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 선생 : 다말의 이야기
성경 사무엘하 13장에 기록된 다말 이야기를 오늘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성범죄의 비극을 다시 생각하며 볼 수 있도록 말씀해 주셨다.
다윗의 장남 암논은 이복여동생 다말에게 집착적인 애정을 가졌었다. 아픈 척 누워 아버지 다윗에게 간청하였다. “다말이 제게로 와서 음식을 만들에 먹여주면 병이 낫겟습니다.” 다윗은 딸에게 오빠를 위해 그대로 행하도록 지시하였다. 결국 암논은 다말의 강한 거부에도 겁탈하였고, 이후에는 이전 사랑했던 것보다 더 미워하여 다말을 내쫓았고, 다말은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아버지 다윗은 이를 알고 심히 노하였으나, 암논에게 아무런 벌을 내리지 않았다. 맏아들에 대한 편애인지 밧세바 사건 이후 도덕적 권위를 상실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방관하였다.
이에 친오빠 압살롬은 아버지가 공의를 집행하지 않자,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 암논을 살해한다. 다윗의 우유부단함이 결국 형제간의 살육과 반역이라는 거대한 칼바람으로 돌아온 셈이다. 압살롬은 훗날 딸의 이름을 ‘다말’이라 하여 동생에 대한 애틋한 정을 나타냈다.
결국 이 사건은 나단 선지자의 예언대로 "다윗의 죄가 그 집안에서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보여주는 참혹한 거울이다. 다윗이 은밀하게 범죄했듯, 암논도 은밀한 침실에서 범죄했다. 다윗이 우리아를 죽였듯, 압살롬은 암논을 살해했다. 이 비극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역사는 암논이 왕이 되어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다. 인간의 악함과 실수 속에서도 역사는 흘러 결국 솔로몬에게로 이어지게 된다. 인간의 범죄와 고통마저도 거대한 섭리의 물줄기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소감) 선생은 성서 속 여성 이야기에 집중하여 연속 강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무심하게 읽고 지나갔던 이야기를 심도있게 다루어주니, 고대의 여인 다말에게 일어난 불행이 오늘날 일어난 일처럼 마음이 아팠다. 남성 위주의 사회였던 당시뿐 아니라, 21세기 오늘날에도 여성을 향한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인류의 죄악은 어떻게 이리도 변화 없이 계속되는지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손문일 선생 : 로고스의 성육(成肉)에 관한 세례 요한의 증언(2)
- 참빛이 세상에 오심 : 예수께서 세상의 참빛으로 오셔서, 모든 사람에게 비추셨으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다.
- 세상의 거부 : 자기 땅에 오셨으나, 백성은 영접하지 않았다.
- 영접하는 자의 권세 : 예수를 영접하고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 새로운 탄생 : 이들은 혈통, 육정, 사람의 뜻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다.
이 요한복음 서두의 로고스론 및 세례 요한의 증언이 연결되는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뒤이어 나올 은혜와 진리가 가득한 진정한 성육(incarnation)의 의미를 살펴보기 전, 세례 요한의 증언과 세상의 반응을 간단 명료하게 나타낸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의 성육, 즉 로고스가 그리스도로 육신을 입어 세상에 온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며, 인류 구원의 은혜였다.
(소감)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여, 헬라어 원문을 분석하면서 한 단어마다 들어있는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하였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으나, 자기 백성조차도 영접하지 않았던 안타까운 현실을 더욱 깊이있는 성서구절 분석으로 들을 수 있었다. 알기 쉽게 강의 내용을 구성한 점은 좋았으나, 원고를 작성해주지 않아서 아쉬움이 컸다.
조득환 선생 : 에스라-느헤미야의 이방인 결혼 문제
에스라-느헤미야서에 나타난 '이방인 통혼 금지'라는 재미있는 주제였다. 이 선지자들이 이방인과의 결혼을 엄격하게 다룬 이유가 있다. 유다 공동체가 처한 생존의 위기 때문이었다. 성전 및 성벽 재건으로 신앙의 물리적 중심(성전)을 회복했고, 에스라의 율법 낭독과 교육으로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도 복원하였으나, 거룩한 자손이 이방과 섞여 고유성을 상실할까 하여 정체성 확립을 위해 분리를 택한다.
그리하여 유대인 가정에 있는 이방인 아내와 자녀를 내쫓는 강한 조치를 한 것이다. 쫓겨난 이방 여인과 아이들의 목소리가 배제된 비인간적 조치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일을 단행하였다. 이는 이방인을 포용하는 룻기, 요나서, 제3이사야의 가르침과 충돌하는 사건이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행한 ‘거룩을 위한 구별’과 사랑을 위한 포용과 환대는 사실 동전의 양면이다. 따라서 배타적 생존 논리보다 능동적인 사회적 관계와 환대가 더 필요하다. 하나님의 거룩함(심판/정의)과 사랑(구원/자비)은 십자가에서 하나로 만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48의 "온전하라"는 명령은 완벽주의가 아니라, 상충하는 가치들을 하나님 안에서 통합하며 살아가는 '방향성'을 의미한다.
<소감> 정체성 확립을 위해 쳐낼 것인가, 포용하여 품을 것인가. 가슴 아픈 분리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 집회에 방향을 제시하는 글 같아서 특히 생각하는 바가 많았다. 항상 깊이있게 공부하여 강의를 준비해주시는 선생의 성의에 감사한다.
배지현 선생 : 레위기 개괄
레위기의 복잡한 제사 제도와 정결 규례를 현대 그리스도인의 삶과 연결하여 강의하였다.
레위기는 단순히 '지루한 법전'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이 죄 많은 인간과 함께 거하기 위해(Immanuel) 설계하신 정교한 사랑의 지도다. 레위기가 가르치는 네 가지 개념, 부정-속됨-정결-거룩은 우리 신자의 성화과정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거룩(Holy)과 속됨(Common), 정결(Clean)과 부정(Unclean) 이 개념들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레위기 이해의 핵심이다. '부정'한 상태는 '거룩'을 오염시키며, 거룩이 부정을 만나면 부정함은 파괴(죽음)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을 보호하시기 위해 '정결 규례'라는 안전장치를 주신 것이다.
우리는 일상이 제사가 되어야 한다. 삶이 곧 예배라는 말이다. 오늘날은 운동, 요리, 취미 등 굳이 죄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 일상을 가득 채워 영적 고갈을 가져온다는 지적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레위기가 제안하는 일상에서의 거룩은 이것이다(레위기 19장). 밭모퉁이를 남겨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경제 활동,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고 원수 갚지 않는 인간 관계, 재판을 공정하게 하고, 타국인을 학대하지 않는 사회 정의이다.
(소감) 일상의 작은 영역에서부터 '거룩의 선'을 긋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였고, "신앙은 답을 모른 채 계속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라는 인용구처럼, 오늘 우리의 일상이 비록 서툴지라도 레위기가 보여준 거룩의 방향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진정한 제사일 것이다.
황호석 선생 : 샬롬, 에클레시아
선생은 이번이 전국집회 첫강의였다. 수없이 다시 읽고 수정하여 나온 정금같은 강의였다. 따님이 프리젠테이션을 맡고 아버지가 강의를 하는 모습은 이번 집회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아니었을까 생각하였다.
우리는 일상에서 샬롬, 안녕하기를 바라며 인사 나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무덤 앞에서 여자들에게 건넨 첫마디도 "평안하냐(Χαίρετε, 기뻐하라)""평안하냐(Χαίρετε, 기뻐하라)"였다.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평안하냐고 안부의 인사를 건네신다.
길 잃은 어린양의 비유를 보면, 목자는 ‘찾아낼 때까지 찾아’ 헤맸다고 한다. 양의 입장에서 마침내 참 평안과 안식이 찾아온 것이다. 이 모습을 우리는 창세기에서 볼 수 있다. 죄를 짓고 숨어버린 아담을 찾아와 하나님은 부르신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니다. 길 잃은 양을 찾아 끝까지 헤매는 목자의 심정이며, 관계의 단절을 회복하려는 하나님의 '주도적인 사랑'이다.
이 ‘찾으시는 말씀’에 우리는 디베랴 바다에서 베드로가 예수께 했던 대답,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를 할 수 있을까.
(소감) 나의 삶이 타인에게 들리는 '퉁소 소리'가 되고,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된다는 것. 관객이 단 한 명일지라도 그를 매료시킨다는 신념으로 연기한다는 가부키 배우의 태도, ‘내 몸속의 피를 찍어 쓴다’는 소설가의 양심 등, 국어 선생님다운 멋진 비유 때문에 미소를 지으며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평안하냐?’ 묻고 계시는데, 걱정 염려 많은 나는 ‘주여!’ 밖에 할 말이 없다.
반영운 선생 : 마음의 청결과 하나님을 보는 복(福)
- 조선의 고난을 통해 본 김교신의 세계사적 비전
마음의 청결'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자기중심성'이라는 담이 허물어진 상태이다. 따라서 존재의 변화를 수반한다. 십자가의 은총으로 하나님을 향해 영혼의 창을 온전히 여는 것이며, 이는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의 결과물이다.
이 담을 허문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가는 접근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따라서 마음의 청결은 이미 성취된 담 허묾의 은총을 내면적으로 수용하는 태도와 연결된다. 인간이 노력하여 담을 허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찢으신 휘장 사이로 겸손히 걸어들어가는 것이 청결의 본질이다.
김교신은 이 조선의 고난에서 비전을 보았다. 그래서 조선 백성의 ‘맑은 마음’에서 고귀한 사상, 동반구의 반만년 총량을 대용광로에 달여 낸 엑기스가 필연코 나오리라 그윽히 기다린다 하였다. 이 말은, 반만 년 동안 이어 온 반도의 문명에 녹아있는 도덕적 가치가 언젠가 고귀한 기독교 복음으로 승화할 것이라는 바람이다. 고난 속에서 겸손해졌던 조선 백성들의 정신이 그 후 백 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서 실현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서서, 회개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삶의 주인으로 모시며, 겸손하고 맑은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다.
(소감) 김교신 선생의 산상수훈 연구를 계속하여 더 깊이 공부해 가시는 선생의 글에 늘 감동을 맛보곤 한다. 일제강점기 고난 속에 있던 조선에서 결국은 고귀한 사상이 나올 것을 기대하였던 김교신 선생의 소망을 생각하니, 백 년 후의 후배인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기록 : 손현섭
첫댓글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한 분 한 분 그리고 참석하신 여러분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즐겁고 기쁜 날이었습니다. 늘 나오시던 몇분이 건강문제로 못오셔서 많이 서운했지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될 줄을 믿습니다. 가을에는 모두다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를 기도합니다.
10월31일부터11월1일까지입니다. 잊지 말고 기도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