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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같은 직장에서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직장 동료 사이다. 여행을 하게 된 발단은, 모두 퇴직을 한 후 월평동 자매식당에서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됐다. 만나서 점심식사를 하고 곁들여서 막걸리도 한 잔씩 나누곤 한다. 그러다 민창연 박사의 제안으로 태백산 눈꽃 여행을 한 번 가기로 한 것이다. 동료들은 내가 아직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내 일정에 맞추어서 내가 노는 2월 8일을 D-day로 정해 주었다.
여행은 대전역에서 기차로 충북선을 타고 제천 역까지 가서 거기서 현지 가이드와 관광버스가 연결되어 예정된 관람지를 구경하고 다시 제천역에 돌아와서 귀가 열차를 타면 끝난다. 관람지는 황지 연못과 태백 국립공원, 만항재, 그리고 정암사를 구경하게 되어 있다.
아침 7시 대전 발 제천행 열차가 청주쯤을 지날 때에 차창 밖으로 붉은 아침해가 떠올랐다.
<하루가 탄생하는 순간>
제천행 무궁화호는 아침 7시 대전 역을 출발하여 이름도 모르는 시골 역들을 지나서 9시 경에 제천 역에 도착 예정이다. 제천역 광장 옆에 있는 주차장에 가이드가 차를 대기시키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역에서 나와 역 광장에서 사진도 찍고 하다가 주차장으로 갔는데 우리 관광버스는 24인승으로 차도 약간 노후화된 상태였다. 옥션에서 관광 상품으로 나와 있던 것인데 다른 데 보다 조금 싸다고 하더니 결국 이동 수단인 버스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우리 일행 외에도 서울 등 외지에서 참여하는 관광객들이 있어서 우리는 차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조금 기다리니 일행이 와서 우리는 출발했다. 11시 경에 첫 관광지인 황지 연못에 도착하였다.
<차창으로 본 겨울 풍경>
제천으로 가는 차창에 비친 겨울풍경은 고즈넉하였다. 약간은 우울한 것 같기도 하고 희미한 옅은 안개가 주는 아일랜드풍의 신비감 같은 것도 있다.
<제천역사 전경>
제천 역은 시골 역답게 한적했다. 우리 같은 여행객들 외에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제천역 광장에 있는 ‘박달이와 금봉이’조각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역 광장에는 우리가 애창하는 유행가 ‘울고 넘는 박달재’의 2절에서 마지막 부분인 “박달재에 금봉이냐~”라는 가사에서 소재를 얻은 것으로 보이는 조각상이 있었고 아마 이것이 제천역의 마스코트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타고 다닌 24인승 관광 버스>
역에서 버스를 타고 황지 연못에 도착하여 일행은 연못 주변을 관람하였다.
<황지 연못 일대는 공원으로 개발되어 있었다>
<황지 연못의 표시석>
황지 연못은 황지 3동 시가 중심부에 위치하며 둘레가 100m인 상지, 50m인 중지, 30m인 하지로 된 3개 못으로 나뉘며 상지 남측에 깊이를 잴 수 없는 수굴이 있어 수원이 된다. 수량은 가물어도 장마에도 변함없는 1일 약 5,000톤이 용출되며 수온 또한 상온 15℃를 유지하는 해발 700m 이 지역 주민들의 상수도 취수장으로 전국 최적의 오염되지 않은 상수원이다.
고지도를 비롯한 동국여지승람, 택리지 등 옛 문헌에 의하면 낙동강의 발원지로서 옛 신라문화와 가야의 번영을 이룩하며 한 민족과 숨결을 함께한 젖줄 1,300리 낙동강을 오늘도 쉼 없이 흘려보내는 것이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낙동강의 근원으로서 관아에서 제전을 두어 가뭄에는 기우제를 올렸다고 기록된 이 못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못엔 원래 황(黃)씨 성을 가진 황씨가의 옛터로서 주인 황씨는 많은 재산에 풍족하게 살았으나 돈에 인색하기 짝이 없는 수전노 노랭이였다. 어느 봄날 황 부자는 외양간에서 쇠똥을 쳐내고 있었는데 옷차림이 남루한 노승이 시주를 청했다. 황 부자는 시주하기를 거절했으나 노승은 물러나지 않고 거듭 염불을 외며 시주를 청했다. 이에 그만 화가 치민 황 부자는 쇠똥을 한 가래 퍼서 시주바랑에 넣어주며 “이거나 받아가라”고 하였다. 노승은 조금도 노하지 않고 공손히 인사하고 돌아가는데 마침 아기를 업고 방아를 찧던 며느리가 이를 보고 부끄러이 여겨 시아버지 몰래 자기가 찧은 쌀 한바가지를 퍼내어 노승에게 시주해 올리며 시아버지의 죄를 용서 빌었으나 노승은 며느리에게 말하기를 “이 집은 이미 운이 다하였으니 아기를 업고 속히 소승의 뒤를 따라 오시오.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시오.”라고 일러 주었다. 이에 며느리는 곧 집을 나서 송이재를 넘어 구사리(지금의 도계읍) 산마루에 이르렀을 때 뇌성벽력과 땅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에 깜짝 놀라 노승의 당부를 잊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 자리에서 돌이 되어 버렸고 황부자의 집은 땅 밑으로 꺼져 내려가 간 곳 없고 집터는 큰 연못으로 변하였다. 지금도 삼척군 도계읍 구사리 산마루에는 황지쪽을 뒤돌아보며 아기를 업은 채 서있는 돌미륵이 있어 보는 니로 하여금 가슴을 아프게 하며 함께 따라간 강아지도 돌이 되어 그 앞에 있다. 또한, 그 때 집터는 지금의 상지이고 방앗간 자리가 중지, 변소터가 하지로 변했다 하며 뇌성벽력과 함께 변해버린 연못에서 유래된 지명이 황지인 것이다. 이상이 이 곳 며느리 상 하단부에 적혀있는 황지의 유래와 설명이다.
<상지 입간판>
<상지 전경>
상지에는 황부자의 똥바가지와 며느리의 쌀바가지가 있는데 똥바가지에 동전을 던져 넣으며 액운을 쫓아내 주고 쌀바가지에 동전을 던져 넣으면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우리 일행 중에 민 박사가동전을 던졌는데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이미 딸만 둘인데 모두 훌륭한 사위(큰 사위는 칫과의사, 둘째 사위는 행정고시 출신)에게 출가 하였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도로 쪽에서 본 상지 전경>
<상지와 중지 사이의 다리>
상지와 중지 사이에 위의 사진과 같이 다리가 있어서 관광객들이 좌우에 있는 연못을 두루 구경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물론 바가지 안에 동전 던지기 놀이도 하여 관광객들에게 재미를 배가하였다.
<방앗간 자리가 변한 중지>
<황부자의 통시터가 변한 하지>
하지는 모양이 둥글게 생긴 것이 정말 재래식 통시같이 생겼다. 우리나라에도 이솝과 같은 이야기꾼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전설들은 대개 구전으로 내려오다가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이야기로 만들어지곤 한다.
<전설 속 황부자의 며느리>
<이야기 속 노랭이 황부자>
황지 연못과 전설을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황지에서 10분~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태백석탄박물관을 구경하러 갔다. 가이드는 석탄박물관 입구에 차를 세우고 점심시간이니 자기가 맛있는 식당으로 안내할 테니 식사를 하고 관광을 계속 하잔다.
<곤드레 나물밥을 비비다 생각나서 찍은 사진>
가이드의 장사속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평가하면 사실 이 집 음식 맛이 무지 좋다. 곤드레 밥을 대전 시내 다른 곳에서도 먹었는데 이런 맛이 나지 않았다. 곤드레 밥에 고춧가루 등 양념과 참기름을 탄 재래간장의 깊은 맛으로 비벼서 한 입 떠먹으면 음~ 바로 이 맛이야!!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거기다 이 곳 청정지역의 시래기로 끓여낸 된장과 황태구이의 맛은 지금 생각해도 감동적이다. 우리가 도심지에서 먹는 화학간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재래간장에 길들여져서 오랫동안 화학간장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재래간장의 깊은 맛을 잘 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식사 후에 집에서 가져간 커피로 후식을 대신하였다.
식사 후에 가이드는 식당에서 기다리고, 관광객들만 태백석탄박물관을 구경하러 갔다. 여기는 입장료를 별도로 내고 티켓을 사서 들어가야 한다. 우리 일행 중 지출 담당자가 입장표를 일괄 구입하러 갈 때 나도 따라가서 만 64세가 넘은 사람은 무료인지 물었더니 신분증을 보자고 해서 운전면허증을 보여줬다. 매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을 하였다. 처음으로 국립공원에 무료입장 혜택을 받는 순간이었다.
<식당과 박물관 입구 사이의 개천>
박물관으로 오르는 입구 오른 편으로 개천이 형성되어 있는데 물은 말라보이고 희끗희끗 잔설이 묻어 산바람만 흉흉하다.
<여기는 박물관을 관리하는 관리사무소인 것 같다>
<주차장 한 쪽 구석켠에 설치된 물레방아>
박물관 가는 길에 물레방아가 겨울 눈 속에 얼어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 녀석도 나처럼 봄꿈을 꾸며 동안거에 들어 있는지 모르겠다.
<석탄박물관 입간판>
<박물관 밖, 세계 광물 전시>
박물관 입구를 들어서면 커다란 전시물이 눈에 들어온다. 석탄을 연료로 하는 증기기관이다.
<석탄을 연료로 하는 양수펌프용 원동기>
<이런 공룡알 화석도 전시되어 있다>
<태백의 광부들이 사용하던 착암기>
많은 광부들의 피땀이 묻어 있을 저 착암기를 바라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예전에 나의 외삼촌도 여기 태백에서 광부생활을 했다. 한 번씩 굴이 무너져서 광부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며 외삼촌은 탄광생활을 청산했다. 어쩌면 저 착암기가 외삼촌이 사용했던 착암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니 이미 고인이 된 외삼촌이 새삼 떠오른다.
<광부들의 작업 모형1>
<광부들의 채탄작업 모형2>
지하 수 백미터 또는 수 킬로미터에 내려가 생사에 도전하며 진폐증에 시달리다 꽃같은 목숨을 잃기도 하는 저 광부들!!
삶은 이렇게 꽃필 수도 있다니, 아! 운명은 참 얄궂다.
여러 전시물이 있었으나 눈길을 가장 끌었고 속으로 뜨거운 뭔가가 치밀어 오르던 전시물이 아래에 있다.
<이것이 광부들이 사용한 안방 풍경이다>
가구 대신 트렁크 하나, 그 위에 부부가 덮고 자던 이부자리와 베게, 앉은뱅이책상에다 책 몇 권, 7시 반을 가리키는 벽시계, 석탄을 넣어 남편 옷을 다려 주었던 다리미, 이 단출한 살림이 이들의 가난을 대변하고 있다.
<출근하는 장면>
고단한 하루를 열며 남편이 신발을 신고 출발 채비를 하는데 옆에 서서 남편의 도시락을 챙겨주는 저 아내의 애틋한 눈길과 부엌 한 켠에 매달린 시래기, 집안은 온통 탄가루로 뒤집어쓴 듯하다. 나는 이 장면이 너무 울컥하다. 지금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지겨운 가난의 터널을 벗어났을까?
<아이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삶은 꽃피어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나는 이 전시물을 돌아 나와서도 광부의 아내 목소리가 자꾸만 들려온다. 여보! 조심해서 다녀 오세요!!
그럼, 아내가 준 도시락은 어떻게 되었을까? 밑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탄가루를 뒤집어쓰며 작업하던 광부는 작업장에서 그대로 점심시간을 맞이한다.
<광부들의 점심식사>
얼굴에 탄가루가 묻은 채로 아니 점심 도시락의 하얀 쌀밥에도 탄가루가 거뭇거뭇 묻어 있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들은 식사를 한다.
자, 이제 이 눈물 나는 전시관을 빨리 빠져 나가서 암울한 과거로부터 탈출을 하자. 그런데 이 광경을 보고 울컥하지 않으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 아닌가? 탄광은 81년도를 기점으로 점점 쇠퇴되어 지금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연탄이나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장면을 보기가 힘들다.
이 곳 태백석탄박물관 지역 내에는 눈썰매장도 있는데 그곳에는 들르지 않았다. 시간도 없지만 시니어들만 참여한 관광단이 눈썰매장에 가서 동심에 빠지기는 힘들다.
다음은 함백산 중산간 해발 1330m에 위치한 만항재에 가서 우울한 마음을 하얀 눈꽃에 씻어 보기로 한다
우리가 탄 버스는 정선의 카지노가 있는 고한을 경유하여 만항재에 올랐다. 이미 눈은 많이 녹아서 도로에는 염화칼슘 등으로 이미 눈이 제거되었고 나무들이 들어서 산비탈에는 눈이 아직 남아 있었다.
<만항재 표시석을 배경으로 우리 일행들>
그런데 태백산 눈꽃축제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의 눈 속 사진에 비하면 여기는 눈의 축제로는 너무 빈약하다. 나뭇가지가 부러질 것 같이 가지마다 수북이 쌓인 눈을 감상하기에는 애당초 틀렸다.
<아마 만항재에서는 눈이 너무 많아서 다이어트를 한 모양>
<눈밭에 귀순 용사들>
<수목들 사이 목책길이 있다>
언제 또 올 것인가 만항재
쫓기듯이 살다가 한 십년
기억이나 할 것인가
지금의 이 자리 이 사람들
바람 불어 찾아온 이곳에
바람 가듯 떠나고 나면
<만항재의 숲과 길>
만항재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의 경계 지역이다. 중산간에 이렇게 길을 내어 버스가 이 높은 곳 까지 오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만항재에는 많은 들꽃이 핀다. 그래서 하늘숲 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만항재 표시 입간판>
<만항재 원경>
<만항재 하늘숲 공원>
여기서 자생하는 야생화 사진과 해설이 담긴 전시물이 공원 가득 전시되어 있다. 구경하다 쉴 수 있도록 벤치도 설치해 놓았다.
<흔들의자에 앉아서>
바람에 야생화 흔들리듯
나 여기 마음실어 흔들리네
발 아래 눈꽃 밟으며
함백산 허리에 앉았네
만항재 감상을 마치고 다시 마지막 코스로 정암사를 찾았다. 정암사의 유래는 아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암사 유래>
<정암사 일주문>
<일주문을 지나 본당까지 올라가는 길>
<적멸보궁: 문수전>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절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그냥 사찰만 있다. 이를 적멸보궁이라 한다. 정암사에는 산 위 벼랑에다 수마노탑을 쌓고 여기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있는 수마노탑>
<배를 만지면 복을 받는다는 화상 조각>
<사찰과 돌담의 정갈한 멋>
정암사 관광을 끝으로 우리의 일정은 끝났다. 이후 우리는 버스로 제천역으로 돌아왔고 제천역에서 예약된 기차로 대전역으로, 다시 집으로 귀가하였다. 밤 9시 40분 경이 되었다.
첫댓글 여행의 기쁨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겨울 풍경은 아련한 추억이
되겠지요
예, 가끔은 일상을 벗어나 삶의 짐을 벗고 힐링의 시간을 가져야 또 다시 현실의 고통 속으로 뛰어들 수가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