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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의 역사적 강역 변천도>
[우리민족사연구회] 영토변동도
아래 지도의 맨 위 좌측의 구리(九黎-환웅)시대는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고천자국 '치우천왕'이 속한 왕조인 배달국 즉 '구리국'을 말합니다.
이 강역도는 지나사서 25사등과 고려,조선사서의 연구결과 입니다.
아래의 또 다른 강역도와 비교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한반도에 위치한 낙랑국은 한사군의 낙랑군이 아닌 최씨 낙랑국으로 우리민족이 세운 국가입니다.
열국시대(列國)지도를 보게 되면 지나 동해안 고구려 밑 예(濊) 좌측에 위치한 곳이 바로
낙랑군의 실제 위치입니다.
倭 역시 지나 25사와 삼국사기 등을 분석할 때 현재의 일본열도에 위치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일본열도는 고조선과 고려(고구려)의 땅이었다가 후에 백제의 담로가 됩니다.
그리고 明이 건국하면서 주원장에 의해 대륙 倭의 역사를 하사받아 차용하게 됩니다.
지금은 너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백제는 대륙에 있었고
한반도의 백제는 22담로 중 하나라는 것이 실제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 지도의 4세기 초에서 5세기 중반의 고구려의 강역은 실로 엄청났으며
이시기가 실제로 우리민족의 통일시기였습니다.
이 고구려의 영향력은 이후에도 지속되어 7세기 당태종이 연개소문에 쫓겨서
강소성의 염성 건호현에 있는 한 우물에 숨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몽롱탑의 전승과 설인귀 응징 전승은 지금도 지나 강소성일대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고
그들의 경극에도 반영되어 지금까지도 공연되고 있습니다.
당태종이 우물에 숨어 들어 연개소문의 추적을 피했다는 강소성 건호현의 몽롱탑
이런 민간전승은 역사를 왜곡한다고 해서 숨겨지는 것은 아니라는데 지나측의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식이 있는 지나 학자들이나 정치가들은 지나의 역사는 조선의 역사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이가 주은래 전 수상이지요.
즉 5세기 중반에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를 부용국으로 두는 통일을 하고 후에 백제와 신라가 복국을 하며
그 시기에 광복백제와 광복신라가 한반도에도 담로형태와 분국형식으로 반도백제와 동신라를 설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백제의 왕년표는 대륙백제와 반도담로가 뒤섞여 뒤죽박죽이지요.
신라도 왕호가 여러번에 걸쳐서 바뀌는데
이는 대륙신라와 동신라의 계보를 한데 섞어 뒤죽박죽으로 기록한데서 오는 혼란인 듯합니다.
특히 마립간으로 불리워진 신라의 수장칭호는
즉 '간'은 고구려의 지방관리에게 불려지던 호칭이라는 점에서
최씨 낙랑국 이후 5세기 중반까지 한반도는 고구려 땅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강력했던 고구려는 7세기 경에도 연개소문 당태종전승에서 보듯이 지나 강소성 영역까지
그 판도에 넣고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는 것입니다.
고구려는 광개토대제 때 티벳지방까지 경략했다는 사실이 지나 25사에도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그 최대판도는 상상을 절할 정도입니다.
[古朝鮮의 강역-지리 이해를 돕는 지형도]
위 지도에 보면 '북해지우(북해의 모퉁이)'라고 쓰인 곳이 고조선의 강역의 중심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고조선의 위치가 만주일대이거나 발해만 근처(산해경의 '동해지내북해지우'라는 기록을 오늘날의 개념으로 지나쪽의 동쪽바다 즉 서해바다의 북쪽인 발해만 근처로 지레 비정한 식민사학의 관점)라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대단한 차이가 있습니다. 저 강역은 현재의 산서성일대와 하북성일대를 포함해서 지나 동해안인 산동일대, 내몽골, 요동 , 만주 및 한반도 일대를 다 포함하는 엄청난 크기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현 내몽골 자치구에 있는 홍산에서(구리국 또는 배달국) 비로소 시작된 문명은 초원 고지대를 타고 고조선으로 이어져 서남.동남으로 퍼져 나갑니다. 아래 산해경의 맨 우측 문장 첫머리에서 '東海之內北海之隅有國名曰朝鮮(동해 안쪽 북해 모퉁이에 나라가 있었는데 그 이름을 조선이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이 산해경에 기록된 나라가 바로 단군조선이며 후세에 근세의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 부르기 시작한 고조선이지요.
위 지도상에서도 보았지만 동해,남해,북해를 현재의 바다로 대입하면 큰 오산입니다. 당시 황하는 바다로 불렸습니다. 3000년 전 이상에 쓰이던 한자를 모아놓은 금문에 보면 '海'라는 한자는 현재와 같은 '바다'의 의미가 없고 후대에 'sea'라는 의미가 부가된 경우입니다. 고조선시대는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이상의 시기이기 때문에 '海'가 현재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금문에 보게되면 海(해)자의 원형은 놀랍게도 바다를 뜻하는 글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을 뜻하는 글자였습니다.
-晉 郭撲(진나라 곽박)의 <山海經> 원문-
[淮南子(회남자)에서 古朝鮮 위치]
회남자의(우측 기록) 古竹國(고죽국)은 山西 西南端에 있고 그 북동쪽에 갈석산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나측의 왜곡으로 갈석산이 요동으로 조작되어 잇습니다. 즉 동이족의 나라이자 고조선의 제후국이던 고죽국의 위치를 요동으로 왜곡해서 고조선의 강역을 축소하려는 지나측의 의도입니다.
또한 北海,東海는 바로 산서성 서안 기준이므로 당시 대해의 개념은 희박하여 나올수 없고 黃河라 판단합니다. 즉 지도상에 표기된, 보통 강단사학자들이나 지나측이 주장하는 고조선의 위치에 대한 기존의 학설을 주장하기 위해 동해는 지나 산동반도 부근의 바다를 말하고 북해는 그 위인 발해만 근처로 비정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여하튼 산서성 갈석산 남서쪽에 있는 고죽국은 한식의 기원으로 유명한 백이숙제의 나라이고 그들의 묘가 있습니다. 즉 한식의 오리지널 저작권은 동이족의 나라인 고죽국에 있고 그 상속인은 우리 한국인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나에 대한 사대가 심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민족이 만일 집단무의식 속에 백이숙제가 동이족이라는 각인이 없었다면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정성들여 한식에 성묘를 갈까요? 즉 백이숙제가 지나족이었다면 우리는 한식을 그렇게 정성스레 계승하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지도상 우측 상단의 요동지방의 碣石(갈석)은 허구이고 좌측 중단의 바로 산서성 북동단 오대산 좌측 恒山(항산)이 원 갈석산(위 지도에서는 빨간 장방형 네모칸에 喝石山으로 표시된 곳)입니다. 갈석산은 소위 허구의 한사군위치를 비정하기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곳입니다.(이 카테고리에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 정정한 포스팅이 있으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클릭] 낙랑군은 산서성 남부였다. )
또한 浿水(패수) 즉 친일강단사학에서 말하는 대동강이 패수라는 것은 허구이고 패수는 지나 산서성에서 하남성으로 내려가 황하와 만나는 沁水(심수) 혹은 瀧水(용수) 부근입니다.
[이덕일/김병기 교수의 고조선 강역도]
<전체로서의 고조선 강역-위>
이덕일, 김병기교수는 위와 같이 이병도의 고조선의 영역해석에서 진일보하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하북성 서쪽과 남쪽이 축소되어 그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덕일, 김병기 교수는 위와 같이 이병도의 고조선의 영역해석에서 진일보하고 있고 정확한 싱증유물의 출토를 근거로 해서 학설을 세웁니다. 그러나 '요서문명' 즉 현재의 하북, 산서성까지의 고조선 유물, 문화출토와 산동성 이남의 고조선 유물을 지나가 숨기고 은폐하고있다는 것을 간과할 때(그리고 지나는 연나라와 제나라의 초기영역을 하남에서 하북으로 고의로 끌어 올림)실제로 고조선 영역은 실로 어마어마하게 클 것이고 그 영역은 지나대륙의 70프로 이상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패수=열수=난하=조백하로 본다면 그 서쪽까지가 고조선 강역입니다.
[김종서 교수의 위만조선-한나라 전쟁도]
김종서 교수는 강단사학자로서는 드물게 친일사학자들에 맞서서 독자적으로 학설을 펴는 사람입니다. 아래 위만조선과 한나라의 전쟁을 그린 지도인데 비교적 팩트와 근사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위 지도상에서 고조선의 제후국에 불과한 위만조선의 영역이 너무 크고 위치도 더 서쪽으로 옮겨가서 패수와 위수 중간 지역에 위치해야 하지만 비교적 정확한 衛滿朝鮮과 漢과의 전쟁루트를 보여주고 있으며 漢육군은 태행산맥 고지대에서 동단에 산서성 계곡 저지대로 빠져나와 패수방향으로 진공했을것이고, 수군은 汾水를 통해 황하하류로 나와서 浿水로 진공하였을것 입니다.
지리지식을 알고 있어야 추론이 가능합니다 ,산동성에서 수군이 출발하였다거나 산동성에서 한반도로 출발하였다는 것은 군사전략가에게 물어보면 즉시 해답이 나오는 바보같은 군사전략입니다. 바로 병참이 연결이 안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군사전략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경험의 산물이며 당시 자연적 지형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수군은 이 전쟁에서 참패해서 참전한 6장수가 기시형(사지를 찢어죽인후 성안에 버려둠)을 한무제로 부터 당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누가 전쟁에서 승전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수있겠지요. 사마천의 '사기'는 조작된 것입니다.
아래는 고조선시대 부터 조선조까지 현재 발견된 지나 25사에 비정된 한민족의 영역을 분석하고 위에 소개한 강단 및 재야사학계의 연구성과를 망라하여 구성한 우리민족의 강역고입니다.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면 개정은 계속될 것입니다. 본 영토도는 왕조 점유지역의 누적 합계 입니다. 단 몇 개월이라도 점유했다면 그나라 영토에 포함됩니다, 위 우리민족사 연구회의 강역도와 비교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가는 세월
그 시간이 아까워서
매일 경험적인 치유의 일(사랑)그거 맛보기 합니다
아침 점심 저녁 밤 매일 마련으로 찿아 먹습니다.
일이 약이다라는 음식상 차림으로 먹음어...
존중감을 지식으로 확인해 나아가지요
또 그 시간에 복종 하다보면 덤으로
"복'이라는 돈이 많이 생기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 돈을 빠른 속도에 썼을 때에 만이
알아차림 그 '부'가 채워져서 부자입니다.
우리는그러한 순환으로 성인이 드러나는 시간을
쓴 것이고 또 반복하는 힘 빠르게에 속한
나타나는 변화의 속도로 삶을 재지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빈 공간의 에너지 파동 생명체를 통한
즉시 교양된 느낌이 소통하고 있는 물질입니다.
우리는 이 과정에 비로서 지식이라고 말하며
문제와 답을 찾아 홀로그램 마음이 오지요.
이처럼 나타나는 영'과 생겨나는 몸
파동과 진동기능으로 움직임을 여의는 꽃이랍니다.
오늘도 언제나 늘 있는 시간이란 스승 성인앞에
진리의 맛으로 방긋 웃는 꽃이랍니다.
한 번을 보면 다 알아버리는 속마음,
감추려하는 아픔과 숨기려하는 절망까지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고...
화들짝 반갑기도 하고 어렴풋이
가슴에 메이기도 한 우리
사랑하기 두렵고 어렵고
그리워 하기엔 목이 메이지요...
인연이란?
모른 척 지나치기 엔 서로에게 할 일이 아닌것 같고
마냥 지켜보기엔 너무 안스럽습니다.
하지만 산다는거 실수없이 공부가 되어지나요
조심조심 오늘도 무사히 그것이 문제 입니다.
죽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세계가 바뀔 뿐입니다.
시간이 흘러가는 발견(성인)으로 '도'가 채워지게
자연이 파동하는 순환으로 미리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변화해 가기 위해 흘러간다.
그 무엇인에 계속 거듭 반복하는 발견에서
경험이 채워지는 차원이다.
전자 에너지의 파동과 진동 차원에 있어야 성인입니다.
오직 지움으로 살아나고 다시 나타나는 재 지각의 반복이면
몸(물질)은 기능하고 파동(성장)을 격도록 자체입니다.
우리의 다가오는 매 순간은 나 자신 그 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습니다.
단지 생각에 따라 좋고 나쁨이 결정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곳 마음이라는 의식입니다.
어떻게 파동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내 생각과 행동이 좋으면 좋은 일이, 나쁘면 나쁜 일이 생깁니다.
안주하는 마음이 정체성으로 서있는 시간을 쓰게 살면
그 순간 마음은 시간과 멀어진 것,
무엇이든 어렵고 힘들어 안주하는 마음(종교)에 빠집니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그 구성성분을 분자,
원자를 지나 소립자, 미립자 차원까지 들어가 보면
입자 또는 파동들이
보는자의 생각과 의지에 반응하여
출현.이동.변형.소멸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데,
살아 있는 의식에 반응한다는 것은
그 역시 살아 있는 의식체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장 큰 감옥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감옥은 사회의 규범을 가르치는 것이 전부입니다.
옮고 그름, 도덕과 비도덕,좋은 것과 니쁜 것,
건전과 불건전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혼돈이 없는 영역이란 것을 만듭니다.
그렇게 인식한 믿음의 영역안에서 삶을 살아가고..
그 안에서 말하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당신이 평범하다고 판단하고
그대로 놔듭니다.
하지만 일단 그 영역에서 한 발짝 나오면
그 땐 당신은 특이한 사람이 되기 시작합니다.
철인이 한일은
전 인류를 교도소 장으로 만든 것입니다.
누구라도 평범한 영역을 벗어나
튀어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밝아 버립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그 혼란이 없는 영역에서 조금 벗어나려고 활 때
당신은 생각을 합니다.
내가 만약 이렇게하면 사람들이 워라할까?
안돼..!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가 어떻게 생각하실까?
혹은 친척이나 직장에 있는 사람이 뭐라고 말 할까?
그 철인들이 만들어 한 일은
서로에게 규범을 부과하는
절대적인 군인들을 만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절망스러운 환경의 세상을
창조와 사랑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 고요상태 제로 지점에서
각각 나선형 물체계에 중앙에 노여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저 모든 사람이
토로스 에너지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 고요함을 중심에두고
우리모두가 서로 살아있는 우주
무한한 의식속으로 영결되어야 합니다.
세상이란!
그 경험들로
진리를 맛보도록 내몸에 신성으로 와 있습니다.
몸은 죽임 뒤에도
영 "핵 원자"는 한결같이 살아 있습니다
태양에 의한 에너지로 만물이 빛의 수호자입니다.
지극히 한정된 생을 반복으로 격도록
그렇게 인성은 인격으로 지성체 입니다.
따라서 몸속 자기 부정적 경험을 통해
몸에 신성이 미리 나타나 있는 진화의 과정 입니다.
태양이 움직이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지구생명도 힘든 움직임을
좋와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자의 파동에 숨쉬고 격는 성장이며
퇴화됨으로 유지하는 발견은
미리있는 과정에 진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 움직임을 여임으로서
경조억겹의 통로에 자연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실재와 실체가 성장하여 어버이를 만듭니다.
인간이 천체 그 지성이 유지됨에 따라
인성에 채워지는 과정에 파동하는 몸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은 채우기 위해 베푸는 스승입니다.
신의 현원으로 몸이 격는
움직임에 긴장하도록 숨도 있는 것입니다.
실체 생명은 나선형 움직임으로 나타납니다.
실체 핵원자는 영 존재로 순간이동 합니다.
태양이 반복하는 시간에
일백만년을 이천오백번 지나면서
움직임을 먹음는 빛의 찰나에 반복 했습니다.
자연이 펼처지는 일상에 움직이도록 도구로
실체는 지성체에 이르도록 영이 있습니다.
복사로 돌고있게 진동이
빈 공간 전자파동은 있습니다.
죽음 뒤에도 계속 윤회가 나타나는 핵원자
현미경으로도 잘 나타낼 수없는
00000000000000000000.1 핵에너지,
실재는 실체로 찰나에 반복합니다.
따라서 죽음은 없습니다
백만년이 2500번을 지나며
항성과 행성이 없어지고 나타나는 이유의 관계
빛 까지도 다스리는 암흑 물질이 있고
번복하는 평창 에너지라는 것,
불랙홀이 또다른 우주를 복사히는 것 처럼이다.
나도 태양도 지구도 홀로그램 입니다.
그렇게 평창하기위해 복사되는 실체 우리는
지금 이곳에 있지만
또 다른 우주 어느 곳에나 또 다르게
미리 있는 순간이동에 실재라는 것입니다.
없어야 있는 능력 보도록 실재라는 것입니다.
진동과 파장에 맞춰진 그 광자대 우리에게는
힘든 날은 없습니다...고로 죽음도 없습니다.
다 그런 날이 있도록 반복하는
일이 있을 뿐 입니다.
"노동이 없는 돈이 정신을 궁핍하게한다"
끄러당김의 힘으로 부드러워지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엄청난 기회는 그렇습니다.
다 마련으로 차려진 것입니다.
000000000000000000000000.1
수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생각은
각기 다른 주장으로 여러 문재를 겪 습니다.
거듭하는 빈 공간의 개념.
사라짐을 반복하며 나타나는 힘
우리 몸 속에도 있고
지구에도 태양에도 우리 일상에도 있습니다.
빛이 우연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
따라서
신을 위해 선량해 지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성체인 나 자신을 위해 선량해지면
신들이 내 속에 있기 때문에
나는 저절로 선량해 집니다.
한번 배우고 지워야 또 다시
재 지각을 반복 격도록 되는 지식입니다.
숨쉬는 것으로 살아왔고
계속 그렇게만 살도록 반복하는 생명입니다.
몸은 배풀기가 있어 채워지는 영의 도구입니다.
- 홀로그램 인생-
몸이 컴퓨터 본체라면
영은 기억장치 해드디스크 입니다.
덕은 인위적인 덕이 아닙니다.
최상의 덕은
덕을 의심하지 않음으로 덕이 있는 것이고
정도가 낮은 덕은 덕에 매여있기에 덕이 없는 것이다.
최상의 덕은 무위여서 자연스럽고
정도가 낮은 덕은 유위로서 부자연 스럽다.
인은 유위로 자연스럽고
의는 무위며 부자연 스럽습니다.
사회의 예는 유위이고 그 예는 반응이 없으면
팔을 걷어 붙이라고도 예을 든다.
무위자연의 도가 사라지면 무위자연의 덕이 나타나고
무위자연의 덕이 사라지면
인위적인 의의 도덕이 나타나게 되는데...
인위적인 의의 도덕이 사라지면
인위적인 예의 도덕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의 도덕이라고 하는 것은 참다운 마음이 엷어진 것이며
세상이 어지럽게 되는 시초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을 미리 내어보려는
예와 지, 그 지식은
도의 알맹 없는 겉치레와 같은 것,
나 존재를 어지럽고 못나게 만들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다운 사람은
예와 지를 버리고 도을 택하는 것입니다.
"도'의 길
도의 길은 하루하루를 게으르지않게 일하며
움직임으로 오는 복 그 돈을
나를 없애는 데 씁니다.
나눔의 경험이 채워질 때 "도"가옵니다.
없애가는 것
없애고 또 없애 수치심도 이기고
또 이기면
함이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 입니다.
함이 없는 지경에 이르면
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결핍 덩어리였던 나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
어머니, 아버지, 가족 친지, 여러공동체,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여자,여자,여자,
결핍자아 바보의 성장 나에게
수치심을 견디고 참을 수 있도록 있었던 것은
모두다 공부가 되라는 과정이였습니다.
그토록 그렇게 고맙게
나를 아프도록 했던 것이 있었기에
삶을 소중하게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이런 말도 전하게 됩니다.
이제 그동안의 인연 모든 분에게
진정한 인격의 가치를 세워 가겠습니다.
노동이 없는 돈 때문에
정신은 파멸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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