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210 주일낮예배(대강절2째주) / 충만교회 민창근 목사
눅 15:25-32 / 첫째 아들의 큰 문제(마지막 이야기)와 탕자의 새로운 자세
(11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財産)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虛浪放蕩)하여 그 재산(財産)을 허비(虛費)하더니 14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凶年)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窮乏)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糧食)이 풍족(豊足)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堪當)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相距)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惻隱)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堪當)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風流)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健康)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命)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 지난주에 본 첫째아들의 문제
이런 첫째 아들의 율법적인 생각과 자세는 여러 문제가 있다.
1) 첫째 아들, 율법주의자는 자신이 완벽하다고 말한다.
2) 첫째아들, 율법주의자는 아버지의 집에서 참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
3) 첫째 아들, 율법주의자는 모든 인간관계도 율법적인 관계로 보고 판단한다.
4) 첫째 아들, 율법주의자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였다.
5) 첫째 아들, 율법주의자는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하여 회개를 잘 못한다.
* 오늘은 첫째 아들의 문제에 관하여 좀더 말씀드리려고 한다.
6) 첫째 아들, 율법주의자는 과거지향적인 삶을 살기에 오늘의 새로와진 동생을 인정하지 않고, 그렇게 보지 못한다.
한번 잘못한 사람, 때로 여러 번 잘못한 사람, 계속 잘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우리의 반응은 어떨까?
(예) 대학 때 고민 ; "침묵" 소설 - 기치지로라는 연약한 인간, 그는 계속 위기 때마다 배교를 한다. 그리고 회개한다. 그를 어떻게 할 것인가?
주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생각하면 주님은 이해하실 것 같았다.
사람은 한번 상한 기분과 감정, 서운함을 쉬 잊어버리지 못한다. 그렇기에 내 기분과 감정을 상하게 한 그 사람을 이해하고 잊는다던가, 그 사람이 이젠 새롭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믿지 못한다. 그리고 내게 상처를 주고, 내게 아픔을 주고, 내게 충격을 준 그 사람을 용서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첫째 아들의 시각에서 문제가 있던 동생을 쉽게 받아준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동생의 그 못된 성질, 그 못된 습관, 그 잘못된 결심이 그리 쉽게, 하루아침에 변화할 것이라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이다. 동생이 내려간 그 자리의 부정함은 첫째 아들이 다가가기엔 너무 어렵거나 두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 그 자리까지 내려간 동생과 함께 하기엔 꺼림직한 것이다. 그 자리까지 내려간 동생이 지금 반지를 끼고 새 옷을 입고 목욕을 하고 신을 신고 정자세로 앉아 있는 것은 위선이지 진정한 변화로 보기엔 웬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일이다.
이것은 사실 첫째아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부담을 느끼는 문제이다.
(예) 여자 분들이 가장 잘 잊혀지지 않는 서운함이 있는데 그것은 아이를 가졌을 때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잉태해서 여왕처럼 남편한테 대접받고 싶었는데, 어느 날 입덧이 시작되어 먹고싶은 것 많고, 그것도 변덕이 심할 정도로 요구사항이 많은 시기에 남편이 입덧의 고생을 이해하지 못하고 뭐라고 한다거나, 밤늦게 갑자기 먹고 싶은 그 맘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 변덕스러운 그 맘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운한 소리를 할 때 그것은 수십 년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 우린 작은 상처, 작은 서운함도 잊지 못하는데, 어떻게 큰 상처와 큰 일을 용서하고 잊을 수 있을까?....인생의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예) 잉꼬부부의 싸움 - 즐겁게 외식하고 돌아와 TV 리모콘 점유싸움하다가 머리로 아내의 코를 부딪쳐 코피가 났다.
(예) 교도소 방문하는 분 만나 상담 - 감옥에서 출소한 사람에게 연락오거나, 출소 후 찾아오는 일이 보통 부담이 아니다.
(예) 최근 영화 "해바라기" - 고등학교 중퇴 후 맨주먹으로 거리를 평정한 오태식이란 청년은 술을 먹으며 개가 되고 싸움을 했다하면 피를 보며 칼과 피도 무서워하지 않는 잔혹함으로 "미친 개"라 불렸다.
어느 날 싸움으로 여러 명의 양아치들을 때려눕히고, 칼을 휘두르는 놈(그중 못된 놈)의 칼을 빼앗아 찔러 죽였다. 그 일로 인해 잡혀 10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가 가석방되었다.
그는 감옥에서 잘못을 회개하고, 자기가 죽인 못된 놈의 어머니가 준 수첩에다가 "술 마시지 않는다, 싸우지 않는다, 울지 않는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세우고 그 약속대로 살려고 힘쓴다.
그리고 자기가 죽인 못된 놈의 어머니를 찾아갔는데, 그 어머니(해바라기 식당 운영)는 태식을 아들로 받아주고, 용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몇몇 사람은 태식의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준다.
그러나 태식이가 괴롭혔던 민석은 경찰이 되었고, 태식의 졸따구들인 양기와 창무, 그외 조판수 등은 그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 삐딱하게 쳐다보고, 그들의 욕심을 따라 그의 소박한 희망을 철저히 짓밟고 무너뜨린다.
- 쌍안경 쓰고 계속 쳐다보는 것이 대부분 현실일 것. 그를 죽음으로 몰고감.
(예)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만 1백만명 죽음, 그중에 7천명 살아남음. 그중에 한 사람을 추적하는 우리나라 교수....그는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왜? 그는 자살하였을까? 유대인에 대한 시각이 바뀌지 않는 현실....독일사람, 일반인들이 고정관념으로 계속 자기를 보는 것을 이기지 못함.
(예) 칭찬합시다
1950년대에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우수한 문학 지망생들이 모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각자가 쓴 소설이며 시의 결점들을 가차없이 서로 비평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창작에 도움이 되는 듯 보였습니다.
한편 여학생들이 중심이 된 또 다른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 모임에서는 서로 혹평은 일절 피하고 좋은 부분만 칭찬했습니다. 10년 후 그 여학생들 중 대부분이 훌륭한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유망하던 위스콘신 대학의 문학 지망생들 중에서는 단 한 명의 뛰어난 작가도 나오지 못했답니다.
사람은 보통 95퍼센트의 좋은 점과 5퍼센트의 좋지 않은 점을 갖고 있습니다. 100퍼센트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95퍼센트의 좋은 점을 보면서 사는 사람이 있고, 5퍼센트의 좋지 않은 점을 보면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95퍼센트를 보고 사는 사람은 힘있게, 자신감 있게 삽니다.
다른 사람의 95퍼센트를 보면 좋은 관계가 형성되지만 5퍼센트에 주목하면 관계가 틀어집니다. 그 5퍼센트를 바꾸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5퍼센트는 그가 평생 지니고 사는 것이고 우리가 받아 줘야 할 부분이지, 바로잡으려고 애쓸 부분이 아닙니다. 완전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세워 주고 키워 주어야 할 대상입니다.
- 「파이프 행복론」/ 조현삼
율법주의자인 첫째 아들은 자기가 아버지의 명을 어김없이 지켰기에 자기는 늘 완전하고, 열심이 있고, 따라서 자기는 늘 완벽하다고 생각하기에 굉장한 자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대단히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혹 잘못이나 실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관대하게 다뤄져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실수와 문제는 늘 크게 보고 정죄하는 일을 즐겨한다.
그들은 하나님 중심적이 아니라 인간 중심적이기에 하나님이 보실 때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생각지 않는다.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으로 모두를 보고 있음을 생각지 않고, 하나님을 속이고 사람의 눈만 피하고, 사람들에게만 인정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자기 기만을 한다.
그들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같이 강도 만나 피흘리고 있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지나가며, 그런 사실들에 눈을 가린다.
그들은 잃어버린 양이나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이미 정도에서 나가 부정하여 졌기에 찾을 필요도 없고, 찾아서도 안된다는 주장을 할 것이다.
그들은 겸손 은혜 용서 긍휼이라는 단어하고는 별로 관계가 없고, 판단 정죄 비판 편나눔 이득 이권에 눈을 뜨고 달려든다.
그들은 요셉이 형들을 용서하는 장면이나, 에서가 야곱을 용서하는 장면의 이야기를 말하면서도 용서의 대상은 유대인만이며, 의인이라고 인정될만한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이라고 해석할 것이다.
→ 예수님은 탕자의 비유를 통해 아버지 하나님은 문제가 많은 죄인의 회개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용서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내가 용서하였으니 너도 용서하고 받아주어라고 하신다!
예수님이 친히 세리들과 죄인들을 받아주셨다. 우리의 선입견, 우리의 고정관념, 우리의 율법주의자적인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용서를 실천해보는 사람들이 되어야겠다.
* 탕자였던 둘째 아들은 이제 새로운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탕자였던 둘째 아들은 새로운 자세와 습관, 가치관으로 자기의 변화를 보여야 하고 계속 지켜나가도록 해야 한다.
그가 어리석게도 다시 실패하려는 자세와 습관, 가치관을 가진다면 아버지도 형님도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와 실수를 인생의 교훈으로 삼는다. 탕자는 실패에서 교훈을 배우고 새로워져야 한다.
예수의 12제자들은 유다를 제외하고 모두 허점투성이들이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는 허점투성이 제자들에 의해 새롭게 쓰여졌다.
실패를 통해서 우리는 여러 가지 교훈을 배우게 된다.
1. 실패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준다.
2. 실패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3. 실패는 자기를 재발견케 해준다.
4. 실패는 재도전의 기회를 준다.
(예) 1950년 미국의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는 자신의 주요 고객들을 초청해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파티를 열었다. 만찬이 끝나고 돈을 지급하려는 순간 사무실에 지갑을 놓고 온 것을 알았다. 그는 음식값을 지불하지 못해 고객들 앞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그는 변호사 친구를 찾아가 자신이 봉변 당한 것을 털어놓으며 말했다.
현금이 없을 때 음식값을 대신 지불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두 사람은 장시간의 연구 끝에 먼저 결제하고 나중에 상환하는 카드를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신용카드인 다이너스 카드(Diners Card)다. 다이너스 카드는 이름 그대로 맥나마라가 저녁(Dinner)을 먹다가 곤혹을 치른 후에 만든 카드라는 뜻이다.
(예) 최근 서점가에는 [실패학]이라는 다소는 의아스러운 분야의 처세술 책이 유행이라고 한다. 물론 그 내용 또한 [성공을 위한 비법]의 다른 모습이기는 하나, 그 접근 방식 자체가 과거의 성공론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유난히 1등과 성공한 사람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주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특히 [실패를 직시하고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실패학의 권유]에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실패학의 이론의 근거의 출발은 잠재적인 노동 재해와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는 확률을 경험 법칙으로 정리한 하인리히 법칙에서 시작된다.
하인리히 법칙은 하나의 큰 재해 속에는 경미한 정도의 가벼운 재해가 29건이 있으며 또 그 속에는 깜짝 놀랄 만한 300건의 사건들이 존재하는데, 이로 인하여 방치해 둔 실패는 성장하게 되고 성공을 가로막게 되어 1건의 큰 실패를 가져오게 된다라는 것이다. 즉, 1:29:300의 사소한 많은 실수와 작은 실패가 큰 실패를 가져오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결과적인 성공에만 집착한 나머지 실패를 냉소하고 은폐하면 창조와 성공의 열매를 거둘 수 없으므로 편향된 성공 신드롬은 반드시 경계되어야 한다.
- 탕자의 나간 이유에 숨겨진 29:300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 분석하고 다시 실패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 실패와 성공의 관계 - 이런 말이 있다.
- 성공은 99퍼센트의 실패 교훈과 1퍼센트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
- 실패는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를 감추려는 속성이 있다.
- 방치해 놓은 실패는 성장한다.
- 실패의 하인리히 법칙 - 큰 실패는 20건의 작은 실패, 300건의 실수 끝에 일어난다.
- 실패 정보는 전달을 꺼리며, 전달되는 중에 항상 축소된다.
- 실패는 비난하고 추궁할수록 더 큰 실패를 낳는다.
- 실패 정보는 모으는 것보다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 실패 가운데는 필요한 실패와 일어나선 안될 실패가 있다.
- 실패는 숨길수록 병이 되고 드러낼수록 성공이 된다.
- 좁게 볼 때는 성공인 것이 전체로 보면 실패일 수 있다.
실패가 주는 교훈 ㅡ리더스 다이제스트 中ㅡ
1. 실패라는 말 대신 시행착오라는 말을 사용하라
희망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재기가 빠르다.
2.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실패를 딛고 재도전하면 반드시 성공할 기회가 찾아온다.
3. 자신을 실패자로 비하하지 마라.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반성은 하되 비하하지는 마라.
4. 항상 실패를 맞을 준비를 하라.
인생은 깊은 수렁도 있고, 넓은 초원도 있다.
5. 실패가 예상되면 빨리 단념하라.
사람들은 가끔 차선책에 대한 미련 때문에, 최선책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 둘째 아들은 자신의 실패를 거울삼아 새로운 성공의 삶을 잘 살아가야 하며, 아버지가 칭찬하시고, 형님이 칭찬하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 좋은 사람이 되자! 믿음의 사람이 되자!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사람이 되자!
탕자의 비유의 마지막이 이렇게 끝나면 좋겠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첫째 아들은 동생에게 달려가 그를 끌어안고 울며 용서하였으며 함께 잔치를 벌였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 형님의 따스한 사랑안에서 더욱 새로운 사람이 되었으며, 열심히 힘씀으로 그가 잃어버렸던 자산을 회복하고, 가정에는 언제나 웃음꽃이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