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수교~늦은배넘이~장구넘이~배너미산~방림재~임하교
평창강이 평창읍에 들면서 산 하나를 얼싸 에돌며 태극문양을 그리느라 된통 곤욕을 치른다. 이렇듯 강을
크게 돌아 흐르게 하는 땅덩어리에는 분명 이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립지리원 발행 지형도에는 그 이름이 없다. 혹시 마을 지명에서 산 이름을 찾아낼 수 없을까 싶다. 장수하는 사람이 많은 다수(多壽), 물이 많아서 다수리(多水里), 숲이 울창한 임하리(林下里), 용의 목처럼 생겼다 하는 용항리(龍項里).
지난달(사람과산, 2002년 7월호, p96~103 참조) 합천쏘에서 시작하여 주진교에서 마감한 평창강 백패킹 때 신승하씨(평창읍 사무소)에게 배너미산이란 이름을 알았다. 그러나 어째서 배너미산이라 부르는 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그저 막연하게 태초 고리짝 시절 물난리가 날 때 배 한 척이 걸려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뿐이다. 답답하던 참에 다수리 앞에 앞담, 뒷담이란 지명이 있는 것을 알았다.
'담'은 울타리 또는 언덕빼기란 뜻이며, '담'을 한자로 '土不'(뒷담배, 언덕배)라 하니 배너미산이 된 것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배너미산은 다수리, 용항리, 임하리의 북풍한설과 수해, 삼재도 막아 주는 아주 든든한 방패막이 구실을 하고 있었다.
평창읍은 고을 이야기 자료에 따르면 7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강원의 중심에 위치한 강과 산촌의 청청한 마을로, 강으로 시작하여 강으로 마무리 짓는 고을이다.
평창강(일명 사천강)은 평창군 방림면 방림1리와 경계인 평창읍 뇌운리를 시작으로 아시내~다수~물푸레~주산동~숲패~섭다리~미르목~주나루~뒷뜰~여만~섬암~천변~송정~종부~버들골~약수~정동~도돈~매화~달래~선동 같은 아름다운 마을 이름들을 탄생시키며 장장 일백여리를 흘러 영월 땅의 주천으로 흘러간다고 했다.
거기 들머리가 되는 아시내에 동서로 길쭉이 성곽처럼 터를 잡은 산이 배너미산이다.
취재산행에 몇 번 손발을 맞춘 신승하(50세), 고관춘(38세), 주춘옥(정선 노두산악회장, 45세), 김기현씨(태백 한얼뫼오름회, 35세)가 오늘 배너미산 취재의 일행이 됐다. 그리고 배너미산 지리에 밝은 전오규씨(평창읍사무소, 48세)가 등반대장이다.
평창 시내에서 북쪽으로 시루목을 넘어(우회 도로 있음) 31번 국도를 따라 1,5km쯤 후평리 들에서 201번 리도로(里道)로 좌회전하여 옥고개에 올라보니 평창강의 서슬이 아찔하게 발아래 장관이다. 그리고 평화로운 다수리, 임하리의 농가와 들판 뒤로 배너미산의 산행 들머리와 날머리를 천연덕스럽게 한눈에 보여준다. 앞서 가던 자동차는 산행 들머리로 정한 다수리로 가지 않고 임하리로 방향을 틀어 어느 농가 앞에 정차한다.
"우리 장모님 댁입니다. 산행하고 내려와 구수한 손칼국수나 한 그릇씩 합시다. 우리 장모님 '가수기' 만드는 솜씨는 근동에서 알아주거든요."
자동차를 돌려 평창강을 거슬러 암벽을 뚫은 터널을 빠져나가니 버스 정차장이 있는 다수교 앞이다. 1980년에 준공한 다수교를 건너 노인회관 공터에 주차하고 배낭을 챙겨 메고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길은 약 10년 전쯤 경지 정리를 하여 바둑판 같다. 직선으로 시원스럽게 뚫린 포장 농로를 따라 북으로 500m쯤에 길은 T자가 된다.
왼쪽으로 폐교된 다수초등학교 건물이 그대로 보인다. 산행은 오른쪽으로 봇도랑을 끼고 400m쯤 걸었을 때쯤, 도랑 가 위에 열린 자두, 살구, 까치복숭아들이 탐스럽게 손길을 유혹한다. 논둑에는 분재처럼 뒤틀린 노송 2그루가 있다. '다수지 59. R6' 라고 표기된 전신주 앞에서 왼쪽 슬래브 건물 쪽으로 진입하며 지금가지 따르던 농로를 버린다. 여기서 봇도랑을 건너 마을 길로 들어선다.
개 짖는 소리를 뒤로 하고 마을을 벗어난다. 주목, 옥수수, 콩밭머리에는 늙은 밤나무 한 그루가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일손이 모자라 내팽겨쳐진 묵 밭을 보니 서글프다. 비스듬히 드러누운 길을 올라서니 배배꼬인 소나무들이 빼곡한 가르고개(가루고개)다.
암말과 송촌 사이에 산줄기가 가로지르고 있어 가르고개라 이름이 붙었다.
장마철이라 날씨가 좌불안석이다. 아침에 비를 뿌린 하늘이 서서히 갠다. 들머리는 다수교가 해발 325m이고 가르고개가 해발 365m쯤 되니, 약 30분 동안 평지를 걸은 셈인데도 땀은 비오듯 한다. 평창읍내에서 사 가지고 온 메밀전병을 가르고개 소나무 그늘에 펴놓고 양념 간장을 찍어 먹으며 고개를 넘나드는 산들바람에 땀을 씻어 내고는 고개를 넘어가니 목장 같은 넓은 초원지대다.
"여기가 다수리 3반 뒷버덩이고 장구넘이골입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잠시 두루 살핀다. 잠시 후 공터에 삼지창처럼 세 가닥으로 길이 갈라진다. 산판 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 가운데 길로 들어서니 돼지감자 밭이고 잣나무 군락지다.
산판 길을 걸은 지 잠깐 사이에 또 사잇길이 나타나 뚜렷하고 넓은 길로 직진한다. 산딸기가 즐비하게 열려 있어도 모두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메밀전병 탓인가? 낙엽송 군락을 지나자 다시 잣자무 조림지대다. 그 사이로 숲속의 농가 한 채가 보이며 Y자 길이다. 가르고개에서 10분 거리다.
오른쪽 산제당 가는 길은 돌로 막아 놨다. 왼쪽 길로 올라가니 외딴 농가(해발 415m)가 오른쪽에 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외딴 농가를 구경하러 간다.
함석지붕에 대문도 없는 사리 울타리 마당에 들어서니 주인 김종상 할머니는 마실을 가셨는지, 서울 아들 보러 가셨는지 출타중이다. 가제 도구들이 모두 정갈하게 놓여 있고 텃밭에는 자급자족을 하시는지 잘 가꾸어 놓은 푸성귀에 야생화, 유실수며 없는 게 없다.
계속 길을 따라 외딴 농가에서 10분 거리에 이르니 장구넘이 골을 벗어나 묘가 있는 지능선을 슬쩍 넘어서더니 배안이골(원골) 상단부가 된다.
골에는 계곡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석축을 쌓고 철망을 씌웠다. 여기서 배안이골을 따르지 않고 건너 뛰어 늦은 배너미봉(750m)에서 중식을 푼다. 조심하지 않으면 도시락이 양편의 급사면으로 굴러 점심을 굶겠다.
남남서로 뻗은 능선으로 올라붙는다. 지금까지는 좋은 길로 호강을 하였는데, 이후부터는 고생길이다. 어릴 때 나무하러 다녔던 길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인적이 끊긴 밀림 지역이다. 오리나무와 가시덤불을 헤쳐 가며 그늘도 없는 된비알을 30분쯤 헉헉거려 능선에 닿으니 넓은 분지에 묘가 있는 늦은배너미재((해발 525m)다. 초지에는 둥글레도 보이는데 잎을 벌린 고사리가 온통 자리를 차지했다.
잠시 휴식을 하고 게속 능선을 따르는데 마루금을 중심으로 오른쪽 비탈지에는 나무가 모두 벌목돼 있다. 사람 키를 넘는 초지 발 밑으로 희미한 길이 보이나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아 길을 트기에 힘이 든다.
팔뚝은 손톱으로 할퀴어 놓은 것 같다. 그리고 햇볕을 가려줄 나무 한 그루 없으니 죽을 맛이다. 그러나 산행 내내 조망은 뛰어나다. 다수리 너른 들을 골골이 휘감아 흐르는 평창강 저편에는 수정산, 삼방산, 장암산들이 이젓하게 날개 죽지를 편 모습들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고도를 높여 나아가니 초지가 끝나고 늦은배너미봉 턱 아래 된비알이다. 소나무와 뒤엉킨 암릉의 나이프 리지를 잠시 통과하니 신갈나무가 들어찬 중앙에 바위와 노송 한 그루와 고사목이 있는 늦은배너미봉(750m)이다. 어짜다 늦은배너미재에서 오는데 1시간이나 소요됐다.
나무에 가려 조망도 없는 뾰족한 봉우리를 동쪽 능선을 따라 내려가니 급경사다. 첫번째 암봉을 조심하여 넘어가니 곧 두번째 암릉이다.
음침한 바위를 오른쪽으로 우회하니 장구넘이(해발 688.5m) 안부다. 750봉에서 30분 정도 소요된다. 장구 허리처럼 생긴 바람 한 점 없는 장구넘이 안부에서 중식을 끝내고 10분쯤 오르니 삼각점(평창 303, 89복구)이 있는 배너미산(730.9m) 정상이다.
동남쪽으로 조망이 트이나 강렬한 태양 볕에 정상을 빨리 탈출해야 했다. 동쪽 능선을 계속 따르니 땅에는 길 흔적이 보이나 어깨 위로 나무 가지를 헤치고 나가니 산행 스타일을 구기고 만다. 대간 종주도 정맥 종주도 이런 고행은 없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멋진 조망을 보여 주는데 인색하지 않는 주능선이다.
자그마한 720.2m봉과 712.7m봉에 이르니 능선이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 능선으로 내려가고 싶으나 왼쪽 주능선으로 게속 산행하기로 한다.
바람 한 점 없다. 나뭇가지는 얼굴을 때리고 모자를 벗겨 간다. 약 40분쯤에 방림재(해발 628m) 안부다. 여기를 넘어 방림으로 가는 고개라 하여 방림재다ㅣ
안부 오른쪽으로 내려서니 덩굴이 길을 막는다. 엣길 흔적은 있으나 그 흔적을 그대로 따를 수 없도록 숲이 들어 찼다. 오른쪽 옆으로 옛길을 가늠하며 머루, 다래 넝쿨 터널을 헤집고 더터 나간다. 진정 오지산행의 진수를 맛보며 40여 분의 고초를 겪으니 큰골과 섭다리 마을의 진골 사이의 안부인 작은 방림재(해발 469.3m)다. 고개에는 경운기가 다닐 수 있고 철탑을 표시로 삼기에 좋다.
길에는 억새와 비슷하게 생긴 소가 제일 좋아하는 풀이라 하여 안들미 또는 쇠이밥이라 하는 풀이 자라고 있다. 오른쪽으로 경운기 길을 따라 10분쯤에 통나무 황토방 건물이 들어서 있다.
임하리의 들판을 내려보며 걸으니 농수로가 절벽을 타고 소리를 지르며 지난다. 그곳의 곶집(해발 315m)을 보며 논둑을 지나 마을을 뒤로 한다. 아침나절 전오규씨가 장모님게 부탁한 가수기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서녘 하늘에 노을이 낄 때쯤, 소가 새김질하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두레반을 펴서 고추찜, 열무김치에 가수기를 먹으니 구수하게 절로 목을 넘어간다.
*교통
평창버스터미널(033-332-2407)에서 다수리, 계장리, 하일리 가는 버스가 하루 5회(07:00, 08:30, 13:30, 17:30, 19:30) 있다. 개인택시는 고영배(016-9331-2306), 전원석(011-373-2493), 평창택시(033-333-9700), 개인택시 사무실(333-4000)이 있다.
*잘 데와 먹을 데
전오규씨 장모님댁 임하리 홍원기씨 민박(033-336-3138, 011-9827-3130), 임하리 이장 나복주씨 민박(336-3144, 018-345-3144), 계장리의 하얀나라 민박(335-3121, 017-376-3121), 백오파크(333-6622), 다수가든 민박(332-3330), 다수 노인회관 민박(336-3329), 다수리 이진호(335-9633), 청성애원(332-0350), 솔내음 황토방민박(333-4748), 노골뱅이?나해장국!(333-8535), 노성회관(333-4662). [사람과 산] 02. 8월호
*****************************************************************************
참고:월간<사람과산> 2002년 8월호
*********************************************************************************** 선암산을 찾아 올라가는 쉬운 길은 호계면 부곡리를 찾아와서 부곡마을과 삼실이라는 동네를 지나 부운령으로 오른다. 그 다음 마성면 외어리 보림골(늘목골)로 연결되는 잘 닦인 임도를 따라 부운령 고갯마루에서 북쪽으로 가면 배나무산(선암산)과 단산까지 갈 수 있다.
삼실에서 부운령 정상까지는 1시간 정도가 걸리고 다시 산능선을 타고 급경사길로 노송과 어우러진 바위를 돌아 1시간 20분 정도를 가면 배나무산(선암산) 정상(813m)이며 단산이 눈앞에 보인다. 배나무산에서 능선길로 1시간쯤 내리고 오르면 단산 정상이다.
잡목이 덮여 있고 조금 평평한 길을 따라 운달산쪽으로 15분쯤 가면 달밝골로 내려설 수도 있으나 능선을 타고 잡목을 헤치며 1시간 정도 가면 산북면 석봉리 굴골에서 문경읍 당포리로 내려가는 고개인 조항령에 도착할 수 있다.조항령에서 석봉까지는 40분정도가 걸린다.
버스종점,느티나무 수호신 있는 ‘삼실’마을로 올라
산행 시작점을 호계면 부곡리 쪽에서 잡을 때 산행들머리는 부곡리의 노인회관 앞 버스종점이다. 버스종점에서 내리면 배나무산(일명 선암산·813m)의 남쪽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늙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마치 수호하는 것처럼 지키고 있는 삼실마을에는 모두 17가구가 살고 있다. 배나무산과 오정산을 잇는 높은 능선이 북녘의 찬바람을 막아주는 남향 산자락의 삼실마을은 어느덧 입춘이 지나 과수원에는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트리는 봄이 성큼성큼 다가와 따스한 봄볕이 눈부시다.
길은 순현농원을 왼쪽에 끼고 비포장임도를 느긋하게 오르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의 과수원 길을 거쳐 다시 4번 도로와 만나게 되고 부운령 고갯마루에서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서면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부운령 고갯마루에는 문경시에서 세워 놓은 이정표가 있다.
굵은 노송과 바위가 어우러진 멋진 능선 길을 걸어가다 보니 아무래도 813봉은 배나무산이 아닌 이 지방 사람들이 부른다는 선암산(禪岩山,仙岩山)이란 이름이 옳은 것 같다. 예전 큰 홍수때 이 고개로 배가 지나다녀 ‘배너미산’이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하지만 선암리, 부곡리가 환히 내려다 보이는 이 산의 남녘 자락 지명이 선암리며 노송이 우거진 멋진 바위들이 신선들이 노닐었다는 신선바위을 연상시킨다.
선암산 신선들이 하늘에 제사 올리던 거대한 ‘하늘제단’인 듯
이 능선을 지나는 많은 등산객들이 이구동성으로 선암산이 타당하다는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하니 앞으로는 선암산으로 표시되리라 생각된다. 능선 길 왼쪽으로는 웅장한 단산의 모습이 눈부시다. 단산의 모습을 자세히 바라보니 800m에 달하는 정상부위의 평평한 산세가 푸른 하늘에 제단을 펼쳐놓은 것만 같은 형상이라 어쩌면 이 곳 선암산에 살던 신선들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하여 쌓은 거대한 하늘제단 같다.
때문에 ‘제단’이란 뜻의 ‘단산(壇山)’이 누군가에 의해 ‘박달나무’란 뜻의 ‘단산(檀山)’으로 슬그머니 이름이 변한 것 같은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선암산 정상을 조금 못 가면 산불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죽은 소나무가 그리 많진 않았지만 시커멓게 그을린 나무를 보니 무척이나 가슴이 쓰리다. 지각없는 사람들의 사소한 실수가 몇 백년을 한자리에 서서 열매를 맺고 사람과 짐승에게 지대한 도움을 준 고마운 나무에게 치명상을 입히게 되니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산불예방에 각별히 노력하여야 한다. 부운령 마루에서 한 시간이면 배나무산 정수리에 올라선다. 멀리서 보면 소나무 모자를 쓴 아름다운 산세의 배나무산 정수리에는 신기산우회서 세운 정상표지가 있다. 신선이 내려와 노닐 만큼 아름다운 청산에 가려 정상은 소나무들이 들어차 있다.
선암산에는 배너미산이란 정상표지판이
서쪽에 우뚝 솟은 단산을 향하여 능선 길을 좇는다.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은 주능선에는 크고 작은 짐승의 발자국이 수두룩하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연유이리라. 이 산이 소개되고 나면 평화롭게 살던 길짐승들에게 큰 죄를 짓게 되는 것 같아 두 손을 모아 합장해 본다. 부디 사람과 짐승들이 서로 해치지 않고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잘못으로 잃어버린 태초의 그 낙원을 다시 찾는 복락원의 그 날이 하루속히 이 땅에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배나무산에서 1시간 남짓하면 단산의 정수리에 닿는다.
제단에 오르는 제관처럼 조심스럽게 옆길을 돌아 오른 단산의 정수리에는 신기산우회서 세운 정상표지인 이정표가 있다. 작은 소나무 한 그루에 달아놓은 표시기가 봄바람에 나풀거릴 뿐, 흔히 보아오던 정상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어쩌면 이 제단은 산을 사랑하고 조국의 산하를 사랑하는, 우리 산행객들의 뜨거운 열정을 모아 겨레의 영원한 번영을 기원하며 천지신명께 하늘의 가호를 비는 엄숙한 제사를 올리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이 단산의 아들, 딸이 되는 것이 오정산과 봉명산이며 멀리 백화산, 조령산, 주흘산의 서쪽 조망이 눈부시고 북동쪽의 조망 또한 빼어나다. 단산의 어머니산인 운달산과 단아한 모습으로 하늘을 받치고 있는 천주산의 빼어난 산세, 또한 그 너머로 눈덮힌 소백산의 웅장한 산세가 산정무한으로 빠져들게 한다. 긴 하산 길을 고려해 서북쪽 능선으로 산길을 이어간다. 운달산을 잇는 능선 삼거리에는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이 손에 닿을 듯 다가온다.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을 지나 내려서면 화장실과 주차장 있는 임도이고 곧장 지나 능선으로 가다보면 폐광함몰지도 나오며 15분 정도 더 가면 조항령 옛고개에 닿게 된다. 당포리쪽으로는 임도를 포장하고 있고 석봉리쪽은 포장이 되어 있는데 40분 정도 걸린다. 당포리쪽이 더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