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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4개국과 러시아 문학기행
2007년 8월 1일 수요일~8월 12일 일요일 10박 12일
여행 국가: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러시아
2007년 8월 1일 수요일 인천공항, 독일 프랑크푸르트, 핀란드 헬싱키
* 인천공항 출발
북유럽 4개국,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그리고 러시아 여행은 상당히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와는 다른 환경의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자연경관도 빼어나고, 뜻깊은 역사적 건물이 많아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된다. 오늘 나는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5개국에 대하여 공부하고 준비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 고독이라고 정의한 키에르케고르가 덴마크 사람이라는 것에 대하여 알았을 때 학창시절, 뜨거운 감성으로 만났던 철학자의 고향에 감에 기뻤다.
또한 노르웨이 입센의 〈인형의 집〉, 덴마크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등도 훌륭한 문학체험이다. 즐겁게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8시 30분에 콜택시를 불러 공항에 갔다. 오후 1시 25분 대한 항공 비행기다.
집에서는 비가 왔는데 인천공항은 맑다.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다시 핀란드 헬싱키로 간다. 비행기는 정시에 이륙했다.
* 청명한 지구의 상층
비구름층을 뚫고 창공에 오르자 하늘은 청명하다. 지구의 상층은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으로 오염되지 않은 원시의 풍경이다. 비행기 날개가 용감한 자태다.
인간을 위한 지구는 병들지 않기 위해 청명한 상층을 지키고 있다. 기가 막힌 푸른 두뇌, 푸른 감성이다.
* 기내 중식
한국 승무원과 일본 승무원이 쥬스를 날라 준다. 파인애플 쥬스를 먹었다. 식사는 쇠고기 볶음, 감자 고로케와 보리빵, 야채, 그리고 토마토 쥬스까지 완벽한 중식이다. 레드 와인과 녹차도 마셨다.
기내식이 그리우면 비행기를 타자던 내 님의 말이 떠오른다. 그대는 지금 맛있게 먹고 있다. 나는 큰 아들과 함께 먹고 있다. 우리 가족 셋이 떠나는 여행이다. 작은 아들은 미국 학회에 참석하여 오지 못했다.
참가 좌석이 2개라서 나와 아들이 앉고 통로 건너 좌석에 남편이 앉았다. 12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원거리 비행이라서 충실한 식단이다. 늘 그랬듯이 오늘의 기내 중식도 여행 중 만나는 큰 환희다.
* 구름 절벽 그리고 구름 바다
요즘 왜 비가 많이 오는지를 알게 하는 구름 절벽을 본다. 비행기를 그렇게 많이 탔어도 이토록 많은 구름 영상은 만나기 어려운 대목이다.
하얀 구름 덩이가 비행기 날개 위까지 솟구치고, 뭉실뭉실 거대한 절벽을 이룬다. 꽃송이라 하기엔 너무나 광대하여 나는 너를 구름 절벽이라고 부른다.
너는 녹아서 비가 되고, 겨울에는 눈이 되겠지. 길고 긴 7월의 장마가 너로 인해서 왔음을 본다. 끝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지상도 구름바다, 천상도 구름바다다.
* 천년학 영화
의자 모니터 TV에서 천년학 영화를 보았다. 주인공 오정해의 이름이 송화(Song-Hwa), 나의 필명과 같아서 더욱 정겹다. 창 밖의 구름바다에 생의 애환을 창으로 절규하는 소리꾼의 목청이 서리서리 깔린다. 생의 평화다. 생의 환희다.
주인공 오정해, 조재현, 무대는 구례, 광양, 제주다. 소리를 위해 눈을 멀게 한 송화가 피를 토하듯 삶의 소리를 토해낸다. 이복남매의 사랑도 애틋하다.
〔천년학 / 松花 김윤자〕
내가 그대의
천년학이 되면 아니 되겠소
천 마리 학을 접어야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내가 천마리 학이 되어
그대에게 날아가면 아니 되겠소
나를 녹이고
나를 버리고
내가 낮아져서
내가 깨어져서
그대 가슴을 적시거든
눈물고운 사랑
청청한 사랑
우리 하나 되면 아니 되겠소
2007년 8월 1일 수요일 한국시간 17시 40분
대한항공 기내 영화 ‘천년학’을 보며 쓴 시
* 8월의 시베리아 툰드라
겨울을 벗었구나. 그 무겁던 침묵도 깨고 곱게 눈 떴구나. 하얀 솜털 구름 간간이 이고 지구를 푸르게 물들이는구나.
동토에서 짜낸 물이 강이 되고, 호수가 되니, 거기 그곳에 여전히 흐르며 상공에서 오가는 지구인에게 8월의 평화를 읊조리는구나.
그래, 우리는 가까워진 하나다. 꽁꽁 얼었던 빙벽이 녹았으니 누가 너를 동토라 하겠으며, 너를 품는 내가 어찌 이방인이겠는가. 하나되는 경이로구나.
* 대륙의 비행기 길
시베리아 상공을 나는 비행기는 대륙의 비행기 길을 타고 다닌다. 기가 막힌 길이 있어 이탈하지 않고, 평온하게 날고 있다. 유러을 갈 때면 언제나 지나가는 이 길이다.
가도 가도 끝없는, 시베리아 평원을 지치지도 않고 쉼없이 잘 날아간다. 가슴이 시원하다. 지구를 한 장면에 드러내 놓고 대륙의 동쪽, 내 나라 대한민국에서 대륙의 서쪽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날고 있다.
또 나는 독일에서 다시 핀란드로 환승하여 날아갈 것이다. 내게 있어 대륙의 비행기 길은 아름다운 삶의 여정이다.
* 카스피해 섬
기내 간식으로 나는 삼각 김밥을 먹고, 아들은 피자빵을 먹고, 쥬스와 새우깡, 유럽의 와인은 꼭 먹는 나의 습관으로 레드 와인까지, 즐거운 간식 타임이다. 그래서 상공의 여정은 더욱 달콤하고 행복하다.
기내 석식을 한국시간으로 오후 10시, 독일 시간으로 오후 3시에 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2시간, 11시간 40분 소요되는 비행거리를 참으로 많이도 달려 왔다.
중식도 맛있고, 석식으로 나온 닭고기 요리도 맛있고, 이제 곧 비행기와 이별을 고하려는데 창 밖에 뜨거운 섬 하나 쪽빛 바다를 이곤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아기 같은 섬, 천사 같은 섬, 카스피해 푸른 융단 물결 위에 홀로이 떠 있다. 신이 내려놓은 고운 땅, 바다 위 대륙이다. 누가 살까. 길도 있고, 밭도 있고, 울창한 나무들도 한 가득이다. 정녕 저곳에는 고운 사람들이 살리라.
* 독일령의 울창한 숲
여전히 푸른 나무 바다다. 짙푸른 나무, 산이 아니고 평원에 나무 천지다. 독일의 풍성함, 그 상징이다. 나무 숲 물결만 보고도 독일령에 들어섰음을 금새 안다.
울창한 산 사이로 뽀얗게 난 고속도로도 보이고, 사이 사이 농지를 일궈 놓은 황토빛 밭자락도 보인다. 초록빛 농작물을 가꾼 들녘도 보인다. 반듯반듯한 농토다.
산이 없는 유럽, 독일령의 상공에서도 산은 없다. 끝없는 숲, 울창한 숲이 하도 뭉치어 검푸른 군락이다. 강인한 힘이 서린 독일의 위상이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
현지 시간 오후 5시 30분, 정시에 도착했다. 1-D 청사에 도착해서 기차를 타고 A 청사로 옮겼다. 나무 바다 물결이 장엄한 공항은 세계에서 두 번째 큰 공항이다. 올 때마다 느끼는 비경이다.
미로를 찾듯이 걷고 또 걷는다. 서점에서 책도 보고, 자동차 홍보용 전시물도 보고, 핀란드 행 환승을 위해 공항 내의 상가를 돌며 기다렸다.
끝없는 상가, 끝없는 내부의 길은 외경 못지 않은 장엄함이다. 12유로 주고 아들 T셔츠를 샀다. 질도 좋고, 독일 마크도 좋다. 면세 상가도 많다. 여러 가지로 풍성한 공항은 오래도록 머물러도 행복하다.
* 프랑크푸르트에서 핀란드행 탑승
A40까지 길고 긴 벨트 길을 따라 탑승 게이트에 이르렀다. 오후 8시인데도 태양은 화사하다. 밤 9시가 되어서야 어스름 석양이 드리운다. 일교차가 크다. 추워서 쟈켓을 꺼내 입고 비행기에 올랐다.
창 밖은 점점 어두워지고,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곳곳에 불을 켜고 있다. 22시 핀란드행 루프트한자 독일 항공의 26D, E, F 좌석에 우리 가족이 앉았다.
핀란드까지는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점점 북쪽 나라로 간다는 것에 대하여 신비롭다. 한국 시간으로는 지금 새벽 5시, 8월 1일의 밤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보낸 것이다.
한국 시간은 어제인데 여기는 8월 1일이 오늘이다. 밤이 없이 집 떠난지 21시간을 버티고 있다. 핀란드까지는 꼬박 하루다. 그래도 미지의 땅에 대한 동경은 몸과 마음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 핀란드 헬싱키 가는 길
어둠 가득 드리운 하늘에 달이 떴다. 그런데 정녕 저것이 달인가. 붉다. 해는 아니겠고, 북극의 태양빛은 달을 빨갛게 물들여 놓고 떠났다.
독일 시가지 불빛이 점점 멀어지고 비행기는 점점 핀란드로 날아가고 있다. 한잠 자고 일어나니 달은 유리쪽처럼 더 밝아졌다. 붉은 기운도 아까보다 사라졌는데 창공의 청명한 공간에서 아낌없이 빛을 발하고 있다. 달은 지금 나의 눈높이에서 빛난다.
밤 11시, 기내 식사가 나왔다. 만두 모양 볶음인데 짜다. 나는 북국의 짠맛을 본다고 아들에게 말했더니 아들이 빙그레 웃는다.
비행기는 발트해에 들어섰다. 아래로 바다가 보인다. 달은 창공에서 빛나고, 바다는 지상에서 빛난다. 구름 사이 어선으로 보이는 불빛이 영롱하다.
왼편 창문으로는 석양이 아직 드리워있고, 나의 창가 오른쪽으로는 달이 뜨고 기막힌 절경이다. 북극의 백야다. 헬싱키 가는 길은 그렇게 부드러운 밤이었다.
* 핀란드 헬싱키 공항 도착
발트해 끝에서 헬싱키를 만났다. 불빛 도시가 장관이다. 달은 여전히 빛나고 헬싱키는 불빛으로 빛난다. 그리 화려한 불빛은 아니지만 긴 도로의 가로등과 애잔한 야경이 사랑스럽다.
이제 헬싱키에 착륙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독일보다 1시간 빠르다. 현지 시간 새벽 1시 40분이다. 깊은 밤에 우리 일행을 마중 나온 가이드를 만났고 호텔로 가는 버스 안에서 북유럽 여행에 대한 안내와 주의사항을 들었다.
핀란드는 한국보다 6시간 늦다. 원래는 7시간인데 썸머타임 시간이어서 그렇다. 다음에 가야 하는 스웨덴은 또 1시간 더 늦다. 호텔까지는 20분이 소요된다. 집 떠난지 하루만에 방에 들어간다. 24시간을 하늘에서, 공항에서 보낸 첫 날의 여정이다. 그래도 피곤하다는 생각보다는 먼 나라에 왔다는 행복감이 더 크다.
호텔 물을 먹어도 되는데 사먹는 것이 안전하다고 한다. 노르웨이는 예외란다. 물을 그냥 먹어도 된단다. 여기 호텔에는 물이 없다. 식당에서도 물 달라하면 수돗물 받아준다. 그러니 어느 곳에서든 수돗물을 받아 먹는 것이 낫다.
호텔 키로 엘리베이터 입구를 눌러야 내려온다. 외부인에 대한 경계다. 내일 실야라인 호화유람선 승선한다. 수하물을 부치고 타므로 간단한 짐과 옷은 따로 챙겨야 한다. 배는 17시간 탄다.
태국 27개국끼리는 내리는 공항에서는 검색 안 한다. 자국 개념이다. 노르웨이 산 길은 길어 멀미하는 자는 앞에 앉으라 한다. 북유럽은 하나투어에서 여름 2회 오면 끝이란다. 7월 1회, 8월 1회 그것이 북유럽 여행의 전부다. 그만큼 기후조건과 원거리로 힘든 여행코스다. 핀란드는 EU국가이며 유로화 쓴다.
다니는 지역이 워낙 광범위해서 날씨는 귀신도 모른다. 원래 유럽의 날씨가 그렇다. 낮에는 따갑고 구름끼면 춥다. 북유럽은 모두 에어콘이 없다. 잠깐 문 열어 공기 빼고 바로 닫고 자야 한다. 열고 자면 이곳 기온으로는 감기 걸린다.
유럽 버스는 차 안에서 음식 먹으면 걸린다. 물 이외의 그 어느 것도 불가다. 지나가는 옆차가 고발하면 버스기사가 걸려 면허취소된다.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북유럽의 경치를, 나는 먹을 것이다. 첫발을 디딘 핀란드의 밤은 황홀한 경이다.
* 핀란드 호텔 투숙
새벽 2시에 호텔에 들어왔다. 어둠 속의 호텔은 아담하다. 2층 37호실, 2037 룸이다. 창 밖은 시린 빛으로 큰 키의 나무들을 물들인다. 극지방의 밤은 짧다. 이제 곧 여명을 맞으리라.
오늘 모닝콜은 7시다. 7시 30분부터 식시하고 9시에 호텔을 출발한다. 바쁜 일정이지만 언제나처럼 이국의 밤은 아름답다.
2007년 8월 2일 목요일 핀란드 헬싱키, 발트해 크루즈 실야라인, 스웨덴 도착
* 헬싱키 호수변 호텔
어젯밤 4시에 자고 아침 7시에 일어났다. 창 밖을 보니 울창한 나무 사이로 호수가 보인다. 호텔 뷔페 조식 후 호수에 갔다. 조금은 쌀쌀한 가을 날씨 정도다. 뜨락은 파랗고, 하얀 수국꽃도 피고, 우리나라와 비슷한 풍경이다. 신기하다.
아주 북쪽 나라에 왔는데 수박, 딸기, 오이, 토마토, 오렌지 등 한국과 동일한 과일이 식단에 오른다. 핀란드인의 일상은 소련인과 비슷하여 코가 뾰족하며 오똑하다. 소련 인접국으로 인해서 그런가 보다. 식당에서, 거리에서 만나는 것들 모두가 큰 호기심으로 다가온다.
호수에 나가 배와 물 속에 한 군락을 이루고 사는 부들을 보았다. 호숫가 길을 따라 산책 나온 큰 개와 핀란드 여인도 만났다. 호수의 나라라더니 드넓은 바다 같은 호수다.
호수에서 본 호텔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호수를 품고, 나무를 품고, 잔디 위에 아늑히 앉아 있다. 나는 지난 밤 호수의 요정처럼 저 고운 호텔에서 잠을 잔 것이다.
* 산타 할아버지의 나라
어린이들이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면 모두 핀란드로 온다. 실제로 헬싱키에서 15km 위쪽으로 가면 산타 할아버지 마을이 있다. 순록을 타고 빨간 옷을 입고 눈의 나라를 달려오는 산타가 바로 이 나라에 산다고 하니 나의 가슴은 동심에 젖는다.
30년전쯤 우체국 한 직원이 어린이들에게 산타처럼 답장을 쓴 것이 핀란드가 바로 산타클로스의 나라가 된 것이다. 1961년부터 이것이 체신부의 정식업무로 지정되었다 하니 세계 어린이를 위해 고운 꿈을 선사하는 향기로운 나라다.
내 아이들이 받았던 크리스마스 선물도 이곳에서 왔으리라. 그 선물을 받고 자란 두 아들이 벌써 성년이 되고 큰 아들은 지금 함께 왔으니 핀란드에 온 나도, 아들도 그날의 회상으로 행복하다.
* 핀란드의 날씨
최북쪽 나라다. 겨울에는 남쪽이 영하 25도~영하 30도, 북쪽은 영하 35도~영하 40도다. 상상할 수 없는 혹독한 날씨다. 해는 9시 30분에 떠서 오후 3시에 지고, 북쪽의 겨울은 해가 안 뜨는 날이 50일이나 된다.
여름과 겨울의 차이가 심하고, 밤과 낮의 차이도 심하다. 요즈음같은 여름에는 하루에 한 차례씩 비가 오는데 오늘은 양호한 날씨다. 여름은 약 72일간이며 새벽 3시에 일출이고 오후 11시에 일몰이다.
실제로 지난 밤 백야현상을 보았다. 새벽 3시경 잠들 때 여명의 시린 빛이 창문에 서리고, 나는 북극의 품에서 낭만을 꿈꾸다 일어났다. 생의 한 도막에서 잠시 느끼는 환희지만, 이곳 사람들은 힘든 기후다.
핀란드 교민 13년 차인 조수진 가이드는 살기 어려운 나라라고 표현한다. 그래도 짧은 여름이지만 울창한 나무와 푸른 들녘이 아름답다.
* 핀란드의 역사
러시아와 스웨덴으로부터 500년 지배당한 나라다. 100여년간 지배하던 러시아가 헬싱키를 수도로 지정했다.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한 것도 100년이 안 된다.
슬픈 역사다. 이 고요한 북극나라에도 침범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에 대하여, 내 조국의 일본과 중국에 당한 역사처럼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고 있다. 항상 적은 경계선에 도사리고 있음도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한반도의 1.5배 크기의 나라인데 인구는 515만 명으로 10배나 적다. 곳곳에 텅 비어 구멍 뚫린 땅이라는 생각이 뇌리에 스친다. 한국은 1평에 475명이 살고 핀란드는 1평에 17명이 산다.
헬싱키는 최남단 바닷가 도시다. 이곳에 50만명의 인구가 모여 산다. 그래서일까. 화려하고, 복잡하고, 모든 것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이제는 당당히 독립하였으니 이곳에도 평화가 있다.
* 핀란드의 교육 제도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무료교육이다. 공부만 잘 하면 박사 과정까지도 무료다.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대학 4년의 학제는 한국과 동일하다.
학교에서 도시락을 다 제공해 주며, 자녀 수당은 17세까지 주는데 자녀가 1명이면 12만원, 2명이면 15만원, 3명이면 17만원이다. 학생 수당으로 월 30만원씩 별도 지급한다. 실업자 수당이 70만원인 것에 비하면 큰 돈이다.
출산율 저조로 출산 휴가를 1년 준다. 아빠에게도 1개월 준다. 18세까지는 병원도 무료다. 그래도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한다.
여름방학은 6월에서 8월 중순까지고, 겨울 방학은 크리스마스 무렵에 4주 준다. 긴 겨울에 방학이 짧은 것이 의아하다. 나라마다 다른 교육제도에 대하여 안다는 것도 여행의 큰 소득이다.
* 핀란드의 언어
공식언어가 두 개다. 94%가 핀란드어, 6%가 스웨덴어다. 그래서 가게의 상호 표기를 두 줄로 하는데 위는 핀란드어, 아래는 스웨덴어로 표기한다.
문법은 우리나라 언어와 동일한데 언어 음절에 변화가 심하여 어렵다. 핀란드어는 음절 하나 하나 모두 발음해야 하기 때문이다.
휜족이 사는 나라다. 그래서 핀란드를 ‘수오미’ 라고 이곳에서는 부른다. 언어도 영어와 비슷한데 알파벳에 따른 발음은 전혀 다르다. 핀란드의 아침인사 한 마디 배웠다. ‘후오멘따’, 우린 여러번 반복하여 외치며 핀란드의 언어에 대한 한 단면을 맛보았다.
* 호수의 나라 핀란드
바다에 접한 나라에 호수가 20만개, 섬이 20만개란다. 국토의 90%는 6만개의 호수와 하천으로 되어있다. 핀란드의 공식 명칭도 ‘늪과 호수의 땅’ 이란 뜻으로 ‘수오미 공화국’ 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뿌리 부분에 자리한 땅의 70%는 삼림 지대다. 호수를 뺀 육지에는 침엽수림이 우거져 시적인 정경을 자아낸다.
물이 많아서일까. 사우나의 나라다. 여름 별장을 섬에 사 놓고 사우나를 즐기기도 하며 집집마다 사우나장이 있단다. 호텔에서 눈 떴을 때 보인 것이 호수이며, 버스를 타고 헬싱키 도심을 달리면서도 거대한 바다같은 호수를 만났다.
발트해의 염도가 낮아 겨울에는 얼어서 배가 못 다니고 그 위를 사람과 자동차가 다닌다. 눈이 많이 내리고, 얼음이다가, 물이 되어 호수를 만드는 먼먼 북쪽 나라의 신기한 이야기다.
* 해변의 마켓 광장
발트해 바다가 보이는 곳의 야시장이다. 광장에는 높은 첨탑이 있고, 포장을 친 작은 상가들이 즐비하다. 기념품과 의류, 과일, 채소 등 다양한 물건이 푸짐하다.
딸기, 복분자, 감자, 버섯, 완두콩 등 한국과 비슷한 시장 풍경이다. 자일리톨 껌이 이곳 핀란드의 치과 의사가 만든 것이란다. 100%와 40% 자일리톨 껌이 있는데 이 나라 특산물이다.
10시 30분에 이곳 해변 부두에서 배를 타고 섬의 유적지에 간다. 자유시간 동안 각자 흩어져 돌아보았다. 나도 모자와 T셔츠를 가족의 기념품으로 샀다.
주변에는 잘 발달된 상가와 교회 건물 등 헬싱키의 화사한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깊숙히 들어온 바다의 낭만 또한 아침 햇살과 함께 장관이다. 크고 작은 배들이 한가득 해안에 정박하여 바다 내음을 물씬 풍긴다.
해변의 마켓 광장은 그렇게 정겨워서 오래도록 기억되리라.
*핀란드 요새 수오멘린나 섬 가는 배
헬싱키 마켓 광장 부두에서 배를 타고 20분 동안 갔다. 이 섬은 6개로 군락을 이루며 850명이 거주한다. 전에는 1만 2천명이 거주했는데 지금은 한산한 유적지다.
배를 타고 갈 때는 오후에 스웨덴으로 타고 갈 실야라인 호화 여객선도 보고, 주변의 바다 풍경으로 감성에 젖었는데 섬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나니 차가운 기운이 소슬하게 파고 든다. 어찌보면 이방인에게는 유람선으로 보일 지 모르나, 분명 이 배는 요새였던 섬의 실상을 세계인에게 알리기 위해 오가는 무거운 사명의 배다.
* 핀란드 요새 수오멘린나 섬
핀란드인에게는 아픈 고리가 서리서리 얽힌 곳이다. 1200년대부터 스웨덴이 침공하여 이곳에 화강암 성벽을 쌓고 요새로 진을 쳤고, 당시 1809년부터는 러시아가 침공하여 전쟁물품과 무기를 보관했던 곳으로 아직도 곳곳에는 큰 대포가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구릉진 언덕마다 화약 저장고로 어마어마하다. 오픈된 곳이 있어 긴 지하 화약고였던 방과 통로를 걸어 나왔다. 그런 지하 무기 창고가 수없이 많다는 사실이다.
스웨덴이 먼저 점령하여 죄수들을 동원해 6km에 해당하는 화강암 성벽을 쌓았는데 러시아의 침공으로 후일에는 러시아의 요새가 된 섬이다. 핀란드의 영토가 두 나라에 의해 짓밟혀진 역사가 사진자료로, 진품무기로, 화약고로 생생하게 증언되고 있다.
199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며 지금은 19세기 요새 유적의 귀중한 자료로 관광명소가 되었다. 해군 사관학교 연구실과 전시회장이었고 여름철 휴양관광지로 자국인도 많이 드나든다. 그 날을 아는지 모르는지 섬에는 키 작은 제비꽃과 민들레 등 야생화가 피었고 뽀얀 길이 외인을 반긴다.
사랑의 연못에는 오리 가족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행복하게 살고, 나무 그늘 아래에는 철새 캐나다 거위가 커다란 회색 몸으로 풀숲을 거닐며 여유롭다. 늦봄에 와서 알을 까고 새끼를 친다는데 가족보호본능이 강하여 사람이 가도 도망가지 않는단다.
섬의 높은 정상에 오르니 에스파니아에 다녀오는 빨간색 선박이 바다를 예쁘게 수 놓는다. 짧은 해안선 백사장도 있고, 보기에는 아름다운 영토인데 슬픈 바람이 분다. 풀도 작고, 개구리까지 손톱 한 마디쯤의 작은 몸집으로 애증의 영토다. 뉴질랜드 남섬과 유사한 풍경이다. 이곳은 북극, 극 지방의 전형적인 풍경인데 뉴질랜드 남극에서 느꼈던 극지방의 풍경에 더하여 요새였다는 한 가지 사실이 더하여짐에 숙연해진다.
발트해 선적을 만드는 조선소와, 등대 겸 교회인 세계 3개뿐인 러시아 정교회 사원이 이 섬에 있다. 여섯 개의 흩어진 섬에 아름다운 건물이 있어 이제는 완전한 핀란드의 호흡이 배여 있다. 다 둘러보고 다시 배로 나왔다. 발트해는 염도가 낮아 겨울에는 얼기 때문에 여름철에만 왕래하는 배다.
‘수오멘린나’ 가 바로 이 나라 말로 ‘핀란드 요새’ 다. 스웨덴-핀란드-러시아-일본-한국-중국과 같은 구도의 슬픈, 침략 역사의 현장이다. 나는 이곳에서 수없이 외침당하여 수난의 시대를 겪어온 내 조국을 떠올리며 전흔의 살아있는 교육장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더 이상 지구상에서 자기 소유의 경계선 너머로 침공하는 일이 없기를 빌며 떠나왔다.
* 수오멘린나 섬의 해변길
바다로 둘러싸인 섬은 해변에 뽀얀 길을 낳고 있다. 낭만으로 걸으면 아픈 역사 앞에 미안하여서 출렁이는 감정을 잠재우고 소슬하게 걸었다. 바다에는 먼 나라에서 돌아오는 배도 있고, 그날을 모른 채 평온하다.
구불어잔 길가에는 자잘한 풀과 키 작은 야생꽃들이 방실거리며 외객을 맞는다. 제법 넓은 섬이기에 많이 걸었는데도 해변길은 질리지 않는다. 바다와 만난 길을 참으로 아름답다.
* 수오멘린나 섬의 화약 저장고
화강암 석축을 쌓고 튼튼한 둥지를 지어 화약을 보관했던 곳이다. 문을 빠끔히 열어 놓아 이제는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있다. 아늑하여서 어찌보면 피난처 같은데 전쟁을 위한 화약을 이기 쌓아두고 사용했다니 서늘하다.
한낮인데도 소슬한 그림자가 스며들어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이다. 언제 또 오겠는가. 나는 들어가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남겨놓 발자국으로 맨질맨질하게 닳아진 바닥이다. 역사의 교훈과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교훈으로 외치고 있다.
* 수오멘린나 섬의 야생화
키 작은 들풀과 꽃들이 지천이다. 섬을 점유하며 영롱하게 빛냄으로 제몫을 톡톡히 한다. 완만한 둔덕에 자리를 깔고 앉아 평화를 읊조린다. 누구를 위한 몸짓은 아니고 제 멋에 겨운 자유의 표출이다. 꽃을 싫어하는 자 있던가.
정녕 저 꽃들이 그날에도 저리 흐드러지게 피어 적군과 아군의 중간자로 피비린 전쟁을 잠재울 수는 없었을까. 시절 모르고 아름다운 소리만 한다는 낯빛이다. 보이지도 않는 작은 존재였기에 짖밟히던 그 서러움을 하늘하늘 토로하고 있다.
* 수오멘린나에 전시된 무기들
저들은 알까. 무기 하나에게 부여되었던 사명을 그저 충실히 했을 뿐이라고 화답하는 눈빛이다. 지금이야 무기도 행복하고, 사람도 행복하지만 그 슬픈 전장의 주인이 아니었던가. 죽이고, 죽임을 당하고 육체도 정신도 멍들었을 무기들에게 무슨 죄몫이 있겠는가.
욕심 많은 사람들이 만들었고, 끝없는 욕망으로 피를 흐리게 하였으니 너희들도 애퍼로운 피해자겠지. 그날을 보았느냐고, 어찌 싸우더나고 물었다. 무심한 바람만 지나갈뿐 아무 말 없이 눈만 깜박이다.
* 수오멘린나 섬의 화강암 성벽
붉은 색상의 화강암 성벽이 아직도 그대로 보존하여 소슬하다. 외침으로 자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쌓아진 것도 서럽고, 이 땅에서 서로 다른 타국의 침입으로 그들끼리 영토 쟁탈을 위한 전쟁을 치른 것이 아닌가.
러시아의 침공으로 결국은 러시아의 요새가 된 성벽이다. 지금까지도 당당한 자태로 그날을 지배하듯 곳곳에 남아 있다. 성벽 곁의 길을 따라 다니며 이제는 놓아버린 역사의 현장을 외인들의 예리한 눈으로 목격되고 있다. 들어가 보고, 만져보고, 꿰뚫어 보아도 화강암 성벽은 세월을 모른 채 눈뜨고 있다.
* 수오멘린나 섬 사랑의 연못
핀란드 요새 수오멘린나 섬 내에 있는 사랑의 연못, 그 평화로운 정경들은 전쟁이 스쳐간 흔적을 지우고 있다. 오리도 사람도 아픔보다는 사랑을 먼저 떠올린다. 사람과 동물이 하나되며 새로운 사랑의 끈을 잇는다. 아름다운 가족사랑 , 인간사랑, 동물사랑 그래서 사랑의 연못이다.
나의 큰 아들은 유난히도 오리를 좋아한다. 그래서 오리를 따라 다니며 관심과 사랑을 전하고 있다. 육지에서 사는 오리보다는 사람을 덜 무서워한다. 그들도 이곳의 역사를 배운듯 당당한 자세로 자신의 몫에 충실하며 한 영토를 지키고 있다.
* 수오멘린나 섬에서 헬싱키로 돌아오는 배
내 조국이 아닌 타국에서 전쟁은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며, 얼마나 많은 얼룩으로 역사를 이어가는 지 배우고 간다. 핀란드 바다를 보는 낭만을 더 우선 순위로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섬이다. 어쩌면 새로운 둥지로 꾸밀 수도 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고스란히 보존하며 인간에게 큰 교훈을 전시하는 섬이었다.
타고 들어갔다던 배가 우리를 데리러 오고, 우리는 처연히 배에 올라 바다를 가르고 돌아간다. 손님이 많지 않아 이편과 저편을 번갈아 이동하여 마음껏 볼 수있다. 우리가 다음 행선지 스웨덴으로 타고 갈 크루즈 선박 실야라인도 정박해 있고, 해변의 핀란드는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전개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곳 주민인 여인과 대화도 나누며, 북국의 정취에 젖는 고운 뱃길이다.
* 핀란드의 정치
러시아가 물러가던 해, 1917년에 핀란드 민주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현재는 대통령 임원 집권제로 수상과 내각이 합하여 정치를 한다. 현실적으로는 수상제라서 대통령이 하는 일도 없다.
66세의 할로엔 따리아, 여자 대통령이다. 2000년대 선출되었는데 대통령이 되기 전 동거하던 연하 남자와 함께 산다. 포동포동하고 못 생겨서 국민들과 친근감이 크단다. 딸이 하나 있는데 엄마 성을 따라 산다. ‘할로엔’ 이 성이고 ‘따리아’가 이름이니 모계 혈통을 잇는다면 ‘할로엔’ 이라는 여자 대통령의 성을 붙여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민주적인 나라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평범한 연하의 동거남을 대통령 궁으로 데리고 온 것이며, 그것을 수용하는 이 나라 백성의 포용력이 참으로 아름답다. 정치보다 사랑이 우위인 사람 중심의 향기를 느꼈다. 오늘은 여름 휴가를 떠나 집무실은 비어 있다.
* 암석교회 템펠리 아우키온
형제가 화강암 산을 구멍내어 지은 교회다. 비행접시 모양의 지붕이 바위 위에 덮여 있는데 안의 천정에는 구리줄 23km가 바구니를 엮듯이 빙빙 둘러 엮여 있다. 장관이다.
밖에서 보면 초록색 돔으로 화강암의 천연색상과 조화를 이룬다. 밀라노에서 선정한 세계적 8대 건축물에 들어간다. 파이프 오르간이 독특한 음향으로 울리고, 기존의 교회틀을 깬 최첨단 교회로 주말에는 결혼식장으로, 음악회장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열린 지붕 사이로 햇살이 내려와 사람과 함께 의자에 앉는다. 1층에서 2층으로 오르내리며 나는 종교의 향기와 자연의 향기를 느꼈다. 하나의 화강암, 거대한 덩이를 뚫어 옴팍하게 만든 공간에서 위대한 믿음의 숨결을 체험한다. 도로변에 허름한 돌벽, 쌓아올린 흔적이 없으니 키 작은 집, 아 이 작은 공간이 암석교회로 세계인의 걸음을 인도하고 있으니 이 교회를 지은 두 형제는 핀란드의 정녕 애국자다.
* 시벨리우스 공원
핀란드인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기리는 공원이다. 그의 두상 조각이 장관이고, 음악성 존중을 위해서 두상에 귀가 없는 것이 명작이다. 그는 주로 핀란드의 독립을 주제로 한 곳을 많이 작곡했고 교향시 핀란디아는 그의 대표작이다.
24톤의 강철로 만든 파이프 오르간 모양의 기념비가 공원의 중앙에 우람하다. 수백개의 쇠관을 사용하여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모양으로 놓여졌다. 울퉁불퉁한 것은 나무껍질을, 구멍은 섬을, 파선은 바다 물결을 상징하고 있다. 자연을 통해 음악을 표현한 그의 생애다.
담배를 많이 피워 후두암으로 독일에서 수술하였고, 의사는 하루에 담배 한 개피만 피우라고 하였는데 여전히 여섯 개의 재떨이를 테이블에 두고 기분에 따라 재를 털며 많은 담배를 피웠단다.
딸이 다섯명인데 아버지 방에 아침마다 번갈아 드나들며 치워주었다니 음악가의, 한 예술인의 슬픈 역정이다.
평생 동안 조국 핀란드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또한 핀란드인의 용감성을 드러내며 조국의 독립을 예찬한 시벨리우스의 자취가 1967년 여류 조각가 에이라 힐토넨의 손길로 조각되어 헬싱키 해변의 바람과 호수와 숲의 향기에 싸여 있다.
* 핀란드인들의 절약 정신
GNP가 2만 8천 유로인 나라다. 계산상으로는 2만 달러가 채 안되는 한국보다 국민소득이 높다. 그런데 종교세 1.25%(월급의)를 비롯하여 월급이 많은 사람은 50%까지 세금으로 낸다. 물론 퇴직 후 복지 연금으로 되돌려받는 보상이지만 젊은 날부터 절약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다.
주택은 전세는 없고 월세만 있다. 월급 400만원 받는 사람이 집세로 월 150만원을 낸다면 그 생활이 어렵다는 것이 짐작된다. 아파트는 대개 20평~30평 사이로 유럽의 아파트 건축 형식으로 나란히 붙여 짓고 산다. 물가도 한국보다 약간 비싼 편이다.
북유럽은 모두 물가가 비싸다. 노르웨이는 2배나 더 비싸다. 핀란드에서 한국차 소나타는 3천만원이고, 마티즈는 1500만원이다. 데이트할 때도 함부로 돈을 쓰지 못하며 대개는 더치 페이를 한다. 겨울 난방도 21도 지정 의무다. 공기를 위해서, 벌레가 생길까봐 그런다지만 어떤 이유든 개인이 더 못 올리며 위배시 벌금을 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절약 정신은 철저히 배어 있다. 절대로 버리는 물건이 없다. 집기들을 모아서 필요없을 때는 부모형제나 이웃에게 판다. 또한 자식에게도 TV를 10만원에 판다. 공짜로는 가족끼리도 주고 받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조금 씁쓸했지만 그런 강인한 절약정신으로 극지방의 악조건을 물리치고 편안히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런 검소함은 핀란드만은 아니다. 세계 여행 중 여러 번 듣고 깨달은 바로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헌 물건을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사갈 때도 집기류를 문 앞에 내놓고 팔고 가기도 한다. 우리는 좀더 아껴야겠다는 다짐이 든다. 작은 것도 소중히 여겨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곧 애국이 아니겠는가.
* 핀란드인들의 국민성
웃지 않고, 정직하고, 성실하고, 사교성이 없다. 조용히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헬싱키에서 30km~40km 떨어진 곳에 별장을 지어놓고 조용히 살기도 한다.
자연 환경이 사람의 외형과 내형을 만들고 있다는 한 단면이다. 코끝이 뾰족하게 오똑하다. 체구도 그리 크지 않다. 유럽이라 하여 외모가 다 같은 것은 아니지만, 특히 이곳 사람들은 다른 인상으로 다가온다. 눈의 나라, 차가운 바람이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성격도 그러하리라. 긴 겨울 동안 한가득 쌓인 눈을 보며 살다보면 고독과는 벗이 되었을 것이고, 극지방의 한기에 길들여진 성품이니 웃음이 있겠는가. 내 나라의 사람 중에도 이런 성격 소유자라면 핀란드에서 살 때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 러시아 정교 우스펜스키 사원
헬싱키 도심을 지날 때 꽃처럼 아름다운 건물이다. 붉은 색 벽돌과 푸른 빛 지붕, 황금 십자가 첨탑은 멀리서 보아도 빼어난 경관이다.
종교에 대하여 깊이는 모르지만 서양과 동양이 조금 다르다. 같은 예수를 섬겨도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이곳은 러시아 정교 성당이라 부른다. 한국의 교회 개념이다.
18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 지붕에 양파 모양의 금빛 덩이가 있는데 맨 위는 예수, 그리고 12제자도 상징한다. ‘잠이 들다’ 라는 뜻이라는 우스펜스키 사원은 그 앞에 다가섰을 때 하늘높이 일어선 사원이었다. 교회 안에는 목제가 없으며 살아 있는 신도들의 육성으로 기도 예배를 드린다는 것도 신비로웠다. 나도 근엄한 몸과 마음으로 외경과 내경을 돌아보았다.
* 헬싱키 번화가
번화가라 하여 높은 건물과 복잡한 거리가 아님에 놀랐다. 중앙분리대로 조성된 넓은 면적의 숲과, 큰 면적의 꽃밭이 먼저 눈에 띈다. 사람들이 활발히 움직이지만 한국의 명동과는 비교되지 않는 한산함이다.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다. 여름 휴가는 4주, 겨울 휴가는 1주다. 지금이 여름 휴가철이라서 그런 걸까.
여자가 모든 것을 쟁취하고 있는 나라다. 대통령도 여자다. 남자가 가사일을 한다. 퇴근 후 가사일과 육아일에 소홀하면 이혼 사유다. 모두 가족과 퇴근 후 지내며 조용히 혼자 사는 것을 좋아하는 나라다.
이런 사회 환경이 번화가에도 드러나는 것일까. 여름의 한낮인데 자연의 화사함이 사람의 화사함보다 진하다. 나무 사이로 벤치에 나란히 줄지어 앉아 담소를 나누는 풍경이 참으로 평화롭다.
* 개의 천국 핀란드
개들을 위한 공원까지 있고 개를 꼭 산책시켜야 한다. 교포 가이드는 핀란드가 개 천국이라고 명명했다.
대우가 높은 대신 개 세금도 1년에 1회 낸다. 12월에 한 마리당 12만원을 낸다. 강아지 한 마리가 100만원에서 200만원까지 한다. 거리에서 줄을 맨 개가 주인과 활보하고 있다. 덩치 큰 개도 집에서 함께 산다.
개가 인간과 가깝다는 것은 정감어린 일이지만 개에게 특별우대하는 이 나라의 사회제도는 참으로 독특하다.
* 원로원 광장
핀란드 역사의 중심이며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의 중심지다. 광장도 드넓지만 주변에는 도서관, 학교, 박물관, 정부청사, 성당 등이 아름다운 자태로 사위를 에워싸고 있다. 헬싱키 대학도 여기 있다.
이곳은 각종 국가의 종교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40만장의 화강암이 바닥에 둥근 물결 모양으로 깔려 있어 바닥의 경관도 대단하다. 1812년~1852년까지 러시아 황제의 명령으로 조성된 곳이다.
광장 정면에는 핀란드 루터복음교파의 총본산인 대성당이 하얀 건물과 녹색돔 지붕으로 우람하게 높은 곳에 올라앉아 있다. 그 앞에는 러시아 황제였던 알렉산더 2세 동상이 있는데 핀란드인에게 온화하게 해서 동상을 세워준 것이다.
한국에는 시청 앞 광장, 독일에는 뢰머 광장, 프랑스에는 콩코드 광장, 벨기에에는 그랑플라스 광장, 등등 각 나라마다 대표광장이 있듯이 이곳 핀란드도 원로원 광장은 그들과 동일한 의미로 중요한 사명을 띤 광장이다.
* 스웨덴행 발트해 크루즈 선박 승선
핀란드에서 비행기로 스웨덴에 가지 않고 배로 건너간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호화 크루즈 선박은 17시간 동안 발트해를 유람하며 간다. 대형 가방은 부치고, 소형 가방만 들고 탔다. 배의 호텔에서 하루를 유숙함에 간단한 용품과 필요한 옷을 따로이 꺼내 들었다.
헬싱키 마켓 광장에서, 핀란드 요새에 배로 갈 때, 해안에 떠 있던 대형 선박, 실야라인이다. 바라볼 때도 큰 기쁨이었는데 승선하는 이 기쁨은 마음을 뜨겁게 한다.
배표를 받아 바코드를 찍고 승선했다. 비행기 탑승하듯 긴 고층의 통로를 따라 걸어 들어온 여객 터미널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장사진이다. 관광 또는 업무 목적으로 이용되는 발트해의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탄 곳이 7층이다. 먼저 3번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 520호실, ‘10520’ 이라고 적힌 배표를 들고 룸을 찾아 들어갔다. 여장을 풀고 침대 2개와 화장실, 옷장까지 일반 호텔을 연상케 하는 포근한 숙소에서 휴식하며 창 밖의 핀란드와 이별을 고했다. 이제 곧 오후 5시면 배는 이곳을 떠난다.
* 유람선에서 본 핀란드
핀란드는 바다 깊숙이 치맛자락처럼 섬을 키웠다. 군데군데 섬이 땅을 찢어 벌려놓은 듯 산재해 있다. 해변에는 나무와 건물이 장관을 이룬다.
배가 핀란드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핀란드 영토는 바다 위섬의 군락을 또렷이 드러낸다. 호수가 많은 나라, 섬이 많은 나라를 눈 앞에서 확인하고 있다. 바다와 경계선을 아슬히 이은 영토가 애잔하다.
출산을 장려하는 나라다. 평균 자녀가 1.7명이다. 대중교통비가 1회에 3천원이다. 유모차를 갖고 타면 무료다. 아이를 낳게 하기 위한 정책이다. 쇄빙선이 겨울에는 얼음을 깨다가 지금은 육지에 올라와 있다. 염도나 낮은 발트해는 1~2월에는 꽁꽁 얼어 바다 얼음 도로가 된다. 그러다가 3~4월에는 얼음이 깨져 자동차까지 통행하다 침몰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12월에서 3월까지 금년보도로는 33명의 익사자가 발생했단다.
어쩜 바다와 땅이 공유하는 영토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높은 배에서 핀란드를 눈 멀도록 바라보며 바다의 꽃으로 뇌리에 입력시켰다.
* 호화 유람선 실야라인
스칸디나비아 지역을 운항하는 발트해의 대표적 크루즈 실야라인은 5만 8천톤급 대형 유람선으로 2800명이 승선할 수 있다. 선내에는 레스토랑, 면세점, 사우나, 미용실, 카지노, 디스코텍, 바까지 육지 한 토막의 상가 마을을 옮겨 놓은 정경이다.
4층까지는 Car Deck, 5층부터 사람을 위한 공간이다.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오르내리며 둘러보았다. 5층은 물품 창고, 6층은 식당가, 7층은 로비이며 상가, 8층부터는 객실이다. 12층은 밖에서 보면 사우나장이 보인다. 이것은 단적으로 본 것이고 거대한 배의 내부 구석구석은 수많은 상가, 룸, 기타 장소로 가득차 있다.
엘리베이터만도 여러 대가 운행되고, 천 세대 이상의 주민이 이 배에 다 모여 있다고 하면 짐작이 되리라. 함께 자고, 먹고, 2800명이 함께 발트해의 해상 크루즈 선박에서 17시간을 지내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세상은 넓고 볼 것은 많다 하였던가. 배 한 척의 광장도 대단하거늘, 이 바다 위에서 무한한 수평선에 선 나는 점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그래도 큰 가슴, 큰 그릇이 되어 담고 또 담는다.
실야라인의 거대한 품처럼 드넓은 품이 되어 세상을 담는다. 이 순간도 한 가득 담는다. 가장 효율적인 투자 교육비가 여행비이며, 나는 그 명언대로 여행비에는 절대로 인색하지 않는다. 많은 비용을 들여서 우리 가족 큰 아들과 남편 셋이 함께 왔지만, 지금 이 순간 세계약학대학 세미나에 연구 실험 발표 관계로 미국에 다녀온지 며칠 되지 않아 우리와 함께 오지 못한 작은 아들이 안타깝다.
사는 날까지 많은 것을 보고 배우리라. 국경선을 지운 세계의 마당에서 나를 키우고 다듬으리라. 넓은 가슴으로 삶을 조명하리라.
* 실야라인의 이중 시계
엘리베이터 앞에 시계가 걸렸는데 시침이 두 개다. 하나의 분침을 따라 시침은 1시간 간격을 두고 두 개가 움직인다.
그것은 핀란드와 스웨덴이 시차가 1시간 차이 나서 그렇다. 이 배는 두 나라를 오가므로 핀란드에서는 1시간 빠르게 보고, 스웨덴에서는 1시간 늦게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막힌 실야라인 이중시계다.
스칸디나비아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발트해의 해상 교통수단이다. 우리는 잠시 크루즈 여행이라 여기지만, 핀란드 헬싱키와 스웨덴 스톡홀름 간의 가교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두 나라의 시계를 층마다 엘리베이터 앞에 걸어둔 것이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외객의 눈에는 신기한 시계로 자꾸만 쳐다본다.
* 갑판에서 본 발트해의 석양
발트해의 석양은 우리를 실야라인의 갑판으로 이끈다. 일몰 비경을 위한 서곡이다. 바람이 심하게 분다. 몸을 앗아갈 듯, 옷을 거두어갈 듯, 머리칼을 흔들며 온몸을 휘감는다. 배는 높아서 더욱 세차게 바바람을 맞는 것이다.
공으로 보는 비경이 있겠는가. 목숨줄을 붙들 듯 갑판 난간을 감아잡고, 하루를 마감하는 태양을 기다렸다. 점점 바다는 핏빛으로 물들어 가고 하늘과 바다 사이 뜨거운 우주의 한 장면이 고운 영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 발트해의 일몰 비경
실야라인 유람선 12층에서 본 일몰은 진정한 고독이며, 고혹의 평화다. 평범한 아름다움이라 하면 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표정의 태양이 하늘과 바다를 가르고 있다. 망망대해에 생명이라고는 해, 너뿐이다.
남편과 큰 아들과 나는 깊은 감성으로 해를 보듬었다. 발트해의 일몰을 뇌리에, 가슴에, 눈에 담고 또 담았다. 발트해의 은빛 바다를 달리는 것만도 황홀한데 어스름 백야와 함께 태양이 바다로 떨어지는 광경은 큰 선물이다.
갑판에는 바람이 심하다. 머리와 옷깃을 흔들어도 나는 행복하여서 수평선의 마지막 태양과 마주하고 있다. 장엄한 이 비경 앞에서 생의 축복, 생의 환희를 느끼며 살아 있는 목숨을 감사히 여긴다.
* 발트해의 일출
하늘이 갈라진다. 어제 일몰과 반대 쪽 바다에서 핏빛으로 떠오른다. 지구를 반바퀴 발트해 아래로 돌아 다시 바다 위로 솟구친 것이다. 실야라인의 후미, 배가 가며 잔잔히 물결을 그려놓고 그곳에 해는 빛을 깔아준다.
비가 조금 흩뿌린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카메라를 든 손이 바람에 흔들린다. 12층 갑판은 어제도, 오늘도 여전히 바람이 산다. 물결은 잔잔한데 바람결은 세차다. 그것은 육안으로는 배가 서서히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배가 빨리 질주함으로 바람이 세차게 지나가는 것이다.
새벽 2시에 일어나 4시에 배의 꼭대기 12층 갑판에 나가 1시간여 발트해의 망망대해에 시선을 드리우다가 새벽 5시경 장엄한 일출을 맞았다. 구름과 해무로 선명한 해는 아니지만 바다와 하늘을 깨고 나오는 태양은 위대한 출산이다.
언제 또 오겠는가. 이제는 또 다른 세계로 떠날텐데. 발트해의 꿈꾸는 정경을 기억의 창고 속에 꼬옥 담는다. 그때여, 아들아, 우리 오래도록 기억했다가 먼 훗날 오늘을 추억하며 행복하게 웃고 살자. 늙음이 와도 서럽지 않으리라. 발트해의 태양처럼 찬란한 생이 되리라.
지난 밤 실야라인은 잠시 발트해에 머무르며 일출을 기다렸다가 승객에게 바다 위의 장엄한 일출을 선사한 것이다. 그리고는 백야의 시린 새벽빛줄기 따라 다시 일어서 은비늘 자작이 바다로 달리고 있다. 나는 생의 여정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물과 일출을 본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원시의 백지 같은 바다에서 해와 상면하였으니 나는 분명 우주 안에 존재하는 고귀한 생명체다. 이 순간 그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