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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발(赤髮)·벽안(碧眼)의 색목인(色目人)과 朝鮮史
흑발(黑髮)=흑안(黑眼) : 적발(赤髮)=벽안(碧眼)
○ 네이버(Naver) 또는 다음(Daum)등에 키르기스스탄(Kyrgyzstan)을 쳐보자. 《키르기스스탄공화국(Republic of Kyrgyzstan)이며, 키르기스스탄(Kyrgyzstan)은 '키르기스인(人)의 나라'라는 뜻이다.》라고 설명(說明)하고 있다. 또
【두산백과 / 키르기스스탄의 주민 : 주민 중에서 키르기스인(人)이 64.9%, 우즈베크인이 13.8%, 러시아인이 12.5%, 둔강인 1.1%, 우크라이나인이1%, 위구르인 1%, 기타5.7% (1999년)이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된 한국인 2만여 명이 있다. 키르기스인은 고대부터 시베리아를 흐르는 예니세이강(江) 상류에 거주했는데 키르기스라는 명칭이 처음 나타난 것은 8세기의 오르호른 비문(碑文)이다. 당시 중국의 사서에 수염이 붉고, 안색이 희며 눈동자가 녹색이라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키르기스인은 원래 터키계가 아니고 유럽 아리안계인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오랫동안 터키계의 흉노, 돌궐 등의 여러 민족의 지배하에 놓이면서 일찍부터 터키화되었는데, 이는 7~8세기 그들의 언어와 문자가 터키계였던 것에서 알 수 있다. 키르기스인은 인접한 카자흐인과 혼동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전혀 다른 계통으로서, 키르기스인은 몽골인적 특징이 뚜렷한 카자흐인과 체질적으로도 명백히 구분된다.[네이버 지식백과] 키르기스스탄의 주민 (두산백과). -인용/끝-】
○ 위에서 인용(引用)한 ‘두산백과’의 설명(說明)을 보면 : 무언가 이해(理解)할 수 없는 설명(說明)을 하고 있다. 고대(古代)의 원전(原典)에서는 「적발(赤髮)과 벽안(碧眼)의 색목인(色目人)」이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오늘날의 키르기스(Kyrgyz)인들은 「적발(赤髮)과 벽안(碧眼)의 색목인(色目人)」이란 말인가?
또 「키르기스인은 원래 터키계가 아니고 유럽 아리안계인 듯하다.」는 말은 또 뭔가? 「아니면 아니고, 기면 긴 것이지, “∼인 듯하다”」하였으니 말이다. 이 말은 곧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논자(論者)들, 지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뜻과 같다.
이러한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은, 조선사(朝鮮史)를 지우고, 그곳에 엉뚱한 종족(種族)을 넣다보니 생겨난 오류(誤謬)라고 본다. 21세기의 ‘키르기스인’은 몽골(蒙古)계인데, 그 선조(先祖)는 아리안계 백인종(白人種)의 색목인(色目人)이라면 이걸 어떻게 믿으라는 말일까?
또 본래(本來)의 몽고(蒙古)족은 색목인(色目人)으로, 칭기즈 칸【Genghis Khan:鐵木眞:成吉思汗 : 생전(生前)에 그려진 초상화(肖像畵)는 없다고 전해지며, 그의 출생(出生)연도(年度)와 생애(生涯)의 많은 부분이 지금까지도 불확실(不確實)하며, 묘지(墓地:무덤)의 위치조차 밝혀지지 않았다.】아버지(父) 또한 ‘색목인(色目人)’이라고 하였다. 아버지(父)가 색목인(色目人)인데, 그 아들(子)인 칭기즈 칸(鐵木眞)은 색목인(色目人)이 아니고, 「우리들과 같은 몽골계 황인종(黃人種)이다?」 이건 유전자(遺傳子)를 조작(造作)한 것이다. 곧 역사(歷史)조작(造作)이란 이야기다.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초상화(肖像畵)는, 그의 얼굴 한 번 보지도 않은 수백(數百)년 후대(後代)인들에 의해, 목적(目的)을 가진 자(者)들에 의해 말 그대로 그려진 것이다. 따라서 실제(實題) ‘칭기즈 칸’과는 같을 수가 없는, 전혀 알 수 없는 한 폭의 그림일 뿐이다.
또 예니세이강(Yenisei River) 상류(上流)란 말은, 바이칼(Baikal) 호수 북안(北岸) 또는 서안(西岸)지대(地帶)를 말하는 것이다.
※ 예니세이강(Yenisei River) 유역도(流域圖) [지도출처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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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Naver) 지식 in” 한 편을 인용(引用)해 보자.
㈎ 질문 :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의 인종은 어떻게 되나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의 인종은 황인가요 백인인가요? (여기서 황인 백인은 피부색이 아니라 서양인과 동양인의 생김새 차이입니다) 그리고 저런 중앙아시아의 나라들은 황인과 백인이 함께 공존하는 건가요? 닉네임Asap 작성일2011.08.04 조회수 9,737
㈏ 답변 : hank**** 님 : 기본적으로 카자흐, 우즈벡, 키즈키르스탄등 중앙아시아 국가의 원래 인종은 우리와 비슷한 황인종국가입니다. 몽골계라고 해야 할까요? 현지 사람들 중에 한국 사람이나 고려인 섞여있으면 찾아내기 힘듭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강점기를 거치면서 백계러시아인들과 그 외의 외래인종들과 혼혈이 생기면서 복잡한 외모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현재도 카자흐나 우즈벡엔 완벽한 백인도 있고 우리와 같은 황인종도 있고 섞인 백인계 혼혈도 혼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인종은 우리와 같은 아시아인입니다. (인용/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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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本來)의 키르기스(柯爾克孜族:Kyrgyz)인들은 색목인(色目人)인이 아닌 「황인종(黃人種)계열(系列)이었다」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조선사(朝鮮史)에 의하면, 〈고구려(高駒驪)인들이었으며, 발해(勃海)인들이었으며, 고려(高麗)인들이었다.〉는 것이다.
키르기스(Kyrgyz)인 또는 유사(類似)한 종족(種族)들이 예니세이 강(Yenisei River) 상류에서 살았다는 오늘날의 역사해설(歷史解說)의 근거(根據)는 오직 〈8세기의 오르호른 비문(碑文)에 따른 것이다.〉
즉(卽) 서력(西曆) 1,889년 러시아(Russia)의 ‘야드린체프’가 몽골 아르항가이에 오르콘(오르혼)강가에서 두 개의 비문(碑文)을 발견(發見)하였는데, 「그 비문(碑文)속의 내용(內容)에 의한 것이다.」라는 이야기다.
이런 것에 비춰보면 그 내용(內容)이란 것도, 아르항가이【항애산(抗愛山) 뒤쪽지방】 오르콘 강【오르홍(Orkhon)강】가에서 발견(發見)했다는 것도, 모두 주관적(主觀的)이요, 일방적(一方的)인 이야기일 뿐이다.
이건 매우 합리적(合理的) 의심(疑心)이다. 왜냐하면 황인종(黃人種)과 색목인(色目人) 과는 전혀 다른 종족(種族)이기 때문이다. 곧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 그리고 붉은 머리털과 구렛나루와 파란(초록) 눈동자를 가진 자(者)들은 종족(種族) 자체(自體)가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조선사(朝鮮史)에서도, 대륙사(大陸史)에서도 등장(登場)하는 역사(歷史) 기록(記錄)이지만, 그 근거(根據) 또는 증거(證據), 또는 흔적, 유물유적(遺物遺蹟)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동방(東方)과 서방(西方)을 갈랐다는 총령(葱嶺)과 우랄산맥(山脈) 서(西)쪽에 갖다 놓으면 ‘비단(緋緞)위에 꽃을 보탠다.’는 ‘금상첨화(錦上添花)’가 되기 때문이다.
곧 역사서(歷史書) 기록(記錄)을 모두 충족(充足)시킬 수 있다는 뜻이며, 이는 조선사(朝鮮史)의 진실(眞實)을 담고 있다는 뜻이다.
※ 오르홍강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오르홍 강(몽골어: Орхон гол, Orkhon gol)은 몽골의 강으로 셀렝게 강의 지류이다. 아르항가이 주에 위치한 항가이 산맥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른다. 강의 길이는 총 1,124km으로 발원지부터 북쪽의 셀렝게 강에 합류하기 전까지의 길이이다.】
※ 셀렝게 강 강역(江域) [지도 출처:위키백과]
그렇다면 오늘날의 키르기스(Kyrgyz)인의 선대(先代) 조상(祖上)들은 색목인(色目人)도 아니요, 「견곤(堅昆)=결골(結骨)인도 아니었다.」는 뜻이다.
➊ 「견곤(堅昆)=결골(結骨)=힐알사(黠戛斯)」는 전형적(典型的)인 「적발(赤髮)과 벽안(碧眼)의 색목인(色目人)」이라고 하였음에 비춰보면, 이들은 키르기스(柯爾克孜族:Kyrgyz)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더불어 「적발(赤髮)과 벽안(碧眼)의 색목인(色目人)」들인 키르기스(柯爾克孜族:Kyrgyz)인들이 본래 예니세이(Yenisey 江)강 상류(上流)로부터 기원(起源)한다는 역사해설은 큰 오류(誤謬)며, 이는 결과적(結果的)으로 왜곡(歪曲), 조작(造作)된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즉(卽) 무엇에 근거(根據)한 것인가? 이것 역시 믿을 수 없는 역사통설(歷史通說)일 뿐이다.
오늘날의 역사해설(歷史解說)은, 「서력(西曆) 1,889년 러시아(Russia)의 ‘야드린체프’가 몽골 아르항가이에 오르콘(오르혼)강가에서 두 개의 비문(碑文)을 발견(發見)하였다」는 것으로부터 출발(出發)하는 이야기지만, 이건 일방적(一方的)인 그들만의 이야기다. 무엇으로 그것을 증거(證據)하고 고증(考證)할 수 있단 말인가?
➋ 이런 근거(根據)로 보면, 오늘날의 키르기스스탄공화국(Republic of Kyrgyzstan)의 많은 국민들을 차지하고 있는 키르기스(柯爾克孜族:Kyrgyz)인들의 정체(正體)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역사서(歷史書)에서 말하기를, 혹(或)
「적발(赤髮)과 벽안(碧眼)의 색목인(色目人)」들 무리 중에서 간혹(間或) 흑발(黑髮)과 흑안(黑眼)을 가진 자(者)들이 있는데, 「이들은 틀림없이 한(漢) 기도위(騎都尉) 이능(李陵)의 후손(後孫)들이다」라고 하였음을 상기(想起)해 볼 수 있다.
➌ 따라서 「견곤(堅昆)=결골(結骨)=힐알사(黠戛斯)」를 「키르기스(柯爾克孜族:Kyrgyz)족」이라고 하는 것은 왜곡(歪曲)이요, 조작(造作)이라고 본다. 「견곤(堅昆)=결골(結骨)=힐알사(黠戛斯)」종족(種族) 또는 부족(部族)은 오늘날의 러시아(Russia)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슬라브족(Slav)일 가능성이 더 크다.
또한 이들이 바로 황두여진(黃頭女眞)이요, 황두실위(黃頭室韋)이다. 홍호(洪皓)의 송막기문(松漠紀聞)에서 말하기를, 《黃頭女真者皆山居,號合蘇館女真.中略. : 황두(黃頭)여진(女眞)은 모두 산(山)에서 사는데, 칭하기를 “합소관(合蘇館)여진(女眞)”이라 한다. 중략(中略). 金國謂之黃頭生女真,髭髮皆黃,目精多綠亦黃而白多,因避契丹諱,遂稱黃頭女真. : 금(金)나라에서는 황두(黃頭)생여진(生女眞)이라고 이르는데, 머리털과 코밑수염이 모두 누렇고(黃), 눈동자는 녹색(綠色)이 많고, 또한 누렇고 흰색도 많다. 이로 인해 글란(契丹)들은 피하고 두려워하였는데, 황두 여진(黃頭女眞)이라 일컫는다.》고 하였다.
※ 원전(原典)에서, 총령(葱嶺)의 동(東)쪽과 우랄산맥(Ural山脈) 동(東)쪽에서「적발(赤髮)과 벽안(碧眼)의 색목인(色目人)」종족(種族)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 흔적(痕迹) 또한 없다.
후대(後代)인들인 20세기(世紀) 이후(以後)의 사람들에 의해 주장(主張)되고 있을 뿐이다. 이건 왜곡(歪曲)이요, 조작(造作)이다.
※ 슬라브족(Slav) / 6세기 슬라브족의 영토 / ⓒ SeikoEn/wikipedia|CC의 BY-SA 3.0
➍ 芝峯類說卷二 / 諸國部 / 外國 : 《按元史.吉利吉思去中國二萬五千餘里.晝長夜短.卽唐骨利幹國云.結利與吉利骨利音相近.疑卽此也.按唐史.骨利幹居翰海北.其地晝長夜短.日沒後天色正曛.煮羊胛適熟.日復出.唐初.號結骨.朱子曰.此是地之角尖處.日入地下.無所遮蔽.故常光明.及東出而爲曉.其所經遮蔽處.亦不多耳.》라고 하였고,
➎ 通鑑節要(7) / 通鑑節要 卷之三十八>唐紀>太宗皇帝 下>[戊申]二十二年 : 《結骨(注2)은 其國人이 皆長大하고 赤髮綠睛이라 自古로 未通中國이러니 至是入朝어늘 上謂侍臣曰 漢武帝窮兵三十餘年에 疲弊中國이나 所獲無幾하니 豈如今日에 綏之以德하야 使窮髮之地[釋義]地는 以草木爲髮毛하니 北方寒極하야 草木不生이라 故로 曰窮髮이니 所謂不毛之地也라 語出莊子하니라 로 盡爲編戶乎아 : 【結骨은 나라 사람들이 모두 신체가 장대하였으며 머리털이 붉고 눈동자가 푸른색이었다. 예로부터 중국과 통하지 않았는데, 〈鐵勒의 여러 부족이 모두 복종했다는 말을 듣고〉이때에 들어와 조회하였다. 上이 侍臣에게 이르기를 “漢나라 武帝는 30여 년 동안 무력을 남용하여 중국을 피폐하게 하였으나 얻은 것은 얼마 되지 않으니, 어찌 오늘날 德으로 편안하게 하여 불모지로 땅은 풀과 나무를 모발로 삼는데, 북방은 날씨가 매우 추워서 풀과 나무가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窮髮이라고 한 것이니, 이른바 不毛地라는 것이다. 이 말은 莊子 逍遙遊에 나온다. 하여금 모두 編戶가 되게 한 것만 하겠는가.” 하였다.】하였다.
역주 2 / 結骨 : 부족 이름으로 옛날에는 堅昆이라 불렀으니, 堅昆이란 말이 와전되어 結骨이 된 것이다. 魏‧晉 이후로는 結骨이라 불렀으며 唐나라 때에는 또 黠戞斯라 하였다.
➏ 硏經齋全集卷之五十六 / 草榭談獻三 / 申瀏,慶河昌。: 《申瀏嶺南人.孝廟戊戌.爲北道兵馬虞候.時淸人徵我兵攻車漢.車漢者羅禪也.在極北鄂羅斯地.在漢爲堅昆丁零.在唐爲黠戛斯.其人皆長大赤髮晢面.綠眼而黑瞳者曰李陵之後也.》하였다.
결과적(結果的)으로, 결골(結骨) 또는 힐알사(黠戛斯)는 “붉은 머리와 벽안(碧眼)을 가진 전형적(典型的)인 색목인(色目人)”이라고 하였다.
오늘날의 키르기스(Kyrgyz)족은 백인(白人)의 색목인(色目人)이 아닌 전형적(典型的)인 동양(東洋)계로 알려져 있다. 곧 「옛 결골(結骨) 또는 힐알사(黠戛斯)는 오늘날의 키르기스(Kyrgyz)족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다.
다만 원전(原典)에서 말하는 것은,
눈동자가 흑색(黑色)인들은 이능(李陵)의 후예(後裔)들이라고 하였으니, 오늘날의 키르기스(Kyrgyz)족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러나 이는 비주류(非主流)일 뿐, 본래의 결골(結骨)이나 힐알사(黠戛斯)는 아니란 이야기다.
○「구라파(東歐羅巴)일부∼동구라파(東歐羅巴)∼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동방(東方)의 대륙의 땅」에서 벌어졌던 옛 조선사(朝鮮史)를 몽땅 잘라내어, 반도(半島) 땅에 넣다보니 위와 같이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되어버린 것이다.
반도(半島)조선사(朝鮮史)는 기필코 탈피(脫皮)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9년 11월 02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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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조대왕이 도승지 서유방과 대화를하면서 서유방은 색목인이고 소론세력이라고 말삽니다.
도승지는 임금을 곁에서 보필하는 최측근중의 한사람인데 일성록에서 정조와 대화내용을 보면 서유방은 색목인이고
소론세력이라고 분명히 나옵니다. 이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사실은 임금 즉 정조 주위의 신하(관료)들의 인적구성이 각분파별로 다국적 구성원인것으로 파악됩니다. 황인들의 다수겠지만 그외에도 투르크인, 흑인, 코카서스인, 백인등이 항상 황제주변에 신하로써 존재했었다는고 추측됩니다. 실제로 고종후기에 편전에 있는 미국여자와 같이 있었던 판화에나오는 여러 인적구성원을 살펴보면 코카서스인, 투르크인, 황인,청인등등이 있더군요.
안녕하세요. <대부여>님!
건강하시겠죠. 반갑습니다.
옛 조선왕조가 다민족사회였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대부여>님께서 말씀하시는 왕조실록 기록속의 특정 인물이 아닌 일반적으로 사색당파 또는 조선조정에서 말하는 소위 "색목인(色目人)"이란 말은 사실 이민족(異民族)과 같은 우리와 그 체형이나 눈동자, 또는 털이 많고, 머리털 색깔등이 전혀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민족)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이 대부분입니다.
우선 (1) 색목(色目)이란 : 색깔을 달리하는, 사물(事物)을 바라보는 관점이 전혀 다른 것을 말하는 것으로, 조선사(朝鮮史)에서는 사색(四色)당파(黨派)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 두번째는 (2) 색목인(色目人)이란 : 눈의 색깔이 다른 이민족(異民族)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색(四色)당파(黨派)에 속한 인물(人物)들을 별칭(別稱)으로 부르는 이름이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왕조실록속의 기록 내용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눈의 색깔이 다른 벽안(碧眼)이나 녹안(綠眼), 청안(靑眼)등의 이민족(異民族)으로 착각(錯覺)해, 조선조정(朝鮮朝廷)에서 색목인(色目人)이 다수(多數)있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큰 오류(誤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조선왕조를 이루는 구성원 또는 속국, 제후국속에는 여러 이민족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았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관심과 늘 성원해 주시는 <대부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하루 되시길.....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