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계의 시선이 온통 챔피언결정전에 쏠려있던 지난 4일. 어쩌면 한국 축구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지도 모를 또 하나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인천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를 숭의축구전용구장 조감도. 초기 단계의 구상이라 실제로 시공에 들어가는 현재의 설계도와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 인천구단의 설명이다. 제공 | 인천유나이티드
이날 인천도시개발공사는 인천광역시 남구 숭의동 180-6 일대 9만127㎡ 부지에 대한 개발 사업계획을 제시하고 우선협상 대상자로 현대건설 컨소시엄을 확정했다. 총 공사비 7000억원을 투입해 축구전용경기장을 포함한 대규모 복합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도원역 역세권의 유동인구를 겨냥한 주상복합과 상업시설이 포함됐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사업의 핵심은 역시 축구전용경기장이다. 2만여석 규모의 숭의축구전용구장(가칭)은 내년 3월께 착공해 2010년 3월께 완공되면 인천 유나이티드의 홈 그라운드로 활용된다. 시민구단이 최초로 월드컵경기장이 아닌 축구전용경기장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인천은 창단 2년만에 K리그 챔피언결정전에 오르고 창단 3년째 흑자경영으로 돌아섰으며 최근에는 코스닥 상장 시나리오까지 공개하며 한국 프로축구가 경험하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을 과감하게 개척해 나가고 있다. 대전, 대구 등 시민구단이 인천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있고 시민구단 형태의 창단과정에서는 항상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축구 경영의 귀재'로 불리는 안종복(54) 사장이 있다.
시민구단 인천을 2년째 흑자경영으로 이끌고 있는 안종복 사장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인천의 향후 30년 구상을 밝히고 있다.
◇한국 프로축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든다
안 사장은 "전용경기장이 건립되면 한국 축구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축구전용경기장 외에 골프연습장을 포함한 스포츠 컴플렉스, 복합상영관, 쇼핑몰 등을 유치해 장기 임대하기로 인천시와 협약을 맺음으로써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승기 하수종말처리장 부지에 건립한 숙소와 잔디구장 외에 인조잔디구장 3개면을 증설해 함께 운영한다. 이러한 체육 인프라를 활용한 수입을 30~40억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고 그렇게 된다면 완벽한 흑자경영의 구조를 갖출 수 있다. 그가 구상하는 흑자경영을 위한 또하나의 중심축은 코스닥 상장이다. "구단의 1차적인 수입원은 입장수입과 중계권료, 기타 머천다이징과 트레이드 등으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약팀일수록 선수 트레이드를 통한 수입이 많고 강팀일수록 중계권료나 머천다이징 수입이 많아진다. 중계권 수입이 한 푼도 없는 우리 현실에서는 구단이 독자적인 수익구조를 가지고 흑자경영을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코스닥 상장을 통해 숨통을 틔워야 한다. 근거없는 얘기는 못한다. 5만여명의 주주를 상대로 사기칠 수는 없지 않나. 장부 조작으로 코스닥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만한 가능성을 봤기 때문에 발표를 했다. 충분한 수익모델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장을 하게 되면 주주들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성적과 흑자라는 두 가지 압력이 동시에 들어온다. 성적을 내기 위해 좋은 선수를 데려오다보면 흑자를 내기 어렵고 기대한만큼의 성적마저 나오지 않는다면 버텨낼 재간이 없다. 그러나 두 마리 토끼를 쫓지 않는다면 충분히 버틸 수 있다. 흑자 구조만 쫓아가면 된다.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잘 갖춰 유망주를 길러내고 선수 펀드를 활용해 대형선수 영입에 투입되는 비용을 절약할 수도 있단다.
인천은 지난 9월 동양종합금융증권을 코스닥시장 상장을 위한 대표주관사로 선정하고 계약 체결 조인식을 가졌다. 사진 왼쪽부터 안종복 사장, 안상수 인천시장, 전상일 동양종합금융증권 대표이사, 박창규 인천시의회 의장. 제공 | 인천 유나이티드
◇끊임없는 도전이 발전의 원동력
인천의 마케팅은 도발적이고 공격적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적자를 떨궈낼 수 없고 발상의 전환을 해야만 한다는 게 안 사장의 지론이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낸다. 그래서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그는 '피곤한 사람'이다. 그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에 도전하는 용기 덕분에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할 정도로 모험을 즐긴다. 발전이 없는 것은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안주하려고 하기 때문이란다.
그는 "1억원을 벌어올 자신이 있는 사람은 언제든 1000만원을 갖다 써라"라고 직원들에게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책임감을 갖고 자신있게 업무를 처리하라는 뜻이다. 그에게 결재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결재는 조직의 위계질서 차원에서는 필요하지만 결국은 담당자가 책임을 지는 구조가 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담당자가 공부하고 노력해서 자꾸 덤벼야 한다. 좌충우돌하며 부딪치는 사람이 마지막에 이긴다. 그래서 인천 프런트는 항상 분위기가 살아있다.
인천이 지난 달 19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달리던 울산에 일격을 가하는 순간이다. 인천은 올시즌 주력 선수들을 대거 이적시키고 장외룡 감독까지 축구유학을 떠난 상태에서도 고비마다 끈끈한 저력을 발휘했다. 제공 | 인천 유나이티드
◇광고주의 주머니를 털어라
보통 경기장 펜스 광고는 1칸당 500만원선에서 판매된다. 그것도 대부분 계열회사의 광고들이다. 그러나 인천의 펜스광고는 5000만원을 호가한다. 그만한 효과와 이익이 있다는 점을 발로 뛰어다니며 설명했기 때문이다. 안 사장은 "광고주를 만날 때면 '우리와 손잡는 것으로 이미 5만명의 고객을 확보한 셈이다. 투자를 아까워하지 말라'고 입이 닳도록 얘기한다. 광고주들을 설득하기 위해 영국의 컨설팅업체에 의뢰해 TV나 지면을 통한 노출 효과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충분한 근거자료를 제시한다. 여기에 드는 돈만 1억5000만원이다. 그렇게 뛰어다니니까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놓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대 스폰서인 GM대우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안 사장이 GM대우의 임원회의에 직접 들어가 "인천은 GM대우가 거금을 지원해서 유지된다. GM대우의 열성적인 후원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GM대우의 업계 라이벌인 현대자동차 소속인 전북과 경기할 때마다 총력을 기울인다. 그래서 창단이후 전북에 7승4무2패로 압도적인 성적을 거뒀다"고 말해 임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지역 중학생들이 리그 형식으로 맞붙는 '미들스타리그'를 주최하면서 참가자들 전원에게 GM대우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혔다. 이런 세심한 배려 덕분에 인천 지역에서 GM대우의 자동자 판매실적이 크게 늘어났으니 그만한 홍보효과는 충분히 얻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사람도 경영이다
장외룡 감독이 축구 유학을 위해 잉글랜드로 떠나고 김치우, 최효진, 이근호 등 알짜배기 선수들을 줄줄이 팔아넘길 때만해도 올시즌 인천이 와르르 무너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인천은 컵대회와 FA컵에서 모두 4강까지 올랐고 정규리그에서도 마지막까지 6강행을 다퉜을 정도로 끈끈한 저력을 선보였다. 장 감독이 든든하게 터를 다졌고 박이천 대행이 흔들림없이 팀을 이끌었지만 안 사장의 심리전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우리 선수들은 대부분 평생 칭찬보다는 욕을 먹으며 살아왔다. 고교에서 대학, 대학에서 프로로 올라올수록 명성있는 지도자들이 '그걸 축구라고 하냐'는 식으로 다그치다보니 주눅이 들어있다. 이들을 제대로 움직이게 하려면 자신감을 주면 된다"고 비결을 밝혔다.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이 죽을 쑬 것은 뻔한 일. 10번 가운데 9번은 실수를 하지만 한 번 잘 하면 반드시 칭찬을 했다. "어떻게 그런 걸 다 하느냐. 정말 놀랐다""넌 날 감동시켰어" 등등. 생사여탈권을 가진 그가 칭찬을 하면 다시 칭찬을 듣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간혹 이런 모습을 두고 사장이 경기에 간섭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간섭이 아니라 측면 지원이고 서포트"라고 강조했다.
안 사장은 "팀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는 말로 구단주를 설득해 장 감독의 축구유학에 대한 허락을 받아내 장 감독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최근에도 장 감독은 '지도자로서 최고의 혜택을 준 형님(사석에서는 안 사장과 장 감독은 호형호제하는 사이다)께 영원히 감사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절망 속에서 희망이 싹텄다
안 사장도 청소년대표까지 지냈던 유망주였지만 대학시절 무릎 부상으로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십자인대가 끊어져 수술을 세 번이나 했는데 결국은 완쾌되지 않았다. 요즘 같았으면 수술에 성공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어쨌건 그때는 그게 그렇게 괴로울 수 없었다. 삶이 끝나는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바로 그 덕분에 국내 최고의 축구 행정가로 성장할 기회를 잡게 됐으니 그야말로 '세상만사가 새옹지마'였다. 공채로 대우에 입사해 해외인력부에서 인사와 조직관리를 배우며 행정업무에 눈을 뜬 그는 83년 대우 로얄즈의 창단실무에 뛰어들었다가 그 인연으로 사무국장까지 맡게 됐다. 대우는 87년까지 두차례 우승과 한 차례 준우승을 차지하며 프로축구 초창기 최고의 명문으로 자리잡았다.
"87년에는 12경기를 남기고 우승을 했으니 무서운 것이 없었다. 단계적으로 과정을 밟아가며 최고의 선수들로 최고의 구단을 만들어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후 대한축구협회 기획관리실장으로 일하며 88서울올림픽과 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통해 국제적인 경험과 감각도 쌓았다. 하나는 잃었지만 그보다 큰 경험을 얻었으니 정말 운이 좋았다"며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흘렸다.
그는 부산 대우가 해체된 이후에는 에이전트로 변신해 안정환을 국내 선수 가운데 최초로 세리에A 무대에 진출시키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인천의 창단을 주도하며 초대 단장에 올랐고 구단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면서 축구인 가운데 최초로 프로 축구단 사장에 올랐다. 그는 "이름 석자를 축구 때문에 얻었다. 내가 받은 모든 혜택을 축구에 돌려줘야 한다. 결코 이 자리에 안주하지 않겠다"며 언젠가는 미련없이 훌훌 털고 인천을 떠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인천을 떠나는 그 날 한국 축구에 또다른 역사가 시작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첫댓글 안단장님 흠^^
저분들 바람막이 사고싶다 ;;; 하악하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