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모범이신 그리스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마태 11,29
아마 너는 내가 신이며 전능하기 때문에 겸손에서 너의 진정한 모범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내가 베들레헴에서 성가정의 안식처를 마련하기 위해 나의 신성을 이용했느냐? 헤로데가 나를 죽이려고 할 때 내 전능한 힘을 발휘하여 목숨을 구했느냐? 요셉과 마리아는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그렇게 하듯 나를 데리고 멀고 힘든 피난길에 올랐다.
내가 기적을 행하여 내 소년 시절을 편하게 만들었느냐? 나자렛에 있는 내 친구들 중 그 누구도 나를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 이외에 다른 어떤 존재로 보지 않았다. 내 사촌들은 내가 사람들을 가르친다는 말을 듣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하고 굶주린 상태에서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사탄의 유혹을 받았을 때, 간단하게 나의 전능한 힘을 발휘하여 먹을 것을 마련했느냐? 내가 야곱의 우물에서 목이 마르면서도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듯 물을 청하지 않았느냐? 내가 기적을 행하여 빵과 물고기의 양을 늘렸을 때,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먹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느냐? 나는 피곤하면 잠을 잤고, 라자로가 죽었을 때 울었다. 중상모략을 당하고 오해를 받았을 때 너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슬펐다.
내가 행한 기적들을 잘 살펴보아라. 그러면 그 기적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나의 신성을 증명함으로써 사람들이 나를 믿고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결코 나 자신을 위해 초자연적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항상 내 아버지의 영원한 계획을 이행하기 위해서만 사용되었다.
나의 적들이 나를 찾아다닐 때도 나는 안전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예루살렘을 떠나있었다. 그러나 나의 때가 왔을 때 기꺼이 나를 그들의 손에 넘겨주었다. 나는 생각만으로도 풀려날 수 있었지만 내 피조물에 의해 사형선고 받는 것을 허락하였다. 나는 눈짓 하나로 그것을 막을 수도 있었지만, 무자비하게 매를 맞고 가시관 쓰는 것을 허락하였다. 십자가를 지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면서 시몬의 튼튼한 손으로 도움을 받고 베로니카의 동정어린 보살핌은 받았지만 내 고통을 덜기 위해 나는 어떠한 일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이 조금이라도 완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에게 준 진정제를 거부하였다. 십자가 위에서 나는 도둑을 용서해 주면서 다시 한 번 나의 신성을 드러냈으나 고통의 십자가에서 내려오지는 않았다.
나의 또 다른 자아여, 나는 너의 모범이 될 수 있다. 나는 너의 모범이다.
이제 이것을 네 삶에 적용해 보자. 아버지께서는 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너를 위해서도 네 모든 삶과 관련된 영원한 말씀을 하셨다. 인간으로서의 내 의무와 마찬가지로 너의 의무도 아버지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다른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그 말씀이 담고 있는 슬픔이나 기쁨을 거부하지 말고, 그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사랑의 마음으로 너 자신을 바치면서 사는 것이다. 이 말씀은 네 삶의 세세한 모든 부분에 대한, 영원 속에서의 네 자리에 대한 내 아버지의 계획이다. 너는 놀라운 영원한 계획이란 퍼즐의 한 조각이다.
내가 지상에서의 내 삶을 위한 아버지의 말씀에 내 뜻을 일치시켰듯이, 너도 네 삶을 위한 그분의 말씀에 네 뜻을 일치시켜야 한다. 세상이 죄와 죄인들로 가득 찼기 때문에 네 삶도 단조로움과 피로, 불의, 모욕, 네 개인에게 저질러지는 범죄 등을 당하고 어쩌면 박해와 죽음까지도 겪을 수 있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라. 그리고 나의 아버지께 이렇게 말씀드려라.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네 창조주께 반발하지 마라. 그분은 이 일들을 원하시지 않지만 인간에게 사랑하거나 미워할 자유, 순종하거나 죄를 지을 자유를 주셨기에 그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신다. 반발하는 것은 네가 죄인이고 이 세상이 죄의 세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들이 자유롭다는 것에 대해 원망하는 것이다. 그것은 네가 내 피조물이라는 본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겸손을 버리고 자만을 환영하는 것이다.
나는 너에게 악마 앞에서 수동적으로 되라고 말하지 않는다. 너의 의무는 가능한 한 합리적으로 그러한 상황을 고쳐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을 하는 동안 하느님의 섭리에 반발하는 것은 물론이고 불평도 하지 마라.
겸손하려면 너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 받아들여야 한다. 너는 무에서 창조되었고, 나의 뜻에 의해서만 존재하며, 전적으로 나에게 의지하고, 나를 통하지 않고는 초자연적으로 어떠한 좋은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네가 죄인일지라도 너는 나로 말미암아 속량되었다. 너는 영원한 왕의 상속자이고, 하느님의 자녀이며, 내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또 다른 그리스도이다. 나의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너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이것은 진리이다. 나는 '진리'이기에 겸손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교만을 몹시 미워한다. 교만은 거짓말이나 도둑질과 같다. 그것은 나의 신권(神權)을 빼앗는 것이며, 하느님을 그분의 피조물 아래에 두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영원한 신이다. 나는 나의 신권을 너어게 양도할 수 없다. 내 창조의 계획을 네 창조의 계획으로 대체할 수 없다.
나는 교만을 아주 싫어한다. 그것은 가장 큰 악덕이다. 그것은 루시퍼가 저지른 죄이고, 세상에 불화와 고통을 가져온 아담과 하와가 저지른 죄다. 교만은 하느님과 인간의 전적인 불일치의 씨를 뿌리고, 나의 은총을 외면하며, 어떤 면에서 나의 고통스러운 수난과 잔인한 죽음을 헛되게 만드는 것이다.
- 나를 닮은 너에게 (그리스도와 나눈 대화)/ 클래런스 J. 엔즐러/ 바오로딸
클래런스 J. 엔즐러
미국 아이오와 주 더뷰크에서 자랐으며 컬럼비아 대학을 다닌 후 1930년대 중반에 가톨릭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32년 동안 농림부 장관의 정보 전문가와 연설문 작성자로 일했다. 1972년에는 워싱턴 대교구에서 부제품을 받았고 1976년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워싱턴 중심부에 있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성당(St. Mary, Mother of God Catholic Church)에서 봉사했다.
네 권의 책과 많은 논문을 썼고 신앙 서적인 「십자가의 길」Stations of the Cross을 썼다. 39년의 결혼생활 동안 아내에 대한 성실함과 자녀들에 대한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유산으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