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턱수염 도마뱀©위키 커먼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포유류에서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구분은 성염색체에 기반한다. XX는 여성, XY는 남성이며, 부모님에게서 받은 성염색체의 조합에 의해 결정된다. 조류와 일부 파충류, 곤충의 경우에는 ZW가 암컷, ZZ는 수컷이다. 역시 부모에게서 받은 염색체 조합에 의해 결정된다.
온도에 의해 암컷이 되는 동물들
이에 비해, 일부 어류와 악어, 거북이 등의 파충류들은 알에서 부화하기까지 노출된 환경의 온도에 따라 성이 결정되는 흥미로운 체계를 갖고 있다. 그 정확한 메커니즘은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칼슘 시그널링을 통해 외부의 온도를 감지하는 세포 기작이 있어 이것이 작동되면 성적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조절 경로를 식별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것으로 가설이 제시된 바 있다(이하 ‘CaRe가설’). 이는 칼슘 시그널링과 후생 유전학적 작용의 연결 고리를 암시하는 것이다.
최근 ‘플로스 제네틱스’에 발표된 연구는 중부 턱수염 도마뱀(Pogona vitticeps)을 모델로 온도에 따라 유전적으로 수컷인 개체가 암컷이 되는 유전자 조절과 발달 과정에 관련된 기작을 밝혔다. 중부 턱수염 도마뱀은 유전적으로 암컷(ZZ)과 수컷(ZW)이 구별되어 있지만, 발생 단계에서 섭씨 32°C에 노출되면 암컷(ZWf)이 되는 특징을 갖는다.
연구진은 CaRe가설을 실험으로 검증하기 위해, 2017~2018년 사이 번식기 때 모은 40개가량의 중부 턱수염 도마뱀의 알을 이용했다. 온도에 의해 암컷이 된 개체들(ZZf)과 수컷 사이에 낳은 알과 유전적으로 암컷인 개체들(ZWf)과 수컷 사이에 낳은 알로 구분했다. 전자에 해당하는 알은 유전적으로 엄마(ZZf)와 아빠(ZZm) 사이에 생긴 것으로 모두 ZZ 유전형, 즉 유전적 수컷들이 된다. 연구진은 이 알들을 36°C에서 발달시키고, 엄마(ZWf)와 아빠(ZZm) 사이에 생긴 알은 28°C에서 발달시켰다. 전자의 알은 온도에 의한 암컷(ZWf)으로 유도하고, 후자의 알을 유전형대로 발달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이후 배아의 발달 단계에 따라, 생식선이 발달하기 이전 단계(6단계)와 조직의 분화와 발달이 시작하는 단계(12단계), 생식선이 분화를 마치는 단계(15단계)로 차례대로 구분해 단계별로 알을 여러 개씩 채취했다. 이는, 발달 단계별로 생기는 변화를 비교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특히, 칼슘 시그널링에 관여하는 유전자들, 온도에 반응하는 열충격 단백질(heat shock proteins)을 코딩하는 유전자를 포함한 특정 유전자의 발현 상의 차이를 보이는지와 같은 여러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서였다.
연구 개요를 보여주는 논문 그림©Whiteley et al. 2021 (수정)
난소 발달은 ZWf와 ZZf 모두 발달 초기에 완성
연구 결과, 연구진은 생식선이 분화하기 전인 발달 단계 6과 12 사이에 유전적 암컷 ZWf는 유전자의 발현 양상이 크게 달라진데 비해 단계 12와 15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난소 발달이 초기에 거의 완성된다는 의미로 연구진은 해석했다. 포유류 수컷의 발달에 관여하는 SOX9과 GADD45G와 같은 유전자는 하향 조절(더 적게 발현)되었고, 암컷의 발달에 관여하는 PGR, ESR2 등의 유전자들은 상향 조절(더 많이 발현)되었다.
온도에 의해 암컷이 된 ZZf의 경우에도, 유전자 발현 양상은 초기(단계 6과 12 사이)에 변화가 많았고, 후기(단계 12와 15 사이)에는 발현의 차이를 보이는 유전자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ZWf와 마찬가지로 난소 발달이 초기에 거의 완성된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 다만, 암컷의 발달에 역할을 하는 NOTCH 신호전달 경로와 연관된 유전자 일부는 상향 조절이 되어 있지 않아 ZWf의 경우가 난소 발달이 더 빨리 이루어질 것으로 연구진은 추측했다. 더불어, ZZf에게서는 발달 초기에 수컷의 발달에 관여하는 유전자 일부가 상향 조절되어 있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CaRe가설에 부합하는 결과
한편, 연구진은 난소 발달 경로를 더 자세히 알기 위해, ZWf와 ZZf의 발달 단계별 유전자 발현을 비교했다. 발달 초기 단계에서 이 두 암컷 사이의 큰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단계 6에서 차이가 가장 두드러졌고, 단계 12와 15에서 점차 적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이것은 ZZf가 높은 온도에 노출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발달 초기에 수컷으로 발달을 시작하다가 암컷으로 다시 발달하기 때문인 것으로 연구진은 해석했다. 특히, 발달 단계 6 시기에 ZWf와 ZZf 사이의 유전자 발현의 차이는 “산화-환원 과정”과 “세포의 칼슘 이온 수송”, “세포 항상성”과 같은 카테고리에 속하는 유전자에서 크게 나타났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CaRe가설에 부합하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온도에 의해 성별이 결정되는 시스템과 관련된 유전자와 그 발달 단계별 발현 양상을 측정해 비교한 첫 연구로, 이전에 제시된 가설을 뒷받침할 뿐 아니라, 온도에 의한 성적 발현이 발달 단계 초기에 이미 이루어진다는 것과 여러 관련 유전자를 특정한다고 연구진은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