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와 사이다
1) 성구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의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임하게 하사 그로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여인이 밭에 앉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셨으나 그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여인이 급히 달려가서 그 남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전일에 내게 임하였던 사람이 또 내게 나타났나이다
마노아가 일어나 아내를 따라가서 그 사람에게 이르러 그에게 묻되 당신이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사람이니이까 가라사대 그로라
마노아가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오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오리이까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아서 내가 그에게 명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삿 13:8-14)
2) 보훈
발효되지 않은 순수한 포도즙과 과일즙은 건강에 좋음
“발효되지 않은 순수한 포도즙은 건강에 좋은 일종의 음료이다. 그러나 현재 아주 흔히 마시는 많은 알콜 음료들은 죽음을 주는 음료들이다. 그것들을 마시는 사람들은 흔히 미치게 되며 자기들의 이성을 빼앗긴다. 그 치명적인 영향을 받아서 사람들은 폭행의 죄를 범하며 흔히는 살인 죄를 범한다.
건강에 유익함
Letter 72, 1896
과실을 그대의 식탁에 차려놓는 식품으로 삼으라. 그리고 그것이 메뉴(食單)가 되게 할 것이다. 빵에 곁들여 먹게 되는 과일 쥬스를 아주 즐기게 될 것이다. 잘 익은 썩지 않은 과실에 대해서는 우리가 주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과실은 건강에 유익하기 때문이다.”(음식, 436-437)
사이다
(1885) 5T, 354-361
우리는 부절제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이다를 즐기는 술고래의 식욕에 만족을 주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범죄이다. 그대가 빛을 따르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이러한 행위에 가담하고 있다. 그대가 만일 빛 가운데 섰더라면 이런 일을 하고자 하지도, 할 수도, 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대들 각자가 이 일에서 완전히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한 하나님의 정죄 아래 있게 될 것이다. 그대는 성실해야 한다. 그대들은 정죄에서 그대 자신의 영혼들을 정결케 하기 위하여 즉시로 일을 시작해야 한다. …
나는 하나님의 율법의 빛으로 볼 때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양심적으로 호프(맥주 원료)를 재배하며 시장에 판매할 포도주나 사이다 제조에 종사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선한 용도로 사용하여 일종의 축복임을 입증하든가 아니면 그릇된 용도로 사용하여 유혹과 저주를 입증할 수도 있다. 사과즙과 포도즙은 신선할 때에 통조림을 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하면 장기간 맛좋게 보관될 수 있다. 그러니까 만일 발효되지 않은 상태로 사용하면 그것들은 이성을 잃지 않게 할 것이다.
…
적당하게 마시는 것은 술취함에 이르는 대로임
사람들은 포도주와 사이다(사과주)로도 독주에 의하여 취하는 것처럼 추하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소위 덜 독하다는 이런 음료들로도 가장 심하게 술취하게 할 수 있다. 성격은 더 강하게, 더 단단하고 완고하게 변하기 때문에 격정은 점점 제어하기가 어렵게 된다. 몇 쿼트(1쿼트는 1. 1리터)의 사이다나 포도주가 보다 더 독한 음료들에 대한 입맛을 일깨울 수 있다. 그러므로 많은 경우에 아주 굳어버린 술고래들이 된 사람들은 이와 같이 하여 술마시는 습관의 기초를 놓았다. 포도주나 사이다를 집 안에 두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 그들은 자극물들에 대한 식욕을 유전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단은 계속하여 방종하도록 그들을 유혹하고 있다. 만일 그들이 사단의 유혹에 양보하면 계속 양보하게 되는데 식욕이 방종하도록 요구하므로 그들이 멸망하기까지 식욕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성이 더 이상 고삐를 잡지 못하고 정욕의 목에 매어달리기 때문에 두뇌는 마비되며 흐려진다. 음란과 간음과 거의 각종 형태의 부도덕이 포도주나 사이다를 먹고 싶은 식욕에 방종한 결과로써 범행된다. 이러한 자극물들을 사랑하고 그것들을 사용하기에 익숙한 신앙의 공언자들은 절대로 은혜 안에서 자라나지 못한다. 그는 비열하고 음란하다. 그리하여 동물적인 정욕이 고상한 정신력을 지배하여 덕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
적당하게 마시는 것은 사람들이 술 마시는 이력을 위하여 교육받는 학교가 된다. 사단이 너무나도 서서히 절제의 요새에서 떠나도록 인도하며 무해한 포도주(wine)와 사이다가 너무나도 교활하게 입맛에 영향을 끼치므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술취함에 이르는 대로가 모든 사람에게 열리게 된다. 자극물을 탐하는 입맛이 계발되며 신경 조직이 혼란된다. 사단은 몹시 불안한 정신 상태를 계속 유지하게 하며 그 희생물로 하여금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나아가게 하여 마침내 모든 장벽이 무너지고 모든 원칙이 희생되게 한다. 가장 강한 결심들이 서서히 약해지고 영원한 관심사가 타락한 식욕을 이성의 지배 아래 붙들어둘 만큼 강하지 못하다.
어떤 사람은 정말 한 번도 술에 취하지는 않으나 항상 사이다나 발효된 포도주의 영향을 받는다. 그들은 흥분되어 있으며 참으로 헛소리할 정도는 아니지만 정신이 균형잡혀 있지 않고 완전히 나쁜 상태에 빠져 있다. 두뇌의 모든 고귀한 기능들이 오용된다. 수종(水腫), 간장병, 경련 및 머리로 향한 혈액의 유동과 같은 여러 가지 종류의 질병에 걸리는 경향은 신 사이다를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결과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 사이다를 사용함으로 불치병을 자신에게 초래한다. 어떤 사람은 폐병으로 죽으며 또는 단지 이 원인으로만 발생하는 뇌일혈로 졸도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소화 불량으로 고통당한다. 모든 중요한 기능들이 마비되며 의사들은 그들에게 간장병에 걸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때에라도 만일 그들이 사이다 통을 억지로라도 부수고 열어서 다시 담지 않는다면 그들의 남용된 생명력은 활력을 회복할 것이다.
사이다를 마시는 것은 독주를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위장은 그 본래의 활력을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위를 활동시키기 위하여는 보다 더 강한 어떤 것이 필요된다. … 우리는 독주를 마시고 싶은 욕망이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 각종 직업과 무거운 책임을 맡은-즉 고상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 탁월한 재능과 많은 학식과 고상한 감정과 강력한 담력을 가진, 그리고 훌륭한 추리력을 가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식욕의 방종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는지를 보는 바, 그들은 마침내 짐승의 수준으로 내려간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그들의 내리막길이 포도주나 사이다의 사용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모본은 개혁 편에 있어야 함
공공연하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남녀들이 포도주나 사이다가 발효되지 않을 때에는 취하게 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 팔기 위하여 그것들을 만들어도 아무 해가 없다고 항변할 때에 나는 마음에 슬픔을 느낀다. 나는 그들이 이 문제에 관하여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다른 한 측면이 있음을 아는데 그것은 이기심이 이 자극물들을 사용한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무서운 악에 대하여 저희의 눈을 감겨 놓았기 때문이다. …
한 신자로서 우리는 개혁자라고 하며 세상에서 빛을 지닌 사람들이라 하며 사단이 식욕을 타락시키기 위하여 시험을 가지고 들어올 수 있는 모든 통로를 경계하는 하나님의 신실한 파수꾼들이라고 공언한다. 우리의 감화는 개혁의 편에서 힘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양심을 둔하게 하거나 또는 시험을 조장하는 어떤 행동도 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루어진 어느 한 인간의 마음에 사단이 접근할 아무 문도 열어서는 안 된다. 만일 모든 사람이 소위 해가 없다는 포도주와 사이다를 적당히 사용함으로 만들어지는 작은 통로들을 경계하는 데 방심하지 않고 성실하다면 술취함에 이르는 대로가 차단되었을 것이다. 모든 지역 사회에 필요되는 것은 확고한 목적이며 건드리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손대지도 않으려는 일종의 의지이다. 그러면 절제 개혁 운동이 강력하고 영구성 있으며 철저하게 될 것이다. …
마지막 시대에 있을 사회 상태를 잘 아시는 세상의 구세주께서는 먹고 마시는 것이 이 시대를 정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노아 당시와 같이 인자가 나타날 때에도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셨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마 24:38, 39)다. 바로 그러한 상태가 마지막 날에 존재할 것이며 이 경고들을 믿는 사람들은 정죄를 자초할 길을 취하지 않기 위하여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형제들이여 성경의 빛으로 이 문제를 살펴보자. 그리고 모든 일에 절제하는 편으로 결정적인 감화를 발휘하자. 사과와 포도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런데 건강에 좋은 식품으로 그것들을 탁월하게 사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그릇되게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그것들을 악용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죄악적인 행습 때문에 포도와 사과 수확을 감소시키시고 계시다. 우리는 세상 앞에 개혁자들로서 선다. 그러므로 무신론자들이나 비신자들에게 우리의 믿음을 비난할 아무 기회도 주지 말자.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 세상의 빛”(마 5:13, 14)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마음과 양심이 하나님의 은혜의 변화시키는 감화 아래 있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비록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들이 현세의 이익에 희생을 요구할지라도 우리의 생애가 하나님의 율법의 순결한 원칙들로 말미암아 지배된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자.
현미경 아래서
치료봉사, 301, 302
부자연한 자극물을 요구하는 식욕을 유전적으로 받은 사람은 포도주나 맥주나 사이다 같은 것을 결단코 눈이 보이는 곳에나 저희 손이 닿는 곳에 두지 말 것이다. 이것이 그들에게 항상 유혹이 되기 때문이다. 단맛이 있는 사이다는 해가 없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저하지 않고 마음대로 그것을 산다. 그러나 그 단맛은 잠깐 동안 가다가 그 후에는 발효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발효할 때에 생기는 쏘는 맛이 오히려 많은 사람의 입에 더욱 맛있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이를 마시는 사람은 그것이 시어졌거나 또는 발효하였다고 인정하기를 싫어한다.
비록 보통 생산되는 맛좋은 사이다(사과즙)일지라도 이를 사용함은 건강에 해로운 위험성이 있다. 만일 사람들이 저희가 사는 사이다에 관하여 현미경이 나타내는 것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을 마시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흔히 팔기 위하여 사이다를 만드는 사람들은 거기 사용하는 실과의 형편에 대하여는 별로 주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벌레 먹고 썩은 사과가 즙을 짜내는데 사용된다. 유독하고 썩은 사과를 다른 방법으로는 아무 데도 사용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 그런 사과로 만든 사이다를 마시면서 이것을 별식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현미경은 이 유쾌한 음료가 비록 사과를 짜는 압착기에서 나오는 신선할 때에라도 음료로 사용하기에 전혀 합당치 않음을 보여준다.
강한 독주로 말미암아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포도주, 맥주, 사이다로 말미암아서도 참으로 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음료를 사용함으로써 더욱 강한 음료에 대한 구미를 일으키므로 음주의 습관이 이루어진다. 적당하게 술을 마신다는 것은 거기서 사람이 술마시는 이력을 위하여 교육을 받는 학교가 된다. 그럴지라도 이 연한 자극물들의 작용이 너무나도 교활하여서 그 희생물이 된 자가 자기의 위험을 알아채기도 전에 주객의 대로(大路)에 들어서게 된다.”(음식, 432-436)
(2014'5.21,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