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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 -18 / 프랑스 (낭시) / 아파트,장 프르베의 주택 등
2004.03.21 일요일

낭시의 아침
어제 저녁 늦게 도착한 우리를 위해서 진원이의 아내 이정미씨가 진수성찬을 마련하였었다. 이정미씨의 요리솜씨는 낭시 한인들의 모임에서도 유명하다고 델프트에 유학온 지영이가 귀뜸해준 바가 있다. 그 소문만큼 대단한 요리였다. 그렇게 허드러지게 늦은 저녁을 먹은지라 모두 늦잠을 잤다. 늦은 아침 우리는 다시 낭시의 시내로 나간다.
진원의 집 뒤에는 무지하게 긴 아파트 두채가 있는데 하나는 길이가 800m나 된단다. 세상에나. 그래서 거기부터 들러 보기로 했다. 가까이서 보니 그 길이가 실감이 나질 않는다. 오늘이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아파트 주변이 온통 벼룩시장와 재래시장으로 뒤덮여 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왔나 보다. 농산물등은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기 때문에 이런 시장이 인기가 있다고 한다. 이건 우리하고 비슷하네.

낭시의 중심부

길이 800m 정도 되는 아파트 두채의 모습

아파트 앞에서
그 다음으로 간 곳은 어제 우리가 보았던 롱샹교회의 건축가 르 꼬르뷔제와 같은 시대의 건축가 이면서, 그의 명성에 가려 큰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던 장 프루베 Jean Prouvé 의 주택이다. 지금은 일본인이 살고 있다고 정훈이가 그런다. 그러면서 진원이가 혹시 못 볼지도 모르겠다고 하네. 들여 보내주지 않으면 땡깡이라도 부려야지 뭐. 일단 가보자. 다행히 주인이 없는 모양이다. 상당한 경사지에 지어진 이집은 몇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장 프루베는 그 당시 대량생산형 주택을 주장하였고 그 프로토 타입이 이런 집이라고 진원이가 설명을 해준다. 진원이는 아는 것도 많네. 역시 훌륭한 가이드야. 주인도 없는 집을 이리저리 바깥만 둘러본다. 집은 두채이다. 뒤쪽으로 본채인듯한 주택이 있고, 일본인이 사는 것처럼 집안은 일본풍의 족자들도 보인다. 죄송합니다. 주인도 없는 집을 구경해서. 조심스럽게 보고 조용히 집을 나온다.

장 프루베의 주택/ 올라가는 경사로 앞에 집 한 채가 있고 뒤쪽 언덕위에도 집이 있다.

장 프루베의 주택/ 주택의 대량생산의 프로토 타입. 수십년 전의 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현대적 디자인으로 되어 있다. ( 진원이의 추가 설명- 얼마전에 복원공사를 해서 집이 깨끗해 졌다고 함. 이것은 차고와 아뜰리에로 쓰여졌다고 함.)

장 프루베의 주택/ 뒤쪽에 있는 또 다른 집인데 지금 일본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한다.
바로 옆에 낭시에서 공부하고 있는 정훈이가 아르바이트식으로 일하고 있는 건축설계사무실을 들른다. 바로 옆이다. 소장( 소장님의 성함은 크리스티앙 프랑수와 Christian François의 주택을 개조해서 쓰는 모양이다. 오늘 일요일이라 1층의 사무실은 셔터가 내려져 있고, 소장도 집에 없다. 야 정훈아. 니네 사무실 무지 좋다. 언덕 위에 있어서 앞쪽이 탁 트인게 전망도 좋고, 마당도 좋다. 정훈아 좋겠다.

정훈이가 다니는 사무실/ 1층 셔터가 내려져 있는 부분이 사무실이고, 2층3층은 소장이 사는 집이라고 한다.
성곽의 흔적 속에서
이제 낭시의 시내로 들어간다.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돌아다니기로 한다. 주차장에서 낭시 중심에 있는 스트니스라스 광장으로 방향을 잡는다. 주차장 바로 옆에는 성곽으로 보이는 담이 있다. 여기에 붙어 있는 아주 장식이 요란한 집이 있고 그 밑으로 터널 같은 통로가 나있다. 이름은 잘 모르지만 이 집의 벽에 있는 장식이 아주 정교하다. 그 밑을 통과 하니 다시 조그만 광장 같은 것이 나오고, 다시 밑에 터널이 있는 집이 나온다. 이 두 번째 문의 터널은 정말 재미있게 구성 되어 있다. 길이는 그리 길지 않지만 사이사이에 천정에서 빛이 들어오고, 벽돌로 마감된 보울트 식의 터널은 은은한 빛이 들어와서 나 같은 이방인에게는 정말 신비한 공간으로 느껴진다. 우리모두 함성을 지르면서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이 조금만 터널이 이렇게 풍부한 느낌을 주다니. 꿈속같은 터널을 빠져 나온다.

첫 번째 문/ 이름을 모르겠다.

두 번째 문/ 이것도 이름을 모르겠다.

두 번째 문의 터널 속/ 천정 위쪽으로 구멍이 있어서 그곳으로 들어오는 빛이 아주 근사하다.

두 번째 문의 터널 속/ 터널의 한가운데는 동그란 구멍이 나 있고 이곳으로도 빛이 들어온다
벼룩시장
터널을 빠져 나오니 바로 앞의 거리에는 벼룩시장이 열렸다. 사람들도 꽤 많이 지나다닌다. 골목어디에선가 요란한 소리가 들려 와서 가보니, 젊은이 몇 명이 중세의 복장으로 춤을 추며 있다. 제내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네들 끼리 좋아서 저러는 거라고 진원이가 그런다. 그래? 그냥? 재밌군. 덩치큰 총각하나는 쇠사슬에 몸이 칭칭감겨 엉금엉금 기어가며 괴물처럼 울부짓기도 한다. 내가 사진을 찍으니까 내쪽으로 오더니 하는 말이. 어흥 그런다. 나야 뭐 할 말있나. 그냥 바이 그랬다.

터널을 빠져 나와 뒤돌아 본 모습/ 성곽바로 앞에 벼룩시장이 열렸다.

거리에서 즉흥적으로 펼쳐지는 퍼포먼스

또 다른 벼룩시장

St. Epvre 성당
잔 다르크 동상
자 이제 점심이나 먹자. 프랑스식으로 말이다. 영욱이와 정훈이가 한턱 낸단다. 어 고마워.
식당 바로 앞에는 심상치 않은 동상이 있어, 보니 잔다르크 동상이다. 진원아 왜 여기 잔다르크 동상이 있는거냐. 잔 다르크가 태어난 곳은 낭시는 아니지만 여기 로렌 Lorraine 지방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솔직히 잔 다르크 Jeanne d"Arc 가 실제로 15세기에 일어난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에서 그렇게 활약했는지는 믿을 수는 없지만, 역사적으로는 그 당시 프랑스를 구한 소녀영웅으로 기록되어 있다. 1429년, 17살의 나이로 영국군을 물리치고, 프랑스의 샤를 황태자를 낭시 서쪽에 있는 랭스 Reims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르게 하여 왕위계승을 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19살 되는 1431년의 전투에서 포로가 되어 화형에 쳐해졌다. 아무튼 잔 다르크는 무지 싸움을 잘했나 보다. 잔 다르크 우리 점심 좀 먹고 다시 보자.

잔 다르크의 동상
스타니스라스 광장 Place Stanislas (1750)
점심을 먹고 스타니스라스 광장 쪽으로 들어간다. 스타니스라스는 18세기 낭시를 발전시켰던 공작의 이름이다. 본명은 Stanislas Leczinski. 그는 지금의 낭시 도시계획의 틀을 잡았는데 상당히 이런 도시계획과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이때 건축설계를 했던 건축가는 광장 바로 앞에 동상도 세워져 있다. 그는 광장을 중심으로 십자모양의 길을 만들고 광장 북쪽은 귀족들의 구역, 남쪽은 평민들의 구역 이렇게 나누었다고 한다. 광장에서 북쪽으로 보면 바로 그의 관저로 쓰였던 건물이 바로 보인다. 광장 한복판에 그의 동상이 자신의 관저를 바라보고 있다. 광장 동쪽으로 난 길은 그의 아내의 이름을 따서 까뜨린느 거리 R.Sainte Catherine라고 한단다. 이 광장은 요사이 한참 보수공사 중이란다. 아무튼 이 광장이 낭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광장에서 관저로 가는 길은 양쪽으로 나무가 도열을 하고 있는 Arc de Triomphe으로 해서 옆에 있는 뻬삐니에흐 공원 Parc de la Pépinière 로 간다. 공원은 무지무지 크다. 그러나 공원을 지나쳐 주차해 놓은 곳으로 간다.

낭시의 주요 건물을 디자인한 건축가의 동상/ 건축가 이름은 동상 밑에 적혀 있는 것 처럼 엠마뉴엘 에헤 이다.

스타니스라스 광장 전경/ 스타니스라스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스타니스라스 광장 주변의 풍경/ 쌀쌀하지만 노천 까페에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다.

화려한 게이트/ 광장 네 모퉁이에는 모두 이런 게이트가 있다.

관저 쪽으로 향하면서 돌아본 광장

관저 쪽으로 나있는 개선문

문 밑을 통과하면서 보이는 관저.

관저 앞에 있는 광장 / 멀리 개선문 Arc de Triomphe가 보인다.

뻬삐니에흐 공원 Parc de la Pépinière 옆에 있는 총독 관저의 뒷뜰
이별을 하고
그 다음으로 간 곳은 진원이와 정훈이가 공부하고 있는 낭시 건축학교이다. 일요일이라 학교는 문을 닫았다. 진원이가 내일 다시 나하고 같이 올테니 걱정 말라고 한다. 3시쯤 되었을까. 영욱이와 동복이가 로테르담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나는 남는다. 잘 가라. 운전 조심하고 다들. 형 언제쯤 오실 거예요. 영욱이가 묻는다. 몰라. (낭시건축학교의 모습은 3월22일자 여행기에서)
짧은 이별을 한 뒤 학교주변을 이리저리 돌아 다닌다. 학교 바로 앞에는 운하가 지나간다. 꼭 네덜란드 같네. 운하 옆으로 있는 주택단지의 경치는 일품이다. 저기 사는 사람들 좋겠다. 경치 좋아서. 이제 진원이와 정훈이와 같이 다시 시내로 걸어 들어간다. 광장 남쪽에 큰 성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가는 길에 넓은 학교 운동장 같은 곳이 보인다. 진원아 이게 뭐냐. 군대란다. 프랑스도 2차대전 때 독일과의 아픈 기억이 있어서 인지 독일과 가까운 이곳 낭시에는 군대가 많이 주둔해 있다고 한다.

어떤 주택단지/ 운하 옆에 있어서 경치가 아주 좋다.

운하

시내에 있는 어떤 조그만 광장
니꼴라스 성당
골목을 돌아가니 성당이 저만치 보인다. 지도에는 St. Nicolas라고 나와 있다. 꽤 큰 성당이다. 내부로 들어오는 잔잔한 햇빛에 실내는 엄숙하다기 보다는 아늑한 분위기가 든다. 내부에는 파이프오르간이 있는데 미사때 저 소릴 들으면 얼마나 멋질까. 그리고 다시 시내의 골목들을 거쳐 스타니스라스 광장으로 온다. 뱅뱅 돌다 보면 이 광장으로 오게 되는군. 여기서 커피를 한잔 한다. 막간을 이용하여 진원이와 앞으로의 여행을 다시 검토해 본다. 일단 내일은 낭시 건축학교 도서관에 가서 앞으로 돌아다닐 곳의 자료를 수집해야겠다고 진원이가 그런다. 그러자. 그럼.

니꼴라스 성당

성당 내부

성당 내부/ 파이프 오르간이 보인다.
6시쯤 되었을까. 정훈이도 집으로 하고 진원이와 같이 이제 집으로 올라간다. 가는 중에 Cours Léopold 공원을 지난다. 스트니스라스 광장 왼편으로 있는 또 하나의 큰 공원이다. 그 뒤로 정훈이 소장님이 한 낭시 법대를 증개축한 건물을 지난다. 이게 정훈이 소장님의 작품이구나. 철길을 지나 가파른 언덕의 계단을 따라 올라 진원이의 집으로 가니 또 맛있는 저녁이 기다리고 있다. 날마다 재워주고 맛있는 밥 얻어 먹고.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네. 낭시의 하늘은 노을이 다시 붉게 물든다.

선거 홍보용 벽보/ 지금은 지방선거중 이란다.

Cours Léopold 공원

낭시 정경대+법대 건물 / 지방의 조그만 건물이지만 디자인이나 시공의 수준이 높다.

낭시 정경대+법대 건물

낭시를 가로 지르는 철길
첫댓글 우와 멋지네요 낭시.... 저한테 생소한 곳이네요 .... 앞으로 더 많이 올려주세요 기대하겠습니다.^^
낭시는 관광지로써는 그리 알려진 곳은 아니라서, 아마 배낭 여행자들의 코스에는 많이 들어가지는 않겠지요. 그렇지만 알아두면 좋겠지요. 예전에 탄광이 한창 일때는 낭시가 꽤 부자 동네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모두 폐광이 되어서 좀 경제가 어려워 졌다고 하고요.
멋쪄용~
낭시 보다는 리용이 더 좋은것 같습니다. 리용 편을 조만간 올리겠습니다.
와우~ 멋집니다.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음. 멋지네요.
좋네요 낭시라는곳은..처음 들어본 도시이지만 왠지 프랑스 분위기 한껏 나기도 하구요 ^^ 아름다워요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는 곳이네요.. 언젠가 저두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왠지 저녁놀이 아름다울꺼 같은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