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조선 김인현의 바다스토리(11)
격세지감-단파방송과 탁구
김인현 고려대 명예교수
선박에 승선하던 9년간 단파방송은 내내 나에게 둘도 없는 친구였다. 첫 배를 탔다. 사우디에서 생활했다. 배가 사우디의 동편 라스타누라에서 서편 얀부로 기름을 실러날랐다. 한달이 지나자 고국 소식이 궁금했다. 파키스탄 인부들이 읽는 뉴스레터에 한국소식이 없었던 것은 당연했다. 우연히 통신국장님의 방에 들렀다가 국장이 한국어 방송을 듣고 있는 것을 알게되었다. 단파방송이라고 했다. 전파항해수업에서 배운 그 단파를 이용한 방송이었다. 우리 나라애서 송출하는 것이 바다에서도 들린다는 것이다. 나는 제다 시내에 상륙해서 단파 라디오를 사왔다. 신호가 좋지는 않았지만 고국의 방송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채널을 돌리다 보니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ca) 방송을 알게 되었다. KBS의 “파도를 넘어”는 하루 1시간씩 두차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의 소리 방송은 하루 종일이라서 더 좋았다. 우리나라 방송보다도 미국의 소리방송을 더 즐겨듣게 되었다. 그 후 단파방송은 어느 배에 승선하던 나의 친구가 되었다. 더 성능이 좋은 단파방송을 사는 것이 하나의 숙제가 되었다.
단파방송은 나에게 영어공부는 물론 미국문화를 알수 있게하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그 후 카세트가 들어가있는 단파 라듸오를 구입했다. 꽤 비쌌다. 영어 뉴스를 녹음했다. 몇번을 들으면서 뉴스의 모르는 단어를 익혔다. 이렇게 몇년을 하면서 영어실력이 일취월장했다. 항상 고국소식과 국제 뉴스에 정통한 나의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번은 KBS에 편지를 보냈다. 휴가중 “파도를 넘어” 방송에 초대받았다. 바다에서 단파방송을 듣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를 바다의 선원들에게 들여주는 출연까지 한 것이다.
육지에 있는 나는 더 이상 단파방송을 듣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서 모두 얻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리 방송도 핸드폰의 앱으로 본다. 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위성방송을 통해서 인터넷으로 방송이 전달되고 선원들도 편리한 인터넷을 이용한다. 단파방송은 옛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요트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는 사람은 여전히 단파방송이 소용이 될 것이다.
승선기간중 또 하나의 소중한 친구는 탁구였다. 점심 식사후 1시부터 2시까지 배의 탁구장에는 항상 선원들로 붐비었다. 단식게임과 복식게임으로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탁구를 쳤다. 스매싱이 나오면 모두 한마음이되어 박수를 어김없이 쳐주었다. 1시간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린 다음 마시는 맥주 한캔의 맛은 잊을 수없다. 나는 고등학교 때 부터 탁구를 잘 쳤다. 배에서도 항상 1등 2등을 했다. 그래서 인기가 높았다. 철판 위에서 탁구를 칠 때 충격을 받아서인지 왼쪽 무릎이 승선 중 내내 아팠지만, 9년 승선중 거의 매일 탁구를 쳤다. 그 덕분에 하체가 탄탄하게 되었고 오늘까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고마운 탁구이다.
일본에서 나란히 접안한 한국 배의 1등항해사와 의기투합 탁구시합을 했다. 적진에 들어간 나는 6등부터 2등까지 승부에서 이긴 후 마지막 1등과 겨룰 준비를 했다. 그 배의 선장이 “그만하면 산코 1등항해사가 이겼고 우리가 졌다”면서...연어 10마리를 상품으로 주었다. 나의 리져시절이었다.
그랬던 나의 탁구가 무너졌다. 작년 연말 후배의 초청으로 일본 해양대 후배들의 연말 모임에 나갔다. 탁구 시합이 있었다. 나는 자신만만했다. 후배들이 제대로 폼이 나오지 않았다. 나의 차례였다. 그런데, 서브가 재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탁구 벳트에 공이 아예 맞지 않았다. 몸과 탁구가 따로 였다. 첫 게임에서 졌다. 후배들이 사정을 봐주어서 패자부활전까지 열렸다. 멋지게 스매싱을 하나 넣었다.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너무 늦었다. 나는 또 지고 말았다. 이럴 수가...몇년을 치지 않아서 탁구를 잊어버렸던 것이다. 집사람이 젊은 후배들에게 무얼 그렇게 이길려고 용을 쓰냐고 핀잔을 받았다. 지난 세월이 야속했다. 귀국후 나는 몸살을 앓았다.
30년 세월이 흐른 지금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단파방송도 탁구도 이제는 더 이상 소중한 친구가 아니다. 나와 가까이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의 탓이다. 내가 나이가 들었고, 환경이 너무나 많이 바뀌었다. 그래도 바다에 가면 30년 전 그 때가 있을 거라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승선을 바란다.
첫댓글 교수님의 30년전 승선생활 ^^ 재밌게 읽고갑니다 ~ 환절기 감기조심하세요 😀
교수님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추억속으로 빠지게 하는 글이네요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지만 어렴풋이 그림이 그려집니다
잼있게 잘 읽었습니다^^
30년전~~
지금 회상할수 있는 현재가 있고
소중한 추억이 있으니 감사하지요
멋진 지금의 생활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읽는데 영화 보는 느낌은 -'- 왜 이렇지 ---
네 감사합니다.
추억과 그 시절 감성이 묻어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 옛날이여란 시절이 있죠^^
교수님의 옛날 즐겁게 보았습니다~
교수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교수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교수님의 추억을 같이 공유하게 됐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학부모님들의 답글에 모두 모두 감사드립니다. 저의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이가 드니까 과거를 먹고 사는 것 같습니다. 저는 40부터 47세까지 인생의 최고의 시기를 목포해양대에서 보냈습니다. 저의 지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목포해대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