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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성령 강림
사도행전 2:1~13
오늘부터 주일에 다시 사도행전 강해를 이어서 하겠습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사복음서를 통하여 살펴본 바 있지만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온전히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속의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인간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놓으시고 부활 승천하시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계실 때에 자기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여러번 약속하셨습니다. 승천 직전에도 제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을 떠나지 말고 약속의 성령을 기다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순종하여 예루살렘의 한 성도의 집에 있는 다락방에 모여서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렇게 한 자리에 모여 간절히 기도에 힘쓰던 중에 유대인의 삼대 절기 중에 하나인 오순절 명절을 맞았습니다. 그 오순절 명절에 성령의 강림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1절로부터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성령의 강림은 ‘홀연히’라는 말씀대로 12제자들을 포함한 120명의 성도들이 기도하는 중에 예기치 않게 갑자기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계속하여 기도하며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그 날이 오순절 명절 때라는 분명한 기약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순종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때가 차매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령 받기를 사모하고 은혜받기를 사도할 때에 어떤 인간적인 때를 한계로 삼지 말고 중도에 포기하지 말고 성령을 달라고, 성령 충만, 재충만을 달라고, 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합시다. 누가복음 11장 9~13절 말씀에 이르기를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받는 시기에 대하여 너무 연연해하지 말고 우리 주님의 이 신실한 약속을 믿고 성령을 구하고 도우심을 구하고 문제 해결을 놓고 끈질기게 기도합시다. 주님의 때가 되면 홀연히 하늘 문이 열리고 위로부터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가 임하여 부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아까 읽은 말씀에 보면,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시는 모습에 대하여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들리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보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소리’라는 헬라어 원어 ‘에코스’는 누가복음 21:25 말씀에 의하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라는 뜻으로 사용된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바다에 폭풍이 불고 파도가 무섭게 칠 때의 노한 물결소리, 파도 소리와 같은 소리가 그 날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에게 들린 것입니다. 마치 저 멀리에서 기적을 울리면서 점점 큰 소리로 맹렬하게 이쪽으로 달려오는 화물기관차 소리처럼 완전히 압도하는 거대한 소리가 기도하는 120문도의 다락방을 가득 채운 것입니다. 또한 큰 불덩어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방 한가운데 있더니 그 불덩이로부터 마치 긴 혀처럼 불이 각 사람 위로 갈라져 각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압도적인 현상은 성경에 보면 종종 일어났던 일이기도 합니다. 일찍이 동방의 의인 욥에게 찾아오실 때에도 하나님은 폭풍우 가운데에 나타나셔서 욥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욥기 38:1 말씀에,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는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 호렙산에서 모세를 처음 부르실 때에 하나님은 떨기나무 위에 불 가운데 임하셨던 일도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신 후에 그들을 이끌어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그들을 삼일 동안 정결하게 하신 후에 그들 앞에 시내산 위에 친히 강림하셨습니다. 그 때에도 하나님께서 불, 흑암, 번개, 지진과 함께 임하시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모습을 감히 고개를 들어 쳐다보기도 두려워하였습니다. 또 그의 크고 웅장한 목소리를 듣자 그들은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아서 제발 모세가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달라고 매달렸습니다.
또한 엘리야 선지자가 호렙산 동굴에 숨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찾아오셨을 때에도 그러한 놀라운 현상이 함께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19:11 이하에 기록된 것을 보면,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산을 뒤흔들고 바위를 날려버리는 바람과 땅을 진동시키는 지진과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모습 뒤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엘리야에게 조용히 말씀하시며 대화를 나누신 하나님의 모습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성령 하나님께서 교회에 찾아오신 현상과 비슷합니다.
결국 이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그 다락방에 찾아오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온 세상도 감당치 못할 만큼 지극히 위대하시고 영광스러운 성령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공동체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창세기 1:2 말씀에서 이르기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고 하신 말씀대로 성령 하나님은 곧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렇듯 창세전부터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 가운데 생명을 베푸시며 역사를 운행해오신 성령 하나님은 이제 때가 되매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온전한 성취를 위하여 그의 백성들 가운데 직접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 이전에도 성령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하나님 백성 가운데 일하셨고 선지자들과 함께 일하셨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막 안에 거주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죄악으로 인하여 함께 머물 수 없으셨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때에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위에 비둘기처럼 내려오셔서 그 안에 거주하며 일하셨습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세상에서 유일한 성령의 완전한 거주처가 되시기에 합당한 거룩하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그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와 부활의 영광을 통하여 그의 백성들을 온전히 거룩하게 하셨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몸과 마음은 성령이 거주하실 수 있는 거룩한 거처가 될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실 옛 선지자가 선포했던 새 언약 말씀의 성취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6백년 전에 선지자 에스겔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이렇게 약속하신 바가 있습니다. 에스겔서 36장 25절 이하에 기록된 바,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에스겔서 36:25~27)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어 하나님의 영이 우리 속에 거주하며 새 마음을 주어 하나님의 뜻을 자원함으로 실행하는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명백하게 말씀하셨으니, 이르신 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한복음 14:16~18)
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날에 제자들에게 엄청난 바람과 불과 함께 찾아오신 분은 바로 지극히 크고 두려우신 창조주 하나님이신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더욱이 이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임하실 뿐 아니라 그들의 몸과 마음 안에 찾아와 거하시는 크신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 가운데 첫번째로 성령이 거하시는 몸을 가지고 사신 것처럼, 이제 주 예수를 믿는 자들도 믿음 안에서 동일하게 성령이 거주하며 살아가는 거룩한 성전이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은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거주하시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성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주의 백성들을 성전 삼고 각 사람 위에 들어오셔서 그와 함께 영원히 떠나지 않습니다. 구원의 그날까지 성령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침을 받았으니 결코 마귀가 삼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령 강림 사건은 구속 역사의 위대한 사건들 가운데 하나로서 참으로 위대한 사건입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성령이 강림하여 각 사람에게 임하였을 때 어떤 외적인 현상이 일어났습니까?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주 예수를 믿는 120문도가 간절히 기도하였을 때에 우리 주님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서 그의 백성들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충만히 성도들에게 임하니까 그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는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만유의 창조주가 한낱 피조물인 사람 안에 태풍처럼, 폭풍우처럼, 타오르는 불길처럼 그들의 심령 속에, 온 몸 속에 들어왔으니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래서 성령 충만받으신 분들의 경험을 보면, 온 몸에 불이 임하여 뜨거워 견딜 수 없어서 떼굴떼굴 구르기도 하고(김봉일 목사님), 어떤 분은 성령 충만함을 받았을 때에 그의 영 속에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이 압도적으로 물밀 듯이 들어오고 또 들어오곤 하니까 그의 영이 견디지 못하여 하나님께 그만 보여달라고 울면서 매달리기도 하고(디.엘. 무디 선생), 지극히 아름다우신 주님의 영광을 인하여 한없이 눈물이 나고 자기의 더러운 죄가 온전히 드러나서 한없이 눈물만 흘리기도 하는(요나단 에드워드 목사님) 등 여러 가지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 충만함이 이사야 8:6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이르신 말씀처럼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처럼 차분하고 조용하게 임하여 우리 영혼을 조용히 감싸듯이 잔잔한 평안으로 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서 말한 격렬하거나 차분한 모양이거나 간에 성령의 임하시는 현상들이 다양하게 일어난다 할지라도 우리는 놀라지도 말고 성령의 나타남의 현상에 놀라 그를 너무 제한하지 말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보면, 최초의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난 다락방에 있는 성도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니까 그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기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5절로부터 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여기서 보면 16개 각처의 지방에서 온 오순절 순례자들이 120문도가 성령으로 하는 말을 듣는데, 그 말이 자들이 태어나 살고 있는 각 지방의 언어로 듣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분명히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다 유대인이요 갈릴리 지방 토박이들입니다. 그들은 아까 언급된 16 지역 곧 지금의 이란, 이라크, 터어키, 로마, 리비아, 이집트, 사우디 아라비아, 그리스 지역을 가본 적도 한번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말을 배울 기회도 없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령을 받자 그들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 충만받아 다른 나라의 방언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타 지역에서 온 순례자들의 귀를 열어서 그들의 언어로 알아듣도록 방언 통역의 은사를 주어서 알아들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하튼 갈릴리 출신인 성도들은 자기들도 알지 못하는 말을 했고, 모인 사람들은 그 말의 뜻을 똑똑히 알아들은 것은 기적적인 일입니다. 성령이 임하셔서 행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11절 말씀에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라는 말씀한 대로 그 때 성도들이 방언으로 선포한 말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 역사를 선포한 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구원의 크신 일을 그들은 각 나라의 방언으로 큰 소리로 선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하건대, 이 오순절 성령 강림과 방언의 역사는 바벨탑의 저주를 푸는 대 전환의 사건이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인류의 초창기 때에 노아의 대홍수 후에 사람들이 다 한 언어를 쓸 때에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을 대적하고 인간 자신을 높이려 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쓰는 말이 서로 다르게 함으로써 그 일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 각처로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각 나라와 민족이 나뉘어지고 언어의 장벽이 세워졌는데, 이제 성령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언어를 초월하여 하나가 되어 소통하게 만드셨습니다.
이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인하여 언어의 장벽이 무너졌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성령 안에서 하나님 백성들은 나라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얼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큰 일을 함께 경축하며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거대한 통합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면, 우리들은 저 일본의 형제들도 사랑하게 되고, 저 중국의 형제들도 사랑하게 되고, 저 아프리카 형제들이나 베트남의 형제들이나 미국의 형제들이나 동일하게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민족의 장벽, 언어의 장벽, 혈통의 장벽을 넘어서서 성령 안에서 다 하나로 만드는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해질 때 벽이 무너지고 하나 되는 은혜가 임합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우리가 있는 자리마다 분열 대신에 화평이, 다툼 대신이 화목이 일어날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교회에는 부자와 가난한 자, 세상 지위가 있는 자나 낮은 자나, 세상 지식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아무런 갈등이 없습니다. 모두가 십자가 아래 모인 자요 용서받은 죄인이요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형제요 천국의 기업을 상속한 공동 상속자임을 깊이 자각하기에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령이 눌리고 숨게 되면, 그곳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으로 인하여 다툼과 분열이 심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된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할렐루야.
또 한 가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서 주목할 점은 성령께서 성도들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4절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고 하였지 않습니까? 그것도 각 나라의 방언들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하는 내용은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큰 일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그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복음을 세상에 말하도록 교회와 성도들에게 내려오신 분입니다. 성령은 말하게 하는 분입니다. 성령께서는 성령 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만나는 이들에게, 다른 나라와 민족의 사람이라도 상관없이 하나님의 큰 일 곧 복음을 전하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복음을 듣고 놀라며 그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믿음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반대로 핍박하며 조롱합니다.
12절과 13절을 읽겠습니다.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할 때 이에 동일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은 사도 바울의 지도 아래 그 지역에서 핍박을 견디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꿋꿋이 세워갔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아주 완악해져서 복음을 조롱하였고 무서운 분노감을 가지고 핍박하였습니다. 그들 눈앞에서 기적적인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으나 더 크게 분노하며 대적하였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시기를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느니라 너희는 내 양이 아니므로 듣지 않는도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성령이 복음을 전파하게 하실 때에 동일한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복음을 전하다가 방해와 조롱과 모욕과 폭력적인 핍박을 받는다 해도 이상하게 여기지 맙시다. 반드시 복음을 증거할 때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전하지 않으면 이런 핍박과 조롱도 없겠지만 복음을 듣고 깨닫고 돌아오는 회개의 역사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령이 오셔서 가장 첫 번째로 행하신 가장 중요한 사역 곧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게 하시는 이 일에 순종합시다. 우리가 만일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우리는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끓어오르는 열정이 우리 입술을 열어 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을 받도록 더 뜨겁게 기도합시다. 우리 입술을 통하여 저절로 담대하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놓으신 구원의 크신 일을 담대히 전하도록 합시다. 그리할 때 반드시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으로 작정된 자들을 만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핍박과 조롱도 반드시 받겠지만, 백에 한 사람, 천에 한 사람 반드시 건지게 해주실 것입니다. 핍박과 조롱을 받아도 기뻐할 일은 천국에서 우리에게 큰 상이 있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약속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전도하여 한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면 그 상이 클 것입니다. 다니엘서 12:3 말씀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뜨겁게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전도자들이 됩시다. 할렐루야.
성령 강림 사건은 위대한 사건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중 한 인격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에게 온전히 거주하시려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고 다시 오겠다고 하신 약속을 친히 지켜주신 날입니다. 주님은 그의 영을 통하여 지금 우리와 늘 함께 계십니다. 성령님은 오시자마자 바벨탑의 저주를 풀어주셨습니다. 민족과 언어의 장벽, 모든 분열의 벽들을 다 헐고 하나 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 가는 곳마다 차가운 장벽들이 무너지고 하나 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또한 성령님은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온 세상에 나가 이 구원의 복된 소식을 외치라고 격려자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함을 구합시다. 성령 충만의 시기와 때는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계속하여 기도하면, 성령은 반드시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하실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성령만이 교회와 우리와 세상의 희망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으로 이 세상을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주역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