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5월 30일 서울에서 태어난 최희준은 트로트가 주류이던 1960년대에 미국 팝에 영향을 받은 이른바 스탠더드 팝 분야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가수였습니다.
미 8군 쇼 단에서 노래하던 그는 1960년 국내 일반무대에 진출해 가요계의 새로운 흐름을 대변하게 되는데, 트로트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노래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가 그의 데뷔 곡이었습니다. 미국의 재즈음악 요소가 강했던 세련된 그의 스탠더드 팝은 가요 팬들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뉴 뮤직이었고 새 음악을 갈망하던 사람들 사이에 급속히 퍼져나가게 됩니다.
이로부터 가요는 이전의 대세였던 트로트와 미 8군 출신의 재즈계열 가수들이 경쟁과 호혜의 평행선을 그으며 두 축을 이루게 됩니다.
후자인 스탠더드 팝 쪽에서 여자가수 최고는 패티 김이었고, 남자가수의 톱이 바로 최희준이었습니다.
최희준의 히트곡 ‘내 고향 팔도강산’이 KBS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로 각광받았고 역시 MBC 라디오의 역사드라마 ‘광복20년’의 테마송 역시 그가 불러 히트한 노래들입니다.
1965년 TBC 방송가요대상을 수상하면서 그는 방송과 극장 모두를 석권하는 한국 최고가수로 입지를 확고히 굳히게됩니다.
손석우 작곡의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 ‘사랑의 목장’, 김호길이 쓴 ‘진고개 신사’, ‘하숙생’, 색소폰을 들고 지방에서 혈혈단신 상경한 이봉조가 작곡한 ‘맨발의 청춘’, ‘나는 곰이다’, ‘종점’, ‘팔도강산’ 등으로 일세를 풍미하면서 197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15년 가까이 슈퍼스타로 군림을 하게 됩니다.
서울 법대를 졸업한 그는 또한 1962년 이후 가요계의 특징으로 꼽히는 학사가수의 출현을 대변했으며 유주용, 박형준, 위키리 그리고 나중에 등장한 조영남은 당시 모두 대학출신 엘리트들이었다고 합니다.
처절한 맛의 스탠더드 발라드 외에도 최희준은 ‘우리 애인은 올드 미스’와 같은 스윙 리듬의 곡도 포괄하는 발군의 소화력을 과시하게 되는데 남진은 최희준의 노래에서 가요의 매력을 알기 시작했다고 밝혔으며 조용필은 1981년 ‘길 잃은 철새’를 리메이크했고 까마득한 후배 가수 이승환도 1991년 최희준 오리지널 ‘하숙생’을 불러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습니다.
최희준은 1970년대에 가곡인 ‘가고파’를 불러 ‘선구자’를 부른 조영남과 함께 가곡과 대중가요의 벽을 좁히는데 기여하기도 하였습니다.
1974년 ‘길’ 이후 노래 활동 외에 사업가로도 성공했고 1995년에는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의정활동으로 가수 지위향상에 힘썼던 최희준은 이 후 문예진흥원 상임감사, 대중음악연구소 소장을 지낸 뒤 가수 활동을 재개한 원로 가수로, 이미자 윤복희 2012년 은퇴를 선언한 패티 김과 더불어 가수활동 50년을 넘긴 대한민국 최고 원로가수 중 한 명입니다.
길 / 최희준
세월 따라 걸어온 길 멀지는 않았어도
돌아보니 자욱마다 사연도 많았다오
진달래 피던 길에 첫사랑 불태웠고
지난여름 그 사랑에 궂은비 내렸다오
종달새 노래 따라 한세월 흘러가고
뭉게구름 쳐다보며 한 시절 보냈다오
잃어버린 지난 세월 그래도 후회는 없다
겨울로 갈 저 길에는 흰 눈이 내리겠지
첫댓글 하루가 어떻게 지난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찌나 웃었는지 암튼 모두에게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