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과도 매우 친하게 지냈었다. 본래 베토벤이 괴테의 저작을 즐겨 읽었었고 그의 희곡 에그몬트를 위한 서곡까지 작곡할 정도였다. 괴테는 베토벤을 만나자마자 그의 천재성에 감탄해 같은 날 저녁, 아내에게 베토벤에 대한 격찬을 늘어놓았고 베토벤은 기회가 될 때마다 괴테에게 피아노를 연주해 주었다. 하지만 각자 성격이 너무 정반대였기 때문인지 결말이 좋지 않았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며 산책하던 중에 맞은편에서 오스트리아의 황후 및 귀족 몇 명이 걸어오자 자유분방하고 반항적인 기질의 베토벤은 저들에게 길을 비켜주지 말고 이대로 뚫고 가자고 했으나 괴테는 이에 동의하지 않고 그들에게 길을 비켜주며 모자까지 벗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베토벤은 먼저 걸아가며 자기 모자에 가볍게 손을 대곤 일행을 지나쳤다. 베토벤은 괴테를 기다리다가 그가 다가오자 "내가 당신을 기다린 것은 당신이 그에 걸맞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라며 괴테가 황후 일행에 정중한 것을 나무랐지만 괴테는 스스로가 바이마르의 재상임을 상기시키며 예의를 차렸을 뿐이라 답했다. 그러자 베토벤은 저런 사람들이 하는 일은 훈장을 주는 것뿐이며 후세에 이름을 남길 위인도 아닌데 괴테가 너무 예의를 차린다고 큰 실망을 표했다. 베토벤 입장에서 괴테의 태도는 비굴한 속물처럼 느껴졌고 괴테의 입장에서 베토벤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예의가 없는 사람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 두 사람은 만나지 않았다.
이 두 사람을 연결한 인물이 바로 베티나 폰 아르님으로, 괴테의 열렬한 팬이었던 베티나는 마찬가지로 괴테를 좋아했던 베토벤에게 만남을 권했다. 괴테도 베티나의 편지를 통해 베토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온천 휴양지에서 이뤄진 우연이었다. 괴테와 베토벤은 서로의 재능과 천재성에 감탄하며 이끌렸지만 둘의 성향과 인간성은 함께 하기엔 너무도 맞지 않았었던 것이다.
선한 영혼을 가진 분들이시여, 베르테르와 똑같은 충동을 느낀다면 그의 슬픔에서 위안을 얻으십시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서문 중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울먹이며 다음날을 기약하면서 캄캄한 절망의 시간을 지내보지 않은 사람은, 그대 어두운 힘을 모르리.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증오는 편파적이지만, 사랑은 더욱더 편파적이다.
『친화력』
체험하지 않은 것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줄도 체험 그대로 쓰지 않았다.
외국어를 모르는 자는 모국어에 대해서도 모른다.
나는 인류의 모범을 찾기 위해 역사를 살펴보았고 결국 무함마드에게서 그 모범을 찾았다.
우리들의 성실한 노력은 모두 무의식의 순간에만 결실한다. 태양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다면 장미가 어찌 꽃을 피우겠는가.
질투가 폭발하려 하거든 그것이 허기지도록 놔두어라.
길은 시작되었다. 여행을 마저 하라. 근심 걱정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너를 영원히 내동댕이쳐 균형을 잃게 할 뿐.
시대는 상상 이상으로 나빠져 간다.
예술은 삶과 같아서 깊이 들어가면 달어갈수록 점점 더 광범위해져서 어렵게 느껴진다.
인간이란 일찍이 알면서도 늦게야 실행하는 피조물이다.
자기 주변이 온통 바다에 둘러싸인 광경을 보지 못한 사람은 세계라는 개념도, 자신과 세상의 관계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