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하고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얼음 송곳처럼 내 전신을 무섭게 관통했다.
처음엔 내 귀를 의심했다.
상상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울려 퍼진 초인종 소리는 나로 하여금
극심한 이질감에 시달
리게 했다.
별안간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 자리에 얼어 붓은 채로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았다. 더 이상의 초인종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또 그 소리에 잠을 깨서 나와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나 혼자 뿐이었다.
환청이었을까……?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려 현관문을 직시했다. 확인해 보면 될 일이었다.
스피커폰과 CCTV의 액정 화면을 통해 현실인지 환상인지를 똑똑히
확인해 보면 된다.
심호흡을 하고 현관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스피커폰을 향해 손을 죽
뻗었다.
화악, 하고 액정 화면이 밝아졌다. 대문 밖의 상황이 있는 그대로 펼쳐졌다.
일순간 심장이 정지해 버리는 줄 알았다.
대문밖에는 누군가가 우뚝 서서 미동도 않고 있었다.
카메라가 45도 위에서 사물을 잡고 있기에 그 모습을 명확하게 확인하긴 힘들었다. 게다가
그는 검은 외투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어서 더욱 분간할 수 없었다.
정녕 그 괴물이 찾아왔단 말인가……!
암담한 공포감에 나는 정신마저 혼미해짐을 느꼈다.
그 때였다. 그가 카메라의 위치를 발견하고선 자신을 훔쳐보고 있는
나의 존재를 인식이라
도 한 것 마냥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화면 가득 그의 모습이 정확히
포착되는 순간이었다.
그와 함께 별장 전체를 뒤흔드는 요란한 초인종 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졌고 그것은 식구들
모두가 충분히 잠에서 깰만한 소음이었다.
-호러 스릴러-
<블랙 크리스마스 Black Christmas>
by 살인교수 http://cafe.daum.net/suttlebus
시간은 새벽 두 시를 치닫고 있었다.
불과 한 시간 여 전에 흩어졌던 식구들은 민구와 민지를 제외하고 다시 거실의 소파로 모여
들었다.
바로 한밤중에 찾아온 낯선 방문객 때문이었다.
자신을 정영혜라고 소개하는 여자는 대략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나와 같거나 조금 위일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이와는 무관하게 상당히 수려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폭설 속에서 꽤나 헤매었던지 머리와 겉옷이 온통 눈 투성이였다. 게다가 옷 여기 저기가
찢겨져 있었고 흙도 많았다. 얼굴은 핏기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창백했다. 그녀의 커다
란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불안함으로 가득했다.
은주가 따뜻한 우유를 건네주자 고맙다는 말을 연발하며 단숨에 들이켰다.
그런 모습을 나와 아버지는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단, 아내만은 한밤중에 남의 집을
느닷없이 방문한 그 정체불명의 여자를 기이하게 여기며 불만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나 역시도 새벽 한 시가 넘어서 남의 집 초인종을 눌러야만 했던
그 여자의 사정이 몹
시 궁금했다. 그래서 그녀가 빨리 안정을 되찾아 우리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기만을 기다
렸다.
우유를 다 비운 후 여자는 입을 열었다. 추위 속에서 오래 있었던 탓에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산 속에서 길을 잃었어요. 인터넷 모임을 통해 알게된 산악 동호회 회원들과 설산을 구경
가기로 했거든요. 하루 코스로 가보기에 좋을만한 곳을 찾다가 적당한 곳을 발견하고는 오늘 아침에 서로 만났어요. 그런데 하필 이런 폭설이 내릴 줄이라곤 꿈에도 몰랐죠. 산을 오
를 때만해도 괜찮은 날씨였어요. 정상까지 오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서 산 중턱
에서 점심을 먹으며 설경들을 감상했어요. 그런데 술이 몇 잔 오고 가면서 분위기가 점차
험악해진다 싶더니 남자 회원들간에 서로 주먹다짐이 있었지요. 그리고는 팀이 뿔뿔이 갈라
지기 시작했어요. 다들 취해서 정신이 없었고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은 저 밖에 없더군요.
저는 날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일찌감치 혼자 내려왔죠. 왔던 길만 되돌아가면 된다고 생각
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눈이 무릎까지
쌓이더군요. 산 속이라
그런지 날도 일찍 저물고 금새 깜깜해 졌어요. 눈발은 점점 더 굵어만
졌고 문득 돌아보니
천지가 온통 어둠과 눈으로 덮여 한치 앞을 분간하기가 불가능했어요. 더럭 겁이 나더군요.
하지만 어디로 가야 사람들을 만날지, 어디로 가야 마을이 나올지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소리쳐보아도 누구 하나 대답해 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무작정 밑으로만 내려가기로
결심했죠."
여자는 잠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모르게 누군가가 제 뒤를 밟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처음엔 새나
벌레들의 소리인줄만 알았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끊임없이 제 뒤
를 좇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제가 걸음을 딱 멈추고 돌아보면 그것도
움직임을 멈추었어요.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하면 그것 역시 살며시 움직임을 보이더군요.
마치 공격할 기회를 노
리는 승냥이처럼 집요하게 저를 좇아 왔어요. 혹시 정말로 늑대 같은
야생 짐승이 아닌가
싶어 걸음을 멈추고 긴 나무막대기를 하나 집어들었어요. 사방을 자세히 살피며 막대기로
위협적인 제스처를 취해 보았지요. 한참을 살피는데 저쪽 숲 속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이
포착되었어요. 워낙 어두워서 형체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짐승
따위가 아니었다는 겁
니다. 분명히 두 발로 걷고 있었거든요."
여자의 긴박한 상황 설명에 도취되어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이 꼭 쥐어졌다. 몸에서 식은땀이
배어 났다. 여자는 호소하는 눈빛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
"분명히 그것은 사람이었어요. 눈발이 워낙 거셌던지라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키가 큰
거구의 사내 같았어요.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지만 너무 무서워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어
요. 꼭 귀신과 대면하고 있는 것 마냥 떨리고 두려웠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그 거구의
사내가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사내는 내가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는지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은폐하려 하지 않더군요.
똑바로 서서 가만히 나
를 노려보고 있었어요. 그제야 저는 그가 정신병자이거나 미치광이
살인마 일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죠. 생각이 막 거기까지 미쳤을 때 갑작스레
그자가 나를 향해 달려
오고 있더군요. 정말로 심장마비라도 걸리는 줄 알았죠. 눈이 꽤 높이
쌓여 있었는데 그는
그런 것 따윈 아랑곳없이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어요. 저는 있는 힘을
다해서 막대기를 그자
에게 집어던진 후 곧장 반대 방향으로 내달렸죠. 무조건 아래를 향해서 힘껏 달렸어요. 뒤를
돌아다 볼 여유도 없었죠. 그런 것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언제 제 목덜미가 잡
힐지 모르니까요. 한참을 달리다보니 급경사가 나왔고 저는 스스로의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
고 그대로 비탈길 아래로 굴렀어요. 그렇게 해서 굴러 떨어진 곳이 바로 여기 언덕 위 더군
요. 솔직히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지금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차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잠깐 돌아다보니 제가 굴러 떨어졌던 곳이 거의 벼랑이나 다름없는 곳이더
군요. 정말 운이 좋았던 거죠. 자칫 잘못했다가는 다리가 부러졌을 테니까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벼랑이나 다름없는 급경사 위쪽에 그자가 떡 하니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던
거예요. 뛰어 내릴지 말지를 결정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다시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
죠. 숨이 차 오르도록 뛰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어요."
말을 마친 여자는 아직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듯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현관문을 주시했
다. 그녀로선 금방이라도 문을 부수고 그 괴인이 나타날 것만 같았던
모양이다.
나 역시 그녀만큼이나 불길한 상상들로 가득했다. 정말로 웬 미치광이가 이 마을에 나타난
것이라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으로까지 치닫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곳은 시골이라 경찰
이나 방법대원들이 멀리 떨어져 있었고 뿐만 아니라 폭설로 교통구간
마저 마비되어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곳은 외부와 차단된 공간, 즉 고립된 지역이 되므로 여간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여보 혹시 그 자가 아닐까요?"
아내가 불안한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얼마 전에 신문에 났던 그 살인마 말예요."
"신문에 났던 살인마?"
"왜 있잖아요. 일가족을 몰살해버렸다던 그 미치광이 살인마……."
생각이 났다. 아내가 말하는 그 자가 누구인지.
약 3주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엽기적인 살인사건.
아이며 노인이며 할 것 없이 일가족 6명, 전원을 끔찍하게 살해한 미치광이 살인마.
살인마는 아직 잡히지 않았으며 경찰에서는 살인 동기조차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몇 가지 특이사항은 살인마가 일가족 전원에게 수면제를 먹여 잠재운
후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과 살해 방법에 있어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끔찍함의 극을 달렸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살인마는 죽은 피해자들이 잘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들 사이에 흡수되어 그들이 먹을 음식에 손쉽게 수면제를 탈
수 있었던 것일 게다. 또 한 가지는 살해 방법의 잔인함으로 볼 때 어쩌면 보복 살인일 가
능성이 있다. 일가족 전체 혹은 구성원 중 누군가에게 원한을 가진 자의 소행일 수 있다는
거다. 잔인 무도한 살해 방법으로 미루어 보건 데 아마도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입은 게
아닐까 싶다.
만약 보복 살인이 아니라면 그것은 정말로 이성적 논리적 사고가 통하지 않는 완전 미치광
이의 소행일 것이다. 온전한 정신으로는 사람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일 수 없을 테니까.
"우선 경찰에 신고부터 해야하지 않을까요?"
아내가 걱정스런 말투로 물었다.
"음, 글쎄……."
나는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어서 그렇게 말끝을 흐리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뜻에 따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잠자코 계실 뿐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아버지 역시
적잖이 놀랐음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나의 결정을 기다리고 계신
것이었다.
나는 잠시 혼란한 머릿속을 정리해보았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좋지만 뭐라고 설명해야 할 지 갈피가 서지 않았다. 그냥 알 수 없는
자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고만 말한다면 경찰 측에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임이 분명했
다. 그런 전화라면 굳이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지금은 새벽 두 시가 넘은 오밤중이 아닌가.
모든 것을 내일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우선은 모호한 불안함 따윈
잊고 푹 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머리 맞대고 있어 봤자 딱히 좋은 아
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결정을 하고 정영혜라는 여자를 하루 밤만 재워 주기로 했다.
날이 밝는 데로 경찰
에 자초 지정을 알릴 예정이었다.
"음, 그래.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구나.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다들 그만 자도록 하자구나.
날 밝으면 다시 생각해보자."
아버지는 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셨다. 아내 역시 나의 의견에 따랐으나 정영혜라는 낯
은 방문객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덥지 못한 구석이 남아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의 딱한
처지를 어느 정도 동정하고는 있었다.
결정이 나자 기다렸다는 듯 은주가 달려와 정영혜의 팔을 끌었다.
"이 쪽으로 오세요. 제 방에서 같이 자도록 해요. 우선 그 전에 그 옷부터 갈아 입으셔야 겠
네요. 자 이쪽으로……."
여자는 조금은 마음의 안정을 찾았는지 은주의 친절에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는 우
리 모두에게 연신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은주가 여자를 데리고 2층으로 사라지자 어느 새 거실엔 나 혼자 남게
되었다.
한바탕 난리를 치른 듯한 기분이었다.
혼자 남아서 인지 갖가지 괴상한 사념들이 서서히 머리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망상
따위에 감정을 소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거실의 불을 끄고 곧바로 아내와 아이들이 기
다리고 있을 침실로 향했다.
침실 문을 열기 직전 마지막으로 돌아본 텅 빈 거실에 시커먼 뭔가가
어른거렸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스윽, 하고 어둠 속을 배회했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모든 것은 착시일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단호하게 타일렀다. 더 이
상은 뒤돌아보지 않고 침실로 직행했다.
따뜻한 온기가 상기되어 있던 내 가슴을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잠들기 전까지 나는 아까 내
가 현관문을 확실히 관건 했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불안감으로 내내
뒤척여야만 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