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Cell)성도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癸卯年 정착과 부흥의 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10:38)
고전1:1-9절) 고린도에 있는 교회
Ⅲ.고린도인에게 있는 것과 부족한 것(하)
고린도 교회(敎會)의 특이한 점은 사도 바울이 그곳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지고 전도했을 때,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방인(異邦人) 중심으로 교회(敎會)가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이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하셔서 그분의 은사(恩賜)를 퍼부어주심으로써 교회(敎會)는 은사(恩賜)가 넘치게 되었습니다.
1:4-5절)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 사람은 원래부터 어떤 정치적(政治的) 주제를 가지고 토론(討論)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출세를 하고 싶다거나, 정치(政治)를 하려고 하면, 대중 앞에서 연설(演說)을 잘해야 했습니다.
특히 그리스에서는 비극(悲劇)작가들이 있어 큰 대회 때마다 비극적(悲劇的) 이야기를 가지고 연기했는데, 이런 비극(悲劇)이나, 정치적(政治的)웅변(雄辯)을 통해 사람들은 정치(政治)를 배우고, 정치(政治)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인 중에서는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아‘언변(言辯)과 지식(知識)’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지방 사람보다 기독교(基督敎) 진리(眞理)에 대해 웅변적(雄辯的)으로 이야기를 잘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고린도 교인 중에서 정식으로 공부를 한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지식(知識)에 대한 자부심(自負心)은 아주 높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인은 기독교(基督敎)를 믿을 때도 할 수만 있으면, 지식(知識)인 수준으로 믿으려고 했습니다.
사실 복음(福音)은 유대에서 시작되었고, 그 내용이 히브리적인 것이 특징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인(敎人)은 생각하는 것이 유대인과 달랐습니다. 그들은 복음(福音)도 할 수 있으면, 자신들이 가진 철학적 틀 안에서 받아들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기독교(基督敎)의 지적(知的)수준이 높아졌는지는 몰라도 복음(福音)의 본질(本質)이 조끔씩 변질(變質)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믿음의 개념(槪念)자체가 변(變)했습니다. 본래 믿음은 믿고 순종(純宗)하는 것인데, 고린도인에게는 지적(知識) 이해(理解)나, 수용(受容)이 된 것입니다. 그 당시 플라톤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아카데미아는 아주 유명한 학원(學園)이었는데, 교회(敎會)도 진리(眞理)를 가르치는 학원(學園)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교회(敎會)는 하나님의 영(靈)이 계신 성전(聖殿)입니다. 예를 들면 독일인은 대단히 철학적인 사고를 가졌는데, 광산 노동자들이 칸트의『순수 이성비판』을 읽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協奏曲)이나, 교향곡(交響曲)을 모두 다 외우고 있으며, 연주회(演奏會)에 악보를 가져가서 들을 정도입니다. 그렇다 보니, 독일 목회자(牧會者)나 신학자(神學者)는 기독교(基督敎)도 철학(哲學)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독일 신학(神學)의 특징은 너무나 복잡해서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런 신학(神學)을 한 사람은 엄청난 자부심(自負心)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 결과 교회(敎會)는 텅텅 비게 되었습니다.
고린도 교인(敎人)에게는 성령의 은사(恩賜)가 흘러넘쳤습니다. 이것은 참 좋은 현상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고린도 교인(敎人)에게는 방언(放言)의 은사(恩賜)가 많았습니다. 방언(放言)을 신비로운 언어(言語)로 엑스타시(ecstasy)상태에서 말합니다.
고린도 교인(敎人)은 이 방언(放言)의 은사(恩賜)때문에 자신들이 다른 교인(敎人)보다 더 우월(優越)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언도 무시(無視)하고, 교회 안에서 형제간의 사랑도 무시(無視)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고린도 교인(敎人)은 그리스도인이 좋아하는 지식(知識)과 체험(體驗)을 모두 다 가진 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중요한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기도가 응답되고, 어떻게 하면 교회(敎會)가 성전(聖殿)이 되어 능력(能力)이 나타나는지, 그 비결(祕結)은 하나도 모르고, 그냥 스스로 똑똑하고, 체험(體驗)이 있다는 자부심(自負心)에 만족했던 것입니다.
1:7절)...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이것는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우리가 알고 있으며, 체험(體驗)하고 있는 것이 완전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즉 나중에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보면, 우리가 전부인 줄 알았던 것이 진리(眞理)의 아주 작은 부분이었음을 알게 되리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기독교(基督敎)는 예수를 믿으면 구원(救援)받는다는 진리(眞理)를 너무나 쉽게 생각해서 예수를 믿으면, 이미 천국(天國)에 간 것으로 착각(錯角)합니다. 즉 이미 구원(救援)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더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선교(宣敎)하고, 봉사(奉事)하고, 교회(敎會)의 사회적(社會的)책임에 열심을 내려고 합니다.
이론적(理論的)으로 생각해 보면, 나무랄 데가 없어 보이지만, 여기에 아주 중요한 것이 빠져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우선 우리 기독교(基督敎)가 살아있는 진리(眞理)가 되려면, 성경 공부로만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십자가만 붙들어야 하는 시점에 다다르게 됩니다. 느슨하게 믿으면, 세상(世上)과 천국(天國)을 다 가질 수 있을 것 같지만, 자신도 모르게 세상(世上)속으로 떠내려가 있고, 진리(眞理)는 희석(稀釋)되어 엉뚱한 데서 실컷 헤매게 됩니다.
우리는 교회(敎會)안에서 함께 생명의 말씀을 듣는 중에 모난 부분은 깨어지고, 다듬어질 부분은 다듬어져, 하나의 건물(建物)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한 신뢰(信賴)와 사랑으로 연합(聯合)될 때, 안에서부터 성령이 차오르는 것을 체험(敎會)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성전(聖殿)의 비밀(祕密)입니다.
사도 바울은 두 가지를 강조(强調)하고 있습니다.
1:8절)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사도 바울은 스스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고린도 교인(敎人)을 향해 그들이 유식(有識)하고, 많은 은사(恩賜)와 체험(體驗)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책망(責望)받을 것도 많고, 아직 뿌리가 약(弱)해서 흔들리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들은 너무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착각(錯角)했으며, 진리(眞理)에 있어 완전히 어린 아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온전히 믿었다고 착각(錯角)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 아직 깨끗하지 못하고, 책망(責望)받아야 할 부분이 많이 있다는 뜻입니다. 즉 온전히 다듬어지지 못한 돌(石)이었던 것입니다.
1:9절)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회(敎會)는 사람과의 교제(交際)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主)와의 교제(交際)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즉 교회(敎會)는 교인(敎人)이나, 세상을 향해 무엇인가 하려고 하기 전에,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로부터 온전한 은혜(恩惠)를 공급(供給)받아야 합니다.
교회(敎會)가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은사(恩賜)가 많다고 해도 그리스도로부터 지속적으로 은혜(恩惠)가 공급되지 않으면, 영적(靈的) 당뇨(糖尿)에 걸린 환자가 되어 살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본문에서“하나님은 미쁘시도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틀림이 없으시다.’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뿌린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敎會)는 많은 혼란(昏亂)과 고통을 겪고 있으며, 세상(世上)에서도 신뢰(信賴)를 많이 잃은 상태입니다. 그 이유는 외적(外的)으로는 비만(肥滿)해졌지만,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막히는 바람에 영적(靈的) 당뇨(糖尿)에 걸려서 시력(視力)이 어두워지고,
죄가 소화(消化)되지 않고, 살아 썩게 된 것입니다.
이는 목회자(牧會者)들의 성공에 대한 야망(野望)과 교인(敎人)들이 너무나 쉽게 믿으려고 한 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敎會)는 아주 짧은 기간에 기적적(奇蹟的)인 성장(成長)과 부흥을 이루었으며, 지금도 하나님의 은사(恩賜)가 흘러넘칩니다.
그러나 세상(世上)과의 관계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도(聖徒)이며,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고, 축복(祝福)할 때, 더 큰 신앙(信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아-멘
찬송가 294장 *하나님은 외아들을*
※새벽(夏)4-5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7)
💖서로 사랑하라💖
성도의 교제, 소통과 배례
기도는 능력, 아멘은 축복, 감사는 사랑.
💖진리의 복음💖
†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심방(尋訪)및 궁금한 내용 문의☞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