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7월 31일 “오늘의 말씀 묵상 편지”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
“그는 그 수송아지를 회중의 성막 문으로 주 앞에 끌어 다가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주 앞에서 잡을 것이요,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취하여 회중의 성막에 가져와서 그때에 손가락을 그 피에 담그고 주 앞에서 곧 성소의 휘장 앞에서 그 피를 일곱 번 뿌릴 것이며 또 그 제사장은 그 피의 일부를 주 앞에 있는 곧 회중의 성막 안에 있는 제단 즉 분향단의 뿔들에 바르고 그 수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중의 성막 문에 있는 제단 곧 번제단 밑에 쏟을지니라.(레위기 4:4-7)
('He shall bring the bull to the door of the tabernacle of meeting before the LORD, lay his hand on the bull's head, and kill the bull before the LORD. 'Then the anointed priest shall take some of the bull's blood and bring it to the tabernacle of meeting. 'The priest shall dip his finger in the blood and sprinkle some of the blood seven times before the LORD, in front of the veil of the sanctuary. 'And the priest shall put some of the blood on the horns of the altar of sweet incense before the LORD, which is in the tabernacle of meeting; and he shall pour the remaining blood of the bull at the base of the altar of the burnt offering, which is at the door of the tabernacle of meeting.)”
임마누엘!!
하나님께 제사장들의 범죄를 속죄하기 위해 속죄제를 드릴 때의 과정을 본문에 구체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그냥 송아지를 잡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져야 할 과정을 본문에는 담고 있음에 그 의미를 깊이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흠 없는 어린 송아지를 속죄 제물로 선택하였으면 그 송아지에 안수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제사장의 모든 죄를 이 송아지에게 전수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이제 이 송아지는 흠 없는 송아지가 아니라 제사장의 죄를 담당한 송아지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대속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에 이 송아지가 흠이 있는 송아지이면 그 송아지의 허물로 죽임을 당하여야 마땅할 것이지만 이 송아지가 흠이 없는 송아지이기에 제사장의 죄를 담당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과 직접적인 연결이 됩니다.
만약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이 죄와 허물의 사람이라면 그 죄와 허물의 삯는 사망이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죄악은 멸망이라는 것을 그대로 입증할 뿐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허물과 죄가 전혀없습니다. 즉 성령으로 잉태하시어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죄를 친히 담당하실 수 있으십니다.
송아지를 주 앞에 잡아야 하는 것과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골고다 언덕 곧 해골의 골짜디에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온 유대인들의 참소와 조롱을 받으시며 처참한 모습으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대속의 현장은 숨겨진 곳이 아닙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공개된 현장이었습니다. 그 현장에는 참소자들, 로마의 병정들과, 이스라엘의 바리새인과 대제사장, 그리고 서기관들을 비롯한 종교 권력자 이 두 눈과 두 귀로 보고 듣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주 예수의 십자가 고통의 절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주 앞에서 흠 없는 송아지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본문은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취하여 회중의 성막에 가져와서 그때에 손가락을 그 피에 담그고 주 앞에서 곧 성소의 휘장 앞에서 그 피를 일곱 번 뿌릴 것이며”고 하셨습니다.
여기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아론과 같은 대제사장입니다. 대제사장은 1년에 한 번 유월절 때 성막이나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가서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속죄를 위하여 어린양의 피를 일곱 번 뿌리며 간구하는 것이 대제사장의 대표적인 사역이었습니다.
히브리어 'kahan(카한)'. ‘제사장의 직분으로 사역하다(minister in a priest's office)’, ‘제사장으로 활동하다(act as priest)를 의미합니다.
실제로 70인 역본의 대부분의 사본은 “제사장(priest)”이라는 최소한, 이 네 구절만이 코헨(kohen)이 각기 다른 직위를 언급한다는 것을 시사한다는 점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구약성경의 그 밖의 구절에서 코헨(kohen)은 거룩한 일, 특별히 희생제물을 담당하는 성직자라는 보다 더 제한적인 개념을 반영합니다. 성경에서 최초의 제사장으로 불리우는 이드로와 멜기세덱의 기능을 참조하면 좋겠습니다.(창 14:18; 출 18:12; 이와는 대조적으로 부정적인 비평은 보통 제사장의 기원을 신탁의 전달과 관련시키고 있습니다.
처음에 인간은 자신이 제사장으로서 제물을 드렸으나(창 4:3; 욥 1:5), 그러나 일찍이 노아 시대에서 제사장의 직무는 족장 가게의 우두머리의 책임이 되었습니다(창 8:20; 참조: 창 12:8; 욥 1:5; 출 19:22; 출 19:24)
어떤 의미로, 모든 이스라엘은 주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출 19:6; 참조: 호 4:6. 그들이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지”[키헨<kihen>] 못하는 것에 대하여). 그러나 시내 산에서 하나님은 합법적으로, 레위 지파이며 모세 가계의 모세 형 아론에게 제사장직을 제한하였습니다(출 28:1; 출 40:12-15; 민 16:17; 민 17:8)
진실로 효과 있는 제사장직은 주님에 의하여 세워졌을 때만이 존재할 수 있는데(민 18:7, 케훈나[kehunna]), 그 이유는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 혹은 그의 공적인 대표자만이 죄를 도말할 수 있는 속죄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시 65:3; 출 29:36
아론이 신적 속죄와 화해를 수행하기 위하여 나타났을 때 하나님 앞에 열 두 부족(의 이름들)을 가져가기 위하여(38절) 아론은 열 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옷을 입었습니다(출 28:12; 출 28:21; 출 28:29). 그는 금 송아지 사건에서 실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그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출 32:4; 출 32:21).
구약성경의 제사장들은 그리스도의 전형이며(히 8:1), 그리스도는 궁극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구속하는 임무를 완수하였습니다(히 2:17). “예언”은 미래에 레위인이 재등장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렘 33:18; 슥 12:13; 겔 40:46 이하); 그리고 신약성경 시대의 교회는 신자들의 만인 제사장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벧전 2:5; 계 5:10; 렘 31:34)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이 우복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