기 자신이 슬픔이고, 자기 자신이 두려움이며, 자기 자신이 쾌락이라면, 자기 자신은 그 모든 것들의 총화인 것입니다.
To realize that fact is a tremendous reality; therefore, there is no division, and therefore there is no conflict; the observer is the observed. Then a totally different action takes place, a totally different chemical action takes place.
이 사실을 실감하는 것은 몸서리쳐지는 진실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는 이제 구분이 없게 되는 거지요. 그러므로 해서 그 어떤 갈등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관찰자가 관찰대상이라는 것을 실감한다면 말입니다. (휴--,) 그러면 거기에는 완전히 다른 작용이, 완전히 다른 화학 작용이 일어난다 그 말입니다.
J. Krishnamurti Talks in Bombay 3rd Public Talk 29th January, 1983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봄베이 강연, 세번째 대중 강연, 1983년 1월 29일
[제발, 제발, 여러분, 이것 하나만이라도 좀 체득을 하십시오. 정말로 정말로 심각하게 말입니다. 그 무엇이, 한번도 느껴보지 못 한 거대한, 몸서리쳐지는, 온 몸의 피가 꺼꾸로 치솟는, 하여간에 그런 어마어마한 충격이 옵니다.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니까요! 이 사실 하나만 체득하시면 말입니다. 관찰자가 바로 관찰대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시면 말입니다. 여러분, 제발, 제발 좀, 조금만 더 절박하게 생각을 해 보십시오. 그러면 이제 완전히 다르게 사는 인생길을 걸어가실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고통스럽게가 아니라, 이제 그런 고통을 풀어가면서 사는 길이지요. 그게 '사랑'과 '자유'와 '지성' 아닙니까! 크리슈나무르티 할아버지가 오죽했으면, "화학적인 작용(chemical action)"이 일어난다고 그런 용어까지 쓰셨겠습니까! 꼭 좀 이해하세요. -- 벅수 김기호 올림]
그렇습니다. 이게 아주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상당히 절실하신 것 같은데도, 이게 잘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군요. 지금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게 뭡니까? 그게 바로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하는 압력입니다. 그 내욤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지요. 심야에 달린 댓글에 이 꼭두 새벽에.. 또 답글을 다네요. 불독사랑님, 찬찬히, 꾸준하게 가십시다.
첫댓글 알고보니 우리카페였네요. 그냥 The observer is the observed를 검색했다가 나온글인데...잘 읽고 갑니다.
요 부분만 카피해서 근무중에도 틈틈히 읽고 있습니다. 가장 절박한 핵심 같아서요...
그렇습니다. 이게 아주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상당히 절실하신 것 같은데도, 이게 잘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군요. 지금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게 뭡니까? 그게 바로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하는 압력입니다. 그 내욤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지요. 심야에 달린 댓글에 이 꼭두 새벽에.. 또 답글을 다네요. 불독사랑님, 찬찬히, 꾸준하게 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