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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주년과 성모 공경] 전례력 안에서 마리아께 대한 기념제
로마 전례의 개혁에 따라 보편 전례력(General Calendar)을 보면 그리스도의 모친께 대한 기념제도 당신 아드님의 신비를 기념하는 일 년의 주기 안에 매우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다(2항).
대림시기에는 구세주를 맞이할 근본적인 준비(이사 11,1.10 참조)를 하고, 한 점 흠이나 주름도 없는 교회의 태동과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기념하는 12월8일의 대축일 외에도 마리아를 자주 언급하게 된다. 12월17일부터 24일까지가 그러한데, 특히 성탄 바로 전 주일에는 동정이신 어머니와 메시아에 관한 예언들을 회고하면서 구세주와 선구자의 탄생이 임박했다는 복음 구절을 봉독하게 된다(3항).
그로써 전례에 따라 대림의 정신을 살아가는 신자들은 아드님을 기다리시는 동정이신 어머니의 그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을 생각한다. 그들은 마리아를 본받아 곧 오실 구세주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되는데 “깨어 기도하고 기쁜 노래로 찬미”할 것이 분명한다. 대림시기 전례는 메시아의 탄생과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기다리면서 아울러 그 어머니를 성대히 기념하기에, 예배에 있어 멋진 균형을 보이고 있다. 또한 전례학자들이 주목하였듯이, 대림시기 전례는 이 시기가 특히 주님의 어머니를 공경하는 데에 합당한 때임을 보여주고 있다(4항).
성탄시기에는 동정의 순결한 몸으로 구세주를 이 세상에 낳으신 마리아의 신적이고 구원적이며 순결하신 모성을 계속하여 기념하게 된다. 사실 교회는 ‘예수 성탄 대축일’에 구세주를 경배하면서 아울러 그분의 영광스러운 어머니를 공경하고 있다. ‘주의 공현 대축일’에는 전 세계가 구원으로 초대되었음을 기념하는 동시에, 동방박사들에게 만백성의 구원자를 경배하도록 하신(마태 2,11 참조) 복되신 동정녀께서 참된 지혜의 좌요, 왕의 어머니이심을 관상한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성탄 팔일 축제 내 주일)에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와 어머니 마리아와 의인 요셉(마태 1,19 참조)께서 나자렛의 가정에서 사신 거룩한 삶을 묵상하면서 깊은 존경을 드린다(5항).
성모님께 대한 기념제도 아드님의 신비를 기념하는 전례력 안에 유기적으로 배치
앞서 언급한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과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 외에도 3월25일과 8월15일에 지내게 되는 유서 깊은 축일들이 있다(6항).
말씀의 강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로마 전례력에서는 ‘주의 탄생 예고’라는 옛 명칭을 조심스럽게 되살리고 있는 3월25일의 축일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와 복되신 동정녀를 함께 기념하는 날이다. 즉 “마리아의 아들”(마르 6,3)이 되신 말씀과 천주의 모친이 되신 동정녀를 함께 기리는 축일인 것이다.
8월15일의 대축일에는 마리아의 영화로우신 승천을 기념한다. 이 축일은 마리아의 완전하심과 복되심, 동정의 몸과 흠 없는 영혼이 누리시는 영광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음을 기념하는 축제일이다. 따라서 이날은 교회와 전 인류에게 그 바라던 종국적인 희망이 실현됨을 보여주는 이미지와 위로의 증거를 나타내는 축일, 즉 “같은 피와 살을 지니신”(히브 2,14; 갈라 4,4 참조) 그리스도께서 형제로 삼아주신 모든 이들이 마침내 이 충만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임을 기뻐하는 축일이다.
‘성모 승천 대축일’의 기쁨은 7일 후 ‘여왕이신 복되신 동정 성 마리아 기념일’에서 계속된다. 이 기념일에는 영원하신 왕 곁에 좌정하신 엄위로운 여왕 마리아께서 어머니로서의 전구도 계속하심을 기념한다. 그러므로 이상의 네 축일은 주님의 겸손하신 여종 마리아께 대한 중요한 교의진리를 최상의 전례 행위를 빌어 정확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축일들 다음으로는, 복되신 동정녀와 그 아드님을 밀접히 결합시키고 있는 구원사건과 관련된 축일들을 특별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축일들에는 “온 세상의 희망이요 구원의 서광”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성탄을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탄 축일’(9월8일), “성자를 잉태하시고” 엘리사벳을 찾아가 친절히 봉사하시면서 구세주이신 하느님의 자비를 선언하신 마리아를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5월31일), 구세사의 결정적인 순간을 마음에 되새기고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당신 성자 곁에서 함께 수난하시는”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한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9월15일) 등이 있다. ‘주의 봉헌’이라는 옛 이름을 되찾은 2월2일의 축일도 그 풍부한 의미를 충분히 참작한다면 아드님과 어머니를 함께 기념하는 축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역적 신심, 탁월한 모범적 가치 등을 보이는 축일도 있어
이상은 개정된 로마 전례력에서 특히 강조하고 있는 축일들이지만, 지역적인 신심과 관련된 축일이 점차 널리 알려져서 중요성을 띠게 된 축일들도 있다(예: 2월11일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8월5일 ‘성모 대성전 봉헌’). 그리고 원래는 특정한 수도회들에서만 기념하던 축일들이 신자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이제는 참으로 교회적인 축일로 간주될 수 있는 축일들도 있다(예: 7월16일 ‘가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10월 7일 ‘로사리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또한 외경적인 요소는 차치하더라도, 탁월하고 모범적인 가치를 보이고 있는 축일들이 있는데, 이 축일들은 특히 동방에서 기원하여 유서 깊은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예: 11월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그리고 오늘날 부각되고 있는 신심 경향을 드러내는 축일들도 있다(예: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토요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신심’).(8항)
끝으로, 토요일 성모 신심미사를 통해서도 복되신 동정녀를 자주 기념할 수 있다. 토요일 성모 신심미사는 단순하지만 유서 깊은 기념제로서 현 전례력의 신축성과 미사경본 양식의 다양성으로 인해 변화 있고도 적절하게 봉헌하도록 되어있다(9항).
지금까지 개정된 로마 미사경본에 들어있는 마리아 공경 관련 축일 및 기념일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는데, 다음 호부터 거룩한 전례 안에서 매우 숭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마리아 기념제에 대해 순서대로 하나하나 살펴보기 한다.
전례 탐구 생활 (37) 성찬 전례를 준비하는 사제의 개인기도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는 여러 가지 준비를 합니다. 교우들과 마찬가지로 대죄를 지었으면 고백 성사를 보고, 미사 전과 후에 바치는 기도, 제의를 입으면서 드리는 기도 등으로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미사 예식이 진행되는 사이 사이에 사제 혼자 조용히 기도문을 바치는 순서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제는 복음을 읽으러 가기 전 제대 앞에 허리를 숙여 기도하고, 복음을 다 읽은 다음에도 복음서 앞에 허리를 숙여 기도합니다.
제대에 예물을 차려놓고 빵이 든 성반과, 포도주와 물이 든 성작을 들고 찬미 기도를 드린 다음에도 사제는 허리를 숙여 속으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 하느님, 진심으로 뉘우치는 저희를 굽어보시어 오늘 저희가 바치는 이 제사를 너그러이 받아들이소서.”
지난주 글에서 사제와 신자들이 바치는 빵과 포도주가 하느님의 선물이자 인간 노동의 결실이기 때문에 성찬례의 예물이 우리의 생활을 바치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 사제 혼자 속으로 바치는 이 기도문도 같은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께 희생 제물을 바쳐 올려 그 분노를 잠재운다거나 원하는 이득을 얻는다는 미신적인 생각은 조금도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우리가 바지는 예물은 “진심으로 뉘우치는 우리 자신”입니다. 그것마저도 하느님 앞에서는 변변찮은 것이라 너그러이 받아달라며 사제 홀로 허리 숙여 겸손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어지는 감사 기도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영성체로 그것을 받아 모시는 우리 자신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거룩하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바친 것 – 빵과 포도주, 그리고 우리 자신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거룩하게 되어 다시 돌려받을 것입니다. 내어줌으로써 얻는다는 진리를 우리는 매일의 성찬례 안에서 몸소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문은 또 다니엘서 3장에 나오는 세 명의 히브리 소년이 불가마 속에서 하느님께 바친 기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나라를 잃고 바빌로니아에 끌려가 지내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산 사드락, 메삭, 아벳 느고는 불가마에 던져진 채로 이렇게 기도합니다. “저희는 당신에게서 멀어져 죄를 짓고 법을 어겼습니다. … 저희는 입을 열 수도 없습니다. 당신의 종들과 당신을 경비하는 이들에게는 수치와 치욕뿐입니다. … 그렇지만 저희의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을 보시어 저희를 숫양과 황소의 번제물로, 수만 마리의 살진 양으로 받아주소서 이것이 오늘 저희가 당신께 바치는 희생 제물이 되어 당신을 온전히 따를 수 있게 하소서”(다니 3,26-45 참조). 세 소년은 자신의 생명을 하느님께 바쳐 올리는 제물과 결합시켰고, 주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어 그들을 구해주셨습니다.
미사 때 사제는 이와 같은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모든 신자들의 생명과 연결된 빵과 포도주를 주님께 바쳐 올린 사제는 이제 사드락, 메사, 아벳 느고처럼 하느님 백성 전체를 대신하여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으로 하느님께 부르짖으며 하느님 마음에 드는 희생 제사로 우리 자신을 받아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미사의 모든 것] (29) 예물 수령 청원 기도
하느님께 예물 강복과 교회 보호를 간절히 청하다
조언해: 감사 기도 제1양식인 로마 전문을 보면 ‘거룩하시도다’가 끝나면 주례 사제가 또 한 번 하느님께 거룩하고 흠 없는 예물을 받으시고 강복해 달라고 기도하더라고요.
라파엘 신부: 아버지 하느님께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바치는 우리의 예물을 받아주시라는 청원 기도이지. 보통 ‘예물 수령 청원 기도’라고 전례학자들은 말해. 이 기도가 성찬 전례를 시작할 때 바치는 ‘예물 준비 기도’나 ‘예물 기도’와 구분되는 것은 교회를 위한 간절한 기도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거야.
주례 사제는 “인자하신 아버지,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간절히 청하오니 이 거룩하고 흠 없는 예물을 받으시고 강복하소서”라고 한 다음 “먼저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를 위하여 이 예물을 바치오니 주님의 일꾼, 교황 (프란치스코)와 저희 주교 (아무)와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보편 신앙을 오롯이 받드는 모든 이를 돌보시어 세상 어디서나 교회를 평화롭게 하시고 일치하게 하시며 지켜 주시고 다스리소서”라고 기도하지.
나처음: 신부님의 설명을 들으니 이 예물을 받아달라고 청원하는 기도 역시 ‘거룩하시도다’ 처럼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네요. 전반부는 아버지 하느님께 예물을 받아 주시고 강복해 달라는 청원이고, 후반부는 교회를 위한 기도이고요.
조언해: 오! 정말 두 부분으로 구분되네요.
라파엘 신부: 맞아! 처음이가 아주 잘 분석했구나. 전반부 기도는 감사송에서 하느님의 은혜를 기념하며 찬양한 것처럼 인간에게 무한한 은총을 베푸시는 인자하신 아버지 하느님께 제대 위에 봉헌된 예물을 받아주시고 강복해 달라고 청을 드리지. 공동체를 대표하는 사제가 감사의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며 청하는 기도인 만큼 이 기도는 감사의 계속이라고 할 수 있지.
후반부 기도는 ‘먼저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를 위하여’로 시작하는 경문에서 알 수 있듯이 교회를 위한 기도란다. 교회는 초대 교회 때부터 중요한 기도 대상이었단다.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는 처음부터 많은 박해를 받았지. 그리고 이단의 오류와 분열로 내홍이 끊이지 않았지. 그래서 교회 구성원들은 인자하신 하느님께서 교회를 당신 보호 아래 두시기를 간절히 청했단다.
특히 교회를 위한 후반부 기도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대상이 교회와 교황, 주교, 신앙의 수호자들임을 알 수 있단다. 신앙의 수호자는 교황과 주교를 돕는 사목자들뿐 아니라 모든 신자를 말하지.
나처음: ‘강복’과 ‘축복’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조언해: 강복은 ‘하느님의 행위’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고, 축복은 사람 편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과 봉헌’을 뜻해.
라파엘 신부: 쉽게 설명하면 축복은 ‘하느님께 복을 비는 것’이고, 강복은 ‘하느님께서 내려 주시는 복’이란다. 전례 때 사제는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신자들에게 강복을 하지.
사실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강복’이란다. 하느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모든 것에 특히 인간에게 강복하셨지. 하느님의 강복이 역사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은 아브라함부터야. 강복을 받아들인 ‘믿는 이들의 조상’의 신앙을 통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단다.
하느님의 강복은 교회의 전례에서 온전하게 드러나고 전달돼. 그래서 교회는 “성부께서는 피조물을 위한 모든 강복과 구원의 원천이며 목적으로 인정되시고 흠숭을 받으신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강생하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당신의 ‘말씀’ 안에서 우리를 복으로 채워 주시며, 그 ‘말씀’을 통해서 모든 선물을 포함하는 ‘선물’, 곧 성령을 우리 마음에 부어 주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82항 참조)고 고백한단다.
조언해: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하는 이유도 성부께서 우리를 강복하시기 때문이군요.
라파엘 신부: 아버지 하느님께서 강복하시지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위격 안에서 드러나는 은총의 행위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지.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으셨고, 성령 안에서 당신 계획을 완성하시기 때문이지. 그래서 교회는 주님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께 축복을 끊임없이 청하고 있지.
이에 교회는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교회의 전례 안에서 창조와 구원의 모든 복의 원천으로 찬미를 받으시고 흠숭을 받으신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보내 주시고자 당신 아들을 통하여 그 복을 우리에게 내려셨다”고 선언해요.(「가톨릭교회 교리서」 1110항)
나처음: 그러면 모든 기도는 아버지 하느님께 드려야 하나요?
라파엘 신부: 꼭 그렇다고 할 순 없어. 아버지 하느님뿐 아니라 주님이신 성자와 성령께도 직접 청할 수 있지. 하지만 전례의 모든 기도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께 드리고 있단다.
아버지 하느님은 모든 신성의 원천이며 근원이시란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6)며 당신을 통해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하라고 제자들을 가르치셨지.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은 그리스도인 기도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단다. 교회 전례의 모든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라는 말로 끝맺고 있지.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기 전에 “아버지…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라고 기도하셨고,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말씀으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2,34)라고 기도하셨지.
나처음: 모든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느님께 청해야 하는군요.
라파엘 신부: 그렇지. 방금 설명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신 이름으로 아버지 하느님께 청하라 하셨지. 이 기도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기도란다. 이 새로운 기도의 핵심은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이지. 바로 이 새 계약이 아버지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허락하실 것이라는 근거라 할 수 있지.
나처음: 그럼 성령께서는 우리가 기도드릴 때 어떤 도움을 주시나요?
라파엘 신부: 성령께서는 우리를 의롭고 거룩하게 하는 은총을 주시지. 모든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단다. 우리 안에서 신앙을 불러일으키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기 때문이지. 그래서 교회는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준비시키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사람들을 도와 그리스도께 이끌어 주신다. 성령께서는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보여 주시고, 그분의 말씀을 상기시켜 주시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도록 정신을 열어주신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을 하느님과 화해시켜,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게 하시며, 그들이 많은 열매를 맺도록 그리스도의 신비를 그들 안에, 특히 성체 안에 탁월하게 현존하게 하신다”라고 고백한단다.(「가톨릭교회 교리서」 737항)
이처럼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을 알게 하시고, 신앙을 받아들이게 하시며, 하느님께 기도하도록 이끄시는 분이셔. 그래서 교회는 모든 활동을 시작하고 마칠 때 성령께 간청하라고 권고하고 있지.
전례 탐구 생활 (36) 예물을 바치며 드리는 기도
성찬 전례를 시작할 때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될 예물을 제대에 가져가는데, 그전에 먼저 성찬 전례 전체의 중심이며 주님의 식탁인 제대를 준비합니다. 원칙적으로 제대는 그 위에 제대초와, 필요한 경우 복음집 말고는 아무것도 놓아두지 않은 채로 비워두었다가 바로 이때 성체포, 성작 수건, 미사 경본과 성작을 제대에 펼쳐 놓습니다. 그 다음에 신자들이 가져온 빵과 포도주를 제대에 나릅니다. 사제는 먼저 빵이 든 성반을 들고 이렇게 찬미를 드립니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땅을 일구어 얻은 이 빵을 주님께 바치오니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또 포도주와 물이 든 성작을 들고 이렇게 찬미를 드립니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포도를 가꾸어 얻은 이 술을 주님께 바치오니 구원의 음료가 되게 하소서.
성경에서 빵은 사람이 사는 데 곡 필요한 요소로 나옵니다(집회 20,21; 39,26). 빵은 “(생명의) 양식”으로, 인간의 생명 유지를 위한 필수품이었습니다(레위 26,26; 시편 105,16; 에제 4,16; 5,16). 실상 “빵을 먹는다”는 표현은 그냥 일반적으로 음식을 먹는다는 말이기도 했습니다(창세 31,54; 37,25/ 1열왕 13,8-9. 16-19). 이스라엘 백성은 정기적으로 제물을 바치고 희생 제사를 드릴 때(탈출 29,2; 레위 2,4-7; 7,13). 또 연중 축제의 시기에 거행하는 예식 때(레위 23,15-20) 빵을 만들어 예물로 바쳤습니다. 자신의 빵을 나눈다는 것은 자신을 하느님께 내어드림을 표현하는 개인적인 희생 제사였던 것입니다.
포도주도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일상에 자주 등장하는 필수품이었습니다. 종종 빵과 함께 포도주를 마셨고(판관 19,19; 10,5; 1사무 16,20; 시편 104,15), 축제날(1사무 25,36; 욥 1,13)과 손님을 위해서(창세 14,18) 포도주를 내놓았습니다. 빵과 마찬가지로 포도주도 이스라엘 희생 제사 때 바쳐 올렸습니다. 포도주는 성전에 십일조로 내야 하는 첫 소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느헤 10,36-39). 이스라엘의 감사 제사와 속죄 제사 때(탈출 29,38-41), 민수 15,2-15) 포도주를 제주 삼아 부었습니다. 희생 제자 예물과 그 예물을 바치는 사람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빵과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자기 자신의 삶을 봉헌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오늘날 미사에서도 우리는 빵과 포도주를 통해서 창조의 선물과 우리 노동의 결실, 미사 기도문의 표현대로 하자면 “인간의 손으로 땅을 일구어 얻은 소출”을 하느님께 돌려드립니다. 이 예식은 빵과 포도주를 바침으로써 우리의 모든 삶을 하느님께 내어드림을 뜻합니다. 사실 한 조각의 빵에도 씨 뿌리고 밭을 가는 힘든 노동, 수확하는 이의 이마에 맺힌 땀, 낟알을 탈곡한 팔에 묻어나는 피로, 뜨거운 화로 앞에서 반죽을 주무르는 이의 신음소리가 묻어납니다. 포도주 또한 일 년 내내 세심하게 관리되는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 열매로 만들기 때문에 일상의 노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사의 모든 것] (28)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신 성부와 성자께 모든 신자가 바치는 환호송
나처음: 거룩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조언해: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 말처럼 실천하기가 어렵지만.
라파엘 신부: 너희는 예수님께서 누구라고, 어떤 분이시라고 생각하니? 이 물음은 예수님께서 강생하신 이래 지금까지 그치지 않고 있지. 예수님 자신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물으셨고,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한 빌라도조차도 당신은 누구냐고 질문했지. 오늘날 우리 역시 주님께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여쭙지. 우리가 주님을 닮은 삶을 살려면 정말 그분이 누구신지 잘 알아야 하지 않겠니!
나처음: 정말 어려운 물음이네요.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거룩해질 수 없는 거군요.
라파엘 신부: 다행스럽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해지는 방법을 알려주셨지. 그것을 교회는 ‘참행복 선언’(마태 5,3-12; 루카 6,20-23)이라고 하지.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참행복 선언을 “그리스도인에게 신분증과 같다”고 말씀하셨단다. 교황님은 “누군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명확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 설교에서 하신 말씀을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63항)라고 일깨워 주셨지.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가난하고 온유하고 겸손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슬퍼할 줄 알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의로움을 실천하는 것이 참행복에 이르는 삶이라고 하셨지. 그리고 참행복을 실천하는 사람을 바로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라고 하셨지.
행복과 복됨, 거룩함은 같은 뜻을 지닌 말이란다. 무엇보다 이러한 마음으로 이웃과 함께 연대하여 평화를 일구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거야. 하느님의 자녀 중에 거룩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니.
조언해: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분이시니 그분의 모상인 인간도 거룩한 존재가 아닌가요?
라파엘 신부: 그럼. 인간은 거룩하고 의롭게 창조되었지. 이 거룩함과 의로움은 아담을 위한 은총의 선물이었지.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 하느님 의로움의 거룩함 안에 머무르길 원치 않고 타락의 길로 떨어졌지. 그래서 하느님 스스로 인간이 되시어 당신을 희생 제물로 봉헌함으로써 인간을 다시 거룩함에 머물도록 구원해 주셨지. 그 희생 제물이 바로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지.
그래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완덕의 천상 스승이시며 모범이시고, 거룩한 생활의 창시자요 완성자”라며 “어떠한 신분이나 계층이든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교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으로 부름받고 있다”고 선언했단다.(「교의 헌장」 40항)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닮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소명이라 할 수 있어.
나처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게 단순히 세례성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송두리째 하느님께로 바꾸는 것이군요.
라파엘 신부: 그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녜요.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하느님께서 미리 구원받을 사람과 받지 못할 사람을 예정해 두었다는 개신교의 주장을 배척하고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애덕을 실천할 때 완덕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친단다.
조언해: 미사 중에 우리가 하늘의 천사들과 성인들과 함께 ‘거룩하시도다’를 환호하는 것도 하느님의 거룩함 안에 머물길 희망하는 간절함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라파엘 신부: 그렇지. 라틴말로 ‘상투스’(sanctus)라고 하는 ‘거룩하시도다’는 미사를 봉헌하는 공동체 모두가 감사의 마음으로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리는 환호송이니 언해의 말처럼 하느님의 거룩함에 머물길 간구하는 기도라고 표현해도 괜찮을듯해. ‘거룩하시도다’는 지난번에 설명한 것처럼 감사송과 제대에 바친 예물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도록 성령께 청원하는 기도를 연결하는 환호송이야. 너희들 알고 있니? ‘거룩하시도다’가 아버지 하느님과 주님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는 환호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는 걸.
조언해: 헉! 크게 생각하지 않고 불렀는데 정말 환호의 대상이 나뉘네요.
라파엘 신부: ‘거룩하시도다’를 세 번 외치는 것은 전례적으로 큰 의미가 있어요. 성경에서 ‘3’은 시작과 가운데, 마침을 가리키는 수이지. 또 ‘하느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숫자란다. 아울러 최상급을 나타내지. 그래서 이 거룩한 숫자 3이 전례에도 도입되었는데 미사 중에 자비송(자비를 베푸소서)과 ‘거룩하시도다’, 그리고 평화 예식의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을 3번 반복해요.
전반부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그 영광! 높은 데서 호산나!”는 이사야의 소명 환시에 나오는 사랍 천사들의 환호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이사 6,3)를 도입한 거야.
아람어 ‘호산나’는 우리말로 ‘저를 구하소서’ ‘저를 도와주소서’라는 뜻이지. 성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렐루야’처럼 기쁠 때 호산나를 외치며 하느님을 찬미했다고 해.
조언해: 후반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높은 데서 호산나!”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외친 환호이죠. 주님 성지 주일 때 우리가 성지를 들고 성당에 입당할 때 노래하잖아요.
라파엘 신부: 그래. 후반부의 이 내용은 시편 118장 26절(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복되어라)과 루카 복음 19장 38절(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을 합친 말로 군중들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께 드린 환호이지.
거룩하시도다는 1969년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을 통해 미사에 참여한 모든 신자와 사제가 함께 부르는 1급 성가로 지정됐지. 1급 성가란 대단히 중요한 공동체 성가를 뜻해. 우리가 미사 중에 함께 하는 자비송과 대영광송도 1급 성가이지. 간혹 대미사 때 성가대만 1급 성가를 장엄하게 부르는 데 그건 전례의 본래 의미를 해치는 것이야. ‘거룩하시도다’는 거룩하신 하느님과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주님께 하늘의 천사들과 성인들과 함께 모든 신자가 바치는 환호인 만큼 본래 의미를 항상 되새겨 미사 참여자 모두가 함께 노래하는 것이 바람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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