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막 12: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예수의 대답은 어느 것이 크냐 작으냐의 문제를 뛰어넘어 전체 율법을 요약해 주는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가는 것이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는 계명은 인격적으로, 포괄적으로,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헌신하여야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 마음, 뜻, 힘등 반복되어 사용된 말들이 이 계명을 강조하고 있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뜻"이라는 말이 언급되어 있지 않고 70인역에서는 "마음"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두 낱말을 모두 포함시켜서 계명의 본질을 포괄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다음으로 예수는 첫 번째의 계명과 분리 할 수 없는 그리고 첫째 계명에 보충이 되는 두 번째 계명을 인용함으로써 이웃에 대한 헌신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자신에 대한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똑같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 것이다. 이 두 가지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왜냐하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명령을 지키는 것은 다른 모든 것을 지키는 것이다. 상-이 구절은 마가에 독특한 것이다. 이 구절은 분명히 영적인 것과 예식 적인 예배 사이의 관계와 싸우는 그의 독자들을 훈계한 것이었다. 서기관은 예수의 답변이 정확함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예수를 뛰어난 선생으로 보았다. 신의 이름을 지나치게 존중하여 신의 이름을 불필요하게 사용하는 것을 피하는 전형적인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피하면서 예수의 대답을 다시 표현하였다.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는 말은 신명기 4:35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또한 마음과 듯에 대하여 그가 이해한 말로 대신했다. 그는 대담한 말을 했는데 사랑의 두 가지 명령은 모든 번제나 기타 제물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그는 현명하게 대답하였다. 그래서 예수는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라는 선언을 하심으로 그로 하여금 보다 더 깊은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였다. 이 사람은 영적인 이해와 예수에 대한 개방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마 26:38]"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예수의 최후의 기도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 70인역(LXX)에 의한 시 42:5을 인용한 문구이다. '마음'의 헬라어 '프쉬케'는 '바람'또는 인간의 '영혼'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특히 본문에서는 성육신하신 예수의 인간적 고뇌를 암시하는 용어이다. 즉 인간으로 비하하신(빌 2:5-8) 예수의 심적 갈등이 이 단어 속에 침통히 새겨져 있다.
실로 인간이 되신 예수께서는 신적 노여움의 잔을 마셔야 하는 그의 인성의 고통을 철두철미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죽게 되었으니 - 혹자는 본 구절을 너무 괴로워서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는 뜻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구약중의 말투(사 38:1 ; 욘4:9)를 받아들여 슬픔이 너무 심해서 거의 죽을 형편에 처하게 되었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좋다(Taylor, Hill).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 '나와 함께'라는 문구는 마가복음에는 없는 부분인데 마태는 이를 '함께'라는 말과 더불어 부각시켜 스승과 제자사이의 긴밀한 관계성을 보여 준다.
즉 예수께서는 비록 제자들이 자신의 고난에 본질적으로 참여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인간적인 연민(憐憫)과 격려로써 그 제자들이 자기곁에 있어 주기를 원하셨다. 비록 그것이 주의 인간적인 고민의 표현이라 할지라도 당신의 근심은 오직 혼자만 아는 근심이었다. 주께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류 대속의 죽음의 그림자를 분명하게 보고 계셨다. 한편 예수께서 긴히 당부하신 바 '깨어있으라'(그레고레이테)는 현재형 동사로서 계속적으로 잠에서 깨어 일어나 있으라는 의미이다. 또한 이 말씀은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므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는 경계(警戒)의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흉선은 가슴, 갑상선 아래 심장 위쪽에 위치한 신체기관이다. 내분비기관처럼 '선(샘)'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으나 실제 내분기기관으로서의 역할은 크지 않고, 면역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면역조절작용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 질병방어)하는 T림프구를 성숙시키는 기관이다...-골수에서 분화된 미성숙 T림프구는 흉선으로 이동하여 성숙과정을 거치고, 제대로 기능하는 T림프구만 남기고 제거된다...기능은 크게 두가지로, 먼저 흉선 피질에서는 일반세포가 면역에 관여하는 표면단백질인 MHC/HLA와 잘 결합하는 CD4수용체를 갖고 있는지 테스트해서 잘 결합하지 않는 T림프구는 파괴된다.
이어서 흉선 수질에서는 신체 내에서 정상세포가 자연적으로 만드는 분자들에 면역반응을 보이는 T림프구가 파괴된다.-이렇게 해서 미성숙 T림프구 중 75%정도가 파괴되고, 나머지가 완전히 작동하는 T림프구로서 면역계에 배치되게 된다.자세한 사항은 면역세포의 성숙 을 참고.-흉선은 신생아~청소년기까지는 커지다가, 성인기에는 차츰 작아지기 시작한다. 소아기에는 새로운 T림프구의 생산이 활흉선발하나, 성인기가 되면서 T림프구는 웬만큼 다 만들었기 때문에 기능적 필요성이 작아진다.-
사람뿐 아니라 소나 양등의 어린 개체에도 흉선이 발달하는데, 갈아서 소시지 등을 만드는 것 외에 내장요리를 많이 먹지 않는 서양에서도 송아지나 어린 양의 흉선을 별미로 요리해먹는다. 성체가 되면 쪼그라들어 섬유질이 많아져 그 부드러움이 없어지므로 어린 송아지의 흉선만 요리하는데, 영어로 Sweetbread라고 한다.-한니발 렉터 시리즈 원작소설에서 버팔로 빌(한니발 렉터 시리즈)의 애인 벤자민 라스펠트가 렉터에 의해 살해당하고 한니발 렉터는 그의 흉선과 췌장으로 Sweetbread 요리를 한다.-자료 백과사전-
[요 14: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6:33]-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벧전 2:5].."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너희도 산 돌같이 - 베드로는 앞절에서 그리스도를 산 돌에 비유하였으나 본절에서는 산돌을 그리스도인들에 비유하고 있다. '산 돌'에 해당하는 헬라어 '리도이 존테스'는 복수로 그리스도 앞에 나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산돌이 되며 생명의 근원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하나가 되어야 할 존재임을 시사한다..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 '신령한 집'은 저자가 본절에서 그리스도인을 제사직에 연결시키는 것으로 보아 성전 곧 교회를 의미한다(시 69:9;사 56:7; 막 11:17, Blum).한편 '세워지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코도메이스데'는 예수께서 직접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실 때 사용된 동사와 동일하다. 베드로는 사람들이 단지 교회에 나아올 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리스도에게 나아와서 그리스도와 연합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산 돌이 되며 거듭난 자들과의 연합을 통해 교회를 이루게 됨을 강조한다(롬 12:1;15:16; 고전 3:16: 엡 2:21-22; 3:6,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 베드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제사장에 비유하고 있다. '제사장'의 헬라어 '히에라튜마'는 '제사장의 직분'이나 '제사장의 단체'를 의미한다(눅 1:8, Hort, Meyer).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을 가진 산 돌이라는 사실에서 진일보하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제사직을 수행하는 제사장이 되었음(만인제사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제사장적 역할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이어야 했던 것을(출 19:6) 이루지 못했으나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교회가 그 이상(理想)을 실현했으며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그 직무를 감당하게 되었다.항상 기쁨마음으로 주의일에 충성하면 몸과 마음을 지켜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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