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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18년부터 시흥에 있는 엠마우스 이주사목위원회 외국인 복지센터 일을 맡고 있는 사무국장 강승호입 2니다.
여러분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주민이 제일 많은 곳이 어디라고 생각하세요?
첫 번째가 안산이고 두 번째로 많은 곳이 시흥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안산 시흥은 시화호를 매립해서 공단이 만들어진 곳이고 80년대부터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곳이라 우리나라에서도 경기도가 제일 많고 경기도에서도 안산 시흥 지역에 외국인이 제일 많이 살고 있습니다.
이주민이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이주민은 누구냐 ? 이주라는 것의 개념이 내 고향을 떠나서 다른 곳에 모여서 집단으로 사는 사람들을 이주민이라고 하지만 교회에서는 바로 우리 자신이 이주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주민 그러면 너무 광범위 하니까 구분을 좀 하면 이주 노동자, 결혼 이민자, 분류를 좀 더 하면 동포, 그리고 유학생 , 난민, 더 세분화할
수도 있겠지만 요정도로 우리가 나눠서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주민은 제가 말씀드린 대로 바로 우리 자신이 이주민이다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냥 편하게 말씀 드리면 바로 이 사람들이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주민인 것 같아요. 그림을 보고 누군지 한번 맞춰 보시겠어요? 그렇죠?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바로 이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가 매일 들여다보고 있는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이주민들이죠.
말씀드린 것처럼 이주라는 것은 내 고향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역경과 고난을 거치면서 가는 과정 그리고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삶이죠. 어차피 우리가 항상 보고 있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내용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구약 성경은 그냥 시작부터 끝까지 이주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 네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 (창세 12,1) 우르에서 하란을 거쳐 가나안까지 가게 되는데 우르가 지금으로 치면 이라크라 볼 수 있겠죠. 요즘에 매일 tv에 많이 나오는 전쟁 지역입니다. 이라크에서 하란은 터키 남쪽이고 굉장히 크게 1500km를 그 옛날에 소와 양과 가족들 데리고 걸어서 간 거잖아요. 그리고 야곱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헤브론에서 고센까지 고센도 이집트에 있는 땅이고 모세는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나오미와 룻도 그렇고 .. 제주교구에 가면은 나오미센터라는 난민센터가 있어요. 이름을 구약성경에 나오는 나오미에서 따온 건데 어떻게 보면 제일 짧은 100km처럼 보이지만 여자 둘이 시어머니(나오미)와 이방인 며느리(룻)이 그 험한 사막 100km을 간다는 건 굉장히 먼 거리이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태어나자마자 본인도 기억 못하시겠지만 이집트까지 부모와 함께 피난을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기간이 있었잖아요. 이 모든 것들이 구약에서 얘기하는 이주의 삶이다 라고 저희는 그렇게 보는 거죠. 우리 또한 태어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와 살게 되는 것도 짧은 거리지만 이주의 삶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주민은 누구인가? 우리다라고 얘기를 하는 거죠.
그러면 오늘날의 이주민은 누구인가?
제가 시작할 때 목차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이주민을 우리는 다섯 이웃으로 얘기를 합니다.
첫 번째는 땀을 흘려 일하는 이웃 이주 노동자, 그리고 사랑을 따라온 이웃 결혼 이민자, 그리고 뿌리를 찾아온 이웃 우리 동포가 되구요. 미래를 꿈꾸는 이웃 유학생, 생존을 위해 탈출한 이웃이 바로 난민으로 이들이 우리 곁에 살고 있는 이주민의 다섯 부류라고 보시면 됩니다.
외국인 이주민 그러면 두리뭉실 하잖아요. 조금 더 구분해서 보면 좋을 것 같아서요. 자 그럼 먼저 얼마나 많은 이주민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나 살펴 볼께요.
많이 살고 있긴 한 것 같아요. 보시면 이게 작년 12월 말을 기준으로 2백16만6천명이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여기서 얘기하는 이것은 법무부 통계를 가지고 왔는데 법적으로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은 관광으로 일주일, 한 달 있다 가는 사람들은 치지 않고요. 3개월 이상 90일 이상 한국에서 체류하며 살아가는 외국인들만 외국인 등록이라는 거를 해요.
우리 주민등록증처럼 증을 만드는데 그 증을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 거거든요. 90일 이상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216만 명이 작년 12월 말 기준으로 있다라는 거고요. 보시다시피 동포가 제일 많긴 해요.
동포가 도표 아래쪽에 80만 명 정도로 이렇게 나와 있죠. 그리고 이주 노동자, 유학생, 결혼 이민자 이렇게 있고 이주민 체류 자격이라고 오른쪽에 보시면 이주 노동자가
22%, 결혼 이민자가 8.6% 동포가 37%, 난민 인도적 체류 0.1%, 유학생 기타 이렇게 되는데 이 중에는 결혼하러 와서 귀화를 해 지금은 한국인이 돼서 한국 국적을 갖고 계신 분들은 또 여기서는 빠지는 거예요. 물론 동포들도 한국에 중국 동포로 처음 온게 92년인데 그때 오셔서 그 사이에 귀화를 하신 분들도 있거든요. 그런 분들은 빠져요.
진짜 외국인으로 한국 국적을 갖지 못 하신 분들 숫자니까 더 많은 사람이 있다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여러분은 지금 이 숫자가 언제부터 얼마만큼 늘어났는지도 한 번
아시면 좋을 것 같아요. 너무 옛날 자료부터 하면 어려우니까 2007년을 기준으로 표 맨 왼쪽 아래 보시면 2007년에 80만 명이었다는 거죠. 이 80만명이었던 것이 그래프가 이제 2007년부터 2025년까지 보시면은 쭉쭉 늘어나다가 잠깐 주춤하면서 내려갔던 데가 코로나 기간이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말씀드린 것처럼 216만 명의 외국인들이 우리랑 같이 살아가고 있다라고 보시면 되고 18년 동안 170%가 증가했다라고 하면은 연평균 1.88%. 그냥 연평균이니까 계속 늘어나고 있다라고 보시면 되고 우리가 뉴스에서 많이 보잖아요.
사망률보다 출산율이 더 낮아지는 인구 절벽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인구는 그런 상황인데 외국인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라는 거를 보시면 될 것 같아요. 216만 명이 굉장히 많은 숫자인지 아닌지 보시면은 충청남 남도의 인구가 213만 6천 명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의 현황 귀화한 사람 빼고 외국인의 숫자가 충청 남도에 있구나라고 보시면 되는 거죠. 물론 외국인은 서울 경기에 대부분 다 살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통계는 이렇게 한번 봤고요. 그러면 어떻게 해서 우리나라에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오게 됐는지를 좀 말씀드릴께요. 뭐 이유가 있어야지 올 거 아니에요?
1993년도에 우리나라의 외국인 산업 연수생 제도라는 것이 있었어요. 한번 기억을 되돌려 보시면 지금도 수원에 있는 아파트 단지 한일타운이 옛날에는 한일합섬이라는 공장이 그자리에 있었잖아요.
한일합섬이 중국으로 이전을 하면서 그 땅에 아파트가 들어섰고 그것이 한일타운이 됐잖아요. 그때가 이제 이 시기라는 거죠. 80년 후반 9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점점 돈을 많이 벌고 우리나라 인건비가 조금씩 올라가니까 동남아시아 중국으로 공장들이 많이 이전을 했어요. 그러다보니 그 나라
사람들을 고용해서 일을 시켜야 되는데 한국에서 가져간 기계나 한국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을 그 나라에서 만들려고 하니까 잘 모르는 거죠. 그래서 그 나라 사람들을 한국에 있는 기업으로 데리고 와서 일을 가르치는 거죠. 일을 배우는 외국인인데 산업 연수를 왔던 학생이다 해서 외국인 산업 연수생 제도라는 걸 만든 거예요.
쉽게 말해 본사에 와서 일을 배우고 자기 나라에 있는 한국 공장에서 일을 할 수 있게끔 하는건데 이것을 해 보니까 이 친구들이 그러니까 여기 제목을 잘 보셔야 하는게 연수생이란 학생이잖아요. 근로자로 대우하지 않고 학생이라고 보기 때문에 이때 당시 이 사람들에게 10만원에서 15만원의 수당을 준거죠. 그러니까 정당하게 근로자로서 일을 하여 최저임금을
받은 게 아니라 일을 배우러 왔으니까 수당만 받고 일을 시킨 거예요. 이때가 처음 시작인데 그렇게 해서 동남아시아에서도 많이 왔고 방글라데시에서도 많이 왔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섬유 직물 업체들이 방글라데시에 공장을 많이 만들었거든요. 그때 왔던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섬유연수생 하다가 집을 안 가고 다른 공장에 들어가서 몰래 일을 하기 시작한 거죠. 왜냐하면 한국의 인건비는 비싼데 이 사람들은 학생이라고 했기 때문에 수당만 좀 받았던 거고 도망을 나와 한국에서 일을 하면 더 큰 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됐으니까 이분들이 나와서
많이 불법 체류를 하게 됐고 또 그때부터 우리나라도 이제 잘 살게 되니까 3D 업종이라고 하죠.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3D 업종은 기피하고 그러면서 이들이 자연스럽게 그 업종으로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IMF가 온 거죠. 뭐 다들 아시겠지만 IMF가 와서 그때 망한 회사 굉장히 많죠. 그때 사업하다 망하신 분들 노숙도 하시고 뭐 이런일 많았죠. IMF가 오니까 그때
우리가 외환 위기였고요 어떻게서든 생산 단가를 낮추는 방법은 원자재를 낮추거나 유통을 낮추거나 또는 인건비를 낮춰야 되는 건데 당장 손 쓸 수 있는 게 인건비를 낮추는 거였죠. 왜냐하면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많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고 그러면서 불법 체류 외국인들이 오히려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예요. 한국인들은 안 하는 일을 이분들은 더 낮은 임금으로 할 수 있으니까 또 하고 싶어하니까 그러면서 IMF가 오히려 불법 체류자들이 더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노동 인권
문제가 많이 생겼죠. 그 옛날에 tv 프로그램에서 블랑카가 '사장님 나빠요' 있었잖아요. 그런 것들이 나왔던 게 바로 이때였습니다.
이러면서 계속 외국인들이 늘어났고 또 외환 위기를 거치면서 10년 20년씩 불법체류 하는 외국인들이 막 생기기 시작하는 거죠. 시간이 갈수록 우리나라도 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데리고 와봐야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거예요. 도망가서 다른 공장에서 일하고 또 데리고 오면은 또 도망가서 다른 공장에서 일하고
그래서 정부에서 바꾼 게 고용 허가제라고 해서 근로자의 신분을 인정 해줘서 회사에서 외국인을 고용할 수 있는 허가를 회사에다 주는 고용 허가제라는 게 생겼고 또 방문 취업자라는 거는 중국 동포나 고려인 동포들이 한국의 고향을 방문해서 취업할 수 있게 제도가 생겼어요. 그러면서 이제 외국인들이 합법적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어 이때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우리나라 정부하고 동남아시아에 있는 17개 국가가 협약을 해서 그쪽에 있던 근로자들이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동포라고 검색해보면 핏줄이라고 나오는데 한국 사람들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살던 동포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한국인이었는데 이민 가서 살던 2세 3세들은 동포라고 하면 되게 우대를 해 주고 중국이나 또는 러시아 우즈백에서 온 그분들도 어머니 아버지가 한국인인 거죠.
그들은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어 그런 차별도 좀 폐지하자 하면서 이제 방문 취업제가 나오게 된 거죠. 그러다가 2007년부터 시작된 고용 허가제도로 한 5년 정도 일하면 가야 되거든요. 그런데 사장님 입장에서는 한 5년 일하면 한국말도 잘하고 운전도 잘하고 기계도 잘 만지고 고치기도 하고 이래서 더 오래오래 있으라고 하는 거죠. 그러다보면 또 체류기간을
넘어서 불법체류자가 돼서 정부에서는 그다음부터 제도를 바꿔서 숙련 기능공이라고 했고 마침 또 우리나라가 출산율도 낮아지고 생산 인구도 줄어들고 이게 또 맞아 떨어진 거죠. 그래서 지금은 근로자들이 고용허가제로 들어와도 사고 안 치고 본인이 한국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생활 하면 숙련기능공이라고 해서 체류 자격이 바뀌면서 부인하고 자녀를 데리고 올 수가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공장 다니는 사람들도 과거와는 다르게 부인하고 아이를 데리고 와서 같이 살 수가 있는 그렇게까지 지금 바뀐것입니다. 우리의 필요성으로
이런 현상이 생긴 거라고 보면 됩니다.
간단하게 제가 보여드리면 여기 얼굴 내밀고 있는 친구들이 다 시흥 엠마우스라고 하는 이주사목 위원회에서 매주 주일 미사를 하는데 시흥 엠마우스에 미사를 드리러 나오는 친구들 사진이에요.
한국에 처음 오면 맨 위에 왼쪽에서 두 번째 있는 사진처럼 한 군데 모여서 교육을 받고 교육이 끝나면 이제 각 공장으로 가서 일을 시작하죠. 방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우리 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외국인 복지센터에서 이 일을 하고 있는데
시흥, 광주, 안성 ,화서, 발안 ,평택, 안양 ,안산 그리고 수원까지 지금 외국인 신자 공동체가 있고요. 그리고 시화 성 베드로, 안산은 본오동 성당, 평택은 송서 성당 광주 성당 ,화서동 성당에서 지금 외국인을 위한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로 미사는 아무래도
동남아시아 국가중의 필리핀이 카톨릭 국가이다보니 필리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영어 미사가 있고요. 그 다음으로 많은데가 베트남안데 베트남은 옛날에 프랑스
식민지를 거치면서 가톨릭화됐고 또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우리도 파리 외방 전교회에서 처음 와서 우리에게 선교를 한 것처럼 베트남도 같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그들의 미사,
전례 문화가 우리와 굉장히 비슷합니다. 그래서 베트남 친구들도 굉장히 많고 이렇게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광주 엠마우스 신앙공동체부터 시작해서 발안,시흥,안산 ,안성, 안양, 평택 그리고 베트남 공동체까지 이렇게 주일마다 영어든 베트남어든 성당을 빌려서 미사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관심이 있으시면 여기로 그냥 바로 방문을 하시면 되게 좋아들 하니 언제 시간되실 때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혼 이민자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드릴께요. 사진을 보면 누군지 아시겠죠?
중국의 탁구선수 '자오즈민'이라고 ..
요 때가 시작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이분들이랑 그 옆에는 '이참'이라고 전 한국 관광공사 사장도 했었고. 그리고 로버트 할리
이분들이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국제 결혼의 1세대 물론 이제 우리 역사적 1세대는 가야 시대로 넘어가야겠죠.
1980년대 국제결혼 태동기가 되겠죠. 그 다음 우리나라 국제 결혼이 많이 생긴것은 통일교입니다. 아시죠? 올림픽 공원에서 3천쌍씩 이런 결혼식을 1년에 두 세 번씩 했거든요. 지금도 한국에 살고 계신
50~60대 일본분들은 그냥 다 100% 다 통일교에서 오셨다고 보시면 돼요. 그리고 마찬가지로 50,60대 필리핀 분들도 그렇구요. 그러면서 2002년 월드컵이 한류가 되고..
혹시 저 오른쪽에 있는 사진 기억나세요?
미국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미식 축구대회에서 1년에 한 번씩 최종 결승전을 슈퍼볼이라고 하는데 거기서 MVP를 하면 되게 유명한 스타거든요. '하인즈워드'라는 사람인데 저 친구가 어머니가 한국인이고 아버지가 흑인 미국인이에요. 2016년도에 MVP가
됐어요. 그때 우리나라 뉴스가 좀 뒤집어졌었죠. 이게 다문화로 태어난 아이들의 장점이 한국인의 장점과 외국인의 장점이 발현된다라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결혼을 해서 다문화 가족이 되면 정부에서 혜택을 주고 또 농촌 총각 장가 가라고 하면서 군 의회에서 돈 내주고 막 그랬던 거 기억나실 거예요. 그런 시기가 저때입니다.
2010년대에 이르면서 우리가 되게 잘 살게 됐잖아요. 그리고 또 K 컬처가 많아지면서 '강남 스타일' 이런 거 외국에서 다 알게 되고 2000년대 월드컵과 한류 열풍으로 중기업체들이 많이 활동을 하던 시기고요. 2010년 이후부터는 중기업체보다도 이제 외국인들이 한국을 선호해서 들어와 더 다양한 외국인들이 생기는 시기가 되는 거죠. 그때 그런 변화의 과정을 보면
국제 결혼의 시작은 한중 수교예요. 1992년에 중국이라는 나라는 우리에게 중공군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랑 수교국가가 아니고 적성 국가였거든요. 1992년도에 우리나라랑 중국이랑 정식으로 수교를 맺었죠. 그전에는 중국을 갈
수도 없고 중국사람이 올 수 없는 사이였는데 한중 수교를 하니까 중국인들이 들어올 수 있는데 그중에 조선족 여성분들이 대거 한국에 와서 농촌총각과 결혼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한 거죠. 그게 92년도 월드컵 이후에 동남아 결혼 이민자가 증가를 했고 베트남, 캄보디아 그리고 그 이후에는 중국 베트남에서 보다 다양한 국적으로 또 변화가 발생했고 라오스도 있고요. 우즈베키스탄도 있구요. 그러니까 지금은 귀화한
결혼 이민자가 오래 살다보니 한국 사람으로 자국 남성하고 재혼을 하는 현상이 생겨요. 왜냐하면 본인이 시집올 때 19살 20살 이었는데 40살 되신 한국 분들하고 살다가 본인이 귀화를 했고 본인이 한 30대 중반쯤 되면 남편은 꺾어지는 나이가 되고 이혼을 하거나 또는 사별을 하거나 그러다보니 자국 근로자들과 다시 결혼하는 현상이 요즘에는 더러 있습니다.
보시면 전체 혼인 건수 중에 국제 결혼 비중인데 92년도에 1.5%에서 점점 늘어나는 거죠. 피크기간이 한 2005년도 2010년에는 두 자릿수까지 10명 결혼하면 한 명 이상이 국제 결혼이었다라는 얘기가 되죠. 그만큼 한국인이랑 안하고 그리고 여성들이 결혼도 많이 안 할 뿐더러 결혼할 여성을 찾지 못하는 남성들이 중개 업체를 통해서 결혼을 했던 경우가 있어서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이라는 게 있었던 시절이죠.
그리고 한류 열풍하면서 동남아시아에서 오고 그다음에 유학생들이 많아지고 다양한 국제 결혼 지금은 요즘 TV에 많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러시아에서 유학온 여자가 한국에서 결혼해 살다가 별거하고 파혼했다는 얘기도 들어보셨을거예요.
여러분 교회 안에서는 이 결혼문제를 어떻게 보느냐 이게 조금 중요한 부분 같은데요.
사실 우리 카톨릭에서는 혼인의 조건을 성사로 즉 교회에서 주례사제 앞에서 해야 되고 자유로운 합의와 혼인 불가해소성 이런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 혼배 혼인인데 브로커가 중간에 있고 또 재혼의 경우에는 이제 한쪽만 신자이고 예를 들어 필리핀 여성들은 신자인 경우가 되게 많아요. 근데 한국에서는 신자 아닌 남성과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가 이제 친교를 통한 혼인성사인데 친교 과정이 없는 그리고 심지어는 의사소통도 안 되는 그런 경우에서 이루어진 이 혼인을 우리 교회에서는 어떻게 봐야 되느냐? 이런 것들이 아직까지 늘 저희가 이제 연수를 하거나 그럴 때마다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는 문화의 전파인데요.
필리핀 남부 지역 출신 결혼입니다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카톨릭 비율이 높고 본국의 카톨릭 문화를 우리 나라로 가져옵니다. 우리가 문화의 전파라는 부분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베트남도 우리하고 같은 파리 외방 전교회에서 영향을 받았는데 결혼 이민자 집에 가보면 되게 색다른 성모님을 집에 모시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루르드 성모님이 거의 90%이잖아요. 베트남 결혼 이민자 또는 필리핀 결혼 이민자들 집에 가면 필리핀 옷을 입고 있는 베트남 옷을 입고 있는 성모님도 있고 또 그 나라마다의 다른 스타일의 성모님을 모시기도 하고 같은 가톨릭이라고 하지만 전례가 좀 다른 것도 있고요. 예를 들면 성수 뿌리는 거를 굉장히 좋아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뿌립니다.
이런 다양한 카톨릭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우리가 갇혀 있는 카톨릭 문화이지만 우리가 이런 것들도 결혼 이민자를 통해서 다른 문화를 좀 전파할 수 있다면 우리 교회와 사회의 다양성이 확보된다고 하는데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2022년도에 말씀하셨던 "너의 성문은 늘 열려 있는 채 낮에도 밤에도 닫히지 않으리니 임금님의 인도 아래 민족들의 재물이 들어 들여오기 위함이다" 라는 이사야서 말씀을 통해서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성문을 열어 놓고 많은 재물들, 옛날에는 사막에 있는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바자르라고 모든 사람들이 물건들을 사고 팔고 그러면서 다른 민족들이 서로 교류하고 섞이고 이런 것들이 구약 시대에 사막을 중심으로 하던 문화인데 그러한 외국인들이 이주민이나 다른 이주민들이 많이 섞일 때에 그들의 문화가 더 강성해진다라는 거거든요. 우리도 그렇게 해야 된다라는 거죠.
누구를 통해서 이주민들을 통해서 그중에서도 특히 사실 근로자들은 한국에 많이 있어도 우리가 접하기 어려워요. 그리고 그들에게 뭔가를 전달받기가 되게 어려워요. 근데 결혼 이민자는 그렇지 않은 게 한국의 가정으로 들어와서 살기 때문입니다.
시어머니가 알려 주는 김치 비법에다가 자기 나라에서 쓰는 재료를 집어넣을 수도 있고요. 그리고 가정에서 아이들을 양육할 때에도 본인이 본인의 친정 어머니에게서 자랄 때 배운 것들을 가지고 올 수도 있고요. 이렇게 다양하게 문화가 섞인다라는 거죠.
결혼 이민자를 통해서 그래서 그것이 우리 교회 또 우리 사회가 다양해질 수 있다라는 이야기입니다. 반면에 이제 결혼 이민자들이 미사를 갈 경우에 그러니까 '복음의 기쁨'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주일미사 강론은 마음에 불을 지르는 말씀으로 거의 성사나 다름없는 특성을 지니는 것이다. 마음과 마음의 소통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우리가 모두 모국어로 듣고 싶어 하는 것처럼 신앙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저도 지금 거의 한 20년 동안 영어 미사, 따갈로어 미사를 그들과 함께 드리는데 제가 아무리 영어 미사를
드려도 느낌이 안나요. 우리가
영성체 하기전에 기도를 하잖아요.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라고 제 영혼이 곧 나으리다라는 거를 내가 기도할 때의 느낌과 영어로 ' my soul shall be healed' 라는
느낌이 같지 않다는 말이죠. 결혼 이민자들도 베트남에서 온 사람, 필리핀에서 온 사람이 여기서 아무리 영어 미사를 한다고 해도 한국 신부님이 하시거나 또 다른 외국 신부님이 하시는데 그 미사를 할 때 느끼는 기쁨이라는 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라는 거죠.
이건 나중에 또 말씀을 드릴텐데 이들이 필요로 하고 요구하는 것은 '성사'다 라는 얘기를 좀 말씀드리고요.
동포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드릴게요. '디아스포라'라고 많이 들어보셨죠?영어로 '디아스포라'인데 이거는 이제 라틴어에서 나온 말이고요.
'흩뿌리거나' '터트리는'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로 자의든 타의든 본토를 떠나 나라밖에 자리 잡은 민족 집단을 의미한다라고 해요. '디아스포라'를 가장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예가 유대인일 거예요.
로마제국 시대 이후로 예루살렘에서 쫓겨나서 지금 전 유럽에 뿔뿔이 살잖아요. 그러다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만든지 100년도 안 된 거죠. 그리고 아프로 아메리칸 지금 미국에 살고 있는 그 수많은 흑인들은 다 16세기부터 18세 19세기까지 대서양 노예 무역을 통해서 들어온 사람들이죠.
옛날에 쿤타킨테 ' 뿌리' 이런 영화 보셨잖아요. 그러니까 그들의 조상들 지금 흑인들의 조상들이 아프리카에서 노예선 배 밑창에서 쥐와 함께 살면서 대서양을 건너와서 살아남고 목화 밭에서 목화따고 살아남는 사람들이 지금 그들의 조상인 것처럼 이들도 이제 디아스포라 고향을 떠나서 ...그리고 '고려인' 뒤에서도 말씀드리겠지만 연해주에 정착한 한국사람들이 17만 명이 있었죠.
러시아의 스탈린이 점점 한국인이 많아지는 걸 보고 저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우리 땅 러시아를 저 사람들이 빼앗지는 않을까 해서 강제로 이주를 시킨 거죠.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이런곳으로요. 그 일을 겪은 고려인들도 디아스포라라고 볼 수 있는거죠.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디아스포라죠. 지금의 팔레스타인 사람들 이스라엘이 생기고 나서부터 가자지구나 서안지구에서 살고 있다가 쫓겨난 사람들 이들까지도 현재 디아스포라는 거고 우리가 얘기하는 조선족은 이제 '중국 동포'라고 법적 용어로는 중국 동포고요 조선족은 중국에서 부르는 이름이에요.
만주 부분 고구려 때부터 원래 그 땅은 우리 땅이다 뭐 이런 얘기를 하는데 거기에 이제 한인들이 많이 살았죠. 조선 사람들 그래서 한족이 지칭하는 우리 민족을 조선족이라고 하는 거고 우리가 법정 용어를 이제 '중국동포 '그런데 고려인은 우리 법정 용어가 '고려인 동포'예요.
법정 용어가 그래서 중국 동포는 1800년대 후반부터 북간도 농업 이주로 시작을 한 거고요. 그때는 이제 독립운동이라기보다는 소작농들이 땅을 찾아서 왔다라고 보시면 되고 그 이후로 독립운동가들이 전국 각지에서 서간도로 이주를 했죠. 그러면서
신흥무관학교 명동학교 얘기 들어보셨을 거고 그렇게 독립운동을 하다가 돌아오신 분들 있죠. 그래서 광복이 되면서 하지만 그때 돌아오지 않으신 분들이 이제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면서 한국 전쟁이 생기고 그러면서 우리나라 남한하고는 이제 적이 된 거죠. 적의 나라에서 살아남게 되신 분들이 지금 중국 동포라고 보시면 됩니다.
결국은 한 50년동안 서로 연결이 안 된 거죠. 그러다가 1992년도에 한중 수교하면서 한국에 입국을 하기 시작했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여성들의 결혼이 시작이 된 거고 2004년에 재외동포법이 바뀌면서 동포 자격으로 들어와 식당등 모든 일에 빨리 적응 되어 지금은 주로 간병쪽과 자영업 일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
우리나라의 아파트 공사는 중국동포가 없으면 공사가 안 이루어지는 게 현실이고요. 고려 동포는 어떠냐 하면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1900년대의 블라디보스톡의 독립운동가들이 이주를 하기 시작했고 그러니까 중국 동포들은 노동 그러니까 땅을 찾아온 사람들이 먼저고 나중에 독립 운동가들 고려인 동포는 독립 운동가들이 먼저 온거라고 보면 됩니다. 그곳에서
신앙촌을 만들어 홍범도 신채호 이런 분들이 항일 무장 투쟁을 시작했고 말씀드린 것처럼 스탈린이 너무 많으니 흩어놓자 하면서 17만 명을 강제로 기차에 태워 보내 버린 거죠.
그리고 마찬가지로 한국 전쟁이 시작되면서 소련하고 우리는 또 적성 국가가 된 거죠. 그러니까 이분들도 이제 고향하고 단절이 된 거죠. 그러면서 2004년도에 재외동포법이 개정되면서 동포 자격으로 들어올 수가 있게 된 이분들의 히스토리 정도는 우리가 좀 알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선족이라고 하는데요. 지도에 보시면 랴오닝성 지린성 해이룽장성 우리가 보통 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이라고 하죠. 옛날에 고구려 땅이었다라고 하는 요 삼성에 살고 있는 우리의 동포들인 거고 빨간색으로 돼 있는 데가 많이 들어 보셨을 거예요. 연변 오른쪽 빨간색이 연변 조선족 자치주예요.
그러니까 워낙에 조선족이 많이 살았을 뿐더러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당시에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고 또 공산 혁명을 같이 차지했기 때문에 자치주를 인정 해 준 거예요. 그래서 중국 동포 인구는 250만 명 정도 있어요. 지린성의 104만 명 그리고 우리 한국에 남한의 86만 명 흑룡강성에 33만 명 요령성에 23만 명 기타 다른 성의 4만 명이 살아요.
그러니까 과거에는 한국에 있는 인원들이 다 여기저기 섞여 있었겠죠. 지금은 한국에 있는 중국 동포가 두 번째로 많다라는 거죠. 그래서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길림성에 계신 분들이 이제 나이 드신 분들이 많으니까 돌아가시게 되고 또 거기에 있는 젊은 사람들은 계속 한국으로 넘어오고 그러면 이제 한국이 결국은 가장 많은 중국 동포가 사는 지역이 되는 것이 이제 멀지 않았다라고 보게 됩니다.
고려인 같은 경우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스탄등에 퍼져서 살아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스탈린이 강제 이주를 시켰는데 연해주는 원래 우리 한반도 바로 오른쪽이 되겠죠. 블라디보스톡
저 멀리까지 보내 버린 거고요. 고려인 인구는 이제 중국 동포에 비하면 적기는 해요. 17만 명이 뿌려져서 늘려 놓은 건데 우즈베키스탄이 18만 명 러시아 17만 명 카자흐스탄이 11만 명 키리키스탄 2만 명 한국에도 생각보다 많이 삽니다. 이분들은
중국 동포하고 다르게 중국 동포들은 모여 살았어요. 자치주가 있었잖아요. 조선족 자치주라고 조선말을 할 수 있고 그런데 이분들은 흩뿌려진거예요.
그래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살지 못하고 그 나라에 흡수가 돼 버렸어요. 그러다 보니까 재외동포법이 바뀌면서 들어오셔도 됩니다라고 했을 때 중국 동포에 비해서 많이 못 들어온 상황이 된 거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중국 동포들은 건설 이쪽에 많이 일을 하시고 요즘에는 간병에 또 많이 일을 하시고 식당에서 많이 하시고 공장에서도 일을 하시고 자영법을 많이 하시죠. 점점 기능화 되고 있다라고 보시면 됩니다.
유학생에 대해서 말씀드릴게요.
지금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유학생은 30만 명 정도 돼요. 학사 전문가를 포함해서 학사가 47% 절반쯤 된다고 보시면 되고 그다음에 어학연수 있죠? 한국어를 배우는 한국어만 배우는 사람도 있고 한국어를 배운 다음에 대학을 가는 사람도 있어요. 그리고 석사, 박사
요런 식으로 있습니다. 아무래도 석박사 숫자는 좀 적고요. 국적을 보시면 중국이 30%예요. 베트남이
비슷합니다.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몽골 순서로 많이 있어요. 그래서 특이하게도 중국 베트남 합치면 60% 되겠죠?
우리나라에 온 유학생들은 중국 베트남으로 편중돼 있다라고 보시면 되고 연도별로 보시면 유학생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실 수 있을 거예요. 2016년 10년 전으로 보면 10만 명 정도였는데 10만 12만 14만 16만 15만 코로나 끝나고 18만 25만 확 뛰면서 지금 30만 명입니다. 그래서 증가율은 190%.
여러분 유학생이 왜 이렇게 많이 증가 되었나 하면 대학이 어려워요.
우리나라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우리가 대학을 보낼 사람이 없다는 얘기죠. 그러다보니 대학들이 어려워지니까 교육부에서는 법무부에 얘기해서 유학생들을 더 많이 들어올 수 있게 문을 열어 달라라고 얘기를 하는거죠. 그리고 또 하나는 인구 소멸을 방어하겠다라는 거예요.
교육부랑 법무부에서 유학생을 많이 받아서 그 유학생들이 한국에 정착을 해서 한국에서 일을 하게 하면 우리의 노동 인구를 확보할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해서 이런 일을 하고 있어요. 현재 교육부의 스터디 코리아 300K 프로젝트라는 게
있는데 한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을 30만 명 만들겠다 했는데 벌써
달성을 한거예요. 이미 30만 명이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법무부에서는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면 인구 소멸 도시에서 살아라. 그러면 한국에 오래 살 수 있는 체류 자격을 빨리 해
줄께 하지만 인구 소멸지역이라는 것에 대해 아시겠지만 경남 전남 충남에 있는 도시들이잖아요. 3만 명 2만 명 사는데 유학생들이 안 가죠?
우리도 가기 싫은데 유학생들도 가서 먹고 살 것도 없고. 이런 어려운 현실들이 있습니다. 가장 어두운 현실은 언어 장벽입니다. 우리나라 학생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잖아요. 한국인이 아르바이트를 하다 걸리면 바로 잡혀가거든요. 왜냐하면 자국민의 일자리를 뺏은게 되어서죠.
자국민의 일자리를 뺏으면 안 되고 네 돈을 써 가면서 유학을 오라는 거예요. 반면에 우리나라에 유학온 아시아의 학생들은 환경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우리나라법상 알바를 할 수 있어요. 본인들이 벌어서 학비를 대요. 학생들이 주로 밤에
편의점, pc방 알바를 해야 되니까 낮에 많이 학교에서 졸기도 하는 일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유학의 질에 문제가 좀 생기기도 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이탈을 해요.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서 공장에서 일을 하는 친구도 있지만 애초에 이탈을 하려고 유학을 오는 친구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일들도 생기고 그리고 졸업을 하면 취업이 바로 되면 좋은데 안 되는 거죠.
어려운 거죠. 말씀드린 것처럼 알바하면서 돈 벌면서 공부를 하기 때문에 한국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자격증만 따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현실들이 좀 있습니다. K컬처 같은 경우는 이것 때문에 학생들이 많이 한국에 오고 싶어 하잖아요.
난민에 대해 또 말씀을 드릴게요. 국내 체류 난민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아요. 우리가 제일 안타까운 부분인데 교회에서도 난민에 대해 많이 얘기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 지금 난민신청자는 6만2594명이죠.
그중 1679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았어요. 1994년부터 신청해서 꽤 오랜 20,30년 가까이 됐는데 그동안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이 1679명이라는 얘기예요.
매우 적다는 얘기죠. 넌민은 미얀마가 제일 많고 이집트,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 이런 순서로 있습니다. 이 부분은 조금 어려운 얘기이긴 합니다. 난민제도가 내가
난민입니다라고 신청을 해요. 난민이라는 건 딴 게 아니라 내 나라에 못 가는 거죠. 왜 못 가느냐? 전쟁 또는 큰 지진이 있거나 하면
신청이 가능해요. 그래서 대부분 한국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정확한 비자를 받지 않고 오는 사람들이 관광 비자로 와서 난민 신청을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난민 제도는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고 인정이 안 될 때 불인정하면 무제한으로 재 신청이 가능해요. 그러니까 반려되면
또 신청을 할 수 있다는 얘기예요. 이거는 뭐냐면 이 사람이 진짜 난민이어서 못 돌아갈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불허가 돼서 돌아갔다가 죽거나 할 수 있기 때문에 무죄 추정의 원칙 같은 거죠. 그런데
이것들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러는 가운데 송환도 불가능하고 실제 난민 인정받은 사람은 되게 적고 신청한 사람은 굉장히 많은 그런 구조가 우리나라 난민의 구조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 좀 말씀 드릴께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나라 전라남도 충청남도 인구 만큼 200만 명이 넘게 외국인이 살고 있고 또 그중에 천주교 신자 비율이 정확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필리핀이라든가 또 베트남 남부 지역 사람들은 또 천주교 신자가 많고요.
인도네시아 신자도 섬에 따라서는 다르지만 천주교 신자들이 좀 있고요. 그리고 동티모르도 필리핀보다 더 높은 비율로 천주교 신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우리나라에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속인본당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게 됩니다. 우리 다 아시잖아요? 우리나라는 다 속지본당이잖아요.
이들에게는 속지본당 하면 자기가 일하는 공장 관할 성당을 가야 되는 건데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죠.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주사목위원회에서 속인 본당은 아니지만 주일미사 한 대를 함께 드립니다. 그런데 그것이 속인 본당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봅니다.
여러분들도 다들 본당에서 활동도 하시고 관혼상제가 다 이루어지는 게 또 본당이고 그런데 외국인들에게는 그런 것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속인본당이 좀 필요하다라는 말씀과 함께 교회 속에서도 본당 사목권은
원칙적으로 속지적이어야 한다. 일정한 지역내 그리스도 신자들 모두 포함하여야 된다. 하지만 그러나 유용한 곳에서는 어떤 지역 내 그리스도 신자들이 예법이나 언어나 국적이나 그 밖의 이유로 정해야지 속인적 본당 사목구들이 설정되어야 한다라고 교회에서도 이야기를 하는
거죠.그리고 이주민에 대한 교구장의 의무에서도 교구장 주교는 자기 교구내 다른 예법의 신자들이 혹시 있으면 그 예법의 사제들이나 그런 해당 사목구들을 통해서든지 또는 교구장을 통해서든지 그들의 영적 필요를 배려해야 한다. 필리핀 사람들이 많이 살면 교구장은 필리핀 신부를 불러 줘야 된다는 얘기죠. 그리고 그 필리핀 사람들만으로 구성된 속인 본당을 만들어 줘야 된다는 얘기죠.
예를 들어서 미국 산호세, 캘리포니아 같은 데 가면 한인 성당이 있죠. 캐나다에도 있구요. 우리민족이 똑똑하고 돈 좀 많이 모아서 한인성당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성공 그러니까 노력한 기간이 길으니까 돈을 모아서 뭔가 본당을 만들고 요청을 해서 우리 수원교구에서도 가잖아요. 우리 교구 사제가 가듯이 그렇게 되면 제일 좋은데 아무래도 우리나라에 있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경우는 그렇게까지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 하지 못하다 보니까 본인들이 돈을 모아서 성당을 만들기는 좀 어렵죠. 그러나 베트남 신자들은 서울에서 그렇게 할려고 자기네들이
돈을 모아 상가 3층 4층 임대를 해서 서울 교구에다 얘기를 하고 서울 교구에서는 베트남에 얘기를 해서 베트남 신부님들이 와서 하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교구에는 아직 없는 상황인데 그런 것들이 진정 선교를 위해서 또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이주민들에게 선교를 하는 방법이 아닌가라고 생각을 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들 산티아고 순례여행 많이 가시잖아요. 아까 제가 시작할 때 말씀드렸죠?
과연 이주민들은 누구인가? 이주민들은 순례자고 이 지상에 주님의 날이 올 때까지 우리 모두 순례자이며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동반자이자 순례자이다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 한국땅에 한국 사람으로 살고 있지만 결국은 하늘나라로 돌아가기전 이곳에 잠시
머무르는 이주민이고 순례자일 뿐이다. 단적으로 나도 이주민이다. 나도 그들도 같은 순례자다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말씀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침 기도는 '이주민의 기도'로 바치겠습니다.
아시아복음화연구원 6월25일 목요일 아카데미 강의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