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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철봉 남동릉의 암봉
語大元無敵 크기를 말하자면 원래 비할 데 없고
窮高詎可重 높이를 다했으니 어찌 비하겠는가
試於平地見 시험 삼아 평지에서 바라볼 때
邱垤亦爲峰 자그마한 언덕도 또한 봉우리이네
―― 도암 이재(陶菴 李縡, 1680~1746), 「설악을 바라보며(望雪嶽)」
▶ 산행일시 : 2019. 5. 18.(토), 맑음, 미세먼지 나쁨
▶ 산행인원 : 13명
▶ 산행시간 : 13시간 25분
▶ 산행거리 : GPS 도상 15.1㎞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
00 : 3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1 : 47 - 서울양양고속도로 홍천휴게소
03 : 10 ~ 03 : 30 - 설악동 주차장, 산행준비, 산행시작
03 : 47 - 신흥사
05 : 00 - 전망바위, 아침요기
06 : 18 - 894m봉
07 : 58 - 1,102.8m봉
09 : 30 - 황철봉 북봉(△1,318.9m)
10 : 30 - 황철봉(黃鐵峰, 1,370.5m)
11 : 46 ~ 12 : 23 - 황철봉 남릉 1,368.1m봉 서릉 안부, 점심
12 : 50 - 1,368.1m봉 서릉 1,283.7m봉
13 : 09 - 1,283.7m봉 남서릉 안부
13 : 55 - 1,026.2m봉
14 : 35 - 길골
16 : 32 - 영실천 천변대로
16 : 55 - 백담사 주차장, 산행종료
17 : 22 - 용대리 주차장
17 : 55 ~ 19 : 38 - 원통, 목욕, 저녁
21 : 38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설악산 지도(일부, 영진지도, 1/50,000)
2. 산행 고도표
▶ 황철봉(黃鐵峰, 1,370.5m)
“…… 설악을 찾아가 그 삭발(削拔)한 고봉을 기어오르고, 그 명철한 징담(澄潭)을 굽어도 보
며 수홍(垂虹)의 장폭 앞에 두 귀를 씻고, 파리(玻璃)의 반석 우에 노래를 읊어, 유폐당한 내
영혼을 해방하고, 향화(香火) 끊긴 내 제단에 분수(焚修)하며, 학갈(涸渴)한 내 생명천을 다
시 파서 재생(再生)의 은전(恩典)을 입자함도 한 까닭이옵고,
진환(塵寰)의 번뇌를 석실의 저녁구름에 날려 보내고 중생의 죄장(罪障)을 림궁(琳宮)의 새
벽 종성(鐘聲)에 열고 벗어나 구흔불거(垢痕拂袪) 시원한 심경을 잠깐이나마 얻어 보고자
함도 까닭이옵고,”
노산 이은상(鷺山 李殷相, 1903~1982)이 『설악행각(雪岳行脚)』의 서두에서 설악을 찾는
까닭을 구태여 말한 대목이다. 나 또한 그렇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밤을
도와 달려온 이유도 새벽 산길을 걸으며 혹은 바위를 오르며 구흔불거(垢痕拂袪), 때 묻은
흔적을 훌훌 떨어 버리는 시원한 심경을 느껴보고자 함이다.
작년 이맘때는 잦은 비로 신흥사 뒤쪽 도랑물이 불어 그 좔좔 흐르는 소리에 우리의 발걸음
과 숨소리가 묻혔는데 오늘은 그때와 전혀 딴판이다. 꽤 오랫동안 가물어서 도랑은 물론 낙
엽이 바싹 말랐다. 낙엽 헤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말소리와 숨소리는 물론 헤드램
프도 죽였다. 캄캄한 숲속 잡석 깔린 가파른 사면을 더듬어서 오른다. 황철봉 북봉 남동릉의
시작이다.
담장 너머 절집의 보안등은 대낮처럼 밝다. 요사채에도 불이 훤하다. 아마 스님이 도 닦는 중
일 것. 그에 열중하여 무아지경이라면 천둥소리인들 들릴까, 그래도 한껏 살금살금 기어오른
다. 수북한 낙엽을 헤쳐 이는 먼지에 금세 목이 칼칼해지고 마른기침 참는 게 여간한 고역이
아니다. 한 피치 길게 오르고 안전지대에 들어섰지만 낮게 켠 헤드램프 곁불로 간다.
금강교에서 도랑 건너 20여분 정도 오르면 가파름이 잠시 주춤하고 여기서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보는 건너편 울산바위가 가경인데 오늘은 너무 일러 캄캄하다. 내쳐간다. 평탄한 돌길을
몇 번 지나고 암릉이 나온다. 전에는 우리가 아니 간 듯 다녀온 데라서 여기저기 쑤셔보고 발
로 길을 찾았는데 그새 인적이 분명하여 오늘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인적 쫓는다.
암릉을 오른쪽 사면으로 길게 돌아 넘고 휴식한다. 등로를 왼쪽으로 약간 비켜 잡목 헤치면
전망 좋은 암봉이 나온다. 가깝게는 울산바위와 권금성, 칠성봉, 화채봉, 멀리 대청봉까지 감
상할 수 있다. 해무가 짙어 일출이 더디기도 하지만 아직 때가 이르다. 카메라 감도와 조리개
를 최대한 높이고 개방하여 여명을 죄다 끌어 모으지만 신통치 않다. 날이 밝아지기를 기다
릴 수밖에.
모닥불 님이 멋진 말을 한다. 설악산은 어두워서 보이는 것이 없어도 아름답다고 한다. 설악
산이라는 이름만으로 아름답단다. 그럴진대 설악산에서 시절을 따지고 일기를 따지는 건 부
질없는 일이다. 설악산에 갈 때마다 가장 좋은 시절이었고 가장 좋은 날씨였다. 비바람이나
혹은 눈보라가 몰아친다고 하더라도 설악산에서는 그 또한 행운이다.
3. 울산바위
4. 울산바위
5. 맨 뒤 왼쪽은 대청봉, 바로 앞 능선 건너는 마등봉
6. 울산바위
7. 연령초(延齡草, Trillium kamtschaticum Pall. ex Pursh)
8. 울산바위
9. 황철봉 북봉
10. 황철봉 남동릉, 저 암봉이 산행기 맨 위 사진의 모습이기도 하다
11. 백작약(Paeonia japonica (Makino) Miyabe & Takeda)
소나무 숲길이다. 암릉을 자주 만나고 좌우사면으로 번갈아 돌아 넘는다. 암릉 같은 너덜이
나온다. 마초 님을 척후로 보내 탐색케 하여 잡목을 헤치고 수직의 반침니를 오른다. 그런데
마초 님은 척후로서 적합하지 않다. 그의 보폭이 워낙 넓어 웬만큼 틈이 벌어진 깊은 너덜이
라도 성큼성큼 건너니 아무나 흉내 낼 수가 없다. 대간거사 님도 몸을 사렸다.
1,102.8m봉. 너덜 암봉이다. 어렵게 오른다. 우리로서는 초등이다. 정상 암반마다 최고의 경
점이다. 미세먼지가 끼여서인가 원경은 흐릿하지만 사방 근경은 봄빛이 눈부시게 화려하다.
1,102.8m봉 내림 길 너덜도 오름길 못지않게 까다롭다. 짜릿한 손맛 본다. 1,102.8m봉을 내
리면 당분간 평탄하다. 하늘 가린 울창한 숲속이다. 잡목이 성긴 풀숲에 이르고 휴식한다.
골을 타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코끝이 간지럽다. 봄바람에 실려 오는 방초향기가 그
윽하다. 이래서였을까? 이 산 아래에 있는 신흥사의 1,300여 년 전 원래 이름은 향성사(香城
寺)였다. 홍어회 안주하여 탁주를 거푸 들이켜도 정신은 오히려 맑아지는 느낌이다. 황철봉
북봉 남동릉 그 마지막 피치에 달라붙는다.
북릉은 우리나라 산중 최고의 너덜지대라고 할 만한데 이 남동릉은 대부분 초지다. 정상에
오를 때까지 키 큰 나무 숲속이라 조망이 캄캄 가렸지만 되똑한 바위가 나오면 그 위에 올라
나뭇가지 젖히고 울산바위와 달마봉을 들여다본다. 울산바위는 향성(香城)의 천혜의 성곽이
거니와 달마봉(達磨峰)은 불법을 만재한 거함이 도도히 진군해 오고 있는 모습이다.
왼쪽 사면의 잡목 숲 헤치고 너덜지대에 들어가 황철봉 남동릉 살핀다. 그 지능선의 암봉이
기봉이다. 저 아래에서는 암벽 앞세운 둔중한 모습으로 보였는데 눈높이하고서 가까이서 바
라보니 쉽사리 범접하기 어려운 첨봉이다. 설악산에는 일목일초가 기수이초(奇樹異草)로만
보인다. 흔한 노랑제비꽃이며 양지꽃, 얼레지이라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미시령에서 너덜지대를 거쳐서 오는 백두대간 등로와 만나고 곧 하늘이 트인 황철봉 북봉이
다. 뙤약볕이 가득한다. 삼각점은 2등 삼각점이다. 설악 22, 1987 재설. 정상이 너덜지대라
서 조망이 아주 좋다. 대청봉에서 중청, 소청, 공룡능선을 지나고 마등봉을 넘어 황철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장쾌하다. 황철봉 북봉 정상을 약간 내린 안부께 그늘에서 휴식한다.
소백 님의 산욕심이 대단하다. 오늘은 어부인과 함께 속초 기갑부대에서 복무 중인 아드님을
면회하러 간다면서 탁주며 먹을 것을 잔뜩 담아 빵빵해진 배낭을 짊어지고 황철봉 북봉을 올
랐다. 소백 님은 여기서 미시령 쪽으로 하산하고 우리는 계속 진행한다. 황철봉 가는 길은 오
르내리막이 없이 평탄하다. 줄달음한다.
황철봉. 사방 키 큰 나무숲이 둘러 아무 조망이 없다. 우리는 황철봉 서릉에 약간 진입하여
암봉 아래에서 홍탁 휴식한다. 홍어 또한 곰취에 싸서 먹는 맛이 산중별미다. 다만, 한 가지
흠은 홍어 냄새를 맡은 똥파리 떼가 새까맣게 달려든다는 점이다. 우리의 황철봉 지정 포토
존에서 기념사진 찍고 ‘기분좋은 산악회’ 회원들에게 자리를 비킨다. 그들 역시 국공 몰래 백
두대간 종주의 황철봉 구간을 지나는 중이다.
12. 앞은 황철봉, 멀리 가운데에서 살짝 왼쪽은 귀때기청봉
13. 황철봉 남동릉 암봉
14. 앞 능선 너머는 천불동계곡, 왼쪽 가운데는 권금성과 그 주변
15. 멀리 가운데는 귀때기청봉
16. 황철봉 남동릉 암봉의 반대편 모습
17. 황철봉 정상에서
18. 멀리 왼쪽은 대청봉, 그 앞은 마등봉
19. 달마봉
20. 황철봉 남봉 1,368.1m봉, 진달래꽃이 한창이다
21. 황철봉 남봉 1,368.1m봉의 서릉 너덜지대를 내리면서
▶ 길골
우리는 길골을 내려 백담사 쪽으로 갈 것인데 저항령에서 길골로 들어서면 일찍 산행이 끝나
지 않을까 싶어 그 코스를 늘려 잡는다. 저항령으로 내리기 전 황철봉 남봉인 1,368.1m봉에
서 일단 그 서릉을 가기로 한다. 그런데 방향을 튼 게 빨랐다. 1,368.1m봉 몇 십 미터 전에서
오른쪽 잡목과 한데 엉긴 덤불숲으로 들어갔으니 전대미문의 오지에서 생고역을 자초한 면
이 없지 않다.
구상나무(?)는 밑 둥지부터 죽은 가지가 사방으로 창검처럼 뻗어 있어 지날 때는 납작 엎드
려 기고 너덜 덮은 눈측백나무는 발로 더듬거나 가지를 들어 올려 발 디딜 곳을 마련하여 나
아가고 미역줄나무 덩굴은 온몸으로 부딪치다 걸리는 가지만 손보아 뚫는다. 이마저도 밀림
에 막혀 더 못가고 뒤로 돌아 느슨한 덤불숲을 뚫는다. 너덜지대가 백번 낫다.
너덜지대도 이쯤이면 암릉이다. 미로를 간다. 직벽을 만나면 돌아가야 하니 돌고 또 돌고 불
과 수십 미터 거리를 수백 미터 거리로 간다. 막판에는 나이프 릿지를 지난다. 너덜지대 벗어
나니 초원이다. 1,283.7m봉을 오르기 직전 안부에서 점심밥 먹는다. 된장이 훌륭한 반찬이
다. 주변의 곰취 뜯어 그 쌈하여 먹으니 밥도둑이 따로 없다.
올해는 마가목이 풍년일까? 어느 해는 온 산에 한꺼번에 꽃 피운 풍년이었다가 그 이듬해는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해거리를 하던데 올해는 반반이다. 절반쯤 꽃이 피었다. 박새들이
무리 지은 초원을 간다. 걷고 있어도 걷고 싶은 초원이다. 약간 도드라진 1,283.7m봉에 오르
고 왼쪽으로 방향 틀어 엷은 지능선을 잡는다. 급전직하로 떨어진다. 절벽에 막혀 트래버스
할 때는 내 구르다 걸릴 나무를 보아두며 돈다.
거리 0.6km로 고도 280m를 낮춘다. 평균 경사도 약 28도이다. 그러나 발걸음을 제동하느라
땀 뺀다. 1,026.2m봉 가는 길도 봄바람이 불어 환상적이다. 1,026.2m봉에서 남진하여 길골
을 향한다. 아까보다 더 겁나게 떨어진다. 사인 값으로 환산한 경사도가 무려 45.5도나 된다.
이윽고 길골 계류와 만난다. 괄괄 흐른다. 알탕 하는 사람에게는 회비면제라는 현상을 걸었
으나 아무도 도전하지 않는다. 물이 워낙 차서다. 낯을 씻는 데도 소름이 돋는다.
길골을 간다. 인적이 흐릿하다. 길이 헷갈리는 데는 바위 위에 포개놓은 돌멩이가 안내한다.
가파른 기슭을 만나면 계류를 건너 건너편 기슭으로 간다. 계류를 자주 건넌다. 길골이 무척
길다. 그래서 ‘길골’이라 했을 것. 거목인 전나무가 장관이다.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길을
우리나라 제일로 치지만 그만한 수효는 못해도 크기와 굵기로는 여기가 더 윗길일 것 같다.
전나무는 여러 학자들이 ‘젓나무’로 부르고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전나무와
젓나무를 똑 같이 취급하고 있다. 강판권은 그의 저서 『나무사전』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
다. “젓나무는 예전에는 ‘전나무’라 불렀다. 물론 지금도 어떤 식물도감에는 전나무로 표기하
고 있다. 전나무를 젓나무로 부르는 것은 이 나무에서 우윳빛 액이 나와서 그런 것이다. 이
이름은 한국 식물학계의 거목인 이창복 교수가 붙였다.”
이창복 교수의 견해는 잣을 생산하는 나무가 잣나무이듯 전나무에서는 하얀 물질이 나오는
데 이 물질을 예전에 ‘젓’이라 불렀으므로 젓나무가 옳은 이름인데도 발음대로 쓰이게 되어
전나무가 되어버렸으니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길이 점점 좋아지고 영실천 천변대로와 만난다. 소 같지 않은 구용소, 폭포 같지 않은 황장폭
포를 들여다보며 너른 숲길을 간다. 길가에는 선인들의 설악을 읊은 시를 판에 새겨놓았다.
그중 하나인 백헌 이경석(白軒 李景奭, 1595~1671)의 「설악산(雪嶽山)」이다.
迥立含雲氣 멀리 구름 기운 머금고 서니
層巓逼紫霄 층층 봉우리 하늘에 닿을 듯
應知太始雪 응당 알겠노라 태초의 눈이
六月不曾消 6월에도 녹지 않음을
백담사 주차장. 많은 사람들이 줄섰다. 셔틀버스가 연이어 온다. 백담계곡의 백담은 예전에
걸어가면서 세어보았고 오늘은 셔틀버스를 탄다. 오늘은 원통으로 가서 삼합(삼겹살, 곰취,
더덕주)를 먹을 것이다. 가두리더덕은 원통에 미리 주문했다.
22. 황철봉 남봉인 1,368.1m봉의 서릉 너덜지대를 내리면서
23. 황철봉 남봉인 1,368.1m봉의 서릉
24. 곰취(Ligularia fischeri (Ledeb.) Turcz.)
25. 얼레지(Erythronium japonicum (Balrer) Decne.)
26. 큰앵초(Primula jesoana Miq.)
27. 박새(Veratrum oxysepalum Turcz.)
28. 길골, 거목인 전나무가 볼만하다
29. 길골 계류
30. 연실천변의 백담사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