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10월26일 밤 11시20분...
국방부에서 국무회의가 속개되기 직전.
김계원비서실장은 전체적인 상황이 김재규한테 불리하게 전개 되어가고 있을뿐 아니라 자칫하면
자기가 도매금에 공모자로 몰릴것 같은 불안감에 호젓한 곳에서 노재현 국방장관 보좌관 조약래준장,
정승화 참모총장에게 ‘시해범은 바로 김정보부장이다’ 하고 재빨리 사건경위를 귀띔한다.
노재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니, 세상에! 그게 정말이오?”
“그렇소. 김부장을 체포해야겠는데, 저렇게 눈이 시퍼래 나만 노려보고 있으니…….”
“저놈을 당장 잡아야지.”
노재현은 정승화를 재촉한다.
“총장, 빨리 체포하시오.”
“예, 곧 잡겠습니다.”
정승화가 벌떡 일어나자, 김계원이 불안스러운듯 주의를 준다.
“조심해요. 김부장이 권총을 갖고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노재현이 묻자,
정승화는 일단 육본에 내려가서 적절히 조치하겠다고 대답한다.
“장관님은 여기서 모른척 회의에나 참석하십시오.”
육군본부 벙커에 도착한 정승화총장은
육군헌병감 김진기준장을 불러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으로 김재규 체포지시를 내린다.
그런 다음 육군보안사령관 전두환소장을 불러 지시한다.
“각하를 시해한 범인은 바로 김정보부장이요.
바보같은 김계원실장이 조금 전에야 나한테 실토했어.”
전두환은 깜짝 놀랐다.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내가 미쳤다고 터무니없는 소릴 하겠소?
지금 김진기헌병감이 김부장을 유인해 잡으려고 국방부로 갔으니까, 체포해오면 전장군이 신병을
인수해가서 수사에 착수해요.
계엄령이 선포 되는대로 당신을 합동수사본부장에 임명할 테니.”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바로 이 장면이 역사 아이러니의 결정적 열쇠인 것이다.
정승화로부터 계엄령 아래의 합동수사본부장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부여받은 전두환은 대통령 시해사건
당시 정승화가 궁정동 안가 본관에 있었다는 사실을 ‘김재규 공범’의 혐의증거로 삼아 12.12군사반란을
일으켜 육군참모총장에다 계엄사령관인 그를 전격 체포해버린다.
1980년 4월.
스스로 중앙정보부장서리를 겸직함으로써 정치적 격변기의 새로운 실력자로 급부상한 전두환은 초고속
승진으로 육군대장 예편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되고 제5공화국시대를 열게되는
것이다.
그 모든 상황변화의 과정이 1980년 한해 동안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다시 국방부 청사의 2층 장관집무실.
최규하국무총리를 비롯한 각부 장관들이 김재규의 존재를 의식하느라 명색 국무회의를 열지 못한채
서성거리고 있을때, 국방장관보좌관 조약래준장이 들어와서 김재규한테 허리를 굽히고 귓속말로 전한다.
“부장님, 정승화총장께서 육본에서 조용히 뵙자고 하신답니다.”
“그래?”
“총장비서실장이 와서 밖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지’라고 나름대로 생각하는 정승화와 조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김재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약래를 따라 장관접견실을 통해서 사람의 발걸음이 뜸한 다른쪽 복도로 나가자, 헌병감 김진기준장·
보안사령부 오일랑중령,국방부헌병중대장 이기덕대위가 대기한후 김재규를 호위하고, 미리 배치되어
있던 헌병들이 정보부장 근접경호원둘의 동행을 차단한다.
김재규는 ‘아뿔싸!’ 하고 후회했지만,
애써 의연한 태도를 견지하며 뒤뜰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며 짐짓 묻는다.
“왜 이쪽으로 가나?”
“이건 요인들 전용 통로입니다.
최총리각하께서도 이쪽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오일랑중령이 임기응변으로 둘러댄다.
외등 하나없는 캄캄한 청사 뒤뜰에는 승용차 한대가 대기하고 있고, 차 안에는 헌병 두명이 미리 타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멈칫하는 김재규를 오일랑과 이기덕이 차속으로 밀어넣는다.
“죄송하지만 무장을 해제하겠습니다.”
알았어.
내가 주지.
김재규가 자기 바지 오른쪽 호주머니로 손을 뻗어 권총을 꺼내려는 순간, 오일랑과 이기덕이 번개같이 낚아챈다.
대통령 시해를 클라이맥스로 하는 쿠데타 계획과 실행 자체가 즉흥적이고 치밀하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를 죽음으로 몰아가기 위해 진행되는 체포작전에 그처럼 어수룩하게 순응한 김재규...
그것이 인간 김재규의 진면목이자 한계가 아니었을까!
10월 27일 새벽 2시.
국방부 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는 『헌법"이 정한 국가원수 승계순위 원칙에 따라 최규하 국무총리를 대통령권한대행에 옹립하고,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함과 아울러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에 임명했다.
바야흐로 역사의 새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다음회는
"초인적 영웅이 마지막 떠나든 날" 이
올려 집니다.
첫댓글 긴박했든 이 순간에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소리없이 국민과 함께 깊은 침묵속의
질곡을 향해서 흘러 갔습니다.
김재규의 준비가 안된 우발적인 대통령 시해와 정승화의 치밀치 못한 행동으로
12.12의 쿠데타에 의해 전두환에게 제거되는 우메함을 지적치 않을수 없군요...
다시보는 10.26, 당일의 긴박했던 순간들이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한순간의 판단이 영욕으로 바뀐다는 진실이 무섭군요...
관계된 당사자들은 아마도 숨이 콱콱 막히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순간적인 고민
과 긴장의 연속으로 시간의 흐름을 잊었겠지요...
옛날 긴박했던 생각이 납니다. 우리나라는 그 당시 불행의 연속입니다. 이제는 그런 일 없어야 합니다. 정보 제공 감사합니다.
요즘 이석기 RO 재판진행을 보면...
정신 못차리면 대한민국 옛날로 돌아 갑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 하겠다는 머슴들의 요즘의 행태
를 보면 한심하고 실망스럽기만 합니다.
우리나라는 영국처럼 민주주의 역사가 700년이 넘어선 국가가 아니고 남북이
대치되어 총뿌리를 겨누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을 망각 해서는 안될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