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리부동이란 표(表/ 겉 표) 리(裏/ 속 리) 부동(不同/ 같지 않다) 다시말해 겉과 속이 같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뭔가 믿지 못한 인간의 성향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겉으로는 온갖 미소와 느그러운 표정을 짓지만 속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상태를 일컷기도 하다. 아마도 전세계 민족가운데 일본인들이 이 표리부동에 가장 근접한 민족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나면 항상 하이 하이 웃으며 큰 인사를 보내고 상냥하게 대하는 그들의 모습과 그들의 속내를 함께 분석하면 그것은 아마도 표리부동이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들이 자행한 무자비한 역사가운데 가장 잔인하게 판단되어지는 것은 바로 제2차대전 도중 행했던 일본군의 만행이다. 그 가운데 전세계 전쟁중에 저지른 만행가운데 가장 극악무도한 것으로 손꼽히는 것이 이른바 마루타 사건이다. 마루타라는 것은 일본어로 통나무를 뜻한다. 인간을 통나무같이 처리했다는 데서 연유된 말이다. 일본 군인들은 전쟁중 끌려온 한국인과 중국인 들을 페스트균과 탄저균 등 여러 세균에 감염시킨 뒤 관찰하거나 산채로 해부하는 등 그야말로 하늘이 노할 잔혹한 실험을 행하였다.그동안 말로만 떠돌던 일본군의 만행의 실체가 드디어 전세계에 드러나고 말았다. 세균전을 위해 엽기적인 생체실험을 자행한 일본 관동군 소속 생화학부대 일명 731부대의 조직 구성과 대원 명단 등을 담은 공식 문서가 발견된 것이다.
731부대의 구성과 대원의 이름 그리고 계급 등이 세세히 기록된 일본군 자료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731부대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생화학무기개발을 위해 중국 하얼빈 남쪽 교외에 구성된 일본의 기밀 부대이다. 하지만 일본이 패전 직전에 731부대의 행적 등을 기록한 자료에 대해 소각 명령을 내린 탓에 그간 잔혹 행위를 입증할 구체적인 증거가 부족했다.이 731부대에서 잔혹한 짓을 저지른 인간들은 생체실험을 자행하고도 과거를 숨기고 병원이나 제약회사에 취업하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이 부대의 부대장은 전쟁후 미국으로 스카웃되어 거액을 받고 당시 생체실험을 한 자료 등을 미국측에 제공했다는 것도 전해지고 있다. 일본의 교도통신은 정부 자료가 더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면서 적극적인 규명으로 실태를 밝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1946년 도쿄전범 재판때도 731부대와 관련된 자료가 별로 없어 제대로 처벌을 못한 정말 안타까운 과거가 존재한다. 일본인들은 생체실험같은 이런 극악무도한 행위를 묵인했다. 바로 표리부동한 정서때문이다.
표리부동한 일본인들의 실상은 중일전쟁중에 특정 보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유수의 신문들은 중일전쟁에서 일본군들이 행한 잔인한 행위를 미화하는 기사를 여러차례 보도했다. 일본 칼을 잘 사용하는 군인들은 중국인 목을 베는 시합을 했는데 단시간에 백여명의 목을 베었다면서 대단한 전쟁 영웅들이라고 치켜세웠다. 또한 이렇게 용맹스런 군인들은 귀국하면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장가를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요상한 보도도 자행했다. 이 기사를 본 일본인들은 자국의 군인들이 자행하는 잔혹무도한 작태를 탓하기는 커녕 환호와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일본인들의 이런 표리부동한 국민성은 일본 춘추전국시대와 막부시대때 살벌했던 사회상에 그 시발점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사무라이들이 설쳐대는 환경에서 섣불리 나섰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뼈져리게 경험한 일본인들은 불의를 보고도 그냥 돌아선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데 쓸데없이 나섰다가 곤욕을 치를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런 국민성이 타인에게 폐가 되는 일을 하지 말라는 메이와쿠 문화로 고착화됐다고 보는 시각이다. 그냥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해나가면 되지 타인과 사회와 국가가 하는 일에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판단한다. 또한 오다 노부나가로 부터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지는 일본내 기독교 세력 몰살 정책도 일본인들의 정신을 표리부동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기독교세력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이른바 고닌구미라는 다섯 집을 단위로 서로 염탐하며 만일 기독교 신자가 발견되었을 때 연대책임을 지게 한 제도나 자신이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는 증명을 사찰에서 받도록 제도화한 것 그리고 후미에라는 기독교 신자를 적발하는 강력한 제도 등에서 일본인들은 스스로를 감추는 국민성을 갖게 됐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표리부동한 정신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지금 일본인들의 정서이다. 일본의 각종 선거에서 투표율이 50%를 채 넘지 않는다거나 정부에서 하는 일에 속으로는 못마땅해도 적극적으로 지적을 하지 못한다거나 수십년째 세습되는 자민당 체제를 바꾸지 못하는 정치적 자포자기 등도 바로 일본인들의 표리부동한 성격에서 나온다는 지적이 있다. 각설하고 이번에 731부대의 실상을 밝힐 중요한 자료가 발견된 만큼 한국과 중국 등 관련국들에서는 731부대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과 연대가 있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증거자료가 나왔는데도 침묵하거나 적당히 넘어가다가는 대규모의 지적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2023년 7월 18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