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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신채호 申采浩 [1880~1936]</p>
<p>항일독립운동가, 사학자, 언론인.</p>
<p>본관 : 고령(高靈) </p>
<p>호 : 단재(丹齋) ·일편단생(一片丹生) ·단생(丹生) </p>
<p>별칭 : 필명 금협산인(錦頰山人) ·무애생(無涯生) </p>
<p>출생지 : 대전 </p>
<p>주요수상 :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p>
<p>주요저서 :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등 </p>
<p> </p>
<p>본관 고령(高靈). 필명 금협산인(錦頰山人) ·무애생(無涯生). 호 단재(丹齋)
·일편단생(一片丹生) ·단생(丹生). 대전 출생. 1897년 신기선(申箕善)의
추천으로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가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그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皇城新聞)》에 논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듬해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주필로 활약하였으며, 내외의 민족 영웅전과 역사 논문을 발표하여 민족의식 앙양에
힘썼다. 1907년 신민회(新民會)와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 등에 가입 ·참가하고,
이듬해 순 한글 《가정잡지》를 편집 ·발행하였다. </p>
<p>또한 《대한협회보(大韓協會報)》 또는 《기호흥학회보(畿湖興學會報)》 등에
논설을 발표하고 1909년 일진회(一進會) 성토에 앞장섰다. 1910년 4월 신민회 동지들과
협의 후 중국 칭다오[靑島]로 망명, 그곳에서 안창호(安昌浩) ·이갑(李甲)
등과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하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권업신문(勸業新聞)》에서
활동하다가, 1914년 이 신문이 강제 폐간되자 그 해 남북 만주와 백두산 등 한국
민족의 고대 활동무대를 답사하였다. 1915년 상하이[上海]로 가서 신한청년회(新韓靑年會)
조직에 참가하고, 박달학원(博達學院)의 설립 운영에도 힘썼다.</p>
<p>1919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가, 의정원(議政院) 의원, 전원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나, 한성임정(漢城臨政) 정통론과 이승만 배척운동을 내세워
공직을 사퇴하고 주간지 《신대한(新大韓)》을 창간하여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獨立新聞)》과
맞서기도 하였다. 그 후 비밀결사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단장, 신대한청년동맹(新大韓靑年同盟)
부단주(副團主) 등에 피선되었다. 1923년 민중의 폭력혁명으로 독립의 쟁취를 부르짖고
임시정부 창조파(創造派)의 주동역할을 하다가 다시 베이징[北京]으로 쫓겨가 다물단(多勿團)을
조직 지도했으며, 중국과 본국의 신문에 논설과 역사논문을 발표하였다. </p>
<p>1925년경부터 무정부주의를 신봉하기 시작, 1927년 신간회(新幹會) 발기인, 무정부주의
동방동맹(東方同盟)에 가입, 1928년 잡지 《탈환》을 발간하고 동지들과 합의하여
외국환을 입수, 자금 조달차 타이완으로 가던 중 지룽항[基隆港]에서 피체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旅順] 감옥에서 복역 중 1936년 옥사했다. 적과 타협없이 독립투쟁을
전개하는 동안 ‘독립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라는 결론에 도달,
이와 같은 견해가 곧 그의 역사연구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고조선(古朝鮮)과 묘청(妙淸)의
난(亂) 등에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고 ‘역사라는 것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다’라는
명제를 내걸어 민족사관을 수립, 한국 근대사학(近代史學)의 기초를 확립했다. </p>
<p>저서에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조선상고문화사(朝鮮上古文化史)》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艸)》
《조선사론(朝鮮史論)》 《이탈리아 건국삼걸전(建國三傑傳)》 《을지문덕전(乙支文德傳)》
《이순신전(李舜臣傳)》 《동국거걸(東國巨傑)》 《최도통전(崔都統傳)》 등이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p>
<p>단재 신채호는 역사학자였지만, 언론인으로 또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사관은 그가 국내외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그의 초창기 사관은 소수의 영웅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영웅주의사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후 중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고, 따라서 고대문화를 폭 넓게 이해하게 되면서 영웅주의
사관을 극복하고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p>
<p> 그리고 후에는 역사의 주체인 민중이 혁명을 주도하여 항일투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에 폭력적 항일운동과 무정부주의 투쟁을 전개하게
되었던 것이다.</p>
<p> 이렇듯 단재는 한국사를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에서 사관의 변화를 가져왔지만,
독립운동가로서 국권을 회복하고자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한 민족주의자였던 것이다.
그가 국사의 연구와 교육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 것은 그것이 단순한 '국사의
연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통해 민족의 자강과 나라의 완전한 독립을 추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p>
<p>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볼 때 그의 민족주의 사관은 민족의 자강과 독립이라는
사상적 바탕위에서 성립된 것이었다. 이와같이 그의 사학은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지만, 민중을 주체로 한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유교적인 전근대사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근대사학으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p>
<p> </p>
<p>주요 저서인 '조선 상고사"</p>
<p>단재선생이 중국 북경에 망명해있던 1924년, 25년경에 쓴 것으로 짐작되는 '조선사'의
총론 부분으로 1931년 6월 10일부터 6월 25일까지 14회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된
것이다. 이때 '조선사'는 총 102회나 연재되었고(10월 14일까지), 이어서 '조선상고문화사'가
두 번으로 나뉘어(1931년 10월 15일 ∼ 12월 3일, 39회;1932년 5월 27일 ∼ 5월 31일,
4회) 같은 신문에 총 43회분이 연재되었다. 이 '조선상고사 총론'은 '조선사'에 붙은
총론이므로 '조선사총론'이라고 해야 하지만, 단재 선생의 이 저술이 상고시대에까지
밖에 미치지 못했으므로 '조선상고사 총론'이라 한 듯하다.단재는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정의하고, 조선민족을 아의 단위로 삼아 그 정치·사회
등 각분야의 소장성쇠를 서술하였다. 역사의 구성요소를 시(時)·공(空)·인(人의)
세가지로 파악하고, 이에 바탕하여 조선의 기존 역사서들에 대한 철저한 문헌비판을
제기하였다. 그 방법으로 이두문에 대한 새로운 해석, 각종 전적에 대한 사료비판,
언어·풍속의 연구 등을 제시하였다.</p>
<p>"독사 신론"</p>
<p>단재선생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있으면서, 풍전등화와 같은 국운을 안타깝게
여기는 한편, 쇠미해진 국운을 떨쳐 일으키고자 우리나라 역사에서 그 정신을 찾으려고
집필한 글이다. 이 글은 1908년 8월 27일부터 9월 15일까지, 10월 29일부터 12월
13일까지 총 50회에 걸쳐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되었다. 12월 13일자 연재끝에는 '미완'이라고
되어있다. 이 글에서 단재는 우리 민족이 단군의 후예이며, 중심종족은 부여족임을
천명하고, 기자를 정통에서 몰아내었다. 단군시대로부터 삼부여(북부여, 동부여,
졸본부여),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부여족을 중심으로 우리 민족의 성쇠를 살피고
있으며, 특히 고구려의 멸망을 부여족 쇠퇴의 결정적 원인으로 파악하고 이를 규명하였고,
발해의 역사가 민족사에서 빠진 것과 그 원인을 서술하였다. </p>
<p>"조선상고 문화사"</p>
<p> 단재선생이 1910년대 후반에 저술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상고사에 관한 글로 1931년 당시 조선일보 사장 안재홍의 주선으로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 이 문헌은 단재의 역사연구단계로 볼 때 '독사신론'에서 '조선상고사'로
이행하는 중간단계의 작품으로 그 내용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p>
<p>첫째,'독사신론'에서는 단군·부여·고구려로 계승되는 역사인식체계와
그 역사무대로서 만주를 중요시하였지만, 이 책에서는 만주와 한반도는 물론
부여족의 식민지로서 중국대륙의 일부까지를 우리의 역사로 수용하고 있다. 이에따라
한사군의 반도외존재설과 전후삼한설 등이 새롭게 주장되어지게 되었다. </p>
<p>둘째, 대종교적 분위기에 젖어든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고적답사를 통한 현장확인,
문헌수집, 유물발굴 및 실증적 방법의 적용 등의 노력을 엿볼 수 있으며 평이한 국한문
문체의 역사저술을 느낄 수 있다. </p>
<p>셋째, 한국의 상고문화에 대한 국수주의적이고 자존적인 인식이 뚜렷하다. 단군왕조를
강조한 것은 대종교의 포교와 관련이 깊겠지만, 그 밖에 우리의 상고문화가 중국을
능가하는 우수한 문화임을 강조하는 여러 사례들이 기술되어 있는 것은 이 책이 중국에
대한 문화사대와 일제의 식민지상황을 철폐하려는 자주적인 역사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p>
<p>"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 사건"</p>
<p>1925년 동아일보에 게재된 글인데, 이 글에서 단재는 묘청이 일으킨 서경전역의
이면에는 낭·불·유(郎佛儒) 3가의 쟁투가 감추어져 있었으며, 이는
곧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이며, 진취사상 대 보수사상의 다툼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 결과 낭·불 양가는 패퇴하고 유가가 집권하여 민족의 진취적인 기상이
소멸되었다고 보았으며, '삼국사기'를 그 산물이라고 보았다.</p>
<p>"" 천고""</p>
<p>오호(嗚呼) 금일 아 대한에 하(何)가 유(有)한가. 국가는 유하건마는 국권이 무한
국(國)이며 인민은 유하건마는 자유가 무한 민(民)이며 화폐는 유하건마는 주조권(鑄造權)이
무유(無有)하며 법률은 유하건마는 사법권이 무유며 삼림이 유하건마난 아의 유가
아니며 철산(鐵山)이 유하건마난 아의 유가 아니며 우전(郵電)이 유하건마는 아의
유가 아니며 철도가 유하건마는 아의 유가 아니니 연즉(然則) 교육에 열심하야 미래
인물을 제조할 대교육가가 유한가. 차도 무유며 연즉 식견이 우월하야 전 국민지(國民智)를
계발할 대신문가가 유한가. 차도 무유며 대철학가 대문학가도 무유며 대리상가 대모험가도
무유라. 공공무존(空空無存)의 국에 창창무적의 인(人)이 되야 기 참담(慘淡)의 광경은
소아 기제(飢啼)에 병속(甁粟)이 사정(巳整)한 빈호(貧戶)의 궁동(窮冬)이며 기 처측(悽惻)의
정상(情狀)은 정부원술(征夫遠戌)에 고침독처(孤枕獨處)한 사부(思婦)의 장야(長夜)오.
기 생활은 도탄수화(塗炭水火)가 방심(方深)한 일이며 기 산업은 지이파쇄(支離破碎)가
이극(已極)한 후니 금일 아 한국민의 소유가 하(何)라 운(云)할고, 오호라 아응(我膺)을
문하고 배회삼사(徘徊三思)컨대 일장물(一長物)이 상유(尙有)하니 장물유하(長物維何)오.
왈 희망이 시이(是已)로다.</p>
<p> 희망이란 자난 만유의 주인이라 화(華)가 유함에 실(實)이 유하며
근(根)이 유함에 간(幹)이 유함갓치 희망이 유하면 사실이 필유하나니 상제(上帝)의
희망으로 세계가 즉유(卽有)하며 민중의 희망으로 국가가 즉유하며 부조(父祖)의
희망으로 자손이 즉유하며 동류(同類)의 희망으로 붕우(朋友)가 즉유하며 야만(野蠻)이
희망하야 문명을 유하며 완고가 희망하야 혁신을 유하며 미약이 희망하야 강력을
유하며 잔열이 희망하야 우세를 유하며 유자(柔者)가 강하랴면 강을 희망하며 쇠자(衰者)가
성하랴면 성을 희망하나니 대(大)하다 희망이며 미(美)하다 희망이여.</p>
<p> 농부의 천창만상(千倉萬箱)이 일토사의 용력이며 어자(漁者)의
오호삼강(五湖三江)이 일어망(一漁網)의 성공이며 인생의 백년 사업이 일희망의 결과하난
배니라.</p>
<p> 사실이 희망에서 기한다 함은 고연(固然)한 이(理)어니와 앙역희망(仰亦希望)이
사실로 연생(緣生)하니니 언(諺)에 운(云)함과 갓치 우(牛)도 가빙(可憑)의 안(岸)이
유한 연후에야 기한다 하고 희망도 가위(可爲)의 도가 유한 연후에 생할지어날 시사(試思)하라
금일 아한(我韓)이 가위의 도가 유타 할까.</p>
<p> 시국이 일환(日幻)하고 조정이 일비(日非)하야 주중천지(舟中天地)에
거목개적(擧目皆敵)이오 문전(門前) 형극(荊棘)에 이족공촉(移足恐觸)이라 복심(腹心)이
구병(俱病)하고 백해(百骸)가 개통(皆痛)하니 비록 대영웅 대정치가 기인(其人)이
기하더래도 활동할 여지가 하처(何處)인가. 시고(是固)로 희망의 반대자 즉 절망이
상지(常至)하야 산림자복자(山林雌伏者)가 완몽(頑夢)을 초성(稍醒)하야 신사업에
유심(留心)하랴 하다가 맥연(驀然)히 비루(悲淚)를 처쇄(처灑)하고 고시대(故時代)를
회앙(回仰)하니 장하다. 신라 고구려의 무략(武略)이여 일본을 동어(東禦)하며 지나(支那)를
서정(西征)하고 계단(契丹)을 격파하며 여진을 구축(驅逐)하얏스니 당년 호걸을 금일에
재득(再得)할 수 유한가. 성(盛)하다 열조열종(烈祖列宗)이여 도덕에는 조정암(趙靜庵)
이퇴계며 경세(經世)에난 정다산 유번계(柳磻溪)며 장략(將略)에난 이충무 곽망우(郭忘憂)며
문장에난 최간이(崔簡易) 유어우(柳於于)니 여차성운(如此盛運)을 금일에 재만(再挽)할
수 유한가, 오호 쇠의(衰矣) 금일 아한이 여하며</p>
<p> 해외 유학자가 예기방장(銳氣方壯)하야 신무대에 활연(活演)하랴
하다가 맹연히 안공(眼孔)을 대착(擡着)하고 열강국(列强國)을 주찰(周察)하니 미(美)하다
성읍이며 다(多)하다 군함이여. 금궁(金宮) 옥전(玉殿)에 인목(人目)이 현요(眩耀)하며
수뢰철갑(水雷鐵甲)은 해상에 나열하얏스니 아한은 기백년 후에나 여차(如此)하랴난지.
강하다 국력이며 부하다 민산(民産)이여. 모국 국기에난 태양이 불몰(不沒)한다 하며
모국 금력은 세계에 무량하다난대 아한은 기천년 후난 여차하랴난지. 오호 난의(難矣)라
아한 금일이 여하야</p>
<p> 삼반(三反) 오복(五覆)하야도 절망만 유심(愈深)하나니 상재(傷哉)라
절망이며 애재(哀哉)라 절망이여. 무고궁민(無告窮民)이 고통을 인억(忍抑)하고 일루(一縷)의
생명을 구보(苟保)함은 상차(尙此) 희망 이자가 유한 소이니 희망이 기절(旣絶)이면
수생(雖生)이나 하위(何爲)리요. 시고(是固)로 탄현(炭峴)이 실험(失險)하고 백강(白江)이
불수(不守)하야 적기(敵崎)가 장구(長驅)에 구도(舊都)가 전복(顚覆)함에 군왕은총(君王恩寵)에
조석 가무하야 우환수고(憂患愁苦)가 하물(何物)인지 부지(不知)하던 백제 왕궁의
애희(愛姬)로도 낙화암상(落花巖上)에 향혼(香魂)을 단송(斷送)하얏스며 궁예가 사학(肆虐)하고
견훤이 계기(繼起)하야 구분이 창천(漲天)에 흥복(興復)이 무책(無策)함에 용루(龍樓)
좌우에 엄연(儼然) 시립(侍立)하야 장래 부귀가 유아(惟我)의 소유라 하던 신라 귀족에
공자로도 지리산중에 승발(僧髮)을 자축하얏스니 애재라 절망이며 상재라 절망이여.
성희연나(聖希連拿)의 일고도(一孤島)에 신세가 유수(幽囚)되니 당년 필마로 구주에
횡행하던 나파륜도 비가(悲歌)나 창(唱)할지며 대피득보(大彼得堡)의 옥중귀(獄中鬼)로
천일(天日)을 불견(不見)하니 향일의(向日義)로 파란(波蘭)을 회복(恢復)하랴던 고수사고(高壽斯古)도
참혈(慘血)이나 토(吐)할지니 애재라 절망이며 상재라 절망이여. 개래두(盖來頭)의
화복은 당장 성패(成敗)에 부재하고 희망 유무에 재한 고로 여조(麗祖)의 동수(桐藪)가
나왕(羅王)의 포석(鮑石)보다 위(危)하나 희망이 불추(不墜)한 고로 위만 유하고
망(亡)은 무하얏스며 구천(句踐)의 계산(稽山)이 부차(夫差)의 용동(甬東)보다 참혹하나
희망이 불결(不缺)한 고로 참(慘)은 유하되 멸(滅)은 무하얏스니 금일 아한(我韓)이
과연 희망이 상유(尙有)한 시대인가. 왈 금일 아한이 부(富)난 타국만 부여(不如)하나
부의 희망은 타국보다 대(大)하며 강(强)은 타국만 부여하나 강의 희망은 타국보다
심(深)하며 문명은 타국에 불급(不及)하나 문명에 대한 희망은 타국보다 원과(遠過)하다
하노니 대하다 아한 금일의 희망이며 미하다 아한 금일의 희망이며. 대저 희망의
맹아가 항상 고통시대에 재하고 안락시대에 부재하나니 역사상의 이례(已例)를 거(擧)하건대
하국(何國) 하민(何民)이 부연(不然)한가. 노이(路易)의 잔폭(殘暴)가 안이러면 금일
법국(法國)이 무할지며 사리사(査理士)의 압제가 안이러면 금일 영국이 무할지며
영길리(英吉利)의 가세(苛稅)가 안이러면 금일 미국이 무할지며 오지리(墺地利)의
참압(慘壓)이 안이러면 금일 이태리국이 무할지며 법란서(法蘭西)의 모멸(侮蔑)이
안이러면 금일 덕국(德國)이 무할지며 금일 일본도 구인(歐人)의 만압(慢壓)으로
유(由)하야 발흥하얏스며 금일 아라사(俄羅斯)도 전패(戰敗)의 여분(餘憤)으로 이(以)하야
개혁한다 하니 오호라 망망(茫茫) 지구상에 강국이라 칭하난 국이 일도(一度) 고통이
무하고서 능흥(能興)한 자-혹 유한가. 고로 왈 <기아자-복이라 하며 핍박자-복>이라
함은 개인(蓋人)의 희망이 액경중(厄境中)에서 시생(始生)함을 운(云)함이니 아한
역사를 논하건대 이왕에 고통이 증래(曾來)하얏던가. 국가가 기백년 완전한 독립권을
실한 지 이구(已久)라 하나 내정의 자주를 관(觀)하야도 독립이며 외교의 체약(締約)을
관하야도 독립이며 관리의 출척(黜陟)을 관하야도 독립이며 화폐의 자주(自鑄)를
관하야도 독립이니 명의상(名義上) 불독립국으로 내용의 독립 권리를 우대하고 간혹
원구(遠寇)의 내침과 내지의 소요구(騷擾救)가 기(起)하면 피(彼) 소위 대방자(大邦者)를
초(招)하야 왈 이(爾)가 아(我)하라 하야 피(彼)를 반(反)히 노예갓치 사환(使喚)하얏스며
국민이 자래로 전제정치하에 칩복(蟄伏)하얏다 하나 심산중(深山中)에서 은거독락하랴도
아의 자유며 성시간(城市間)에 기인(欺人) 편재(騙財)하랴도 아의 자유며 후주잡기(후酒雜技)로
평생을 오송(誤送)하랴도 아의 자유며 연문(沿門) 지발(持鉢)에 걸식으로 종신(終身)하랴도
아의 자유니 이론상 불자유민(不自由民)으로 실제의 자유 신분을 쾌작(快作)하고
간혹 호족의 능모(凌侮)로 침탈을 당하더래도 방혜곡경(傍蹊曲逕)만 선천(善穿)하면
피(彼)의게 반(反)히 압억(壓抑)을 가하얏스니 비록 고자(古者)에 기반이 심우심(甚又甚)하고
학염이 혹우혹(酷又酷)한 시대라도 목하 이십세기의 보호운(保護云) 압제운(壓制云)과난
천양(天壤)이 판이하되 우황천산(又況天産)이 자족(自足)에 인력을 부대(不待)며
변봉(邊烽)이 안연(晏然)에 외구(外寇)가 불래(不來)한 고로 차국(此國)의 주인된
국민으로 주인의 사무를 망각하고 기백년은 부락존장에게 임하며 기백년은 봉건제도에게
임하고 기백년은 과인정치에게 임하고 기백년은 세가귀족에게 임하야 피가 선정을
행하던지 악정을 시(施)하던지 관작을 매(賣)하던지 법률을 농(弄)하던지 도시 불문하고
아난 열반(涅槃) 정토(淨土)에 대자존(大自存)함갓치 우유무사(優遊無事)하던 국민이니
설령 차시(此時)에 노사(盧梭)의 혜두(慧竇)로 복록특이(福祿特爾)의 필(筆)을 차(借)하며
마지니(瑪志尼)의 열성으로 나파륜의 설(舌)을 겸하야 동분서주하며 규호불이(叫呼不已)하더래도
필경 일개도 회두(回頭)할 자 - 무하리니 기고(其故)가 하고(何故)오. 고통이 소(少)하야
희망이 천(淺)한 고(故)니 십여년간 천상에서 낙래(落來)한 독립을 자양(自壤)함은
일반 지사가 구혈장통(嘔血長慟)하되 실즉(實則) 새옹실마(塞翁失馬)에 부(付)할배라.</p>
<p> 내자(乃者) 수년 이래로 천지가 번복하고 풍운이 참담하야
아 사천년래 신성국가가 보호 지위에 낙재(落在)하야 일체 권리를 개실(皆失)함에
청촉(請囑)의 문도 진새(盡塞)하고 사환(仕宦)의 노(路)도 점절(漸絶)하니 피(彼)
불생 불멸 불한(不寒) 불열(不熱)하던 인물들도 초초회두(稍稍回頭)의 심(心)이 유하리니
어시호 대가위(大可爲)의 시기며 </p>
<p> 재자(再者) 일청의 전(戰)도 아한으로 유기(由起)하며 일아의
전(戰)도 아한으로 유기하고 세계만목(萬目)이 한국문제에 진주(盡注)함에 종래 동서열강과
교섭이 무다(無多)하야 동아 일방에 은군자갓치 독락(獨樂)하던 한국이 열국경쟁의
중심점이 되니 어시호 대가위의 지위로다. 대가위의 지위에 처하야 대가위의 시기를
득하야도 대가위의 국민이 안이면 대사업을 능성(能成)치 못하건이와 아가 아국 동포를
관하건대 대가위의 품격이 구유(具有)하도다. 승평세월(昇平歲月)에 나몽(懶夢)이
정장(正長)하야 강호곤우(江湖곤雨)에 백구(白鷗)를 초(招)하다가도 홀연 조지벽력(早地霹靂)에
임진란갓흔 겁운(劫運)이 돌래(突來)하면 전간토고(田間土鼓)를 격파하고 어적(禦敵)의
책(策)을 강구할새 임장졸판(臨場猝辦)으로도 시제(試題)를 선주(善做)하야 철포(鐵砲)를
창조한 박진씨도 유하며 철갑선을 창조한 이순신씨도 유하야 명예적 기념비를 역사상에
장수(長竪)하얏스니 피 서구에 강경위대(强勁偉大)로 견칭(見稱)하는 국인(國人)이라도
아 민족과 이지이처(易地以處)하면 아가 피보다 우과(優過)하고 만일 교육이나 초진(稍進)하야
지식이 점개(漸開)하면 현금 웅비 각국과 병가제구(幷駕齊驅)하기 불난할지니 피가
아의게 불급(不及)한 처가 다유(多有)하도다. 오호 아 국민이여 대가위의 국민이
안인가. 대하다 아한 금일의 희망이며 미하다 아한 금일의 희망이여. 강감찬씨가
여진에게 패주하며 왈 금일지사(今日之事) 강조일인지구당수병련졸서도흥복가야(康兆一人之咎當收兵練卒徐圖興復可也)라
운(云)하얏스니 여진과 전패(戰敗)함은 강조일인(康兆一人)의 구(咎)어니와 강조(康兆)
일인에게 정권을 전임(專任)함은 우(又) 만정(滿廷) 군신의 구라 할지어날 강공이
의연이 차언(此言)을 출(出)함은 하고(何故)인가. 개강조일인(蓋康兆一人)의 패적(敗績)함은
전국이 개패(皆敗)인 줄노 사상(思想)하야 내두흥복(來頭興復)이 무망(無望)이라
하난 용인완뇌(庸人頑惱)를 갈파함이니 금세에 기십년 완부정당(頑腐政黨)의 오국(誤國)을
인하야 일반 국민을 균시(均是) 무능력자로 촌도(忖度)하난 자 - 유한가. 아 차일언(且一言)으로
해조(解嘲)하야 왈 이왕은 조정 제공의 구(咎)오 내두(來頭)난 전체 국민의 책(責)이라
하노니</p>
<p> 차(嗟) 아국민이여 금일부터 대희망으로 대진보하야 대국민을
작(作)할지니라.</p>
<p>혹 왈 금일에 여차히 희망이 유하다 하니 차 희망으로 전진하면 기년 후에나 목적지에
도달할가. 왈 의무만 천(踐)하면 권리가 자래(自來)하며 책임만 수(酬)하면 행복이
자지(自至)하며 가치만 출(出)하면 허다화물을 개득(皆得)하나니 일일만에 차 의무
차 책임을 진(盡)하면 명년에 차 권리 차 행복을 응득(應得)할지며 십년만에 진하면
십년 후에 응득할지며 백년만에 진하면 백년 후에 응득할지며 천년 만년이라도 차를
능진(能盡)치 못하면 권리 행복은 고사(姑捨)하고 고통만 일심(日深)하야 이(爾)의
희망하던 목적이 몽포(夢泡)를 작(作)하리니 고로 오배(吾輩) 금일에 의무 책임의
수진(酬盡)함만 주야면려(晝夜勉勵)할지요 권리 행복의 하시래(何時來)난 문(問)할바도
안이며 구(究)할 바도 안이니라.</p>
<p> 혹 우왈(又曰) 아한이 여차히 희망이 유하다 하니 연칙 기십
기백년 후일지라도 한국은 종당 한국인의 한국이 되야 타국의 기반(기絆)을 불수(不受)할가.
왈 기국민이 기 국을 자국으로 지(知)하면 기 국이 자국민의 국이 되며 기 국민이
기 국을 타국갓치 시(視)하면 기 국이 타국인의 국이 되나니 차(此)는 난도(難逃)의
공예(公例)라 비(譬)컨대 천금재산을 차에 치(치)하고 주인이 유탕불고(遊蕩不顧)하면
기 간복(奸僕)이 기무전(幾畝田)을 점(占)하며 기 교객(嬌客)이 기간옥(幾間屋)을
잠유(潛有)하며 심지(甚至) 기 인가(隣家) 주파(酒婆)까지 기 분전척포(分錢尺布)에
유정(流정)하야 해가(該家)의 주권이 타가(他家)로 이(離)하려니와 단 기 주인자가
분발자려(奮發自勵)하난 경우에난 당당 소유권을 수(誰)가 감이(敢移)하리요. 즉
금 아한이 중흥하랴면 국민 인인이 자국사업에 발분할 이이(而已)라. 파란(波蘭)
애급(埃及)에도 의사가 불무(不無)며 월남 비율빈(菲律賓)에도 충신이 역유(亦有)하건마난
필경 망국의 참상을 정현(呈現)함은 차등(此等) 충의난 소수에 거(居)하고 기 대부분
국민은 개준준우매(皆蠢蠢愚昧)한 소치니 금일 오배(吾輩)가 국민의 지식과 실력이
미진함만 시우(是憂) 시려(是慮)할 것이오 차국(此國)의 기반(기絆) 탈면(脫免)이
무계(無計)라난 망상은 작(作)함이 불가하니라. 왈 희망이 여차 대유(大有)한 금일
아한으로 중로 퇴저(退沮)할 리(理)가 만무하니 연칙 오배의 진취하난 전도난 구심토혈(嘔心吐血)할
필요도 무(無)하며 마권찰장(磨拳擦掌)할 필요도 무하고 단지 옹용담소(雍容談笑)로
순서이진(循序以進)함이 족할가. 오호라 불가불가하다. 고통중에 재한 자의 희망은
태사(太奢)하며 우(又) 태급(太急)하야 실망이 매이(每易)하나니 비록 천하장사 항우라도
혹병(酷病)에 이(罹)하야 고고구약(苦苦求藥)하난대 하허(何許) 일용의(一庸醫)가
부자환(附子丸) 십근을 투(投)하며 왈 차약(此藥)을 몰탄(沒呑)하여야 여병(汝病)이
속차(速差)하리라 하면 즉 대두전앙(擡頭前仰)할지며 하허일구인(何許一仇人)이 조훼탕(鳥喙湯)
수첩(數貼)을 환(換)하여 왈 차약(此藥)을 진복(盡服)하여야 여병(汝病)이 쾌거(快祛)하리라
하면 즉 개구음하(開口飮下)하리니 불과 순식간에 일명(一命)이 오호료(嗚呼了)할지라
엇지 계신(戒愼)할 처(處) 안인가. 목하 팔역(八域)을 환고(環顧)하건대 옹옹희망(옹옹希望)이
원근 일반인대 불행마류(不幸魔類)가 종횡하야 혹 외인 의뢰로 기치를 수(竪)하고
휘지(麾之) 왈 내(來)하라 내하라 여(汝)가 차에 내하여야 복록(福祿)을 향(享)하리라
하며 혹 동포 압제로 수단을 작(作)하난 자가 초지(招之) 왈 내하라 내하라 여가
차에 내하여야 이익을 득하리라 하며 혹 심장 전환(全換)한 자가 왈 내하라 내하라
하며 혹 도덕 타양(墮壤)한 자가 왈 내하라 내하라 하며 혹 내흉외직(內凶外直)한
자 혹 인리망의(因利忘義)하난 자 혹 견기추부(見機趨附)하난 자 혹 조명투예(釣名偸譽)하난
자가 막불(莫不) 아 동포 이타(耳朶)에 향하야 내하라 내하라 대규(大叫)하나니 위험하다.
금일이여 방황문로(彷徨問路)하난 동포들이 기 감언을 미신하야 건상왕종하난 일(日)이면
형극중(荊棘中)으로 향할난지 수화중(水火中)으로 향할난지 차개불지(此皆不知)에
속한 사(事)니 신사업에 주의하난 제군들아 금일이 과연 하일(何日)인가. 차 국민에
차 희망을 성취케 하난 자도 제군이며 실패케 하난 자도 제군이니 불가불 김유신씨가
석굴에 기도하난 정성을 포(抱)하며 최춘명씨가 고성(孤城)을 독수(獨守)하던 기개를
장(仗)하고 좌수(左手)에 하우씨(夏禹氏)가 용문(龍門)을 개착(開鑿)하던 신부(神斧)와
우수(右手)에 노양(魯陽)이 낙일(落日) 도휘(倒揮)하던 장과(長戈)를 하(荷)하고
서초패왕(西楚覇王)의 심선파(沈船破) 부증(釜甑)하던 결심으로 대답보(大踏步) 전진하야
교육을 제창커던 기 심(心)에 기 신(身)도 무(無)하며 기 가(家)도 무(無)하고 교육만
유(有)하며 학문을 연구커던 기 심에 기 신도 무하며 기 가도 무하고 학문만 유하며
정객의 심에난 정치개선만 유하며 실업자의 심에난 공익사업만 유하야 말내(末乃)
기 망신(忘身) 망가(忘家)의 소득자(所得者)로 차국(此國)에 공헌하되 형극(荊棘)이
차국(此國)의 전도를 전새(塡塞)하거든 만검(萬劒)이 제분(齊奮)하며 사축(蛇축)가
차국의 강토를 천식(천食)커든 만노(萬弩)가 제발(齊發)하야 대국민의 의기로 대단체를
공결(鞏結)하면 흉중에 포장(抱藏)한 희망이 안전(眼前)에 용현(湧現)할 시기가 유하리니</p>
<p>대하다 아한 금일의 희망이며</p>
<p>미하다 아한 금일의 희망이여</p>
<p>미구에 조물자가 세계 각국민의 시험 성적을 고감(考鑒)하나니 아 국민이 제일등의
자격이 유하도다만은 만일 태타한만(怠惰汗漫)하야 경쟁심이 무(無)하면 공(空)을
득(得)하나니라.</p>
<p> 오호라 현재의 고통은 과거 무희망으로 유(遺)한 얼업이오
미래의 행복은 현재 유희망으로 파(播)할 종자니 면(勉)할지어다 아 한인아. 과거의
무희망은 과거 인물이 조(造)한 겁몽이며 미래의 유희망은 미래 인물이 축(築)할
토대이니 면할지어다 아 한인아. 과거의 무희망으로도 기 고통이 차극(此極)에 이지(已至)하얏거던
현재에도 무희망하면 미래에 고통이 장우하경(將又何境)에 지(至)하리요. 면할지어다
아 한인아. 아차일리담(我且一俚談)으로 고하야 왈 전동(前冬)의 동아(凍餓)를 사(思)하거던
금하(今夏)에 유태(遊怠)를 무작(無作)하며 선대의 산업을 원하거든 명일로난 탕패(蕩悖)를
무재(無再)하라 하노니 아한 금일이 과연 하일(何日)인가. 금일에도 희망이 상박(尙薄)하면
타일(他日)에난 희망하랴도 희망할 여지가 무하리니 면할지어다 금일 아 한인아.
희망에서 원력(願力)이 생(生)하고 원력에서 열심(熱心)이 생하고 열심에서 사업이
생하고 사업으로 국가가 생하나니 면할지어다 아 한인아. 희망할지어다 아 한인아.
Top</p>
<p>대한협회월보 제1호 1908년 4월호</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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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y>
</html>
P.s . 음악은 백인들의 인종차별에 저항한 남아프리카 Zulu 족의 곡 Homeless입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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