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유비,관우,장비 세 사람은 군신 사이였지만 형제의 의가 있었고, 세존의 처와 등가여자(登伽女子)는 높고 낮음이 현격히 차이가 났지만 함께 제자가 되었으니, 당초 미천함이 앞날을 성취하는데 무엇이 관계하겠는가?"
두 공주가 이에 육 낭자를 데리고 관음화상 앞에 나아가 분향 재배한 후, 형제 맺은 맹세를 하고 글을 지어, '각각 자매로 스스로 처신하라.' 하였지만, 육 낭자가 오히려 명분을 지키어 말이 공순하나 정의(情誼)는 더 각별하였다.
팔 선녀가 각각 자녀를 두었다. 양부인, 춘운, 섬월, 요연, 경홍은 아들을 낳았고, 채봉, 능파는 딸을 낳았는데, 낳고 기르는데 괴로움이 없었다.
이때 천하가 아주 태평하여 승상이 나면 현명한 임금을 모셔 후원에서 사냥하고, 들면 대부인을 모셔 북당(北堂)에서 잔치하니 이럭저럭 세월이 물 흐르는 듯 하였다. 승상이 장상(將相)이 되어 권세를 잡은 지 이미 수십 년이었다. 유부인이 천수(天壽)를 다하고 별세하자 승상이 슬퍼 야윔이 과도하였다. 임금과 왕비가 중사(中使)를 보내 위로하고 왕후예(王后禮)로 장사 지내게 하였으며, 정사도 부처가 또 상수(上壽)하니 승상이 서러워 하기를 정부인과 같이 하였다.
승상에게 육남 이녀가 있었다. 맏아들은 대경(大卿)이니 정부인의 소생으로 이부상서(吏部尙書)를 하고, 둘째는 차경(次卿)이니 적씨의 소생으로 경조윤(京兆尹)을 하고, 셋째는 순경(舜卿)이니 가씨의 소생으로 어사중승(御史中丞)을 하고, 넷째는 계경(季卿)이니 난양의 소생으로 병부시랑(兵府侍郞)을 하고, 다섯째는 오경(五卿)이니 계씨의 소생으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하고, 여섯째는 치경(致卿)이니 심씨의 소생으로 나이 열 다섯에 용력이 절륜하여 금오상장군(金吾上將軍)이 되었다. 맏딸의 이름은 전단(傳丹)이니 진씨의 소생으로 월왕의 며느리가 되었고, 차녀의 이름은 영락(永樂)이니 백씨의 소생으로 황태자의 첩여가 되었다.
승상이 일개 서생으로 환란을 평정하고 태평을 이루어 공명 부귀가 곽분양(郭汾陽)과 명성을 나란히 하였지만, 곽분양은 육십에 상장(上將)이 되였는데 상은 이십에 장상(將相)이 되어 위로 임금의 마음을 얻고 아래로는 인망이 있어 부디 복을 누리기는 천고에 없는 일이었다.
승상이 나라의 큰 명령 아래에 있기 어렵기에 상소하여 '물러가고자 합니다.'라고 하였지만, 상이 친필로 답장을 써 고집스럽게 만류하였다. 그후 또 상소하여 뜻을 간절히 하자, 상이 친필로 답장을 써 말하였다.
"경의 높은 절개를 이루어 주고자 하지만, 황태후께서 승하하신 후에 어찌 차마 두 공주를 멀리 떠나보낼 수 있겠는가? 성남 사십 리에 별궁이 있으니 이름은 취미궁(翠微宮)이다. 이 궁이 한적하니 경이 은거함이 마땅하다."
하고, 승상을 위국공(魏國公)을 더 봉하고 오천 호를 더 상사하며 아주 승상의 인수(印綬)를 거두었다. 승상이 큰 은혜에 더욱 감격하여 즉시 취미궁으로 가니, 이 궁은 종남산(終南山) 가운데 있어 누대(樓臺)가 장려하며 경치가 아주 빼어나 진실로 봉래(蓬萊) 선경(仙景)이었다.
승상이 그 정전(正殿)을 비워 나라의 조지(詔旨)와 임금이 지은 시문(詩文)을 받들어 모시고 그 남은 누각과 정자는 두 공주와 여러 양자가 나누어 거처케 하였다.
승상이 두 부인과 육 낭자를 데리고 물에 다달아 달을 희롱하고 산에 들어가 매화를 찾아, 혹 시도 화답하며 거문고도 타니 만년의 조용한 복을 뉘 아니 칭찬하겠는가? 팔월 보름날은 승상의 생일이어서 모든 자녀들이 다 헌수(獻壽)하여 잔치하니, 그 번화한 모습은 비할 데 없었다.
이럭저럭 구월이 당하니 국화가 만발하여 구경하기 좋은 때였다. 취미궁 서편에 한 높은 누각이 있으니 올라보면 팔백 리 진천(秦川)이 손바닥 펼 친 모양으로 훤히 보였다. 승상이 부인과 낭자를 데리고 올라가 가을 경치를 희롱하는데, 어느덧 석양은 기울어지고 구름은 나즉히 깔려 가을 빛이 찬란하니 마치 그림 속 같았다.
승상이 옥퉁소를 내어 한 곡조를 부니 그 소리가 처량하여 형경(荊卿)이 역수(易水)를 건널 때 고점리(高漸離)가 비파를 켜고, 초패왕(楚覇王)이 해하(垓下)에서 삼경에 우미인(虞美人)을 이별하는 노래 같았다. 모든 미인이 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니 두 부인이 물어 말하였다.
"승상이 일찍이 공명을 이루고 오래 부귀를 누려 오늘날 좋은 풍경을 당하였는데, 퉁소 소리가 처량하여 전일과 다르니 어찌된 일입니까?"
승상이 옥퉁소를 던지고 난간에 기대어 밝은 달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동쪽을 바라보니 진시황(秦始皇)의 아방궁(阿房宮)이 풀 속에 외롭게 서 있고, 서쪽을 바라보니 한무제(漢武帝)의 무릉(茂陵)이 가을 풀 속에 쓸쓸하며, 북쪽을 바라보니 당명황(唐明皇)의 화청궁(華淸宮)에 빈 달빛뿐이라오. 이 세 임금은 천고의 영웅이어서 사해(四海)로 집을 삼고 억조창생(億兆蒼生)으로 신첩(臣妾)을 삼아 해와 달과 별을 돌이켜 천세를 지내고자 하였지만 이제 어디 있는가? 소유는 하동(河東)의 한 베옷 입은 선비로 다행히 현명하신 임금을 만나 벼슬이 장상(將相)에 이르고 또 여러 낭자와 함께 서로 만나 정이 두텁고 심정이 늙도록 더 긴밀하니, 전생 연분이 아니 면 어찌 그러하겠소? 연분이 있어 모이고 연분이 다하면 흩어지기는 천리 (天理)의 떳떳한 일이오. 우리 한번 돌아가면 높은 누각과 굽은 연못과 노래하던 궁전과 춤추던 정자들이 거친 풀과 쓸쓸한 연기로 적막한 가운데 나무하는 아이와 풀 뜯어 마소 치는 아이들이 손가락질하여 이르되, '양승 상이 낭자와 함께 놀던 곳이다.' 하리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겠소. 천하에 세 가지 도가 있으니 유도(儒道)·선도(仙道)·불도(彿道)라오. 유도는 윤리와 기강을 밝히고 사업을 귀하게 여겨 이름을 죽은 후에 전할 따름이요, 선도는 허망하니 족히 구할 것 아닌데, 오직 불도는 내 근래에 꿈을 꾸면 항상 부들 방석 위에서 참선하는 것이 불가에 반드시 인연이 있는 것 같소. 내 장차 장자방(張子房)이 적송자(赤松子)를 좇은 것같이 하여 남해를 건너 관음(觀音)께 뵈고, 의대(義臺)에 올라 문수보살(文殊菩薩)에 예불하여, 불생 불멸의 도를 얻고자 하나, 다만 그대들과 함께 반평생을 서로 따르다가 장차 멀리 이별하려 하니 자연 비창한 마음이 퉁소 소리에 나타났던 것이오."
여러 낭자도 다 남악 선녀로서 세속의 인연이 장차 다한 가운데 승상의 말씀을 들으니 어찌 감동치 아니하겠는가?
다 말하였다.
"상공이 번화한 중에 이 마음이 있으니 분명 하늘의 뜻입니다. 첩 등 여덟 사람이 마땅히 아침저녁으로 예불하여 상공을 기다릴 것이니, 상공은 밝은 스승을 얻어 큰 도를 깨달은 후에 첩 등을 가르치십시오."
승상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우리 아홉 사람의 마음이 서로 맞으니 무슨 근심이 있겠소."
여러 낭자가 술을 내어와 작별하려 할 때, 문득 지팡막대 끄는 소리가 난간 밖에서 나 여러 사람이 다 의심하였다. 한참 후에 한 노승이 나타났는데 눈썹은 한 자나 길고 눈은 물결 같아 얼굴과 동정(動靜)이 보통의 중은 아니었다.
대(臺) 위에 올라 승상과 자리를 맞대고 앉아 말하였다.
"산야(山野)의 사람이 대승상께 뵙니다."
승상이 일어나 답례하여 말하였다.
"사부(師父)는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노승이 웃으며 말하였다.
"승상은 평생 사귀던 오랜 벗을 모르십니까?"
승상이 한참 보다가 깨닫고 여러 낭자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내 토번을 치러갔을 때 꿈에 동정호에 갔다가 남악산에 올라 늙은 화상이 제자를 데리고 강론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사부가 바로 그분이십니까?"
노승이 박장대소하며 말하였다.
"옳소! 옳소! 그러나 승상은 꿈 속에서 한번 본 것만 기억하고, 십 년을 같이 산 일은 생각하지 못하십니까?"
승상이 멍한 채로 말하였다.
"십육 세 이전은 부모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십육 세 후는 벼슬하여 임금을 섬겨 분주하여 겨를이 없었는데, 어느 때 사부를 좇아 십 년을 놀았겠습니까?"
노승이 웃으며 말하였다.
"승상이 오히려 꿈을 깨닫지 못하였소."
승상이 말하였다.
"사부께서 저를 깨닫게 하시겠습니까?"
노승이 말하였다.
"이 어렵지 않다."
하고, 막대기를 들어 난간을 치니, 문득 흰 구름이 일어나 사면에 두루 껴 지척을 분간치 못하였다.
승상이 크게 불러 말하였다.
"사부는 바른 도리로 가르치지 아니하시고 어찌 환술(幻術)로 희롱하십니까?"
말을 마치지 못하여 구름이 걷히며 노승과 두 부인 육 낭자는 간 데 없었다. 승상이 크게 놀라 자세히 보니 누대 궁궐은 간 데 없고, 몸은 홀로 작은 암자 가운데 앉아 있었다. 손으로 머리를 만지니 새로 깎은 흔적이 송송하고 백팔염주가 목에 걸려 있으니 다시는 대승상 위의는 없고 불과 연화 도장의 성진 소화상(小和尙)이었다.
다시 생각하되,
'당초 일념 그르침을 사부(師傅)가 경계하려 하여 인간 세상에 나가 부귀 영화와 남녀 정욕을 한번 알게 하신 게구나.'
하고, 즉시 새암에 가 세수한 후, 장삼(長衫)을 바로 입고 고깔을 뚜렷이 쓰고 방장(房丈)에 들어가니 모든 제자들이 다 모여 있었다.
대사가
큰 소리로 말하였다.
"성진아, 인간 세상의 재미가 어떠하더냐?"
성진이 머리를 땅에 두드리며 눈물을 흘려 말하였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성진이 함부로 굴어 도심(道心)이 바르지 못하니 마땅히 괴로운 세계에 있어 길이 앙화(殃禍)를 받을 것을 사부께서 한 꿈을 불러 일으켜 성진의 마음을 깨닫게 하시니, 사부의 은덕은 천만 년이라도 갚지 못하겠습니다."
대사가 말하였다.
"네 흥을 띠어 갔다가 흥이 다하여 왔으니 내가 무슨 간섭하겠느냐? 또 네가 세상과 꿈을 다르게 아니, 네 꿈을 오히려 깨지 못하였구나."
성진이 두 번 절해 사죄하고, 설법(說法)하여 꿈 깸을 청하였다.
이때 팔 선녀가 들어와 사례하며 말하였다.
"제자 등이 위부인을 모셔 배운 것이 없기에 정욕을 금치 못해 중한 책망을 입었는데, 사부께서 구제하심을 입어 한 꿈을 깨었으니, 원컨대 제자되어 길이 같기를 바랍니다."
대사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너희들이 진실로 꿈을 알았으니 다시는 망령된 생각을 하지 말라"
하고, 즉시 대경법(大經法)을 베풀어 성진과 팔 선녀를 가르치니 인간 세 상의 모든 변화는 다 꿈 밖의 꿈이요, 한 마음으로 불법에 나아가니 극락 세계의 만만세 무궁한 즐거움이었다.
정미(丁未)년 완남(完南) 개간(開刊)
구운몽 종(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