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불행한 것은 아니다
심 현 섭
한 여름 메말랐던 대지에 비가 내린다. 숲 속에 나무들은 너무 좋아서 가만히 서 서 춤을 추고 있는 듯 하다. 우산을 받고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숲길을 걸으니 오만 것들이 모두 환희(歡喜)작약(雀躍)하며 나와 함께 하나로 기쁨이 되었다. 냇물은 그동안 밀린 이야기들을 나누며 재잘대며 흘러가고, 굵은 빗방울에 얻어맞은 어린잎은 살랑살랑 도리질을 하며 눈웃음을 친다.
빗살처럼 내리는 비 사이로 싱그러운 바람이 휘돌아 지나가고 산마루에 걸린 구름이 산을 넘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물이다. 물이 있어야 사는 세상에 은혜롭게 자신을 내던져 사랑을 베풀고 온갖 것들을 기쁘게 한다. 그 속에서 나 또한 기쁨을 맛보고 서있다.
예로부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돈을 좋아한다. 돈은 우리가 바라는 많은 것들을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설움이 많아지고, 가난 속에 갖고 싶은 것도 못 갖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으며,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가 없게 된다. 더구나 뜻 있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돈으로 남을 돕고 싶을 때 도울 수 없는 아픔과 한을 깊게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모두가 좋아하는 만큼 돈은 고루 공평하게 소유되지를 못한다. 그리하여 부자와 빈자가 생기게 마련인데 언제든지 부자의 숫자는 적고 빈자, 가난한 사람들의 수는 많게 마련이다. 돈은 힘있는 강한 자를 좋아해서 가만히 있어도 강자와 함께 하기를 즐긴다. 약한 자는 아무리 돈을 찾아 헤메어도 땀만을 흘릴 뿐 돈이 가까이 하기를 꺼린다. '돈이 사람을 쫓아야지 사람이 돈을 쫓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 이래서 생긴 듯 하다.
돈 있는 사람들은 부자가 된 원인을 자신 속에서 찾으려 하고 돈 없는 사람들은 가난한 이유를 자신 밖에서 찾으려 한다.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부자들의 풍요로움만을 부러워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언제 나는 저런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면서 한 세상을 살아보나 하고 바라만 보고 있다. 그러다가 조그만 부자가 되면 더 큰 부자를 바라보면서 또 부러워한다. 내가 가진 돈은 큰 부자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라고 비하하면서.
돈이 많은 것은 좋은 일이다. 돈이 적어 궁핍한 것은 결코 바랄 바가 못되는 일이다. 그러나 세상살이에서 한가지 분명한 것은 돈이 많은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것도 적은 사람들이 훨씬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모두 부자만을 부러워하면서 불만족스럽고 한탄스러운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옳은 길인가 자문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현대의 살아있는 성자라는 달라이라마는 "인생의 진정한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행복에 있다. 당신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은 성공한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행복의 추구는 현대인의 화두가 되었다. 누구나 불행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행복을 희생하면서 삶을 던져 투혼을 바칠 일이 없다는 뜻이다. 행복을 가로막는 어떤 장벽도 받아들일 수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 부자냐 빈자냐, 명예로우냐 아니냐, 권력을 갖고 있냐 그렇지 못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행복하냐, 아니냐」의 문제에 달렸다는 뜻이다.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집과 돈과 이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이미 행복하다면 그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벵갈의 성자 라마크리슈나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행복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가졌으면 하고 바라는 것과의 간격사이에서 느끼는 감정일 수도 있다. 일생을 항상 더 갖기를 원하면서 불만족하게 살아가는 사람과 작으면 작은 대로 자족하면서 그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선택은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삶은 생각보다 훨씬 더 공평하지 않다. 생각해 보면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 부지기수(不知其數)이다. 그러나 모든 세상사람들의 삶이 한결같이 똑같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하면 불공평에 대한 불만을 삭힐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없다면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을 향유하고 느낄 수 없다면 행복은 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느껴주고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때만이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행복을 찾아 헤매는 것은 마치 무지개를 캐겠다고 도끼를 들고 떠나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조용히 있는 기쁨을 찾아, 즉 향유할 수 있는 기쁨을 찾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첫 번째 조건이다.
에픽테투스는 "없는 것을 슬퍼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을 기뻐하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물질적인 면만을 생각한다면 오늘날의 서민은 옛날의 제왕보다도 풍요롭다.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을 불행하게 보지말고 일상 속에 작은 기쁨들을 찾아내어 그들과 함께 행복을 느껴봄으로써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뭇 잎 하나 하나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분명 행복하다. 갖고 싶은 것에만 매달리지 아니하고, 이미 갖고 있는 또 다른 많은 것들을 소중히 하는 사람은 더욱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